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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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12화
112화
그일 리가 없었다. 그가 왜 한밤중에 외성에서 술을 마신단 말인가.
하지만 그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제정신이 아닌 그놈이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안단 말인가?
“조사해 볼 곳이 한 곳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알려 드리지요.”
“음, 알겠네. 그건 그렇고, 내일 궁주께서 오시면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 첫날부터 일이 이상하게 꼬여 버렸으니.”
‘멍청하게 그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금철종은 속으로 화가 났지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번 일을 핑계로 대가를 적게 지불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광룡이 이번 일에 개입되지 않았을 경우의 일이었다.
‘제길, 이러나저러나 그놈이 문제군.’
2
이무환은 엽상이 음식 맛 좋기로 소문난 용성객잔으로 들어가려 하자 즉시 말렸다.
“눈발, 거긴 너무 사람이 많잖아.”
“그래도 음식 맛 좋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총대주.”
“시끄러운 것은 딱 질색이니까, 다른 곳으로 가자고.”
“아시는 곳이라도 있습니까?”
“내가 어떻게 알아? 눈발이 더 잘 알지.”
엽상이 볼멘소리로 물었다.
“그럼 어떤 곳을 원하시는 겁니까?”
“상산에 객잔이 하나 있는데, 그곳은 작고 손님이 별로 없어도 음식 맛 하나는 끝내줬지. 여기는 그런 곳 없나? 조용하고, 음식 맛도 좋은 곳 말이야.”
이마를 좁히고 생각에 잠겼던 엽상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 한 곳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곳으로 가자고.”
“저… 그런데 그곳 주인이 좀 별납니다. 손님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자신이 일하기 싫다거나, 벌 만큼 벌었다 싶으면 음식을 안 만들어주거든요.”
“그건 상관없어. 마음에 안 들면 들게 해주고, 일하기 싫다고 하면 일하게 해주지 뭐. 앞장서.”
돌아서는 엽상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잘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는데?’
엽상이 안내한 비룡루(飛龍樓)는 정말로 작고 조용한 주루였다.
용이 날아가는 누각이라는 거창한 이름과 달리 탁자라고 해봐야 모두 열 개 남짓. 그나마도 구석진 곳의 탁자 두 개 위에는 잡동사니가 쌓여 있어서 실제로 장사하는 탁자는 여덟 개에 불과했다.
그중 손님이 있는 탁자는 셋, 모두 합해서 일곱 명뿐이었다.
“오빠, 이곳은 좀 그렇다. 그지?”
남궁산산이 살며시 이무환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께름칙하다는 듯.
이무환은 남궁산산이 머뭇거리는 것만으로도 비룡루가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비룡루의 내부 광경은 상산의 성하루와 비슷해서 금방이라도 용아가 뛰어나올 것 같았다.
‘그놈,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군.’
그때 나른한 목소리가 이무환의 회상을 깨웠다.
“입구 막지 말고 앉으쇼. 들어오기 싫으면 가든지.”
약간 짜증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와 함께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인이 주방에서 나왔다.
중년인은 이무환 일행을 둘러보다 말고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웬일이냐?”
엽상이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대답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감 숙부. 제가 모시는 분이 조용한 곳을 찾으셔서 모시고 왔습니다.”
“모시는 분? 훗, 이곳은 그렇게 높은 양반들에게 어울리는 곳이 아니다. 다른 곳으로 가라.”
“그게…….”
엽상이 어깨를 으쓱이며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이무환은 남궁산산의 손을 잡고 창가의 탁자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중년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뭐 해요? 주루에 왔으면 일단 자리에 앉아야지요.”
헌원숭과 무설강, 제갈신걸, 유철상도 이무환을 따라 탁자에 둘러앉았다.
남은 사람은 엽상뿐.
중년인이 이무환과 엽상을 번갈아 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데려가, 임마. 귀찮으니까.”
엽상도 나직이 말했다.
“숙부님이 쫓아내세요. 저는 능력이 없으니까요.”
중년인이 묘한 눈으로 엽상의 위아래를 살펴보았다.
서서히 그의 눈에 놀람이 떠올랐다. 얼마 전만 해도 자신의 아래였던 엽상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아니었다.
깊숙이 가라앉은 기도. 자신보다 강해 보인다.
“너 이 자식… 언제……?”
하지만 그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이무환의 목소리가 주루에 울렸다.
“주인장, 주문 안 받습니까?”
움찔한 중년인이 힐끔 이무환을 바라보고 엽상에게 물었다.
“저놈, 뭐냐? 어린놈이 왜 저렇게 오두방정이냐?”
“숙부님이 직접 알아보시죠.”
“너 이 자식, 실력 좀 늘었다고 개기겠다는 거냐?”
“글쎄, 그게 아니라니까요?”
엽상을 빤히 바라보던 중년인이 홱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이무환 일행이 앉아 있는 자리로 가더니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들었는지 모르겠소만, 나는 내 기분에 들지 않으면 음식을 만들지 않소. 그러니 그냥 가주었으면 좋겠소.”
이무환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듣자 하니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던데, 정말입니까?”
“헛소리네.”
“하긴 저도 딱 보니까 그렇게 보이네요. 뭐, 그래도 왔으니 그냥 가기는 좀 그렇고, 그냥 대충 내오세요. 맛없다고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중년인의 이마에 두 줄기 주름이 그어졌다.
“싫다고 하지 않았나?”
“음식 솜씨 없다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니까요? 손 보니까 어차피 맛있는 음식 먹기는 틀린 것 같은데요, 뭐.”
‘이 자식 봐라?’
이마에 주름이 세 개로 늘었다.
“그러니까 그냥 가라고.”
“그럼 음식은 대충 내오고, 술이나 좀 주세요.”
“없다니까?”
중년인이 눈을 부라리며 똑바로 내려다봤다.
이무환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중년인을 올려다봤다.
“그럼 제가 안을 뒤져서, 술이 나오면 돈 안 받기입니다.”
“뭐?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술은 있어도 너한테 팔 것은 없다니까?”
“음식 솜씨가 없으면 술이라도 팔라니까 뭔 말이 그렇게 많아요? 좀 팔아요!”
말끝마다 음식 솜씨를 가지고 꼬투리를 잡는다. 중년인은 그게 더 성질 났다.
“안 팔아! 못 팔아!”
“거참, 인상도 더러운 분이 성질까지 지랄 맞네. 음식 솜씨는 마음과 손끝에서 나온다는데, 저러니 음식이 맛있을 리가 없지.”
“뭐야?! 너 이 자식……!”
중년인이 당장에라도 이무환의 멱살을 잡을 것처럼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때 옆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군가 했더니 요도(料刀) 감이랑 형이었구려.”
입을 꾹 다문 중년인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돌았다.
그는 무설강에게서 눈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렸다.
무설강이 먼저 포권을 취했다.
“무설강이라 하오.”
그제야 중년인 감이랑의 눈이 점점 커졌다.
“철사자 무설강?”
철사자 무설강이라면 천룡부의 마지막 수호자라고까지 불린 사람이다. 그가 아무리 제멋대로인 성격이라 해도 철사자라는 이름 앞에서는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철사자가 왜 여기에?’
문득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무설강도 그렇고, 하나같이 진짜 고수들이다. 시건방진 놈과 그 옆의 계집아이만 빼고.
그런데 왜 저 시건방진 놈을 말리는 사람이 없을까?
그때 이무환이 빽! 소리를 질렀다.
“줄 거요, 말 거요?”
홱 고개를 돌린 감이랑이 이무환을 쏘아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확 탁자를 엎어버리고 싶었다. 자신이 어느 정도 인정하는 철사자만 없었어도 그랬을지 몰랐다.
그는 이무환을 향해 으르렁거리며 침이 튀도록 소리쳤다.
“킁, 오냐! 주마! 하지만 이건 알아라! 네놈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니다! 철사자의 기개를 높이 사서 주는 것이야!”
당연히, 이무환은 조금도 눌리지 않았다.
“말이나 못하면…….”
그러고는 눈을 부라린 감이랑이 몸을 돌리자 팔을 벌리고 빙긋 웃었다.
“자! 이제 곧 술이 나오겠군요. 음식이야 뭐 기대할 것도 없으니까, 그냥 술 맛이나 봅시다.”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던 감이랑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저 빌어먹을 놈이! 오냐, 그래. 어디 내 음식 먹고 맛있다는 말만 해봐라! 그냥 주둥이를……!’
그는 분노를 꾹 누르고 씩씩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사람들의 눈이 이무환을 향했다.
능글맞기가 능구렁이조차 무색한 이무환이 그랬을 때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헌원숭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렇게 저 사람의 성질을 건드린 것인가?”
“사람은 가끔 못한다고 하면 더 잘하려고 한다더군요. 기다려 보죠 뭐.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지.”
“그럼 고의로……?”
이무환의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탕! 탕! 타다다다다다!
주방에서 칼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유난히 빠르고 경쾌했다.
사람들은 멍하니 이무환을 바라보고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일각이 지나자 지지고 볶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냄새가 주방에서 흘러나왔다.
남궁산산도 주방 쪽을 힐끔거리며 킁킁거렸다.
작은 코가 움찔거리는 것이 꽤나 귀엽게 보인다.
‘자식이, 저럴 때는 그럭저럭 봐줄 만한데 말이야.’
그때였다. 이무환은 남궁산산의 모습을 슬쩍 훔쳐보다 말고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빼빼 마른데다 몸집마저 작아서 추레하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이무환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아래로 처진 눈초리. 입 옆의 손톱만 한 점. 언뜻 보면 스물이 안 되어 보이는 얼굴.
‘응? 혹시 고진?’
이무환은 그를 보지 못한 척 고개를 돌리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돌아앉은 바람에 다른 사람은 아직 그를 알아보지 못한 듯했다.
지금 잡을까?
호연청의 사람인 헌원숭만 없어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헌원숭이 있는 자리에서 그를 잡으면 폭령잠마단, 아니 영단에 대한 비밀도 새어나갈지 모른다.
‘그 너구리영감이 알면 안 되지.’
이무환은 자연스럽게 엽상을 바라보며 전음을 보냈다.
<눈발, 지금부터 표내지 말고 내 말 잘 들어.>
엽상이 엽차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눈발, 지금부터 표내지 말고 내 말 잘 들어.>
갑작스런 전음. 엽상이 엽차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문가에 앉은 자 보이지?>
<예.>
<만일 저자가 우리보다 먼저 나가면, 눈발도 자연스럽게 나가서 저자의 뒤를 쫓아. 그리고 적당한 장소가 나오면 잡아서 내 방으로 데려와.>
<알겠습니다, 총대주. 그런데, 누굽니까?>
<고진이야.>
엽상이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이름이 바로 생각나지 않은 듯했다.
<고진이요?>
<그래, 고진. 폭령잠마단을 만든 자 말이야.>
그때서야 엽상의 눈이 커졌다.
<표 내지 마라니까!>
엽상이 급급히 표정 관리를 하는데 주방에서 감이랑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엽상! 이리 와서 음식 좀 날라라!”
달그락, 달그락. 후루룩, 쩝쩝!
처음에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살짝살짝 떠서 먹었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사람들의 젓가락질이 경쟁하듯이 빨라졌다.
심지어 헌원숭조차 체면을 차리지 않고 젓가락을 놀렸다.
이무환은 그 와중에도 계속 중얼거렸다.
“성하루에서 먹었던 것보다 맛이 별로네, 뭐.”
후루룩, 쩝쩝.
“저도 거기 가서 먹어보고 싶어요, 오빠.”
쩝쩝쩝…….
“좌우간 끝내준다니까. 이런 음식하고는 기본이 달라.”
우적우적…….
“아주머니가 얼마나 솜씨가 좋은지… 하긴 부드러운 손으로 만든 것과 저렇게 거친 손으로 만든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지, 뭐.”
후루룩…….
“오빠하고 정한도로 가기 전에 꼭 들러야겠어요.”
오물오물…….
“잔머리 굴리지 말고 어서 먹어. 저 성질 사나운 주인이 생각해서 만들어주었는데, 맛없다고 하면 기분 나빠져서 가져갈지 몰라.”
감이랑은 ‘요놈, 어디 맛있다고만 해봐라!’ 하는 표정으로 이무환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오기를 기다리다 서서히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체 성하루가 어딘데 내 음식보다 맛있다는 거야?!’
오기가 생겼다.
그가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것도 다 때려치우고 내성에서 나와 주루를 챙긴 이유 중 하나가 최고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세상 최고의 요리를.
지난 세월, 그는 최고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이루었다 자부했다.
그런데 오늘, 그 기분이 완전히 깨져 버렸다.
홱, 몸을 돌린 그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음식을 한 접시 가지고 나와서 문가에 앉은 고진에게 가져다주었다.
본래는 이무환이 나중에 더 달라고 하면 실컷 약 올리고 나서 내주려고 했던 것인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겠어! 저놈이 제발 조금만 더 달라고 할 요리를!’
그는 고진의 고맙다는 말을 뒤로한 채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칼을 들고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다! 탕, 탕! 타다다다다!
조금 전보다 더 빠르고, 더 경쾌한 소리.
힐끔 주방을 쳐다본 이무환이 허리띠를 풀었다.
‘저녁 치까지 다 먹고 가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