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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17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4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17화

 

117화

 

 

 

 

 

 

 

 

“크크큭.”

 

고진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처진 눈꼬리가 더욱 아래로 처졌다.

 

이무환은 당장 멱살을 잡아당겨 왜 웃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직 요리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잠시 후.

 

감이랑이 접시를 들고 나왔다. 하나가 아닌 두 개를.

 

하나는 크고 하나는 반도 안 되게 작았다.

 

감이랑은 큰 접시를 고진 앞에 놓고, 작은 접시는 이무환 앞에 놓았다.

 

“오해하지는 말게. 양이 너무 많아서 나누었을 뿐, 자네를 주기 위해서 더 만든 것은 아니니까.”

 

이무환은 작은 접시와 큰 접시를 번갈아 보고는, 감이랑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너무 차이가 나는 거 아닙니까?”

 

“얻어먹는 주제에 말도 많군. 먹기 싫으면 말고.”

 

감이랑이 접시를 다시 가져가려고 하자, 이무환이 재빨리 젓가락으로 접시를 눌렀다.

 

감이랑은 접시를 잡은 손을 거두어들이지 않고 이무환을 똑바로 바라보며 왼손을 내밀었다.

 

“어제 음식값. 은자 두 냥이네.”

 

“걱정 마쇼. 안 떼먹을 테니까.”

 

이무환은 품속에서 은자 두 냥을 꺼내 감이랑의 손에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흐흐흐, 석 냥 남았군.’

 

수룡단에서 다섯 냥을 받아왔다. 한두 냥 더 달라고 하면 자신의 돈으로 줄 생각이었는데, 거꾸로 석 냥이 남았다. 

 

왠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흠, 냄새는 괜찮군.”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더 참기에는 입이 허락지 않았다.

 

요리를 집으려던 그가 멈칫하더니 고진을 바라보았다.

 

요리가 나온 후부터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 같은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숙연한 마음이 들 정도로 경건한 손짓과 표정이다.

 

영원히 맛볼 수 없는 음식을 앞에 놔둔 사람처럼.

 

삶의 마지막 식사를 하는 사람처럼.

 

이무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식사를 했다. 고진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의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딸깍.

 

고진이 요리를 완전히 비우고 젓가락을 놓았다.

 

물론 이무환이 접시를 비운 것은 훨씬 이전이었다.

 

‘쳇, 간에 기별도 안 가는군.’

 

불만이야 많았지만 지금은 위장이나 달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무환은 젓가락을 내려놓은 고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맛있었소?”

 

이무환의 느닷없는 질문에 고진이 눈을 들었다.

 

“예, 정말 맛있었습니다.”

 

“다행이군.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맛있는 요리라도 원 없이 먹어봐야지. 안 그렇소?”

 

“예?”

 

흠칫한 고진에게 이무환이 태연히 물었다.

 

“아! 그건 그렇고, 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소? 구멍으로 나가서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데. 어디 비밀 장소라도 만들어놨었소?”

 

“무, 무슨……?”

 

“그런데 구룡성에는 왜 들어왔소? 멀리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도망갔으면 아무도 당신을 잡을 수 없었을 텐데, 이해할 수가 없군.”

 

고진의 입이 닫히고, 부릅떠진 눈이 잘게 떨렸다.

 

머릿속이 뒤엉켜 혼란스럽기만 했다.

 

“다, 당신은 누구요?”

 

“직접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거요?”

 

“…….”

 

고진은 탁자 밑으로 내려진 주먹을 으스러지게 움켜쥐었다.

 

혼란이 서서히 걷혔다. 이제야 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날 밤 하가장에 쳐들어온 자다. 개 같은 하종건을 개 패듯 때려잡은 자!

 

“혹시라도 직접 복수할 생각이라면 포기하쇼. 신도연풍은 당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까.”

 

신도연풍.

 

처음 듣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 이름이 누구를 뜻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그놈의 이름일 것이다!

 

고진은 악다문 입에 힘을 주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를 생각하자 단전이 부글거렸다. 뭉친 기운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안 돼! 참아야 돼! 그냥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그때 이무환이 두 손을 탁자에 올리고 고진을 향해 머리를 내밀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이를 악문 고진이 고개를 들었다.

 

“뭘 말입니까?”

 

“거래를 합시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바를 해주고,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고. 어떻소?”

 

고진은 어렴풋이 상대가 뭘 원하는지 알 듯했다.

 

상대는 폭령잠마단, 아니, 폭령잠마신단이라고 해야 하는 바로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까짓 것, 주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로 세 개를 따로 떼어놓았는데, 자신에겐 그것만 있으면 되었다. 최후의 순간을 위하여.

 

‘이자를 믿을 수 있을까?’

 

진짜 문제는 그것이었다.

 

그는 구룡성의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장 ‘당신을 믿을 수 없어!’라고 할 수는 없는 일. 고진은 일단 이무환을 떠보았다.

 

“나에게 뭘 해주겠다는 겁니까?”

 

“알지 모르지만, 나도 그를 노리고 있소. 그리고 곧 잡을 거요. 내가 그를 잡으면 당신에게 넘겨주겠소.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그동안 당신은 내가 기거하는 곳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오. 어때요. 간단하지 않소?”

 

정말 간단했다. 그리고 솔깃한 말이었다.

 

“정… 말입니까?”

 

“나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소. 하, 하, 하!”

 

거짓말하는 놈이 언제 거짓말한다고 하면서 거짓말을 하던가?

 

고진은 오히려 그 말이 더 못미더웠다.

 

그래도 일단은 이무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입구와 뒷문 쪽에서 몇 사람이 얼쩡거리며 안쪽을 힐끔거린다. 보나마나 눈앞에 있는 자와 일행일 것이 분명했다.

 

빠져나갈 수 없다면, 일단 상대를 안심시키는 수밖에.

 

“놈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곧 알아낼 거요. 이틀은 넘기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마쇼.”

 

“좋습니다. 그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탁!

 

이무환이 탁자 위에 손을 올리고 쫙 폈다.

 

‘내놔!’ 그 뜻이다.

 

고진은 이무환의 손바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제 겨우 약속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물건부터 넘겨 달라고?

 

‘도둑놈!’

 

약속 이행 전까지는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상대의 뭘 믿고 물건부터 넘겨준단 말인가. 더구나 비상시 쓸 것 빼고는 몸에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물건은 지금 나에게 없습니다. 안전한 곳에 숨겨져 있지요.”

 

이무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상대를 탐색하는 눈빛이 번뜩였다. 그러다 곧 진실이라 생각했는지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때 숨었던 곳에 놔두고 왔나 보군.’

 

“당신이 나를 못 믿으면 나도 당신을 믿을 수 없소. 그러니 이렇게 합시다. 내가 그 약속을 이행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물건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쇼. 어떻소?”

 

그것까지 마다하면 눈앞에 있는 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고진은 정당한 선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귀하가 놈의 위치를 알아내면 실행할 능력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그때 물건의 위치를 알려 드리지요.”

 

순간 허리를 쫙 편 이무환이 손짓을 했다.

 

“눈발!”

 

즉시 엽상이 뒷문을 통해 들어왔다.

 

“예, 총대주!”

 

“이분을 광룡대로 모셔다 드리고 잘 보살펴 줘. 저쪽 사람들은 절대 접근 못하게 하고.”

 

감시를 철저히 하고, 호연청의 사람들은 접근을 금지시키라는 말.

 

엽상은 고개를 절도 있게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총대주!”

 

 

 

4

 

 

 

기분 좋게 비룡루를 나선 이무환은 남문으로 향했다. 고진을 엽상에게 맡긴 것은 중요한 일이 하나 더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남문에 도착하자 오늘의 주 계획을 처리하기 위한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헌원숭과 무설강, 제갈신걸, 그리고 구룡수호단의 수장 세 사람과 유철상을 비롯한 와룡사십팔객의 네 조장 등.

 

이무환은 그들과 함께 남문을 나섰다.

 

혈추의 말대로라면 점심이 되기 전 만겁존자 담사황이 무창에 들어설 것이었다. 잘하면 그를 만날 수 있을지 몰랐다.

 

‘흠, 비가 오기 전에 만나며 좋겠는데…….’

 

모두들 남문을 나선 목적을 알고 있는 상황. 이무환만이 밝은 표정일 뿐, 나머지 열 사람은 모두가 굳은 표정이었다.

 

어찌 그러지 않으랴. 만겁궁의 주인인 만겁존자를 마중 가거늘. 그것도 좋지 않은 일로.

 

특히 헌원숭은 행여나 이무환이 날뛸까 봐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일행 누구보다도 담사황을 잘 알고 있었다.

 

“담사황은 쉽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네. 그가 움직였다면 그만한 준비를 했을 것이야.”

 

당연히 그러겠지. 누가 그걸 모르나?

 

이무환은 헌원숭을 슬쩍 쳐다보고 담담히 대답했다.

 

“상관없습니다. 당장 그와 싸우겠다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럼 다행이네만.”

 

싸울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많았다. 단, 그들이 먼저 건들지만 않는다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듣기로는 천중십마의 능력도 격차가 있다던데, 만겁존자는 어느 정도입니까?”

 

헌원숭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오래전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담사황은… 강하네. 솔직히 말해서 나보다 강하지.”

 

짧게 입을 여는 헌원숭의 눈매가 보일 듯 말 듯 떨렸다.

 

굳이 더 들을 것도 없었다.

 

천하의 명부신사가 흔들린다.

 

이무환은 그것만으로도 만겁존자의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담담하던 이무환의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무환처럼 태연하지 못했다. 그러잖아도 팽팽하던 긴장감이 헌원숭의 말로 인해 끊어질 것처럼 당겨졌다.

 

 

 

 

제7장. 협상(協商)

 

 

 

 

 

 

 

1

 

 

 

구룡성의 거대한 성벽이 띠처럼 보일 즈음.

 

무창 쪽에서 한 사람이 날듯이 달려왔다. 무창 일대를 감시하고 있던 수룡단의 무사였다.

 

“수룡십이대 오호가 특조대주님을 뵙습니다!”

 

광룡의 앞이다. 십이대 오호는 절도 있게 무릎을 꿇고 보고를 올렸다.

 

소문으로는, 어정쩡한 태도로 대답했다가 광룡의 주먹에 뒤통수가 깨진 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말도 있었고,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한밤중에 광룡대의 수련장으로 끌려가 병신이 된 자도 대여섯 명이나 된다고 했다.

 

헛소문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조심해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표적이 무창으로 들어섰습니다!”

 

“현재 위치는?”

 

“제가 떠나올 때 사산(蛇山) 남쪽을 돌았으니 곧 동문을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십 리 정도 더 가면 마주친다고 봐야 할 터. 이무환은 무창 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오 리 정도 떨어진 곳, 무창으로 가는 길 남쪽 호숫가에 제법 넓은 송림이 보였다. 

 

잡목과 어우러져 있지만, 잘 찾으면 이삼십 명이 조촐한 행사를 벌일 만한 공터가 있을 듯했다.

 

“저 송림 안에 공터가 있소? 남들 눈에 잘 안 뜨이는 곳이면 좋겠는데.”

 

재빨리 이무환의 눈이 가리키는 곳을 본 오호가 힘차게 대답했다. 마침 광룡이 가리키는 곳은 그가 가끔 외근을 핑계대고 나와서 낮잠을 자며 쉬는 곳이었다. 당연히 남들 눈에 안 뜨이는 곳도 잘 알고 있었다.

 

“있습니다, 대주님!”

 

“그래? 그럼 일단 저리 갑시다. 안내하시오.”

 

“옙!”

 

 

 

오호의 말대로 호숫가 송림에는 제법 넓은 공터가 있었다.

 

공터는 생각보다 넓어서 백 명이 뛰어다녀도 될 정도였다. 게다가 우거진 송림과 잡목으로 인해 밖이 보이지 않았다.

 

“흠, 딱 좋군.”

 

이제 무창성을 나선 만겁존자가 송림 건너편 관도로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동문을 나섰다면 곧 모습을 볼 수 있겠지.’

 

다행히 만겁존자는 이무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장소를 확인하고 숲을 벗어나는데, 저 멀리서 몰려오는 이십여 명의 무사가 보인 것이다.

 

가벼우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걸음걸이.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고 절제된 움직임. 모두가 경지에 이른 고수들이었다.

 

잠시 후, 그들이 삼십여 장 거리까지 다가왔다. 

 

“가운데 담청색 장포를 걸친 사람이 담사황이네.”

 

뒤에 서 있던 헌원숭이 그들의 정체를 확인해 주었다.

 

순간 이무환이 대뜸 소리쳐 물었다.

 

“저 사람이 그 유명한 만겁존자 담사황이란 말입니까? 그럼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이 장사를 좌지우지한다는 만겁궁의 무사들인가 보군요.”

 

아주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공력이 실린 목소리여서 백 장 떨어진 곳에서도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담사황을 비롯한 만겁궁의 무사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이무환 쪽을 바라보았다.

 

달려올 때만 해도 기대에 차있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일반 무사복을 입고 구룡성으로 향하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자 함이 아니던가.

 

그런데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보는 자가 있다니.

 

담사황이 무사들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곧 그들 중에서 다섯 명이 빠져나왔다.

 

이무환이 그 모습을 보고는 씩 웃으며 몸을 돌렸다.

 

“자, 이제 들어가서 손님을 기다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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