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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86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1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86화

 

86화

 

 

 

 

 

 

 

 

눈꺼풀을 파르르 떤 당호민이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고 천천히,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들이켰다. 

 

그는 속이 바짝바짝 말랐다.

 

이번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가 왜 모를까? 

 

여차하면 그 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죽을 지도 모른다. 자신도, 손자도. 

 

그러나 이무환의 말이 사실이라면 거부할 수도 없었다. 거부한다 해서 그냥 물러날 광룡도 아닌 것 같았고.

 

광룡이 소문대로 정말 미친놈이라면,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안단 말인가? 

 

“후우, 다시는 강호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는데… 아직 연이 다 끝나지 않았나 보군.”

 

이무환이 씨익 웃으며 찻주전자를 들어 당호민의 잔을 채웠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래, 뭘 도와주면 되겠나?”

 

“그 약초로 인해 제법 많은 황산검문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요. 제가 그 약초에 대한 걸 밝히면, 노선배께선 증인을 서주십시오.”

 

“내가 증인으로 선다 해서 소용이 있겠나?”

 

“아직 나타나지 않은 걸로 봐서 완성이 안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일단 그 약을 먼저 찾아보지요. 그 후에 나서주면 됩니다. 약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떠들어대는 것보다는 훨씬 믿음이 갈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완성되었다면?”

 

이무환이 무심한 표정으로 당호민을 향해 말했다.

 

“아마 불행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피가 흐를 테니까요.”

 

고저 없는 목소리. 그의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대신 놈들의 죄상이 더욱 확실해지겠지요. 그때도 증인을 서주시면 됩니다. 놈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요. 뭐 그 정도면 됩니다. 제가 어찌 연로하신 노인분께 심한 부탁을 드리겠습니까?”

 

당호민의 눈빛이 보일 듯 말듯 흔들렸다.

 

증인을 서는 정도의 일이라면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런데 묘했다. 안심이 되어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불만이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연로하신 노인 어쩌고 하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였을 것이다. 당호민이 작심했다는 듯 말한 것은.

 

“알겠네. 힘이 닿는 대로 원령초가 어떻게 흘러들어 왔는지도 알아보지.”

 

이무환이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 일은 당호민이 도와주지 않으면 알아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맡기면 빚만 늘어나는 셈. 해서 직접 대놓고 말하기 전에 살짝 자존심을 자극했는데, 그대로 걸려든 것이다.

 

‘노인양반이 승질은 있어 가지고…….’

 

이무환은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저희는 쥐새끼를 맞이하러 가겠습니다.”

 

 

 

제5장. 암혈조의 습격

 

 

 

 

 

 

 

1

 

 

 

출구는 허름한 장원 뒤쪽의 수로 너머, 이십여 장가량 떨어진 곳의 낡은 판잣집이었다.

 

이무환은 남궁산산과 영호승 등을 대동하고 판잣집을 나섰다.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소?”

 

당악이 슬그머니 물었다. 끼어들고 싶은 눈치였다.

 

이무환이 파악한 당악의 무위는 일류 중에 중급 정도. 영호승 등에 비해 약간 떨어질 뿐이다. 

 

문제는 실전 경험이었다. 당악이 절정고수와 싸워본 경험이 없다면 상대의 오 초도 받아내기 힘들었다.

 

당호민의 손자를 맥없이 죽게 만들 수는 없는 일.

 

“죽기 싫으면 문 꼭 닫고 얌전히 있으셔.”

 

당악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나도 그리 약하지 않소!”

 

이무환이 남궁산산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멋쟁이와 붙으면 얼마나 버틸 것 같아?”

 

남궁산산이 당악을 살펴보더니 앵두 같은 입을 열었다.

 

“무위 차이는 크지 않아요. 하지만 생사를 건 싸움이 벌어지면, 멋쟁이 오빠가 십 초 만에 죽일 수 있어요.”

 

이무환이 당악을 바라보았다.

 

“들었어? 당신은 여기 있는 네 사람 중 누구도 이길 수 없어. 생사투라면 십 초 만에 죽어. 그런데 이 네 사람도 적들과 싸울 경우 생사를 장담 못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당악이 이를 악물었다.

 

무위가 큰 차이 나지 않는다 했다. 자신이 봐도 그럴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십 초 만에 죽다니.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그거야 대보면 알 일. 내 걱정은 마시오.”

 

그가 고집을 굽히지 않자 이무환이 물었다.

 

“당신, 절정고수들하고 목숨을 걸고 싸워본 적 있어? 이 사람들은 몇 번이나 그런 고수들과 싸워서 살아남았어. 그중 두 사람은 죽이기까지 했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나도 목숨을 걸고 싸우면 쉽게 지지 않을 거요.”

 

“아, 진짜! 당신이 죽으면 노인네한테 뭐라고 하라고! 나 물 먹일 일 있어?!”

 

“정 그렇다면 용강통을 빠져나갈 때까지 길이라도 안내 하겠소.”

 

당악이 한발 물러서자, 이무환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길 안내라면 말이 되었다. 용강통의 길은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니까.

 

허공을 휙 날아서 집을 건너가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적들이 우르르 몰려들 터. 떼거리로 몰려드는 놈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이용해서 잘근잘근 무너뜨리는 게 나았다.

 

“그럼 길만 알려주고 바로 돌아가셔.”

 

당악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알겠소.”

 

 

 

2

 

 

 

만옥은 이를 갈며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놈이 사라진 지 벌써 이각째.

 

뒤를 쫓던 추적조가 용강통을 다 뒤졌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몇 놈을 잡아서 인상착의를 대고 물어보니 주귀와 함께 서쪽 길로 갔다고 했다.

 

외곽을 지키는 수하들이 발견하지 못한 이상 아직 용강통 안에 있다는 말.

 

만옥은 수하들을 셋씩 다섯 조로 나누고는, 다섯 갈래로 흩어져서 미로 같은 용강통의 길을 샅샅이 훑었다.

 

그렇게 다시 반 각, 북쪽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신호탄이 솟구쳤다.

 

 

 

용강통을 거의 다 빠져나갔을 때였다. 수로를 건너려던 이무환이 미간을 찌푸렸다.

 

우측 멀지 않은 곳에서 뭔가가 솟구치더니 연기를 뿜어냈다.

 

이무환은 뇌정갑의 상태를 확인하고 당악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제 돌아가.”

 

당악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놈들이 왔어. 좌우 다 깔렸군. 적어도 열 이상이야. 느낌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절정고수 못지않은 자들이야. 어서 가라니까?”

 

당악이 머뭇거렸지만 이무환의 기세에 절로 발걸음이 뒤로 밀렸다.

 

그 틈에 이무환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남궁산산이 바로 뒤따르고, 영호승 등이 그 뒤를 호위했다.

 

혼자 남은 당악은 이를 지그시 깨물고 옆길로 빠졌다.

 

‘그냥은 못 가지!’

 

 

 

용강통을 막 벗어나자 넓은 공터가 나왔다.

 

한쪽은 폭이 십여 장가량 되는 수로. 전면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지붕이 부서진 판잣집이 있었다.

 

공터는 수로에서 밀려든 토사가 쌓여 생성된 곳이었다. 그래선지 군데군데 사람 키만 한 갈대들이 비스듬히 쓰러져 있었다.

 

‘세 놈!’

 

달려가는 이무환의 눈이 반짝였다.

 

전면의 판잣집 뒤쪽에서 세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진득한 살기를 띤 놈들. 적이 분명했다.

 

이무환이 두 손을 말아 쥐고 땅을 박찼다. 

 

그 순간.

 

쉬익!

 

판잣집의 좌우와 위쪽에서 혈의인 셋이 튀어나왔다.

 

“흥!”

 

냉랭히 코웃음 친 이무환은 달려가던 그대로 두 손을 휘둘렀다.

 

시퍼런 벼락이 뇌정갑을 낀 손에서 번쩍였다.

 

콰쾅!

 

“크윽!”

 

혈의인 둘이 간발의 차이를 둔 채 양쪽으로 튕겨졌다.

 

머리 위를 타넘은 하나는 영호승과 단우경이 동시에 맡고, 이무환은 튕겨진 두 혈의인을 향해 쇄도했다.

 

바로 그때였다.

 

두 명의 혈의인이 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덤벼드는 것이 아닌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다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 아니었다.

 

이무환은 의아한 와중에도 왼쪽에서 덤벼드는 혈의인의 검을 낚아채 중동을 부러뜨렸다.

 

땅!

 

동시에 허공으로 몸을 띄우고는, 부러진 검날을 오른쪽 혈의인을 향해 날렸다.

 

가슴에 박힌 검날이 뒤쪽으로 빠져나왔다.

 

“크억!”

 

혈의인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죽지는 않아도 당장 움직이기는 힘든 상태. 이무환은 좌측의 혈의인을 공격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가슴에 검날이 꽂힌 혈의인이 쓰러지기는커녕 검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이무환은 좌측 혈의인의 부러진 검을 잡아당기고, 빙글 돌며 우측 혈의인의 가슴을 향해 일장을 내갈겼다.

 

쾅!

 

굉음과 함께 우측 혈의인의 가슴이 함몰되며 뒤로 튕겨졌다.

 

그와 동시, 좌측 혈의인의 아랫배에 이무환의 발이 발목까지 박혔다.

 

퍼억!

 

복부에 일격을 맞은 혈의인이 이 장 밖으로 날아갔다.

 

이무환은 멈추지 않고 튕겨진 두 혈의인을 향해 재차 쇄도했다.

 

두 손에서 시퍼런 벼락이 번쩍였다. 칠성의 공력으로 펼쳐진 천광수뢰공(天光手雷功)이었다.

 

“어디, 이것도 견뎌봐라!”

 

벼락이 줄기줄기 이어지는가 싶더니, 시퍼런 쌍장이 두 혈의인의 가슴을 짓뭉갰다.

 

콰과과광!

 

가슴뼈가 함몰되고 폐부와 심장이 갈가리 찢겨질 정도의 충격!

 

그제야 두 혈의인이 눈을 부릅뜨고 시뻘건 피를 토해냈다.

 

그 순간, 혈의인을 보던 이무환의 눈이 커졌다.

 

몸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에서도 부들부들 떨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시뻘겋게 충혈 된 채 광기를 흘리는 눈. 결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뭐야, 이것들? 미친놈들이잖아?”

 

광룡이 미친놈이라고 하는데도 누구 하나 웃지 못했다.

 

뒤에 있던 남궁산산이 뭔가를 눈치 챈 듯 이무환에게 말했다.

 

“오빠, 아무래도 이상해요. 혹시 그 마단이 만들어진 것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의문이라면 혈의인들이 일개 말단 무사라는 점이다. 

 

‘고작 이런 자들을 부리기 위해서 그런 마단을 만들어?’

 

놈들이 돌지 않은 한 그럴 리가 없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

 

“꼬맹아, 너는 저 안에 들어가서 진을 펼치고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려라.”

 

이무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남궁산산은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즉시 움직였다.

 

“알았어요, 오빠.”

 

판잣집으로 들어간 그녀는 항상 가지고 다니던 산대와 일곱 개의 깃발을 이용해 칠성무혼진을 펼쳤다.

 

곧 판잣집 안이 희미한 안개로 가득 찼다.

 

그 모습을 확인한 후 돌아선 이무환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적의 숫자는 십여 명. 마단을 복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그들의 실력은 절정고수에 못지않았다. 

 

“컥!”

 

그사이 영호승과 단우경과 막위가 합세해서 혈의인 하나를 제거했다.

 

“정말 지독한 놈들입니다, 총대주!”

 

영호승이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둘이 싸워 평수를 이루었다. 결국 막위마저 함께 협공한 후에야 혈의인을 제거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쥐약인지 마단인지를 먹은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좌우간 최대한 조심해.”

 

“예, 총대주!”

 

순간 이무환이 주위를 둘러보며 싸늘히 말했다.

 

“놈들이 온다.”

 

영호승 등은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완전히 돌아버린 놈이 아니라, 두 번 돌아버린 놈이라도 상관없다. 

 

자신들이 어떻게 무공을 익혔는가!

 

악귀에게 얻어맞으며 무공을 익히지 않았는가 말이다!

 

‘얼마든지 와라! 네놈들이 설마 악귀보다 더 지독하겠냐!’

 

네 사람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때 이무환이 뇌정갑을 낀 손을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움켜쥐며 전면으로 걸어갔다.

 

‘열셋? 아니, 열넷인가? 한두 놈은 제법 강할 것 같군.’

 

영호승 등을 지나 전면으로 나선 그의 입가로 싸늘한 미소가 피어났다.

 

“왔으면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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