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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83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2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83화

 

83화

 

 

 

 

 

 

 

 

약장수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신용이 떨어지면 앞으로는 약초를 싸게 구입할 수가 없게 됩죠.”

 

“만약… 다섯 개 사면? 그래도 안 알려줄 거야?”

 

다섯 개라면 은자 다섯 냥이다. 하루 종일 팔아야 두세 묶음인 걸 생각하면 이틀치 판매량이었다.

 

더구나 생긴 것과 달리 조금 덜떨어진 놈처럼 보이지를 않는가 말이다.

 

약장수가 주위를 살피더니 손을 내밀었다.

 

선금을 달라는 뜻.

 

이무환은 아까운 듯, 후회하는 듯 품속에 손을 넣고 꼼지락거리더니 세 냥을 더 꺼냈다.

 

“다섯 개에 네 냥. 싫으면 말고.”

 

약장수는 힐끔 이무환의 손바닥을 보더니 자신의 손으로 은자를 덮었다. 동시에 이무환이 손을 쥐어 은자를 감쌌다.

 

그제야 약장수가 이무환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더니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무창성 내 용강통에 가서 수하점이란 곳을 찾아가 보쇼. 더는 말 못하니까, 거기서부터는 공자님이 알아서 찾으쇼.”

 

이무환이 슬며시 손에서 힘을 뺐다.

 

잽싸게 은자를 낚아챈 약장수는 희희낙락하며, 한쪽에 쌓여 있는 고약 다섯 묶음을 들어서 이무환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여기 있소. 내 솔직히 말하지만, 지금까지 만든 약 중 제일 효과가 좋은 거요.”

 

 

 

이무환은 털레털레 길을 걸어가며 영호승에게 유지에 싸인 네 묶음의 고약을 넘겼다.

 

“멋쟁이, 이거 하나씩 가져.”

 

어색한 표정으로 고약을 받아 든 영호승이 단우경과 막위와 혁수린에게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길거리 약장수에게 산 엉터리 약이다. 약효야 써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래도 이무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받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 것도 주지 않을 사람. 그게 이무환인 것이다.

 

약을 받은 네 사람은 행여나 남이 볼세라 고약 묶음을 재빨리 품속에 넣었다. 

 

이무환은 남은 한 묶음을 남궁산산에게 내밀었다.

 

“자, 너도 하나 가져, 꼬맹아.”

 

“피이, 오빠나 쓰세요.”

 

“나는 이런 거 필요 없어, 인마. 안 받아?”

 

남궁산산이 손을 내밀어 고약 한 묶음을 받아 챙겼다.

 

쓸데가 없는 엉터리 약이라도 이무환이 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남궁산산은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 남궁산산에게 이무환이 말했다.

 

“아침에 보니까 다리 사이에서 피가 나는가 보던데, 언제 다친 거야? 일단 그거 발라봐. 나을지 모르니까.”

 

순간 남궁산산의 얼굴이 빨개지고, 영호승 등은 걸음을 늦추고 이무환과 거리를 벌렸다.

 

‘어이구, 무식한 대주! 왜 그런지 정말 몰라서 그걸 남궁 소저에게 대놓고 말하는 거요?’

 

 

 

요리는 광룡대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나았다.

 

입맛을 쩝쩝 다신 이무환은 화리찜을 뼈까지 싹싹 발라서 깨끗하게 처리했다.

 

이무환은 거기에 두 잔의 차를 마저 더 비우더니, 지나가는 점소이를 불렀다.

 

“이봐, 뭐 좀 묻지?”

 

“예? 뭔데요?”

 

“성 밖의 용강통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지?”

 

점소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무환을 흘겨봤다.

 

“그곳에 왜 가시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가봐야 별로 기분 좋은 곳은 아닙니다요.”

 

“글쎄, 그건 걱정 말고, 가는 방법이나 알려줘.”

 

점소이가 턱짓으로 서쪽을 가리켰다.

 

“서문을 나서셔서 무창으로 들어가자마자 북쪽으로 한참 가면 지저분한 곳이 나옵니다요. 그곳에 가셔서 물어보시면 알려줄 겁니다요.”

 

“그래? 흠, 서문을 나서서 무창으로……. 알았네. 자, 식사 다 했으면 가지?”

 

뭔가를 짐작한 듯 남궁산산의 눈빛이 반짝였다.

 

“거기를 가보시게요?”

 

“시간도 많은데 가보지, 뭐. 혹시 알아? 뜻밖의 정보를 얻을지.”

 

이무환이 일행과 함께 성문을 나서자, 그를 감시하던 자들이 바빠졌다.

 

그중 얼굴이 얽은 삼십대 장한은 다른 두 사람을 불러 뭐라 속삭이더니 부리나케 어디론가 뛰어갔다.

 

 

 

4

 

 

 

수하의 보고를 듣던 황의청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놈이 분명하더냐?”

 

장한은 슬쩍 황의청년을 올려다보고 미심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엉터리 길거리 약을 다섯 통이나 사는 걸 보니, 영락없이 철없는 애송이 같아서 영…….”

 

광룡이야 원래 미친놈이 아니던가?

 

더구나 항상 같이 다니던 꼬마 계집과 일명 광룡사위라 불리는 네 명의 호위무사가 함께 있다 했다.

 

황의청년은 의심을 털어내고 다시 물었다.

 

“현재 위치는?”

 

“놈이 꼬마 계집과 광룡사위를 데리고 성을 벗어났습니다.”

 

그 말에 황의청년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성을 벗어났다고? 방향은?”

 

“서문을 나서서 무창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 팔호와 구호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좋았어! 절대 놓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해라.”

 

“예, 이령주!”

 

수하가 나가자 황의청년의 두 눈에서 살광이 폭사되었다.

 

“놈을 잡아 내 위치를 확고히 하겠어! 만옥!”

 

그가 나직이 소리치자, 있는 듯 없는 듯 창문 쪽에 서 있던 혈의무사가 고개를 숙였다.

 

“예, 이령주.”

 

“자신 있나?”

 

“암혈조는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넷이면 장로라 해도 필사지요. 하물며 저와 열일곱 전원이 나서면……. 그 철없는 애송이는 반드시 죽습니다.”

 

황의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안에 든 걸 하나씩 나눠 주고, 놈을 치기 직전 복용하라 일러둬라.”

 

혈의무사, 암혈조장 만옥은 그 안에 든 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대령주가 심혈을 기울여 제조했다는 폭마단(爆魔丹)이군.’

 

그런데 왠지 찜찜했다.

 

하지만 내미는 것을 안 받을 수도 없었다.

 

만옥이 주머니를 받자 황의청년이 말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믿지 마라. 애송이처럼 보이는 놈에게 절정의 고수들이 농락당했다는 점을 명심해.”

 

“알겠습니다, 이령주.”

 

“반드시 죽여야 한다. 놈이 다시는 구룡성 안으로 들어와선 안 된다는 점 명심하고. 알겠나?!”

 

“존명!”

 

 

 

5

 

 

 

구룡성에 들어간 이후 처음으로 성문을 나섰다.

 

들어갈 때는 싸늘한 바람이 불던 겨울이었는데, 어느새 겨울이 막바지 몸부림을 치며 봄기운에 밀려나고 있었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흥얼거리며 걷던 이무환이 지나가듯이 입을 열었다.

 

“날이 풀리니 족제비들이 대낮에 사람을 쫓아다니는군.”

 

남궁산산과 영호승과 혁수린의 얼굴이 굳어졌다.

 

반면에 단우경과 막위는 두리번거리며 진짜 족제비를 찾았다.

 

마침 참나무가 우거진 곳 나무 뿌리 사이에서 족제비 한 마리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어? 진짜네?”

 

막위가 감탄하며 이무환을 우러러봤다.

 

혀를 찬 이무환이 걸음을 빨리했다.

 

“쯔읍, 한 놈이 주인에게 달려갔으니 곧 귀찮은 놈들이 몰려올 거야. 그전에 무창으로 들어가자고.”

 

남궁산산이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이럴 줄 알고 나왔죠?”

 

“암상에 대해선 몰랐어. 그냥 미끼를 던져 볼 생각이었지.”

 

“오빠가 철없이 행동해서 조금은 덜하겠지만, 그래도 제법 사납게 나올 거예요.”

 

“아무래도 그러겠지. 하지만 상관없어. 오늘이 아니래도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놈들이니까.”

 

어차피 맞을 매, 일찍 맞는 게 낫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의도한 곳에서, 준비하고 있다 부딪치는 게 나았다.

 

두 사람의 대화에 뒤를 따라가던 네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이제야 이무환이 왜 가볍게 행동했는지, 성을 나왔는지 이해한 것이다.

 

 

 

제4장. 수하점(水下店)과 폭령잠마단(爆靈潛魔丹)

 

 

 

 

 

 

 

1

 

 

 

무창의 북쪽은 그물처럼 얽힌 수로를 따라 판잣집이 밀집되어 있었다.

 

당연히 길도 엉망이었다.

 

두 집 지나 꺾어지고, 세 집 지나 꺾어졌다. 미로와 같은 길옆으로는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조금 큰길가로 나가니 홍등이 즐비하니 매달려 있었다.

 

무창에서도 유명한 용강통의 홍등가였다.

 

이무환 일행이 나타나자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평복이라지만 거리의 일반인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복장이었다.

 

게다가 허리에, 등에 검과 도까지 차고 있으니 호기심이 동하는 게 당연했다.

 

몇몇 술꾼들은 대낮부터 취해서 남궁산산을 음침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꼬맹아, 저놈들은 네가 여자로 보이는가 보다. 미친놈들.”

 

“원래부터 여자였어요. 오빠만 부정할 뿐이죠.”

 

힐끔 남궁산산을 바라본 이무환이 피식 웃었다.

 

“너는 임마, 그냥 꼬맹이야. 여자는 무슨……. 헛소리 말고 수하점이 어딘지나 물어보자.”

 

남궁산산이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몇 걸음 앞으로 튀어나갔다. 어디 한번 보란 듯이 가슴을 쑥 내밀고.

 

휘익! 휘이익!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이리 와! 우리와 한잔하자고!”

 

“거기 힘도 없는 놈팡이하고 노는 것보다 우리가 더 재미있게 해줄게!”

 

그때였다. 허름한 이층 주루에서 한 사람이 휙 몸을 날려 남궁산산 앞에 내려섰다.

 

영호승 등이 그를 막으려 하자 이무환이 손을 들어 막았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일을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남궁산산의 앞을 막은 자는 흐트러진 머리로 인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것만 봐도 서른은 안 되어 보였다.

 

제법 고급 재질로 보이는 갈색 옷은 술에 얼룩진데다가 심하게 구겨져서 싸구려 마의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가 남궁산산 앞에 내려서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쳇, 주귀가 먼저 찍었군.”

 

“제길, 귀신은 저놈 안 잡아가고 뭐 하나 몰라?”

 

“조용해. 저 술에 미친 놈 건드려서 좋은 꼴 난 놈을 보지 못했으니까.”

 

주귀라 불린 자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남궁산산을 보더니 타이르듯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 이곳은 위험한 곳이거든? 저런 철없는 공자하고 같이 다닐 만한 곳이 아니야.”

 

지독한 술 냄새가 확 밀려왔다. 그러나 남궁산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사람 사는 곳이 뭐 별다르겠어요?”

 

“별다르냐고? 암, 별다르지. 특히 이곳 용강통(冗糠通)은 더 그렇지.”

 

“이곳의 이름이 용강통인가요?”

 

“맞아, 쓸모없는 놈들이 모인 곳이 바로 이곳이지.”

 

“하긴, 내가 봐도 그렇게 보이네요. 특히 당신 같은 사람을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나?”

 

“가진 것을 어디다 쓸 줄 몰라서 술에 절어 청춘을 낭비하고 있잖아요.”

 

주귀가 씩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가진 것? 술 한 잔만도 못한 것 말이냐?”

 

“술 한 잔만 못한 것도 주인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는 법이죠.”

 

결국 주인이 문제란 말이다.

 

“크큭, 그럴까? 이거 타이르려다 거꾸로 배우는군.”

 

“배웠다 생각하면 한 가지만 알려줘요.”

 

“뭘 말이냐?”

 

“수하점이 어디 있어요?”

 

주귀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조금 전까지의 술에 찌든 눈빛이 아니었다.

 

“거기는 더욱더 너, 어린 계집이 갈 데가 아니다.”

 

남궁산산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사라졌다. 그녀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건 당신, 술에 찌든 쓸모없는 술꾼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에요. 그리고 나에게 어린 계집이라는 말은 우리 오빠 말고는 아무도 할 수 없어요.”

 

주귀의 눈빛이 찰나간 흔들렸다.

 

남궁산산의 눈빛과 마주친 순간, 원초적인 어떤 공포에 몸 깊은 곳에서 떨림이 인 것이다.

 

“내가… 잘못 알았군.”

 

“그래서 쓸모없는 술꾼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질문을 던지는 주귀의 눈이 보다 신중해졌다.

 

“왜 거길 가려고 하지?”

 

남궁산산의 표정이 다시 환하게 펴졌다.

 

“오빠가 그곳에 가시려고 하거든요.”

 

주귀의 눈이 이무환을 향했다.

 

“저 애송이가?”

 

남궁산산의 환해진 얼굴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혹시 악귀라고 들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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