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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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19화
119화
그는 곡항의 뒤를 따라 신형을 날렸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곡항이 개구리처럼 패대기쳐져 날아든다.
그게 끝이 아니다. 엉겁결에 그를 받아 들기 위해 손을 뻗는 두 사람을 향해 이무환이 달려든다.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흐름을 알고 뒤쪽에 서 있던 자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조심하게! 보통 놈이 아니네!”
그들은 조금 더 일찍 그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대가는 너무도 컸다.
후우우웅!
찰나간에 이무환이 만겁궁 고수들의 전면을 덮쳤다.
제일 먼저 곡항을 받아 들려던 두 명의 만겁친위단 무사가 벼락을 맞았다.
콰광!
“커억!”
“이놈이……. 크윽!”
그게 시작이었다. 마침내 광룡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광풍폭우가 몰아치는 듯했다.
마른하늘에서 시퍼런 번개가 줄기줄기 쏟아졌다.
그는 하나이되 하나가 아니었다.
수류보를 펼치자 허공에 환영이 가득 찼다.
어느 순간 넷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고, 여덟이 되었다가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놈을 막아라!”
“합공해서라도 죽여!”
뒤늦게 무기를 뽑아 든 몇 사람이 이무환의 환영을 향해 도검을 날리고 장력을 내쳤다. 하지만 도검은 환영만 가르고, 장력은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동안에도 이무환은 상대의 공격을 비집고 만겁궁의 고수들을 하나둘 거꾸러뜨렸다.
“크억!”
“으헉!”
연이어 터져 나오는 비명, 신음.
눈 깜짝할 사이 네 명의 고수가 폭풍에 휘말리고, 번개에 두들겨 맞은 채 사방으로 튕겨졌다.
“웃으면서 말하니까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정말 그런 거야!”
괴성을 내지르듯이 고래고래 소리치는 순간에 또 두 명이 격한 신음을 토하며 나뒹굴었다.
퍼버벅!
“크으윽!”
“멈춰라!”
그제야 송림이 떠나가도록 한 소리 내지른 담사황이 폭풍의 중심을 향해 날아갔다.
이무환은 등 뒤에서 엄청난 기운이 밀려오자 허공으로 신형을 뽑아 올렸다.
순간 만 근 압력이 실린 담사황의 만겁수가 이무환을 따라 솟구쳤다.
동시에 오 장 높이로 솟구친 이무환의 두 손에서 시퍼런 번개가 번쩍였다.
천광수뢰장 중 천광뇌벽이었다!
쩌저적! 콰광!
굉음이 공터를 뒤흔들었다.
이무환의 신형은 삼 장을 더 솟구친 후 바람을 타고 흐르듯 십 장을 날아가고, 담사황은 폭풍의 중심에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흥! 전부 덤벼! 얼마든지 상대해 줄 테니까!”
땅으로 내려선 이무환이 미친놈처럼 바락바락 악을 썼다.
그런데도 담사황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무릎까지 땅속에 파묻힌 발을 빼낼 생각도 못하고 이무환만 노려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지금 상황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광기 들린 것처럼 설치는 저놈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의 이성으로는 열두 번을 생각해도 좀처럼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때 헌원숭이 나서서 이무환을 말렸다.
“대주, 대화로 하자고 하지 않았는가? 이러면 대화가 되겠는가?”
이무환이 화살을 헌원숭에게 돌렸다.
“저놈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잖습니까? 아버지만 들먹이지 않았어도 내가 이러지 않는다구요!”
“물론 자네의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은 나도 이해하네. 하지만 모르고 한 것이니…….”
“젠장! 위하기는! 아들을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곳에 보내놓고 탱자탱자 술만 퍼먹고 있을 텐데, 내가 그런 아버지를 왜 위합니까?”
말뜻이 조금 이상하다. 아버지를 모욕해서 미친 듯 설친 줄 알았는데 그도 아닌 것 같지 않은가.
“그럼 왜……?”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저자가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잖습니까? 짜증나게!”
말로는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찡한 마음이 들었다.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다고 술을 안 마실 아버지가 아니다. 어쩌면 전보다 더 마실지도 몰랐다.
손이 떨렸는데 몸은 안 아픈지. 혼자라고 우울하게 지내고 있지는 않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찰나간에 교차하며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봄도 되었고, 서신이라도 보내볼 걸 그랬나? 옥이한테 보내면 전해줄 텐데.’
좌우간 그것은 나중 일이다.
잠시 생각에 잠기다 보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이무환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는, 자신을 노려보며 천천히 발을 빼내는 담사황을 마주 노려보았다.
“마지막 기횝니다. 어쩔 겁니까? 대화를 할 겁니까, 아니면 어느 한쪽이 다 죽을 때까지 싸울 겁니까?”
“네놈은 누구냐?”
침중한 목소리. 담사황은 격한 감정을 짓누르며 손을 쥐었다 폈다.
열두 사람이 널브러져 있다. 그중에는 호법도 있고, 만겁친위단의 조장도 있고, 만겁십삼마라 불리는 살귀도 있었다.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은 상황.
처음에는 헌원숭이 이들의 수장이라 보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닌 듯했다.
헌원숭조차 미친 듯 날뛰던 젊은 놈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 오히려 놈을 대주라 부르며 말을 조심하지 않는가.
명부신사 헌원숭이 말이다! 저놈이 도대체 누구기에!
이무환은 담사황이 궁금해 하든 말든 한마디로 대답했다.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무환.”
“무환?”
담사황이 반문처럼 묻자 헌원숭이 슬그머니 한마디 덧붙였다.
“천외광룡이라고 들어보셨소?”
더 설명할 것도 없었다. 담사황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만겁궁의 고수들을 이끌고 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미친놈 하나 때문에 구룡성이 뒤집어졌다더니, 헛소리가 아닌 것 같군.’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이 이해되었다.
금철종이 왜 무리한 조건을 받아들이고 급하게 부르는지도 알 것 같았다.
‘저놈은 절대 금철종 따위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물론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광룡이 왜 이곳에서 자신들을 기다린 걸까?
구룡성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몰래 제거하려고?
그럴지도 몰랐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놈. 내가 바로 담사황이니라!’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담사황은 전신에 기운을 퍼뜨리고는, 이무환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쏴아아아…….
웅혼한 기운이 넘실거리며 공터를 휘돌았다.
이무환은 그런 담사황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화하기 싫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담사황의 몸에서 넘실거리던 기운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그랬다. 광룡은 대화를 하자고 했다.
그렇다면 당장 자신들을 제거하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 성급하게 굴 이유가 없었다.
“정말로 대화를 하고자 우리를 이리 불러들인 것인가?”
이무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오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사람 말을 못 믿기는……. 척 보면 모르나? 세상을 반백 년 이상 살았으면 한눈에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봐야지. 헛살았군, 헛살았어……. 쯔쯔…….”
중얼거리는 소리는 바람 소리에 섞여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담사황이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저 시건방진 놈을!’
마음 같아서는 대화고 뭐고 힘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수하들이 당하지만 않았어도 그리했을 것이다. 주위에 늘어서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절정 이상의 고수들만 아니었어도, 하다못해 헌원숭만 없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미친놈 광룡이야 자신이 맡으면 될 테니까.
그러나 이미 상황은 물 건너간 뒤였다.
그렇다고 순순히 굽힐 수도 없는 일. 담사황은 짐짓 노기를 드러내며 냉랭히 소리쳤다.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대화하자면 누가 믿겠는가? 자네라면 얼씨구나 좋다고 응하겠는가!”
“못할 것은 또 뭐 있습니까? 힘 겨루다가 밀리면 말로 할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렇습니까? 한두 번 주먹질했다고 죽을 때까지 싸울 겁니까?”
“지금 이 상황이 단순히 한두 번 주먹질한 것과 같은가?”
담사황의 목소리가 서서히 높아졌다.
이무환도 눈과 목에 힘을 주었다.
“다를 건 또 뭡니까? 강호의 싸움이 다 그런 것인데. 더구나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잖습니까? 그 정도면 됐죠! 나이깨나 드신 분이 쫀쫀하기는.”
“뭐라고?! 네놈이 정녕……!”
목소리가 높아지는가 싶더니 두 사람의 몸에서 가공할 기운이 일렁거렸다.
새파랗게 빛나는 눈빛!
헌원숭이 고개를 저으며 급히 무설강에게 전음을 보냈다.
“자네가 말려보게. 그래도 대주의 의형이 아닌가?”
움찔한 무설강은 이무환과 담사황을 번갈아 보고는 턱에 지그시 힘을 주고 한 걸음 나섰다.
“아우, 그만하면 되었네. 대화를 하자고 온 것이 아닌가?”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이무환이 기운을 거두어들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담사황이 그걸 보더니 흠칫하며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헌원숭도 어쩌지 못하는 광룡을 말 한마디로 제압하는 자가 있다니!
바위처럼 굳어 있는 얼굴, 자신보다 더 짙은 눈썹, 바람에 너풀거리는 머리카락. 진정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 아닌가.
저자는 또 누굴까?
명부신사 헌원숭과 광룡, 그리고 광룡을 말 한마디로 움직이는 또 한 사람의 신비의 인물.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켜서 좋을 것이 없을 듯했다.
“크흠! 좋아, 어디 대화를 나누어보지. 하지만 허튼소리로 장난할 생각은 말게!”
일단 부상당한 사람을 송림 아래쪽으로 옮겼다.
심한 부상으로 한동안 움직이기가 힘들 것 같은 사람은 서너 명. 나머지는 숨 몇 번 몰아쉬는 사이 몸을 일으키는 것으로 봐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사이, 이무환과 담사황은 호숫가 바위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마주 앉았다.
“금철종이 청했지요?”
이무환이 먼저 다 알고 있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담사황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멈칫했다.
“대가로 뭘 주겠다고 합디까? 궁주께서 직접 오실 정도면 적어도 한 지방의 권리는 넘겨주겠다고 했을 것 같은데요.”
연이은 이무환의 말에 담사황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놈이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러나 이무환의 말은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귀월사 도지양을 먼저 보낸 것은 구룡성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을 것이고…….”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네놈에 대한 것을 상세히 알아보라고 했지.’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무환이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 입을 닫았다.
담사황은 마땅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비밀리에 들어가서 금룡부의 한 팔이 되어주어야 할 판에, 금룡부 최대의 적이라 할 수 있는 광룡과 마주 앉아 있었다.
결코 정상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
한편으로는 자신이 광룡과 마주 앉게 된 것이 모두 금철종의 잘못만 같았다. 미리 조치를 취했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멍청한 놈. 수룡단의 눈을 피한답시고 마중할 놈조차 보내지 않더니…….’
그렇다고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담사황은 목에 힘을 주고 물었다.
“우리가 이대로 돌아가기를 바라는가?”
들어가기 전부터 막혔다. 당장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무환의 대답이 묘했다.
“누가 돌아가랍니까? 만겁궁의 궁주께서 직접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면 체면 문제 아니겠습니까?”
담사황의 눈에서 갈색 광채가 맴돌다 스러졌다. 분노와 의문이 버무려진 눈빛이었다.
“뭘… 원하는 건가?”
이무환의 말투가 은근해졌다.
“누굴 도와주든 손에 쥐어지는 떡만 같으면 될 것 같은데 말이죠.”
“나보고 이중 첩자 노릇을 하라는 말은 아니겠지?”
“제가 미쳤습니까? 담 궁주께서 어디 제가 하란다고 하실 분입니까?”
‘너 원래 미친놈이라며?’
담사황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다시 물었다.
“그럼 금철종과 갈라서고 자네와 손을 잡으면 되겠나?”
“당장 그럴 필요는 없고, 꼭 필요할 때 조금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금철종에게 가 있으면서 말인가?”
이무환이 갑자기 손뼉을 딱 치고 웃었다.
“바로 그겁니다! 하하하하!”
자신을 놀린다 생각했는지 담사황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 건방진 놈이!’
그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담사황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이무환을 째려보았다.
‘일단 이놈의 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잘하면 양쪽에서 이득을 취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