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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84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5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84화

 

84화

 

 

 

 

 

 

 

 

“무슨 말이지?”

 

“어떤 사람들은 우리 오빠를 악귀라고 불러요. 그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절대 오빠에게 애송이라는 말을 쓰지 않죠.”

 

주귀의 눈이 좁혀졌다.

 

그때 구경만 하던 이무환이 남궁산산에게 다가왔다.

 

“야 인마, 내가 왜 악귀야? 나처럼 순한 악귀 봤어?”

 

“사람을 땅에 묻었다면서요?”

 

“그거야 죽었으니까 묻어준 거지.”

 

“오빠가 죽였잖아요.”

 

“그거야 그놈들이 재수가 없어서 죽은 거지. 그러게 왜 까불어?”

 

“피이, 그래도 오빠처럼 팔다리뼈 다 부숴놓고, 힘줄까지 빼고 땅에 묻는 사람은 없다구요.”

 

“그 양반이야 공손히 물어보는데 대답을 안 해서 그런 거잖아. 그건 엄연히 내 잘못이 아니야, 인마.”

 

주귀는 이마를 찌푸리고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정말일까? 

 

‘에이, 설마. 그냥 겁을 주려고 헛소리를 하는 거겠지.’

 

이곳이 어딘가? 무창의 골칫거리 용강통이 아닌가?

 

이곳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명이 저런 식으로 겁주는 말을 했다.

 

물론 훨씬 더 심한 말도 심심찮게 들렸다.

 

사람을 토막 내서 고기로 팔아먹는 이야기도 그저 술안주에 불과할 뿐.

 

좀 전에 본 남궁산산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지만, 주귀는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다.

 

‘웃기는 놈이군.’

 

그때였다. 이무환이 주귀를 바라보았다.

 

“당신, 조금 전에 뭐라고 했지? 애송이?”

 

변명을 해야 하나, 아니면 강하게 대들어야 하나.

 

그가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이무환이 한 걸음에 주귀 앞으로 다가갔다.

 

순간,

 

퍽!

 

뭔가 묵직한 것이 주귀의 아랫배에 꽂혔다.

 

천천히 고개를 숙인 주귀는 자신의 아랫배에 꽂힌 이무환의 발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입을 벌리고 그동안 먹은 술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우욱!

 

‘어, 언제……?’

 

뒤로 물러나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놈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일순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배에서 시작된 고통이 사지로 뻗어나가는데 눈앞이 하얗게 보일 지경이었다.

 

뒷짐 지고 다가오는 바람에 주의를 게을리 한 것이 잘못이었다. 설마 고수라는 작자가 손이 아닌 발로 먼저 공격을 할 줄이야.

 

어쨌든 그것 또한 자신의 실수임은 분명한 일.

 

주귀는 급히 내력을 휘돌리고는, 안간힘을 다해 뒤로 몸을 뺐다.

 

몸을 빼면서 두 손을 들어 올려 상대의 발이 날아오는 것을 경계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놈이 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어? 한 방에 안 쓰러지네?”

 

이무환은 주귀가 생각보다 빠르게 몸을 추스르자, 다시 한 걸음 나아가며 두 손을 저었다.

 

주귀의 가슴 앞으로 들어 올린 두 손이 저절로 벌어지는 것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이무환의 주먹이 그 사이를 지나 주귀의 가슴에 작렬했다.

 

퍼억!

 

“커억!”

 

데굴데굴 구른 주귀는 다시 웩!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바가지의 술을 쏟아내고는, 비칠거리며 일어섰다.

 

조금 전에 들었던 두 사람의 목소리가 뇌리 속에서 왱왱 울리고 있었다.

 

팔다리를 부수고 힘줄을 빼서 묻었다고 했다.

 

건방지게 대들고,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해서 그랬다고 했다.

 

악귀라고 했던가?

 

아무래도 정말인 것 같았다.

 

주귀는 사력을 다해 고개를 들었다. 문득 주위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자신이 아는 사람들. 용강통의 사람들이었다.

 

‘아, 안 돼! 당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야!’

 

목소리가 가슴에 막혀 나오지 않았다.

 

“우욱!”

 

위장에 남아 있던 피 섞인 술을 다시 한번 모조리 토해낸 주귀는 황급히 목소리를 짜냈다.

 

“무, 물러서.”

 

그러고는 재빨리 한마디를 덧붙였다.

 

“수, 수하점은…….”

 

이무환은 깜박 잊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당신이 수하점을 알고 있다고 했지? 큰일 날 뻔했군. 하마터면 묻지도 않고 죽일 뻔했잖아? 이거 정말 미안하군.”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미칠 일이었다.

 

언뜻 들어서는, 묻고 죽일 걸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말 같지 않는가 말이다.

 

다행히 다가오던 자들은 멈춘 상태. 주귀는 억지로 떨리는 입을 열었다.

 

“그곳은 왜 가려고……?”

 

이무환이 대답했다.

 

“그거야 당신이 알 바 아니고. 아셔?”

 

모른다고 하면 당장 죽일 것 같은 표정이다.

 

얼굴은 여자들 껌벅 죽게 만들 만큼 잘생긴 놈이 심성은 악귀, 그래, 악귀다!

 

“알긴 아오만…….”

 

그가 미처 말을 다 하기도 전, 이무환이 환한 표정으로 턱짓을 했다.

 

“그럼 가자고.”

 

주춤거리며 몸을 세운 주귀가 이무환 일행을 바라보았다.

 

무덤덤한 얼굴, 그 정도로 끝난 걸 다행으로 알라는 눈빛, 조금 더 해도 괜찮았는데, 하며 아쉬워하는 표정들이었다.

 

‘대체 이놈들, 뭐 하는 놈들이야?’

 

주귀 당악은 환장할 것 같은 심정으로 몸을 돌렸다.

 

악귀란 놈이 쳐다보는데, 말대로 하지 않으면 그냥 죽이고 갈 것 같았다.

 

 

 

2

 

 

 

주귀는 골목골목을 십여 번 꺾어 돌더니 허름한 장원 앞에서 멈췄다. 겉으로 봐서는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다.

 

그는 성큼 장원 안으로 들어가더니 안에 대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손님이야.”

 

이무환이 바로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주귀의 말과 동시에 십여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경비인 듯했다.

 

‘흠, 그만큼 은밀한 행사가 벌어지는 곳이라는 말이군.’

 

장원 안으로 들어간 주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뒤쪽의 건물로 다가갔다.

 

슬쩍 뒤를 돌아본 그가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함부로 사람을 들이지 않소. 들어가고 싶으면 약속을 해주시오. 절대 이 안의 광경을 발설하지 않는다고 말이오.”

 

이무환이 피식 웃었다.

 

“제법 사람이 많은데 말이야. 내가 싹 쓸어버리고 알아서 들어갈까? 나도 그게 편할 것 같은데.”

 

주귀가 이를 악물었다.

 

경비무사만 삼십 명 정도다. 그중에는 일류에 달한 고수도 있다. 앞에 있는 놈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만 그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 자리서 결판을 내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의 감각이, 남보다 유달리 예민하다는 자신의 느낌이 절대 그러면 안 된다며 말리고 있었다.

 

“그럼… 안에 들어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책임지지 않겠소.”

 

“좋을 대로 해.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알면 되니까.”

 

 

 

건물로 들어가 벽을 밀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계단은 모두 삼십여 개. 제법 깊었다.

 

그렇게 계단이 끝나자 폭이 일 장 반쯤 되어 보이는 수평 통로가 나왔다. 주귀가 막 발을 뗄 때다.

 

푹!

 

이무환이 갑자기 통로의 석벽에 뇌정갑을 낀 손을 박았다.

 

두부에 손가락을 꽂듯 팔꿈치까지 석벽에 쑤셔 넣고서 이무환이 나직이 말했다.

 

“허튼짓하면 다 죽어.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볼일만 보고 나갈 거니까.”

 

석벽 안에서 목이 막힌 듯 컥컥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광경에 주귀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석벽은 분명 두부가 아니었다. 두께도 일곱 치나 되었다. 그런 단단한 석벽에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쑤셔 넣다니.

 

상상도 못했던 광경에 주귀는 이를 악물었다.

 

‘맙소사! 저 정도였다니!’

 

이무환이 그런 주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만 가지.”

 

주귀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슬며시 가슴에 손을 올리고 엄지와 검지를 말아 동그라미를 그렸다.

 

‘통과시켜’ 

 

그 뜻이었다.

 

 

 

천장 위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흠, 장원 뒤로 수로가 있는 것 같더니, 그 아래쪽인가 보군.’

 

그랬다. 수하점은 이름 그대로 물 밑에 있었던 것이다.

 

통로를 벗어나자 석문이 나왔다.

 

석문 앞에 멈춰 선 주귀가 이무환을 돌아다보고는 벽에 걸린 자루처럼 생긴 복면을 가리켰다.

 

“신분을 가리려면 저걸 쓰시오.”

 

“필요 없어. 그냥 가지 뭐.”

 

주귀가 몸을 돌리더니 석문을 두드렸다.

 

드르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석문이 열리자, 보다 더 넓은 통로가 나왔다. 통로의 양쪽으로는 이십여 개의 석실이 뚫려 있었다. 

 

복면을 쓴 십여 명이 이리저리 오가는 걸 보니 이곳에서 물건을 거래하는 듯했다.

 

“원하는 게 어떤 거요?”

 

주귀가 물었다.

 

이무환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주인을 만나고 싶은데.”

 

주귀가 멈칫했다.

 

“주인은 아무나 만나주지 않소.”

 

“주인이 나를 만나줄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놓을까?”

 

“그건…….”

 

“그냥 조용히 만나서 한 가지만 물어보고 갈 거야. 믿어. 믿어서 남 주나?”

 

갈등이 일었다.

 

수하점의 주인은 자신이 잘 안다. 아니, 잘 아는 정도가 아니라, 이십여 년을 함께 산 사람이다.

 

그분은 물건만 팔 뿐,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자신이 아는 한 그것이 그분의 신조였다.

 

눈앞의 악귀 같은 놈도 만나주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눈앞의 악귀가 그냥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물론 소란이 일 것도 뻔하고.

 

그가 망설일 때다. 한 사람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밀납처럼 창백한 얼굴을 지닌 사십대 초반의 중년인. 그를 본 주귀가 눈을 반짝였다.

 

그는 수하점의 주인이자, 조부가 되는 분의 오른팔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조부가 지금의 일을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주귀가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주인께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무환이 벽과 천장에 눈을 주었다.

 

남궁산산이 한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격음통(激音筒)이에요. 이곳에 저런 것이 설치되어 있다니, 이곳의 주인이 기관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인가 봐요.”

 

“그럼 통로에 설치된 기관도 이곳 주인이 설치한 걸까?”

 

“그런 것 같아요. 그 정도 정밀한 기관은 남에게 맡겨서 설치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흠, 이거 오늘 정말 재미있는데?”

 

두 사람의 대화에 주귀는 어이가 없었다.

 

속이 훤히 보이는 옷을 입고 앞에 서 있는 심정이었다.

 

순순히 데려오지 않고 중간에서 손을 썼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생각을 하니 절로 몸이 떨렸다.

 

“따, 따라오시지요.”

 

 

 

수하점의 주인은 칠십이 다된, 몸집이 작은 노인이었다.

 

노인의 얼굴에는 검버섯이 여기저기 피어서 병색마저 보였는데, 눈빛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맑았다.

 

그는 이무환이 들어가자 조용히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이무환은 마치 자기 집에 들어온 것처럼 편한 자세로 의자에 앉더니 주위 사람들에게 손짓을 했다.

 

“서 있지 말고 거기들 앉아.”

 

남궁산산이 재빨리 이무환 바로 옆자리에 앉고, 영호승과 단우경이 왼쪽에, 막위와 혁수린이 오른쪽으로 나누어져 앉았다.

 

노인은 그 모습을 보고 실실 웃더니 주귀에게도 의자를 권했다.

 

“악이도 앉아라.”

 

주귀는 힐끗 이무환을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한쪽에 앉았다.

 

그제야 노인이 물었다.

 

“누군지 물어도 되겠나?”

 

이무환이 대답했다.

 

“이미 물어놓고 물어도 되겠냐고 묻는 게 어디 있습니까?”

 

“흘흘흘, 젊은 친구가 참 재미있게 말하는군.”

 

“그렇죠? 하하하! 거, 오랜만에 제 말을 제대로 평가해 주는 분을 만나는군요.”

 

“그런가? 흘흘흘흘…….”

 

정말 즐겁다는 듯이 웃어대는 두 사람이다.

 

주귀, 당악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조부의 모습도 그렇고, 조부에게 조금도 거리낌없이 말하는 이무환도 그랬다.

 

마치 십 년을 사귄 지기들이 즐겁게 농담을 나누는 것 같지 않은가.

 

조부가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면, 혹시 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닐까? 그런 의문을 품었을지도 몰랐다.

 

그때 이무환이 말했다.

 

“이무환이라 합니다.”

 

“나는 당호민이라 하네.”

 

이무환이 그냥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호승 등도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이었고.

 

하지만 남궁산산은 동그란 봉목을 크게 뜨고 당호민을 바라보았다.

 

이무환은 그런 남궁산산의 반응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는 분이냐?”

 

남궁산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답지 않게 굳은 표정이었다.

 

순간 당호민과 당악의 표정도 굳어졌다.

 

그때 남궁산산이 본래의 표정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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