광룡기 87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87화
87화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 좌측과 전면에서 혈의인들이 튀어나왔다.
역시 시뻘겋게 눈이 충혈된 자들.
“아예 단체로 미쳤군.”
이마를 찡그린 이무환이 한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쌍장을 교차했다.
우르르릉!
교차된 쌍장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이무환은 두 손을 떨치며 손을 쥐었다 폈다.
순간, 벼락 같은 청광 열 줄기가 전면으로 쏘아졌다.
천광뇌공지!
이무환의 팔성 내공이 실린 열 줄기 벼락은 혈의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강했다.
검으로 막은 자는 검이 부러지고, 도로 막은 자는 도가 부러졌다.
그나마도 막지 못한 자는 팔다리에, 몸통에,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순식간에 네 명의 혈의인이 도검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널브러졌다.
그 사이 나머지 혈의인이 이무환과 영호승 등을 공격했다.
광기에 젖은 그들은 동료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데도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오직 이무환 일행을 죽이는 것만이 지상의 목표인 듯했다.
마에 물들어 두려움을 상실한 자들.
혈의인 중 여덟은 이무환에게, 나머지 둘은 영호승 등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이 장 이내로 좁혀졌다.
이무환은 수류보를 펼치며 혈의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팔성의 공력을 끌어올리고 수류보가 펼쳐지자 그야말로 천변만화가 따로 없었다.
흐릿해진 신형이 물처럼 흐르면서 갈라졌다가 합쳐지며 혈의인 사이를 누볐다. 때로는 다섯 개, 때로는 열 개의 환영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당황한 혈의인들은 무조건 도검을 휘둘렀다.
경지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른 것이 아니고, 약의 힘을 빌려 내공만 강해진 자들.
그들은 이무환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어느 것이 진짜인지도 감을 잡지 못했다. 그저 이무환의 환영을 향해 쉬지 않고 도검을 휘두를 뿐.
이무환은 그들이 휘두르는 도검 사이를 누비며 사자탄의 무공 중 무류탄(無流灘)과 만압회(滿壓回)를 펼쳤다.
수류보를 펼칠 때는 천광수뢰공보다 사자탄의 무공이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소리없는 장력이 혈의인들의 움직임을 제압하고, 휘도는 장력이 만근의 압력으로 혈의인을 압박했다.
쿵!
장력이 무거운 굉음을 내며 도검과 몸뚱이를 동시에 짓눌렀다.
도검이 부서지며 혈의인의 몸에 틀어박렸다.
부서진 가슴뼈가 함몰된 가슴을 짓누르며 등뼈까지 부수어버렸다.
혈의인 셋이 피분수를 뿜으며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이무환은 수룡회로 심장을 부수고, 직룡탄으로 머리를 터뜨리며 혈의인들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었다. 확실히 죽이지 않으면 언제 또 일어나 뒤를 칠지 몰랐다.
나머지는 다섯.
이무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정말 지독한 놈들이군.’
천광뇌공지에 몸통이 뚫린 두 놈이 일어나서 막위와 혁수린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영호승과 단우경은 각각 한 사람씩 상대해야 했다.
그나마도 단우경의 상대는 혈의인들 중 제일 강한 자, 만옥이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았는데 단우경의 오른쪽 어깨가 피범벅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이무환은 다시 한번 세 줄기의 천광뇌공지를 튕겨냈다.
피이잉!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 만옥은 홱 몸을 휘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터더덩!
거센 충격을 받은 만옥이 두 걸음 물러섰다.
‘기회!’
단우경이 눈빛을 번들거리며 달려들었다. 그의 칼이 허공을 난자했다. 살을 에는 도기가 만옥을 뒤덮었다.
만옥은 여유 있게 단우경의 공격을 막아내며 이무환의 공격에 대비했다.
하필 그때 혈의인 하나가 이무환의 앞을 가리며 달려들었다.
“비켜!”
이무환은 일장을 내질러서 달려드는 혈의인을 튕겨내고는,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바로 그 순간!
만옥의 검에서 시뻘건 검기가 유형화되어 검강이 쭉 뻗었다.
산산이 부서지는 단우경의 도기. 충격이 큰지 단우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이무환은 우수로 급히 왼쪽 팔목을 쓸었다.
딸깍.
허공에 뜬 이무환의 팔목에서 묘한 기음이 났다.
찰나, 이무환이 우수를 털듯이 뿌리자 우렛소리가 일었다.
콰르릉! 쒜에엑!
한편, 영호승 등은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서 적을 상대했다.
비록 중상을 입은 자들이지만 두 혈의인의 합세는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처음에 달려든 놈들 중 하나는 둘이 상대해도 감당하기 힘든 고수였다.
재수없게 홀로 그의 상대가 된 사람은 단우경이었다.
그는 삼 초를 버티지 못하고 오른쪽 어깨에 일검을 맞았다.
난전이 되는 바람에 누구도 그를 도와줄 수가 없었다. 실력 차이가 미미하니 상대를 바꿔 싸울 수도 없고.
암혈조장 만옥, 그의 상대가 된 단우경은 이를 악물었다.
죽으나 사나 자신이 눈앞에 있는 놈을 맡아야 했다. 그것도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문제는,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몰라도 한쪽 팔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쌍칼을 쓰다 하나만 쓰니 커다란 구멍이 생긴 듯 느껴졌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물러선다는 것은 곧 죽음이었다.
바로 그때 푸른 번개가 번쩍이는가 싶더니, 놈이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물러서는 게 보였다.
이무환이 도와주기 위해 지공을 날린 듯했다.
기회라 생각한 단우경은 아예 오른손의 칼을 버리고 상대의 가슴으로 뛰어들었다.
일격필살!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그러나 실력의 격차가 너무 컸다.
따다당!
젖 먹던 힘까지 다한 세 번의 칼질이 모조리 막혀 버렸다.
그 충격에 오히려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구멍으로 핏덩이가 솟구쳐 올라왔다.
‘젠장!’
단우경은 참담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밀려났다.
그때였다. 만옥의 검에서 두 자 길이 검강이 솟구쳤다.
“크크크. 죽어라, 이놈!”
광기 가득한 시뻘건 눈으로 광소를 흘린 만옥은 끝장을 내겠다는 듯 검을 떨쳤다.
눈을 부릅뜬 단우경은 입술을 깨물고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만옥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만옥은 검을 갈지자로 휘둘러서 도세를 차단하고는 단우경의 심장을 향해 검을 뻗었다.
단우경은 칼을 움켜쥐었다.
어차피 피하기에는 늦었고, 막을 능력은 없다. 방법은 한 가지뿐!
‘지옥에 함께 가자!’
단우경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칼을 위로 올려쳤다. 심장이 뚫려도 손만은 끝까지 움직여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적어도 놈의 배때기에 칼자국은 그어놓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콰르릉! 쒜에엑!
귀청을 울리는 우렛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동시에 번개 한 줄기가 만옥의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찰나 간에 줄어드는 시퍼런 검강.
푹!
만옥의 검이 위로 쳐들리며 단우경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불꼬챙이가 파고든 듯 뇌리까지 치솟는 극렬한 고통!
단우경은 이를 악물고 칼을 마지막까지 쳐올렸다.
콰직!
그의 칼이 만옥의 옆구리에서 심장까지 그대로 가르고 지나갔다.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그의 얼굴과 가슴을 적셨다.
머리에 구멍이 뚫리고 심장이 갈라진 만옥이 서서히 옆으로 꼬꾸라졌다.
‘크윽!’
단우경은 신음을 삼키며,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는 만옥을 바라보았다.
‘내, 내가… 살았나?’
뒤쪽에서 연속적으로 굉음이 들려왔다.
단우경은 굉음이 멈출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어깨에 검이 박혀 있다는 것도 잊었다.
“뭐 해, 멍청아! 한쪽으로 물러나 있어!”
악귀의 목소리가 들린 후에야 지독한 고통이 느껴졌다.
‘흐으읍!’
단우경은 이를 악물고 비칠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악귀의 말이다. 두 다리가 잘렸어도 물러서야 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세 걸음을 옮긴 그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머릿속도 뿌옇게 변했다.
‘악귀가 한쪽으로 물러나 있으라고 했는데…….’
만옥이 죽은 후 싸움이 빠르게 마무리 되었다.
광기를 드러낸 혈의인 열여덟 명은 한 명도 도망치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 도망치려는 자도 없었지만.
그러나 누구도 승리를 기뻐하지 않았다.
단우경이 쓰러져 있었다.
“쌍칼!”
숨을 헐떡이던 영호승이 다급히 소리치며 달려갔다.
막위도 다친 다리를 절룩이며 단우경을 향했다.
혁수린이 옆구리를 부여잡고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판잣집에서 진세를 풀고 나온 남궁산산이 단우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무환이 급히 단우경의 혈을 막아 지혈하고 어깨에 박힌 검을 뽑았다.
영호승이 급히 옷을 찢어 상처를 틀어막자, 강렬한 고통에 정신을 차린 단우경이 오만상을 찡그리며 신음을 흘렸다.
“크으으…….”
“약 내놔!”
이무환이 손을 내밀었다.
영호승과 막위와 혁수린이 서로 마주 봤다.
단순히 외성으로 놀러 나가는 줄 알고 금창약조차 챙기지 않은 것이다.
“뭐 해? 빨리 내놔!”
영호승이 한 대 맞을 각오를 하고 대답했다.
“저… 약을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총대주.”
이무환이 고개를 홱 돌리고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하나씩 줬잖아? 쌍칼 것은 피가 잔뜩 묻어서 그러니까, 멋쟁이하고 꼬챙이 것 내놔봐.”
그제야 이무환이 말한 ‘약’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영호승과 혁수린이 머뭇거리며 품속에서 고약을 꺼냈다.
“이거… 말입니까?”
이무환은 대답도 않고 일단 영호승의 손에서 고약 꾸러미를 낚아챘다. 그러고는 유지를 뜯어내더니 열 개씩 합쳐서 두 개로 만든 후 넓게 폈다.
“상처를 막은 옷 치워봐.”
영호승이 어정쩡하니 피로 범벅이 된 옷자락을 치웠다.
이무환은 넓게 편 고약으로 상처의 양쪽을 덮고 자신의 옷을 찢어 어깨를 감쌌다.
인정사정없이. 단우경이 입을 쩍 벌리며 고통스러워하던가 말던가.
그러더니 혁수린의 손에 들린 고약마저 합쳐서 넓게 편 다음 팔 윗부분을 덮었다.
“오빠, 제가 가진 것도 드릴까요?”
“아니. 됐어. 네 것은 아껴야지. 너도 다치면 필요할 것 아냐?”
다른 때였다면 남궁산산만 챙긴다고 눈치를 줬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만큼은 영호승 등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길거리 약장사에게 산 고약쯤이야.
“쌍칼, 당분간 한 팔만 써야 할 거 같다.”
상처 두 곳을 완전히 감싸고 묶은 이무환이 담담하게 말했다.
단우경이 억지로 입을 열어 물었다.
“많이… 다쳤습… 니까?”
이무환이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조금. 어깨뼈가 두 개 다 나간 것 같아. 문제는 힘줄인데, 아무래도 끊어진 것 같다.”
뼈가 부러지고 힘줄이 끊어졌는데, 그게 조금이야?
남궁산산을 비롯해 영호승과 막위와 혁수린이 어이없다는 듯 이무환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무환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을 이었다.
“나는 열다섯 살 때까지 그보다 더한 부상을 일 년에 한 번 꼴로 당했었는데 뭐. 아홉 살 때는 두 다리가 부러지고 갈비뼈도 네 개나 나갔었어. 다 낫는데 두 달이나 걸렸지.”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 믿지!
누가 광룡 아니랄까 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이무환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네 사람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심지어 남궁산산조차 이무환의 말을 거짓이라 생각했다.
그때 이무환이 가슴 옷자락을 벌렸다.
“봐, 어찌나 상처가 심했는지, 껍데기가 세 번이나 벗겨졌는데도 아직 흔적이 남아 있잖아.”
다섯 사람은 힐끔 이무환의 앞가슴과 배를 쳐다보았다. 특히 남궁산산은 눈빛을 빛내며 정면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순간 네 사람의 눈이 홉떠지고 표정이 석고처럼 굳었다.
군살 하나 없는 몸에 희미한 선이 그물처럼 그어져 있었다.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었다.
절대 자연적인 선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인, 하기에 안다. 이무환의 배에 나 있는 흔적이 상흔이란 걸.
수많은 상흔 중 몇 군데는 갈기갈기 찢겨진 것처럼 보였고, 움푹 살이 파인 흔적도 서너 곳은 되었다.
죽어도 몇 번은 죽었을 상흔.
이무환의 몸에는 그렇게 큰 상흔만도 열 군데가 넘었다.
남궁산산이 눈을 파르르 떨어졌다. 가슴이 먹먹해진 그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오빠…….”
이무환이 그런 남궁산산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많이 다친 사람은 쌍칼인데, 네가 왜 울려고 그러냐?”
하여간 그런 쪽으로는 눈곱만큼도 눈치가 없는 이무환이다.
하긴 그의 잘못만도 아니었다. 그가 다쳤을 때는 아무도 슬퍼해준 사람이 없었으니까.
“쳇.”
남궁산산이 입을 삐죽이며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그때 용강통 쪽에서 한 사람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