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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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82화
82화
절벽에서 졸고 있던 갈매기들이 깜짝 놀라서 푸드득, 절벽을 박차고 동쪽을 향해 날아갔다.
옥이가 집으로 돌아간 것은, 옥이 엄마가 더 기다리지 못하고 찾아 나서려 할 때였다.
찬바람이 휭휭 불도록 입을 꾹 다문 옥이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뭐 좀 먹고 자야지?”
“싫어! 안 먹어!”
다음 날.
백사장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 너머만 바라보던 옥이는 상선 한 척이 정한도에 들어오자 그 배를 타고 상산으로 향했다.
이무환을 찾아서!
옥이 엄마가 그 사실을 안 것은 오후 늦게였다.
그녀는 즉시 배를 저어 비룡도로 갔다.
“환이 아버지! 옥이가, 옥이가 뭍으로 나갔어요! 당신이 준 돈을 가지고…….”
옥이 엄마의 목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나왔던 이충량은 깜짝 놀라 급히 옥이 엄마의 배 위에 올랐다.
“그게 무슨 소리요? 옥이가 뭐 하러 뭍으로 나갔단 말이오?”
“저와 환이 아버지 관계를 알고는, 아무래도 환이를 찾아가려고 나간 거 같아요. 어떡하죠?”
“너무 걱정 마시오. 날이 밝는 대로 내가 나가서 찾아올 테니까!”
2
석양이 질 무렵, 상산에 도착한 은선옥은 좌우를 둘러보며 안절부절못했다.
곧 어둠이 밀려올 것 같았다. 육지에 처음 나온 그녀가 아는 곳이 어디 있을까.
‘칫, 너무 성급했나? 어디로 가지?’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꼬불쳐 놓은 돈을 훔쳐 왔으니까. 문제는 육지에 처음으로 나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열 살 정도 되는 꼬맹이가 다가오더니, 은선옥의 위아래를 잽싸게 훑어보곤, 당장 혀를 찰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혹시 갈 데가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그렇다면 제가 값싸고 인심 좋은 객잔을 알려 드릴 수 있는데요.”
은선옥은 꼬마의 표정을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꼬마의 눈에는 무작정 집을 나온 철없는 소녀처럼 보인 듯했다.
‘하긴 사실이 그렇지 뭐.’
은선옥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힘없이 물었다.
“정말 그런 데 있어?”
꼬마, 용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성하루라고, 맛도 끝내주고, 인심은 더 끝내주죠. 따라와요, 누나.”
두 사람이 돌아설 때였다. 저만치서 청년 다섯이 옥이와 용아를 향해 다가왔다. 그중 한 청년이 두 손을 벌리며 소리친다.
“오호! 이게 누구야? 너, 옥이 맞지?”
은선옥이 그를 알아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정한도에서 패악을 일삼다가 두어 달 전에 쫓겨난 비강구였다.
“강구 오빠?”
“나를 알아보기는 하네?”
은선옥은 차갑게 눈을 빛내며 비강구와 그의 옆에 서 있는 청년들을 살펴보았다.
네 명의 청년 옆구리에는 박도가 걸려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비강구나 다를 게 없는 자들 같았다.
‘한둘이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더구나 옆에는 꼬마까지 있었다.
은선옥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환이 오빠에게 아직 혼이 덜 났나 보죠?”
비강구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흥! 그놈이 비룡도를 떠났다는 말을 들었지. 그리고 이곳에는 그놈의 아비도 없고 말이야. 흐흐흐흐……. 이곳에서 너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아직 모르나 보군.”
“흥! 쉽지 않을 걸요?”
“크크크, 네년의 손이 제법 매섭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지. 하지만 오늘은 어림없다. 여기 형님들은 너보다 더 강하니까. 흐흐흐, 기대해도 좋아. 네년의 팔다리를 부러뜨려 놓고, 실컷 즐긴 다음에 창기촌에다 팔아주마.”
“비열한 개자식!”
은선옥은 입술을 짓씹으며 욕설을 퍼붓고 슬쩍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꼬마에게 급히 말했다.
“꼬마야, 너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빨리 도망가.”
용아는 상황을 대충 눈치 채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더니 잽싸게 뒤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누나도 빨리 도망쳐!”
하지만 은선옥은 도망가려 해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청년들이 재빠르게 움직여서 그녀를 둘러싼 것이다.
“후후후, 오늘 정말 재수가 좋군. 정한도 제일의 미녀를 안아볼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은선옥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미친 새끼!”
그러고는 득달같이 달려들며 발을 휘둘렀다.
“헛! 이년이!
흠칫한 비강구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상산으로 나와 두어 달간 무예를 배웠다지만, 그는 아직 은선옥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급히 네 명의 청년을 향해 소리쳤다.
“형님들, 저년이 보통 사나운 게 아닙니다! 조심해서 상대하십시오!”
청년들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칼을 빼 들었다. 그중 얼굴에 흉터가 있는 청년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흐흐흐, 걱정 마라. 우리의 상대는 아니니까. 어디 내가 나서보지.”
하지만 은선옥은 그들의 예상보다 더 강했다. 혼자서는 그녀를 상대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화가 난 청년들은 은선옥을 향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문제는 은선옥의 대전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상대한 자들은 기껏해야 정한도의 시시껄렁한 청년들이거나, 가끔 정한도에 들렀다가 그녀를 희롱하려던 선부들뿐이었다.
무공을 익힌 자 넷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십여 초가 지나자 은선옥의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이십여 초가 흐르면서 여기저기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그녀의 보법이 흐트러진 사이, 눈 먼 칼날이 그녀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악!”
은선옥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허리를 구부리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제법 깊게 베인 듯 옆구리를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피가 배어 나왔다.
순간 뒤쪽에 있던 자가 달려들며 발을 날렸다. 이제 칼을 쓰지 않아도 충분하다 생각한 듯했다.
은선옥이 피하려 했지만, 옆구리 상처로 인해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퍽!
“헉!”
일격에 은선옥의 몸이 옆으로 서너 바퀴 굴렀다.
그녀는 고통을 참고 몸을 일으키기 위해 땅을 짚었다.
그때 기회만 엿보던 비강구가 재빨리 달려들더니, 발로 그녀의 옆구리를 밟고 목에 칼을 들이댔다.
“악!”
“움직이면 네년의 목을 따버릴 것이다.”
“개… 자식!”
“이 찢어 죽일 년이! 조금만 있어봐라,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될 테니까.”
비강구가 욕설을 퍼부으며 은선옥을 위협할 때다. 청년들이 다가오며 은선옥의 몸을 쓸어보았다.
“후후후, 잡았군. 정말 사나운 계집이었어.”
“진짜 멋진 계집인데?”
“크크, 오늘 복 터졌군.”
“이봐, 끌고 가자고.”
비강구가 은선옥의 옆구리에서 발을 떼며 대답했다.
“예, 형님.”
청년 중에서 이마에 점이 하나 박힌 자가 나서더니 은선옥의 뒷목을 가볍게 발로 찼다.
그러고는 축 늘어진 은선옥을 불끈 들어 어깨에 멨다.
“킬킬킬, 살결이 제법 부드러운데?”
날카로운 파공음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휘이익!
“응?”
맨 뒤로 처져 있던 청년이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찰나였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오리 알 굵기의 몽둥이가 청년의 어깨에 떨어졌다.
“크억!”
청년의 입에서 답답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명을 지른 그는 한쪽 팔을 축 늘어뜨린 채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부웅!
몽둥이가 수평으로 허공을 가른 순간, 또 다른 자의 목에 몽둥이가 떨어졌다.
전광석화와 같은 일격!
퍽!
“켁!”
얼굴에 기다란 검상이 있는 청년이 목을 부여잡고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눈을 뒤집어 까며 힘없이 나뒹굴었다.
“웨, 웬 놈이냐?”
겁에 질린 비강구가 소리쳤다.
그러나 몽둥이의 주인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또다시 시커먼 몽둥이를 검처럼 휘둘렀다.
후우웅!
단순한 몽둥이가 붉게 타오르던 석양을 가르며 입이 쥐새끼처럼 튀어나온 청년을 후려쳤다. 그는 재빨리 칼을 빼 들었지만, 그가 믿었던 칼은 몽둥이로부터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땅! 퍼벅!
몽둥이는 칼을 튕겨내고도 모자라 청년의 튀어나온 입 부분을 쓸고 지나갔다.
이가 부러져 튀어나오고, 찢어진 입술에서 핏물이 튀었다.
뇌리를 휘젓는 거센 충격!
쥐새끼처럼 입이 튀어나온 청년은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삼류무사의 눈에도 평범한 수법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정도의 위력이 담긴 몽둥이질이다.
이마에 점이 박힌 청년은 은선옥을 한쪽에 내던지고는, 동료들을 내팽개친 채 죽어라 도망쳤다.
“씨발새끼! 너, 거기서 기다려! 내가 형님들을…….”
그걸 본 몽둥이의 주인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나직이 흘러나왔다.
“동료를 버려두고 도망치다니, 죽어도 싼 놈이군.”
순간이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칼 한 자루를 발로 차올리더니, 손등으로 도병의 끝을 가볍게 후려쳤다.
휘이익! 퍽!
허공을 날아간 칼은 손잡이만 남긴 채 이마에 점이 박힌 청년의 등을 파고들었다.
“흐어억!”
그는 두어 걸음을 더 걷다 그대로 꼬꾸라졌다.
검의 주인은 그가 쓰러지는 것을 보지도 않고 비강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비강구는 그 자리에서 오줌이라도 쌀 것 같은 자세로 서서 덜덜 떨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용아의 외침이 들렸다.
“강 아저씨! 그 사람이 제일 나쁜 사람이에요! 저 누나의 팔다리를 다 부러뜨려서 병신으로 만든 다음에 창기촌에 판다고 했어요!”
몽둥이의 주인, 사마강은 비강구에게 다가가며 시커먼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용아의 말만으로도 비강구가 무슨 짓을 할지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너는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으니, 앞으로는 기어다니면서 살아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 알게 될 것이다.”
사마강의 몽둥이가 비강구의 무릎을 향해 떨어졌다.
3
이틀의 자유 시간.
이무환은 평복을 한 채 남궁산산과 영호승 등을 데리고 외성으로 나갔다.
잠풍련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들의 감시를 늦추기 위해선 자신이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신이 난 것은 남궁산산이었다.
“오빠, 우리 객점에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어요.”
“그럴까?”
그런데 어째 이무환이 더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그는 걷다 말고 구경거리가 있으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머물렀다.
약장수가 고약을 팔기 위해 차력 시범을 보이는 곳에선 쪼그리고 앉아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이야! 진짜 배때기에 철갑을 둘렀나 보다. 그지, 꼬맹아!”
“오빠도 한번 해볼래요?”
“싫어. 내 배는 워낙 연약해서 칼이 닿기도 전에 살이 갈라질 거야. 근데 저 고약, 진짜로 갈라진 살도 붙게 해줄까?”
“갈라서 붙여보면 알겠죠.”
“누구 배 갈라진 사람 데려와 볼까?”
차력 시범을 보이던 약장수가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그래도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그때 차력사 중 하나가 창날을 목에 대고는, 창끝을 잡고 있는 자를 들어 올렸다.
그걸 본 이무환이 커다랗게 소리쳤다.
“우와! 창을 목에 꽂고 사람을 들었어!”
어찌나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는지, 뒤에 멀뚱히 서 있는 영호승 등이 고역스러울 정도였다.
그 시각, 그런 이무환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세 사람. 따로 떨어져 있는데도 복장으로 봐서는 일행인 듯했다. 그들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듯 인상을 구긴 채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감시하고 있는 대상이 정말 광룡일까? 아니면 단순히 광룡의 거처에서 나온 어떤 덜떨어진 멍청이가 아닐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곁에 남궁산산과 영호승 등만 없었다면 즉시 수룡단으로 돌아가서 진짜 광룡이 나오기를 기다렸을지 몰랐다.
그 와중에도 시간이 갈수록 이무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저, 저, 저… 떨어진다!”
그 목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외줄을 타던 소녀가 줄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사람들의 염려와 달리, 소녀는 몸을 한 바퀴 빙글 돌리더니 바닥에 사뿐히 착지했다.
그 모습에 이무환이 환호하며 박수를 쳐댔다.
“이야! 정말 잘한다!”
그때 옆에서 피식거리며 웃던 남궁산산이 이무환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오빠, 식사는 안 할 거예요? 맛있는 거 먹자면서요?”
“응? 식사? 해야지. 가자!”
이무환이 깜박 잊었다는 듯 벌떡 일어서 돌아섰다.
그러자 약장수 하나가 후다닥 달려왔다.
“저, 공자님. 약 하나 안 사실 겁니까?”
“약? 얼만데?”
“하나에 열 문, 한 묶음에 스무 개가 들었으니, 은자 한 냥이면 됩니다. 아주 싸죠.”
이무환이 인상을 찡그렸다.
“비싼데…….”
약장수가 주위를 힐끔거리더니 나직이 말했다.
“얼마 전에 암상에서 구한 아주 좋은 약초를 배합해서 효과가 끝내줍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무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상? 그런 데도 있나?”
“그냥 그렇게만 아십쇼. 어떻습니까? 하나 사시죠.”
이무환이 품속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작은 은두 하나를 꺼냈다.
“오빠, 정말 사시게요?”
“다치면 필요할 거 같아서. 왜, 사지 말까?”
약장수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사놓으시면 반드시 쓰실 데가 있을 겁니다, 공자님!”
이무환이 잠시 생각하더니 눈빛을 빛내며 넌지시 물었다.
“그 약초 구했다는 암상이 어디지? 구룡성 안에 있나? 그걸 알려주면 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