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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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18화
118화
안쪽에 있던 일행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이무환의 뒤를 따라 송림 안으로 들어갔다.
다섯을 놔두고 나머지만 가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그들을 놔두고 간다 해도, 바로 뒤따라오지 않으면 되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작정 일을 저지르는 것처럼 보이는 광룡이다. 항상 그렇다. 그런데 그 내면을 살펴보면 살이 떨리는 계획이 숨어 있다.
광룡이 왜 단시일에 구룡성을 뒤집어놓을 수 있었는지, 누구든 광룡과 사흘만 같이 지내면 알 수 있었다.
‘악귀라고도 불린다 했지?’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생각을 하며 공터로 향했다.
납작한 돌이 호수를 향해 낮게 날아가자, 삼십여 개의 물수제비가 뜨며 파문이 일었다.
“야호! 서른 개가 넘었다!”
이무환의 환호에도 사람들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 물수제비뜨기 놀이나 할 땐가 말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사십 개를 넘기겠어!”
이무환은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던 납작한 돌 하나를 골라 들었다.
그때 송림을 헤치고 다섯 명의 무사가 공터로 나왔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순간 이무환이 호수에 돌을 던졌다.
날아간 돌은 호수 위에 대여섯 개의 파문만 남긴 채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홱 돌아선 이무환이 다섯 명의 무사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소리쳤다.
“뭐야? 당신들 때문에 실패했잖아?”
무사들의 표정이 일제히 일그러졌다.
죽여서 입을 막을 생각으로 쫓아왔다. 그런데 숫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모두 열한 명. 그것도 평범치 않은 무사들이었다.
다섯이서 다 죽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
상대가 누군지, 어떤 자들인지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처음 생각대로 손을 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지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말을 걸었거늘, 대뜸 물수제비뜨는 걸 실패했다고 화를 내지 않는가. 나이도 제일 어린놈이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저 놈이 어디서 감히!’
청삼을 입은 키 큰 중년인이 이무환을 잡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괜한 생각을 했군. 어떤 놈들인지 알고 죽이려 했더니 그럴 필요도 없겠어.”
이무환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뭐? 죽인다고? 누굴? 우리를? 당신들이? 정말이야? 죽일 수 있겠어? 훗, 진짜 웃기고 있네!”
별 웃기지도 않는 말을 듣는다는 표정. 보고 듣는 사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중년인은 두 손에 내력을 끌어올렸다.
“죽어서 저승에 가거든, 네놈의 입을 원망해라.”
이무환은 그의 말을 못들은 척 헌원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들었죠? 속에 든 것도 없이 멀대처럼 키만 큰 이자가 먼저 저를 죽인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일이 시끄러워져도 저는 잘못 없어요.”
“네놈의 머리를 부숴주마!”
중년인, 최심장 동수격이 삼 장 떨어진 이무환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나머지 네 사람도 무기를 빼 들고는, 가만히 서 있는 헌원숭 등을 덮치며 소리쳤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다 죽여라!”
공터에 오자마자 이무환이 말했다. 기운을 안으로 갈무리하라고. 그래야 저들이 얕볼 테니까.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겁도 없이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다.
제일 먼저 유철상과 백장청이 검을 뽑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곧이어 제갈신걸과 와룡일조장 포적형이 싸늘히 굳은 표정으로 무기를 뽑아 들었다.
입을 막기 위해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곱게 대해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도 없었다.
그사이, 동수격의 장력이 이무환의 코앞에 이르렀다.
이무환은 자신의 심장과 목을 노리고 다가오는 동수격의 손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파란빛이 도는 장심. 너울지며 퍼지는 강력한 기운!
바위라도 제대로 맞으면 가루로 변해 부서질 장력이다.
하지만 그는 바위가 아니었다. 또한 그대로 맞고만 있을 사람도 아니었고,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사람을 말로 타이를 정도로 마음이 고운 사람도 아니었다.
마음이 곱기는커녕 한 대 맞으면 열 대를 때려줘야 속이 풀리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악귀, 광룡답게!
슬쩍 한 발 뒤로 물러선 이무환은 두 손을 들어 올려서 동수격의 쌍장에 마주쳐 갔다.
영락없이 엉겁결에 손을 뻗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
‘오냐, 주둥이만 산 놈! 일단 네놈의 두 손을 먼저 부숴주마!’
동수격의 입가로 싸늘한 살소가 스친 순간!
퍽!
모래주머니 터지는 소리와 함께 동수격의 몸이 주춤 뒤로 밀려났다.
손목이 부러지는 듯한 충격!
숨이 콱 막혔다.
‘흡! 이놈이!’
중심을 잡은 동수격의 얼굴 근육이 급격히 굳어질 때였다.
스윽,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이무환의 신형이 좌우로 흔들리더니 허공에 수십 개의 장영이 생겨났다.
사자탄에서 익힌 일곱 가지 무공 중 하나, 천수탄(千手彈)이었다.
동공을 가득 메운 장영 하나하나가 진짜 손처럼 보였다.
숨이 턱 막히고 전신이 오그라드는 느낌.
“으헛!”
대경한 동수격이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쾅! 콰광!
허공에 떠 있던 장영이 동수격의 가슴에 벼락처럼 떨어졌다.
“크윽!”
동수격의 몸뚱이가 이 장 밖으로 튕겨졌다. 하지만 이무환은 손을 멈추지 않고 동수격을 따라가며 오 장을 더 내려쳤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동수격은 입을 쩍 벌린 채 이 장을 더 날아가서 널브러졌다.
“커억!”
몸을 반쯤 일으키던 동수격의 입에서 피화살이 뿜어졌다.
이무환은 슬쩍 피화살을 피하고는, 마지막으로 홍옥지를 날려 동수격의 마혈을 찍었다.
거의 동시, 여기저기서 비명과 신음이 터져 나왔다.
헌원숭과 무설강은 아예 끼어들지 않았는데도 만겁궁의 무사 넷은 오 초를 버티지 못하고 한꺼번에 무너졌다.
손을 쓰기 시작하면 적이 도망가지 못하게 빠르고 확실하게 끝내라는 이무환의 말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흠, 일단 일단계는 끝났군.”
손을 탈탈 털며 씽긋 웃는 이무환을 향해 헌원숭이 침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곧 담사황이 올 거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어떻게 하긴요? 이제 그럭저럭 분위기를 만들었으니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어봐야죠.”
사람을 반쯤 패죽여 놓고 대화할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과연 광룡다운 말.
그 말에는 헌원숭도 마땅히 답을 못했다.
이무환의 머릿속을 알려 하면 자신만 고달팠다.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낫지.
그나마 이무환의 생각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제갈신걸이었다.
‘틀리지는 않은 말이다. 처음부터 대화를 하자고 하면 응할 담사황이 아니다. 그는 광룡이 어떤 사람이란 것을 모를 테니까. 설령 명부신사가 끼어 있다 해도.’
오히려 명부신사가 적대 관계인 걸 알고 있다면 잘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명부신사 헌원숭의 목이라면 훌륭한 선물이 될 테니까.
그러나 이제 담사황은 대화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스물한 명의 수하 중 다섯이 무너졌다. 남은 사람은 담사황까지 열일곱.
그라면 다섯이 어떻게 패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터. 무리한 일은 벌이지 못할 것이었다.
‘가만, 설마 그것까지 생각하고 단숨에 제압하라고 했나?’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저자는 광룡이니까!
제갈신걸의 눈이 이무환을 향해 고정된 채 움직일 줄 몰랐다.
‘아무리 봐도 기생오라비나 하면 딱인데…….’
그때 이무환이 홱 몸을 돌리더니 제갈신걸 쪽을 노려보았다.
‘헛! 설마 속으로 한 말도 들을 줄 안단 말인가?’
상대가 누군가! 광룡이 아닌가!
정말 그럴지도…….
제갈신걸은 재빨리 조금 전의 말에 꼬리를 달았다.
‘그건 뭘 모르는 놈들이 하는 말이고, 내가 봤을 땐 천하제일협객…….’
순간 이무환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제갈신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뭐야, 진짜잖아?’
그때였다. 이무환이 낭랑히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조금 늦으셨군요.”
그와 동시에 밀려드는 묵직한 기운.
절정의 완숙한 경지에 오른 제갈신걸조차 강렬한 압박감에 가슴이 묵직해졌다.
그는 헌원숭을 비롯한 모두가 자신의 뒤를 바라보자 번개처럼 돌아섰다.
담청색 장포를 걸친 오십 중반의 초로인이 소나무 꼭대기를 밟고서 다가오고 있었다.
절대의 기운! 만겁존자 담사황이었다.
‘제길, 그럼 그렇지. 광룡이 아무리 귀신같다고 해도 속까지 읽을 리가 없지.’
제갈신걸이 머쓱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는 사이, 담사황이 공터에 천천히 내려섰다. 그리고 곧이어서 열여섯의 만겁궁 고수가 날아들었다.
일순간 살을 에는 기운이 공터를 휘감았다.
무기를 빼 들고 서로를 죽이기 위해 달려든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하지만 그도 잠시, 이무환이 입을 열면서 살얼음판 같던 상황이 봄기운에 눈 녹듯 스르르 풀어졌다.
“어떻습니까? 대화하기에 좋은 곳 아닙니까?”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이십여 년을 지낸 담사황이다.
그가 언제 이런 경우를 당해봤던가.
선이 굵은 얼굴. 단정하게 가다듬어진 검은 수염. 짙은 눈썹 아래 자리한 칼날 같은 두 눈.
강렬한 그의 인상이 한순간 흔들렸다.
어찌 보면 분노 같기도 하고, 또 달리 보면 어이없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담사황은 절대의 경지에 이른 자. 이무환의 신경을 건드리는 말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무환을 지그시 바라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처음에는 몰라봤지. 그런데 조금 지나니 생각나더군.”
소나무 아래 서 있던 헌원숭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오랜만이오, 담 형.”
“십이 년 만인가?”
“그 정도 된 것 같소. 동정호의 혈사 이후로 처음이니 말이오.”
“그런가? 그런데 회포를 풀기에는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닌 것 같군.”
물론 대화하기에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누구에게 물어도 열이면 열, 그렇게 대답할 것이었다. 한 사람만 빼고.
“아아! 회포는 나중에 푸시고 일단 저와 대화를 먼저 나누죠.”
이무환이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담사황은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헌원숭을 직시했다. 꼭 저 덜 떨어진 놈은 누구냐고 묻는 눈빛을 한 채.
그런데 미처 헌원숭이 대답할 틈도 없이 만겁궁의 고수들 중 삼십대의 장한이 앞으로 나섰다.
“애송이, 네놈이 나설 자리가 아니다. 곧 죽여줄 테니 저리 꺼져 있어라!”
이무환이 빙그레 웃으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어딜 가나 꼭 저런 사람이 하나씩 있단 말이야.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매나 벌지 않지.”
“건방진 놈! 일찍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발끈한 장한이 옆구리의 도에 손을 얹었다.
그걸 본 헌원숭이 담사황에게 급히 말했다.
“담 형, 수하들을 물려주시오.”
그때라도 물러섰어야 했다. 하다못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동수격이 왜 안간힘을 다해 몸부림치는지, 그 이유라도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했다.
그러나 쓰러진 동료들의 모습을 본 만겁십삼마(萬劫十三魔) 중의 한 사람, 잔겁도 곡항은 이런저런 상황을 따질 심경이 아니었다.
더구나 담사황도 말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마음대로 하라는 듯.
“어떤 놈을 아비로 뒀는지 몰라도, 죽거든 너를 잘못 가르친 네 아비를 원망해라!”
이무환을 한껏 비웃은 곡항은 왼손 엄지로 도를 밀어 올리며 튀어나갔다.
단 일격에 이무환을 쪼개 버리겠다는 듯!
이무환은 그가 이 장 앞에 도달했을 때서야 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뜬 채!
찰나 이무환의 몸이 죽 늘어나는가 싶더니 곡항의 코앞에 이르렀다.
동시에 우수 검지를 뻗은 이무환은 막 잡아 빼려는 곡항의 도병 끝을 누르고, 좌수로 곡항의 목을 잡아 홱,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쾅!
“어디서 아버지를 들먹여! 에라이!”
바락바락 소리친 이무환은 곡항을 들어서 만겁궁 고수들이 있는 곳에다 내던졌다.
“지미! 대화고 뭐고 다 필요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