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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13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9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13화

 

113화

 

 

 

 

 

 

 

 

고진이 움직인 것은 두 번째 요리인 화리탕을 거의 다 비웠을 때였다.

 

“흠, 화리탕은 그럭저럭 먹을 만하군.”

 

이무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쉬운 대로 입맛에 맞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감이랑은 속으로 이를 뿌드득 갈며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제길, 아끼고 아끼던 재료 다 날리고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군.’

 

“흐음, 음식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정말 굉장한 요리였소.”

 

아마 헌원숭의 칭찬이 아니었다면 이무환의 멱살을 잡고 음식 맛을 따졌을 것이었다.

 

“험,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구려.”

 

감이랑은 그릇을 치우면서 이무환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무환은 이를 쑤시며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어때? 먹을 만했어?”

 

“예, 오빠. 정말 맛있었어요.”

 

“벌 거 아니라니까. 성하루의 음식에 비하면…….”

 

“대체 성하루가 어디에 있는데!”

 

감이랑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이무환은 이 사이에 낀 고기 한 점을 혀로 쪽 빨아내고 태연히 말했다.

 

“절강성 상산에 있죠.”

 

그러면서 엽상에게 슬쩍 눈치를 보냈다.

 

고진이 철전 몇 개를 놔두고 밖으로 나가는 게 보인 것이다.

 

“이거, 너무 먹은 것 같은데요?”

 

엽상은 뒷간에라도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일어나서 뒷문으로 나갔다.

 

그동안 이무환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두었다.

 

“나중에 시간 나면 한번 가서 먹어봐요. 진짜 입에서 살살 녹는다니까요.”

 

“끄응, 좋아. 언제 한번 가보지. 하지만 자네 말만큼 맛이 없으면, 내 가만두지 않을 것이네.”

 

감이랑이 눈을 치켜뜨고 이무환을 윽박질렀다.

 

사람들은 그런 감이랑을 대단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감히 광룡을 협박하다니!

 

그때 갑자기 생각난 듯 감이랑이 헌원숭과 제갈신걸과 유철상을 둘러보고 무설강에게 물었다.

 

“내 깜빡했구려. 무 형, 이분들은 뉘시오? 평범한 분들은 아니신 것 같소만?”

 

무설강이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고 세 사람을 소개했다.

 

“여기는 제갈신걸이라는 친구고, 이쪽은 유철상이라는 분이오. 그리고 여기 이분은, 헌원 성에 숭 자 이름을 쓰시는 분이시오.”

 

“헌원… 숭?”

 

감이랑이 그 이름을 되뇌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같았다.

 

‘웬수 진 놈 이름은 아닌 것 같고…….’

 

이무환이 감이랑을 도와주었다.

 

“강호에서는 명부신사라 불리는 분이죠.”

 

순간 감이랑의 갸웃거리던 고개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며, 명부신사 헌원숭?”

 

천중십마 중 한 사람, 명부신사의 이름을 그가 왜 모를까.

 

감이랑은 눈을 부릅뜬 채 헌원숭을 바라보다 급급히 포권을 취했다.

 

“미처 몰라 뵈어 인사가 늦었습니다. 감이랑이라고 합니다.”

 

“헌원숭이오. 내 오늘처럼 맛있게 음식을 먹은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소. 허허허.”

 

“별말씀을…….”

 

문득 감이랑은 괴이한 생각이 들었다.

 

저 시건방지고 사람 속을 박박 긁는 놈이 누구기에 이런 사람들과 함께 다니는 걸까?

 

왜 이 사람들은 어른 앞에서 버르장머리 없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애송이를 때려잡지 않고 가만 놔두는 걸까?

 

감이랑은 남궁산산과 노닥거리는 이무환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무설강에게 물었다.

 

“저놈은 누구요, 대체?”

 

무설강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 의동생인데… 무환이라 합니다.”

 

“무환?”

 

감이랑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무환이 재빨리 손가락을 입에 대었다.

 

“쉿!”

 

“……?”

 

“여기서 떠들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랄까 모르니 혼자만 아십시오.”

 

감이랑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실없는 놈 쳐다보듯이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훗! 네가 누군데? 네가 광룡이라는 미친놈이라도 되……?”

 

순간 감이랑의 표정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그제야 ‘무환’이 누구의 이름인지 떠올랐다.

 

“네, 네가… 진짜……?”

 

“쉿!”

 

 

 

감이랑은 엽상의 선사인 단유창의 의제로, 한때 순찰단인 적룡단의 부단주 지위에 있던 자였다.

 

그런 감이랑이 잘나가던 지위를 내던지고 외성의 구석에서 주루를 차린 것은, 단유창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였다.

 

겉으로는 감찰업무보다 취미인 요리가 좋다는 생뚱맞은 이유가 다인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단유창의 죽음을 보고 구룡성 내부의 이전투구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크으!”

 

잔에 가득찬 술을 단숨에 입 안으로 털어 넣은 감이랑은 탁,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술잔을 내려놓고 이무환을 째려보았다.

 

‘저 희멀겋게 생긴 놈이 구룡성 제일의 미치광이 광룡이라니. 재수 더럽게 없군.’

 

그때 이무환이 불쑥 물었다.

 

“적룡단 부단주였던 분이 왜 여기 계신 거유?”

 

감이랑이 다섯 줄기 주름을 만들고 잇새로 중얼거렸다.

 

“안에 있으면 눈을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구역질이 날 것 같았으니까.”

 

그러고는 마치 ‘너 같은 놈 때문에!’라는 눈빛으로 이무환을 직시했다.

 

물론 이무환은 그런 눈빛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럼 아예 구룡성을 떠나시지, 왜 여기서 비비적거리며 사시는 거유?”

 

은근히 비꼬는 말투. 감이랑의 눈빛이 출렁였다.

 

“그래도 이곳은 사람 사는 맛이 나거든.”

 

“담 하나 차이인데 별다를 거 있겠수? 그냥 기분 차이지.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뇨? 뭐,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든지…….”

 

감이랑이 움찔했다.

 

사실 그는 단유창이 죽자 아예 구룡성을 떠나려 했다. 한 사람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저 큰 길 건너편에서 교자를 만들어 파는 손 씨 성의 과부만 없었어도.

 

그러나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이곳에 사는 것은 내 맘대로네. 자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 설마 특조대가 밖에서 장사하는 사람까지 잡아들이는 곳은 아니겠지?”

 

“누가 뭐라고 했수? 그 양반 참. 용기가 없으면 성질이나 죽이고 살 것이지 말이야.”

 

감이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방금 뭐라고 했나?”

 

이무환도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쪽, 비우고는 입가를 소매로 쓱 닦았다.

 

순간, 장난기 가득하던 그의 표정이 살얼음 낀 것처럼 차가워졌다.

 

“달려들 용기가 없으면 성질 죽이고 살라고 했소. 왜 내 말이 틀렸소?”

 

“이이……!”

 

“내가 겉보기에 만만해 보이니까 한 번 덤비고 싶소? 잘하면 내 목을 딸 수 있을 것 같소?”

 

툭!

 

이무환이 젓가락 하나를 감이랑 앞에 던졌다.

 

탁자에 닷 푼 정도 꽂힌 젓가락 끝이 파르르 떤다.

 

감이랑이 젓가락에 시선을 주자 이무환이 목을 쑥 내밀었다.

 

“자, 눈 감고 꼼짝 않을 테니까, 어디 그걸로 내 목을 찔러보쇼.”

 

감이랑은 탁자에 꽂힌 젓가락과 이무환의 목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상대는 정말로 눈을 감고 있었다.

 

물론 고수에게 앞이 보이지 않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감각만으로도 충분히 상대의 공격을 파악할 수 있는 게 바로 고수니까.

 

그런데 움직이지도 않겠다고 했다. 말뿐일지 모른다. 막상 젓가락이 목을 파고들면 정말 찌를 줄 몰랐다며 뒤로 물러설 수도 있다.

 

아니, 그게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제지할 수도 있다.

 

굳이 헌원숭이 나설 필요도 없다. 무설강이나 제갈신걸, 유철상 역시 자신보다 강한 자들이 아닌가.

 

감이랑은 힐끔 그들을 바라보았다.

 

묘했다. 모두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어서 찔러보라는 눈빛을 한 채.

 

‘지미, 내가 하라면 못할 줄 알고?’

 

오기가 인 감이랑은 손을 뻗어 젓가락을 잡고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처음과 똑같은 표정. 숨소리도 그대로였다.

 

“뭐 하는 거요? 아직도 준비가 안 됐소? 그렇게 용기가 없소?”

 

게다가 속을 박박 긁는 말까지.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정말 미친놈 아냐? 오냐, 이 미친 새끼! 어디 한번 뒈져 봐라!’

 

이를 악문 감이랑은 젓가락을 탁자에서 뽑고 번개처럼 손을 뻗었다.

 

슈욱!

 

찰나, 젓가락이 이무환의 목을 파고들었다.

 

남궁산산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헌원숭과 무설강과 제갈신걸은 눈을 크게 뜨고, 유철상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헛!”

 

그때였다. 눈을 뜬 이무환의 입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용기가 없으면 순순히 인정하는 진심이라도 있어야지. 써먹을 데나 있을지 모르겠군.”

 

이를 악문 감이랑의 얼굴이 푸들거리며 떨렸다.

 

젓가락 끝이 이무환의 목에 닿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목을 비틀어 옆으로 흘렸다.

 

잘게 떨리는 젓가락 끝이 자신의 마음만 같다.

 

찌르고 싶은데도 찌를 수 없는, 항거하고 싶은데도 그러지 못한 나약한 자신의 마음이 젓가락 끝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감이랑은 먹먹한 가슴이 목구멍을 뚫고 솟구치자, 젓가락을 탁자에 쾅! 내리찍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크흑! 그래! 나는 용기가 없는 놈이다! 형님이 억울하게 죽은 걸 알고도 도망친 놈이란 말이다! 그런 놈이야, 나는! 크흐흑!”

 

쾅쾅쾅쾅!

 

“네가 알아? 네가 아냐고! 미칠 것 같던 내 마음을 네놈이 어떻게 알아! 크허허헝!”

 

쿵쿵쿵!

 

탁자에 머리를 찧으며 울먹이는 감이랑이다.

 

수년간 쌓여 시커멓게 멍든 울분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이무환은 그런 감이랑을 묵묵히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죠. 배도 부르고, 술기운도 오르고, 이제 가서 좀 쉬어야겠습니다.”

 

“이보게, 대주.”

 

“아우…….”

 

헌원숭과 무설강이 감이랑과 이무환을 번갈아 보며 머뭇거렸다.

 

저대로 놔두고 갈 것이냐는 뜻.

 

이무환은 더 생각할 것 없다는 듯 담담히 돌아섰다.

 

“생각 있으면 찾아오겠죠, 뭐. 안 오면 말고. 꼬맹아, 가자.”

 

무설강도, 헌원숭도, 제갈신걸과 유철상도 묘한 눈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저 속에 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아무리 봐도 사람 같지가 않았다.

 

 

 

비룡루를 나온 일행은 곧바로 수룡단으로 향했다.

 

가던 길에 남궁산산이 나직이 물었다.

 

“오빠, 그 아저씨 왜 건드렸어?”

 

“적룡단 부단주였으면 뭔가 아는 게 많을 거 아니냐. 그냥 두긴 아깝잖아?”

 

뒤따라가던 사람들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무환의 뒤통수를 응시했다.

 

그때 남궁산산이 또 물었다.

 

“근데 오빠, 음식값은 왜 안주고 나온 거야?”

 

“나중에 찾아오면 단주에게 주라고 하지, 뭐. 공무 중이잖아.”

 

대답하는 이무환의 표정은 비룡루에 들어갈 때보다 더 밝았다.

 

‘열 냥, 아니, 다섯 냥 정도는 아낌없이 팍팍 쓸 생각이었는데. 돈 굳었군.’

 

 

 

3

 

 

 

엽상이 풀 죽은 표정을 지은 채 돌아온 것은 근 두 시진이 다 지나서였다.

 

“주루에서 나와 허름한 객잔에 들어갔습니다. 잘되었다 생각하고 그의 방을 덮쳤는데…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근처를 이 잡듯이 뒤졌는데도… 찾지 못했습니다, 총대주.”

 

엽상이 보고를 마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이무환은 그런 엽상을 향해 혀를 차고는, 눈을 내리깔고 콧등을 문질렀다.

 

고진이 구룡성에서 얼쩡거리는 이유는 뻔했다.

 

은의인, 신도연풍을 찾으려는 것이겠지. 

 

구룡성이 아무리 넓다 해도 한정된 공간. 돌아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먼발치로라도 볼 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나 수룡단조차 얼굴보기 힘든 그가 아닌가. 고진이 그를 찾는다는 것은 장강에 빠진 구슬 하나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설마 혼자 그 많은 걸 다 먹진 않았을 거고. 얼마나 남았을까?’

 

어차피 혼자서 다 복용할 수 없는 양이다. 지나치게 많은 양을 복용했다면 그렇게 돌아다닐 수도 없을 것이고. 기가 폭주해서 죽었을 테니까.

 

어쨌든 복용하고 남은 단약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 보자마자 잡아들일 걸 그랬어.’

 

잡은 다음 아혈을 제압해서 헌원숭이 눈치 채기 전에 바로 호송시켰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르는데.

 

이무환은 엽상을 째려보았다. 수룡단의 대주가 삼류무공을 지닌 자 하나 잡아오지 못하다니.

 

“애들은 풀었어?”

 

“예, 들어오면서 즉시 풀었습니다.”

 

“좋아. 그건 그렇고…… 눈발, 아무래도 요즘 수련을 게을리 해서 감각이 무뎌진 것 같아. 오늘 저녁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좀 더 화끈하게 해보자고.”

 

엽상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각오는 했지만 막상 이무환의 입에서 그 말을 들으니 벌써부터 온몸이 쑤셨다.

 

그러나 어쩌랴, 자신이 스스로 지옥문을 열었는데.

 

“예… 총대주.”

 

그때 남궁산산이 문을 열고 머리를 쏙 내밀었다.

 

“오빠, 오늘 밤에도 할 거야? 몇 시쯤 오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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