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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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14화
114화
4
항주를 둘러싼 긴장감이 칼만 대면 끊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졌을 때 무림맹의 무사들이 검운장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호주의 무리들이 움직이기 전이었다.
일명 정천단(正天團). 그 수는 모두 이백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숫자는 기대하던 만큼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중에 절정 이상의 경지에 달한 자가 십수 명에 달했다.
수장인 정천단주는 소림의 사대신승 중 한 사람, 백혜 대사. 그리고 이백 명을 오십 명씩 나눈 사대의 대주들은 모두가 무림맹의 장로들 중 정상급 고수들이었다.
백혜 대사는 도착 즉시 검운장의 수뇌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상황을 물었다.
“그래, 나 령주, 현 상황은 어떻소?”
“항주에 있던 놈들이 외곽으로 몸을 숨기는 바람에 지금 수하들이 추적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강소에 있던 놈들의 무리가 호주로 집결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나철위가 ‘운’의 무리에 대한 소식을 전하자, 사마성운이 몇 마디 덧붙였다.
“그자들이 혈해방과 흑마련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들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운’의 무리도 문제지만, 검운장에게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는 세력은 혈해방과 흑마련이었다.
그러나 백혜 대사나 무림맹 정무단의 사대대주들은 사마성운의 말을 흘려들었다. 혈해방이나 흑마련은 절강 구석에서 세력 싸움이나 하는 방파일 뿐, 무림맹이 본격적으로 나서면 숨을 죽일 무리에 불과하다 생각하는 듯했다.
“음… 놈들이 호주로 얼마나 집결될지, 그것부터 알아봐야겠구려.”
나철위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삼백입니다. 한데 단주, 맹에서의 이차 지원은 없습니까?”
“일단 한시가 급해서 우리가 먼저 온 것이오. 아마 사나흘 정도 지나면 지원 무사들이 더 올 것이오.”
사나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인사를 나눈 후 한쪽에 묵묵히 앉아 있던 사마추경이 물었다.
“대사, 오시는 분 중 절대경지의 고수분은 없소?”
백혜 대사는 나직이 불호를 외우고는 모호한 대답을 했다.
“아미타불, 이차 지원 무사 중에는 없을 것 같소. 하나 그러한 경지에 오른 고수가 한두 사람 정도는 합류할 것이오.”
무림맹의 지원 무사에는 없다면서 한두 사람이 합류할 것이라 말한다. 그럼 무림맹과 상관없는 절대고수가 온단 말인가?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절대고수가 있느냐, 없느냐다. 누가 오든 상관없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오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만약 그들이 오기 전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적들 중에 절대고수가 섞여 있다면, 이곳의 인원만으로 물리칠 수 있을까?
물리치지 못할 경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사마추경은 답답한 마음에 눈을 감았다.
‘숙부님이라도 오시면 좋으련만…….’
그때 정천단의 사대대주 중 한 사람인 팽가의 팽사청이 어깨를 펴고 입을 열었다.
“너무 염려들 하지 마십시오. 놈들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우리가 온 이상 항주는 놈들 손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놈들은 곧 모습을 드러낸 걸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화산의 청무자가 팽사청의 말에 한마디 덧붙였다.
“허허허, 맞소이다! 우리는 삼악의 무리를 치고자 왔소이다. 그들을 제거하면 항주를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소이까?”
자신감 넘치는 말들이다. 이들은 무림맹에서도 정상급의 고수들. 충분히 말할 자격이 되었다.
사마추경도 평소라면 두 사람의 자신감에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들의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지 않았다.
‘위험해. 이들은 적을 너무 경시하고 있어.’
자신도 아직 ‘운’의 무리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천강문과 위지가의 힘이 그들 세력의 일부라는 것만 알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마추경은 적들이 결코 무림맹에서 생각하듯 쉬운 자들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거기다 혈해방과 흑마련마저 움직인 상태가 아닌가.
‘이들은 위지가와 천강문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어.’
구파오가의 자신감인가, 아니면 자만심인가.
그때였다. 동안총령주 휘하에 있는 무사 하나가 급박하게 달려오더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령주, 부양(富陽) 근처에서 놈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흑마련과 혈해방이 항주를 향해 움직였다는 정보도 들어왔습니다.”
“그래?”
무림맹의 수뇌들과 검운장의 수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팽사청이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나철위와 백혜 대사를 바라보았다.
“잘됐소이다! 호주에서 놈들이 내려오기 전에 그놈들부터 처리합시다!”
사대대주 중 한 사람인 황보세가의 황보주명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것도 괜찮겠소. 혈해방과 흑마련을 쓸어버리면 사마 장주께서도 안심할 것이 아니겠소?”
왠지 검운장을 무시하는 말투처럼 들린다.
사마성운은 기분이 가라앉았지만, 항주제일장을 다스리는 사람답게 금방 털어냈다.
“그리만 해주신다면 고맙지요.”
“하하하!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그리 될 테니까.”
5
“놈들이 움직였습니다, 사령주.”
광유는 수하의 보고에 씨익,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모두 몇이나 되느냐?”
“정천무림맹 놈들까지 모두 삼백입니다.”
광유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의 옆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붉은 피풍을 걸친 사십 초반의 중년인, 먹빛 장삼을 입은 쉰 전후의 중년인, 이십대 중후반의 청년.
광유는 두 명의 중년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일단 놈들을 끌어냈소. 준비는 다 되었소?”
“삼백의 무사가 대기하고 있네.”
붉은 피풍을 걸친 중년인, 혈해방의 부방주 염전이 대답하며 차가운 살소를 흘렸다.
먹빛 장삼을 입은 중년인, 흑마련의 이련주 조창산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이백오십의 정예가 명만 기다리고 있네.”
“그럼 우리까지 합해 모두 육백이군요.”
청년이 턱을 받치고 있던 손을 떼며 입을 열었다.
광유의 웃음이 짙어졌다.
영패를 잃어버린 후 미친 듯이 피를 보았다. 그러고도 영패를 찾지 못했다. 그러길 얼마, 갑자기 자신들을 추적하는 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검운장을 주시하고 있던 수하로부터 수상한 무리의 움직임을 보고 받고 은신처를 옮겼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할 뻔했다.
더구나 그들은 정천무림맹의 무사들. 정면으로 대항해서는 승산이 없었다.
일단 몸을 웅크린 그는 검운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흑마련과 혈해방에 은밀히 손을 뻗었다. 그들도 검운장이 남궁세가와 손을 잡은 것에 불안을 느끼고 있던 중일 터. 무작정 마다하지는 않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바로 그때 절강을 중심으로 휘도는 묘한 정세의 흐름이 느껴졌다. 안휘와 강소에 웅크리고 있던 묵운방이 절강으로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정천무림맹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뜻인가?
이유야 어떻든,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절강으로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절호의 기회!
‘어차피 이판사판, 잘하면 뜻밖의 공을 세울 수도…….’
그렇게 생각한 그는 묵운방에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자가 왔다. 오십의 정예를 이끌고.
그에게 청년이 끌고 온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숫자는 비록 오십이지만, 흑마련과 혈해방의 오백오십 무사와 붙는다 해도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후후후,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겠군.”
광유의 말에 청년이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적은 정천무림맹의 정예들입니다.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천하의 누가 그들을 쉽게 생각할 수 있겠소?”
감색 비단 장삼은 입은 청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놈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면 호주에 있던 무사들이 곧바로 움직일 것입니다. 항주가 우리 손에 넘어오느냐 마느냐가 이번 일전에 달려 있다는 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염전이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험, 그거야 익히 알고 있네. 한데… 정말 항주를 우리에게 넘겨줄 것인가?”
조청산도 눈을 번뜩이며 청년을 바라보았다.
싸우고 이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겨도 얻는 게 없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가 없다.
청년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후방을 노리는 적의 퇴치입니다. 만일 항주의 검운장이 아군이었다면 아예 내려오지도 않았을 거라 그 말이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허허허, 내 어찌 그 말뜻을 모르겠나? 이번 일이 끝나면 방주께서 직접 귀 방의 방주님을 찾아뵐 거네. 든든한 아군이 되어서 말일세.”
염전이 무안한 듯 너털웃음을 흘렸다. 조청산도 고개를 끄덕이며 믿는다는 듯 한마디 했다.
“알겠네. 좌우간 당장은 적과의 싸움이 중요하니 모두 합심해서 적을 상대하기로 하지.”
“하하하, 그럼 이제 승리만이 남았군요.”
광유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었다.
‘어리석은 자들…….’
묵운방은 항주를 혈해방과 흑마련에 넘길 것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대신 혈해방과 흑마련을 발아래로 두면 되니까.
다시 말해 묵운방은 절강을 통째로 먹으려 한다는 말이다.
광유는 그걸 알기에 자신이 챙길 것만 신경 쓸 생각이었다. 항주야 누구 손에 넘어가든 말든.
“자, 이제 수하들을 이끌고 놈들을 마중 나갑시다! 가세, 위지 공자!”
광유가 일어나며 소리쳤다.
뒤이어 염전과 조청산이 일어나고, 절정공자 위지호천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6
은선옥이 방에서 나오는 걸 보고 용아가 화들짝 놀라서 쪼르르 달려갔다.
“왜 나왔어요, 누나? 아직 더 누워 있어야 할 텐데.”
“조금 답답해서. 강 오라버니가 조금씩 움직여도 된다고 했어.”
은선옥은 용아를 보며 힘없이 대답했다.
며칠간 누워서 생각하니 섬을 떠나온 것이 후회되었다. 강호가 험하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꼴을 당하다니.
만일 이 사실을 안다면 엄마가 얼마나 걱정할까?
‘다 엄마 때문이야!’
은선옥은 그렇게 속으로 소리치면서도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무환은 더욱더 보고 싶었다.
‘이 넓은 천지에서 어떻게 오빠를 찾지?’
어차피 이곳까지 나온 마당이다. 엄마가 보고 싶긴 하지만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두들겨 맞아도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문득, 일 년 전 이무환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맞아. 항주에 외가가 있다고 했어. 검… 무슨 장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검… 검… 검운… 장?’
“그래, 검운장이야.”
그녀가 그 말을 나직이 뇌까릴 때 문이 열렸다. 사마강이 안으로 들어오다 그 소리를 듣고 그녀에게 물었다.
“검운장이 어땠다는 거냐?”
“방금 생각났는데, 제가 찾으려는 오빠의 외가가 검운장이라고 했어요.”
“그래?”
“예.”
“흠, 네 오빠가 누군데 검운장이 그의 외가란 말이냐?”
제6장. 광룡(狂龍)의 방(房)에서 불이 나다
1
자시 무렵.
이무환은 남궁산산과 마주 앉았다. 금룡부의 원막걸을 만나기 전에 변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분명히 고의로 엽상이 있을 때 와서 말했을 거야.’
밤에 변장하겠다는 말을 남궁산산이 앞뒤 싹둑 잘라먹고 하는 바람에 둘이 함께 잔다는 헛소문이 기정사실처럼 되어버렸다.
구미호 같은 것!
도대체 저 쬐끄만한 머리 어디에서 그런 꽁수가 나오는 걸까?
이무환은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남궁산산이 늘어놓은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가발과 하얀 분, 빨간 연지. 먹물 등등.
“이것부터 써, 오빠.”
이무환은 남궁산산이 건네준 가발을 썼다.
남궁산산이 가발을 제대로 된 귀신처럼 정리(?)해주고는 하얀 분을 들었다.
이무환은 남궁산산이 하얀 분을 들고 다가오자 다급히 손을 저었다.
“그건 칠하지 말자.”
“그럼 귀신답지 않다구요.”
“그런 귀신도 있지 않겠어?”
“그런 귀신을 누가 무서워하겠어요?”
남궁산산이 악착같이 말하며 손을 내민다.
이무환은 재빨리 머리를 뒤로 뺐다.
“잠깐! 좋은 방법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