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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11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9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11화

 

111화

 

 

 

 

 

 

 

 

탁자에 꽂힌 종이의 내용이 한눈에 들어왔다.

 

반듯하게 펴진 종이에는 마치 눈으로 본 것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거짓이라고 말해봐야 믿지 않을 만큼 정확한 사실이.

 

이를 악다문 철군평의 눈빛이 종이에 고정된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종이가 가루로 변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철군평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무환이 무심한 표정, 한 점 흔들림 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심해처럼 깊은 눈. 대답을 재촉하는 눈빛.

 

눈이 마주치자 찰나간 철군평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일단 자리에 앉지.”

 

털썩.

 

이무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리에 앉고는, 어정쩡하니 서 있는 헌원숭과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뭐 해? 앉아. 헌원 대협도 앉으십시오. 이제 부주께서 함께 놀 마음이 생기셨나 봅니다.”

 

철군평은 그런 이무환을 묘한 눈으로 응시했다.

 

‘이놈이 정말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부처도 이무환과 마주 앉아 일각만 지나면 엉덩이를 들썩이며 돌아앉을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것은 몰라도, 말싸움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한 가지, 먼저 물어볼 게 있네.”

 

철군평이 입을 열자 이무환의 눈이 반짝였다.

 

철군평은 얄밉다 못해 손가락으로 파버리고 싶은 이무환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석치상이 누구와 연관되어 있는지 아는가?”

 

“신룡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잠풍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둘 다라면 상대할 방법이 있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들과 등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못할 것도 없지. 자네 말대로 나도 구룡성을 외부인에게 넘기고 싶지는 않으니까.”

 

“호, 그래요?”

 

이무환이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넌지시 물었다.

 

“그럼 사우와의 관계도 끊을 수 있겠군요. 한데 사우는 어떤 곳입니까? 듣자 하니 잠풍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큰 세력 같던데 말입니다. 혹시 천마교와 관계된 곳이 아닙니까?”

 

철군평은 근질거리는 손가락으로 이무환의 눈 대신 의자의 팔걸이를 박박 긁어 파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군. 그것은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하도록 하지. 자네를 완전히 믿을 수 있게 될 때 말이야.”

 

“하, 하, 저를 아는 사람은 모두 저를 믿지요. 아마 부주께서도 곧 그렇게 되실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헌원 대협?”

 

이무환이 갑자기 헌원숭에게 물었다.

 

갑작스럽게 질문이 떨어지자 헌원숭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흠, 그런 것 같더군.”

 

그가 이무환을 제대로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고 대답했어야 했다.

 

왜 이놈이 나에게 물었을까? 옆에 남궁산산도 있고, 엽상도 있고, 무설강과 제갈신걸도 있는데.

 

하지만 그는 아직 이무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기에 단순히 철군평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물었다 생각하고 쉽게 대답했다.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는 꿈에도 모른 채.

 

어쨌든 헌원숭이 대답하자 이무환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부주님의 입장을 생각해서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자, 그럼 먼저 석치상을 어떻게 씹을 것인지를 가지고 이야기해 볼까요?”

 

 

 

3

 

 

 

“그놈이 철룡부를 찾아간 이유를 알아보았는가?”

 

“그냥 놀러 왔다고 말했다 합니다.”

 

“설마 그 말을 믿는 것은 아니겠지?”

 

“당연히 못 믿지요.”

 

주백천이 조용히 웃으며 대답하자 천세도인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래,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 거라 생각하는가?”

 

“아무래도 특조대가 저희들과 철룡부 사이에 일어난 일을 안 것 같습니다.”

 

“철군평이 어떻게 할 것 같나?”

 

“다른 것은 몰라도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지 않는 철군평입니다. 쉽게 마음을 바꾸지는 않을 것입니다.”

 

찻잔을 반쯤 비우고 내려놓은 천세도인이 주백천을 바라보았다.

 

“그를 믿을 수 있을까?”

 

“저는 제 마누라도 믿지 않습니다.”

 

피식 웃은 천세도인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노야만 괜찮으시다면 그냥 놔둘까 합니다.”

 

“날짜가 며칠 남지 않았네. 괜찮을까?”

 

“그가 저희 쪽으로 손만 들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흠, 시일이 다가오는데다가 제자 아이들이 벌려놓은 일이 어긋나다 보니 나도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 같군.”

 

“너무 걱정 마십시오. 이미 대세를 돌리기에는 늦었으니 말입니다.”

 

천세도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석 아우, 공야 늙은이가 순순히 물러날 거라고 보나?”

 

“그럼 공야 형이 아니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아마 곧 반격이 있을 거야. 자넨 당분간 그들을 신경 써줘야겠네.”

 

“알겠습니다. 한데 그전에…….”

 

말꼬리를 길게 끈 석치상이 천세도인을 직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 어린놈을 먼저 때려잡았으면 합니다.”

 

“그놈 옆에 헌원숭이 있네. 게다가 제법 강한 놈들이 놈을 감싸고 있어. 쉽지 않을 것이야.”

 

석치상의 가느다란 눈에서 싸늘한 광채가 피어났다.

 

“쉬우면 사냥하는 맛이 없지요. 허락만 하신다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무리 둘러싼 벽이 튼튼하다 해도 노리는 사람이 천중십마 중 한 사람 구유마도 석치상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해치울 수만 있다면 썩은 어금니를 빼내는 것보다 더 시원한 기분이 들 터. 천세도인은 남은 반 잔의 차를 마저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네에게 맡기지. 단,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물러서게.”

 

‘물러서게’ 그 한마디에 석치상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욱하는 뭔가가 올라왔다.

 

천세도인은 무심코 말했지만, 석치상의 가슴에는 크고 굵은 대못이 박혔다.

 

‘흥! 야율 형은 아직 나를 잘 모르는구려. 내가 그딴 놈을 처리하지 못해서 물러설 놈으로 보였소?’

 

그래도 겉으로는 태연히 대답했다. 마음을 드러내면 허락을 거두어들이고도 남을 사람이 바로 천세도인인 것이다.

 

“그러지요.”

 

 

 

4

 

 

 

이무환이 돌아간 후에도 철군평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너무 성급하게 마음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요?”

 

뒤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들리고 난 후에야 그의 고개가 들렸다.

 

“보통 놈이 아니야. 저런 놈에게는 차라리 드러내 놓고 움직이는 게 낫다.”

 

마룡부와 도룡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당연히 평범한 놈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아쉬운 건 우리가 아니니, 일단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계획을 세워보자. 우리가 동방휘를 밀어서 주백천이 독주하는 것을 견제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건 그렇고. 화평, 사우천에서는 연락이 왔느냐?”

 

철가의 셋째 철화평이 대답했다.

 

“모레쯤 사람을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봤다시피 어설픈 놈들은 필요 없어. 그런 놈들 보낼 거면 차라리 보내지 말라고 해.”

 

“그들도 생각이 있다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철군평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뭔가를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뒤에 서 있는 철화평은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철군평은 다시 무심하게 굳은 표정으로 냉랭히 말했다.

 

“아무리 패권이 탐난다 해도 철가의 자존심까지 무너뜨릴 생각은 없다, 화평. 그걸 알고 일을 추진해라.”

 

철화평은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걱정 마십시오, 형님. 제가 어찌 형님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특조대에게 정보를 넘겨준 놈을 찾아라. 그 정도 정보라면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 가까운 곳에 정보원이 있을 것이야.”

 

“반드시 잡아내겠습니다.”

 

“가봐라.”

 

 

 

5

 

 

 

이무환이 철룡부를 나선 것은 들어간 지 한 시진 만이었다.

 

“흠! 하늘이 기가 막히군!”

 

사람들이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먹구름이 몰려온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하늘을 보고 감탄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이무환에게는 기막힌 하늘, 좋은 날씨였다.

 

“이런 날은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옥이하고 한잔하면 제격이겠는데 말이야.”

 

이때라는 듯 남궁산산이 나섰다.

 

“오빠, 우리 놀러 나왔으니까, 외성으로 나가서 조금만 더 놀고 가요.”

 

“외성?”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그러게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무환이 순순히 대답했다.

 

“그럴까?”

 

그러고는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시간도 많은데.”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헌원숭도, 무설강도, 제갈신걸도, 유철상도, 심지어 엽상마저도 최근에는 마음 놓고 제대로 술 한 잔 마셔본 기억이 없었다. 그저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적을 상대하는 일에만 전념했을 뿐.

 

그러다 보니 외성에 나가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비가 내리든지 말든지.

 

그렇다고 먼저 찬성하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누가 뭐래도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판국이었다.

 

갑자기 검이 날아와 심장에 꽂힌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지금은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일 때가 아닌 것이다.

 

“뭐, 싫으시다면 저와 꼬맹이만…….”

 

하지만 이무환이 둘만 가겠다고 하자 엽상이 후다닥 나섰다.

 

“싫기는요. 저야 뭐, 총대주께서 허락하신다면…….”

 

“험, 나도 오랜만에 한잔하고 싶군, 아우.”

 

“정말 좋은 생각이오.”

 

“그러고 보니 구룡성에 들어와서 외성 구경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군.”

 

결국 헌원숭마저 함께 가겠다고 나섰다.

 

이무환은 그런 일행을 빙 둘러보고는 혀를 차며 돌아섰다.

 

“쯧, 사람들이 왜 그런지 모르겠어. 좋으면 좋다고 하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단 말이야.”

 

“피이, 이분들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빠가 너무 단순한 거라구요. 제 말이 맞죠?”

 

남궁산산의 말에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무환은 슬며시 남궁산산을 째려보았다.

 

‘요 여우가…….’

 

하지만 남궁산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헤헤, 오빠 덕분에 점수 땄네.’

 

“가요, 오빠.”

 

 

 

제5장. 꿩 먹고 알 먹고

 

 

 

 

 

 

 

1

 

 

 

“찾았소?”

 

“수하들을 풀어 샅샅이 둘러보았습니다만 찾지 못했습니다.”

 

금철종의 대답에 귀혈사 도지양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뿐이었다.

 

납치 아니면 죽음.

 

그러나 둘 다 그 이유가 불분명했다.

 

침묵이 이어지자 덩치 큰 청년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숙부님, 제 생각에는 아무리 봐도 그놈 짓 같습니다.”

 

어제저녁만 같았어도 냉랭히 코웃음 칠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었다.

 

그때 금철종이 물었다.

 

“그놈이라면, 혈추 남 형이 쫓아갔다는 자 말입니까?”

 

“그렇다네.”

 

눈살을 찌푸린 금철종이 다시 물었다.

 

“그놈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도지양은 어제저녁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었다.

 

“좀 덜 떨어진 놈 같았네. 그런데 우리의 정체를 의심하는 것 같더군. 해서 혈추에게 죽이라 했는데, 이후로 혈추가 사라진 것이네. 그놈의 행방도 알 수가 없고 말이야.”

 

금철종의 표정이 묘하게 틀어졌다.

 

이십대 초반의 나이, 유생처럼 순하게 보이는 잘생긴 얼굴, 그리고 남의 속을 긁는 말투.

 

순간적으로 한 사람이 떠올랐다.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이름과 함께.

 

‘서, 설마 광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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