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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10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10화

 

110화

 

 

 

 

 

 

 

 

철군평의 두 눈에서 신광이 폭사되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사람 성질 긁는 말투가 절대지경이라 했던가?’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말재주가 뛰어난 놈치고 알맹이가 꽉 찬 놈은 없다.

 

그리고 말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면 뭐 하는가. 철벽에 대고 말해봐야 들려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일 텐데.

 

물론 무공이 뛰어나다는 말도 들었다. 숱한 장로들이 그에게 꺾여 잡혀가고, 마룡부주 혁성화마저 농락당했다고 했다.

 

구룡성에 폭풍을 일으킨 사나이, 아니, 미친놈, 광룡!

 

그렇게 불린다 했다.

 

철군평의 입가에 다시 웃음이 맺혔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의미의 웃음이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놈에게 단단히 쓴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구룡성은 네깟 놈이 까부는 곳이 아니야! 하면서.

 

‘이 기회에 혼을 좀 내줄까?’

 

혁성화와 겨루고도 패하지 않았을 정도면 충분히 자신의 상대가 될 만했다. 백 초는 버틸 테니까.

 

하지만 곧 철군평은 승부를 겨루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웃음도 입가에서 떼어냈다.

 

아직은 자신을 다 내보일 때가 아닌 것이다.

 

“들어오라 해라.”

 

 

 

대전은 넓었다. 백 명이 들어가도 반밖에 찰 것 같지 않았다.

 

이무환은 방정맞게 휘적휘적 걸어가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누가 봐도 영락없이 성읍에 처음 들어가 본 촌놈의 행동, 딱 그런 모습이었다.

 

“대주, 예의를 지키시오!”

 

철우평이 한마디 한 다음에야 이무환이 방정맞은 행동을 멈추고 전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한마디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 양반, 이 좀 부러졌다고 기분이 상했나? 소리치기는.”

 

그러고는 얼굴이 벌게진 철우평이 발작하기 직전, 철군평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특조대주 무환이 철룡부주를 뵈오.”

 

철군평은 철우평의 말투와 행동이 의아했지만, 일단 이무환의 인사부터 받고 보았다.

 

“어서 오게. 말은 많이 들었네. 한데 보기보다 시원시원한 젊은이구먼.”

 

“하.하.하! 과연 부주께선 사람 볼 줄 아시는군요. 저는 하도 사람들이 쇳덩이 같다고 해서 눈도 그런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칭찬처럼 들리는 말인데도 철군평은 가슴이 묵직해졌다.

 

‘버릇없는 놈. 말투하고는…….’

 

당장 그의 방식대로 묵직함을 털어버리고 싶었지만, 일단 참고 다시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이무환이 빙그레 웃으며 맞은편의 의자를 잡아당겼다.

 

“꼬맹아, 앉아라.”

 

“예, 오빠.”

 

“헌원 대협께서도 앉으시지요.”

 

아직 인사도 나누지 않은 상황이다. 헌원숭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일단 인사는 나누어야 하지 않겠나?”

 

“하하, 앉아서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유난히 ‘앉아서’라는 말에 힘을 주는 이무환이다.

 

그제야 철군평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조대주라는 어린놈하고야 인사를 앉아서 하든, 서서 하든, 누워서 하든 아무런 상관없었다.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오십 중반의 나이에 빼빼 마른 체구를 지닌 초로인은 달랐다.

 

‘저자가 명부신사군!’

 

자리에서 일어난 철군평은 헌원숭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이거 귀하신 분이 오신 줄도 모르고 철 모가 실수를 한 것 같소이다. 철군평이라 하외다.”

 

헌원숭도 쓴웃음을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헌원숭이라 하오.”

 

“앉으시지요.”

 

철군평은 손짓을 하며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이무환과 남궁산산은 벌써 자리에 앉아서 뭔가를 쑥덕이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멍청이들처럼 눈치가 없지는 않은 걸 보니 말이 좀 통할 수도 있겠다, 안 그래?”

 

“당연하죠, 구룡성의 구룡 중 한 분이신데요.”

 

“에이, 용이라고 해서 다 용이 아니라니까.”

 

문제는 그 말이 다 들린다는 것이었다.

 

철군평도 누구처럼 턱에 힘을 주었다. 그래도 이를 갈지는 않고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해 보겠나?”

 

“일단 자리에 앉으시지요, 부주. 그렇게 서 계시니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고 보니 앉아 있는 사람에게 서서 묻고 있는 상황이다. 아랫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빙그레 웃는 걸 보니 조금도 그런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철군평은 방긋 웃는 이무환의 얼굴에 주먹 한 방 날리고 싶은 걸 꾹 참고 자리에 앉았다.

 

‘으음, 저놈의 주둥이……. 조심해야겠어.’

 

만나자마자 철벽에 금이 갔다.

 

철군평은 새삼 소문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이무환이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여긴 차 없습니까?”

 

철군평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여기 차 좀 내오너라!”

 

“기왕이면 많이 좀 내오라고 해주십시오. 제가 차를 좀 좋아해서.”

 

남궁산산이 재빨리 보충 설명을 했다.

 

“오빠는 열 잔 정도 마셔요.”

 

 

 

한참 동안 침묵이 맴돌았다.

 

달그락, 달그락. 후루룩, 후루룩.

 

찻잔 들어 올리고, 마시고, 내려놓는 소리만 났다.

 

철군평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이무환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철우평은 턱에 힘을 주고 이무환의 뒤통수만 노려보았다.

 

연거푸 두 잔의 차를 마신 헌원숭은 어이가 없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벌게졌다.

 

엽상과 무설강과 제갈신걸은 그러려니 하며 상황을 즐기고, 유철상은 감탄과 존경의 눈빛으로 이무환을 힐끔거렸다.

 

‘세상에! 무적철검 철군평을 혀 몇 마디로 농락하다니!’

 

그사이 이무환은 다섯 잔째의 차를 마셨다.

 

탁!

 

찻잔을 내려놓은 이무환이 또 조용히 웃었다.

 

철군평은 반사적으로 반쯤 빈 찻잔을 내려놓고 이무환을 직시했다.

 

모두가 일제히 이무환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곧 기대했던 대로 이무환의 입이 열렸다. 내용이야 어떻든지.

 

“놀러 왔는데 너무 심심하군요.”

 

맥이 빠졌는지 철군평의 어깨가 살짝 처지고, 여기저기서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철군평이 다시 어깨에 힘을 주고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놀러 왔다고?”

 

“말 못 들으셨습니까? 저분께 그리 말씀드렸습니다만.”

 

철군평의 눈이 철우평을 향했다.

 

얼굴이 붉어진 철우평이 급급히 입을 열었다.

 

“놀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하니까, 상황을 바꾸는 것에 대해 부주님과 이야기할 것이 있다지 않았소?”

 

“내가 그랬나? 정말 그랬어?”

 

이무환이 반문하며 남궁산산을 쳐다보았다.

 

남궁산산이 철우평의 말을 수정해주었다.

 

“놀 만한 상황으로 바꾸면 되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그리고 부주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죠.”

 

“그래, 그래서 이렇게 부주님을 만나 차를 마시며 놀 만한 상황으로 바꾸려고 노력하잖아. 잘 안 바꿔져서 그렇지.”

 

누가 들어도 놀리는 걸로밖에 들리지 않는 말이었다.

 

발끈한 철우평이 말을 더듬었다.

 

“자네, 정말……!”

 

하지만 그는 역시 이무환의 상대가 아니었다.

 

갑자기 이무환이 큰 소리로 소리치며 자세를 반듯이 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분위기를 바꿔보죠, 뭐!”

 

노기에 찬 표정을 지은 채 철우평을 도와 한마디 하려던 철군평도 반쯤 벌어진 입을 닫았다.

 

이무환은 그런 철군평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일단 구유마도 석치상이란 노인네부터 씹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노기가 씻은 듯 사라진 철군평의 얼굴이 철벽처럼 굳어졌다.

 

“무슨… 뜻인가?”

 

“석치상을 잘근잘근 씹다 보면 놀 만한 상황이 될 것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자네 지금 나를 놀리자는 건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를 씹자고 하면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요.”

 

얼굴에서 웃음을 지운 이무환이 팔을 탁자에 올리고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럼… 죽음의 비에 대해서 논해볼까요?”

 

철벽이 흔들렸다.

 

하지만 대답할 새도 없이 이무환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생각한 그들과는 하는 행동이 하도 달라서 말이죠. 부주님이시라면 그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아실 텐데요?”

 

“모른다 하지 않았나?”

 

“철룡부에서 십여 명이 죽었다 들었습니다. 그들이 죽음의 비, 사우와 관계된 사람들이 아니던가요?”

 

멈칫한 철군평은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능구렁이 열 마리는 찜 쪄 먹은 것 같은 놈이 사람이 죽었다는 것, 그들이 사우와 관계된 사람이라는 것, 거기에 숫자까지 알고 왔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놈을 속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철군평은 굳은 머리를 최대한 굴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알리고 싶지 않았네만, 부 내에서 약간의 불상사가 있었다네. 그 바람에 부 내의 무사들이 희생되었지. 하나 그 일은 본 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니 자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이무환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시신을 저희에게 넘겨줘도 되겠군요.”

 

“우리가 해결한다지 않았나? 우리도 그 정도는 처리할 권한이 있다네.”

 

이무환의 웃음이 짙어졌다. 보고 있으면 진짜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게 보이는 웃음이었다.

 

“석치상에게 당한 것이 화도 안 나십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질문. 철군평은 손을 뻗어 한 대 패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입을 열었다.

 

“모른다 했네. 그만 가보게나.”

 

단호한 축객령.

 

이무환이 갑자기 몸을 뒤로 빼더니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러고는 다 포기했다는 듯 양손을 올렸다.

 

“하아, 정 모르신다면 뭐…….”

 

철군평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끈질긴 놈. 이제야…….’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무환은 아직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이무환이 엽상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참! 눈발, 죽은 사람 중에 우리가 수배 중이던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처음 듣는 말이다.

 

하지만 ‘척’ 하면 ‘착’이었다.

 

왜 뜬금없는 걸 묻는지 그것은 나중에 알아봐도 되었다. 악귀 광룡이 물어본 이상, 자신이 할 대답은 무조건 정해져 있었다.

 

“예, 대주.”

 

“그래? 그럼 그자의 시신만 가져가자고. 나머지는 부주께서 알아서 하신다니 그냥 놔두고 말이야.”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면 철군평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좀 재미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안 되는군요.”

 

주먹을 으스러지게 움켜쥔 철군평이 이무환을 쏘아보았다.

 

“감히 나와 말장난하자는 건가?!”

 

순간이었다. 무심한 표정을 지은 이무환의 입에서 고저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구룡성 최강의 승부사 무적철검은 석치상 따위에게 당했다고 흔들릴 분이 아닙니다. 제 앞에 있는 분이 정말 제가 알고 있는 무적철검이신지 의문이 드는군요.”

 

“뭐야? 네가 감히!”

 

발끈한 철군평이 벌떡 일어섰다.

 

분위기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뒤쪽에 서 있던 철우평도 검에 손을 얹었다.

 

그러나 이무환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사우나 신룡부가 뭘 약속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아십시오. 구룡성의 무사들은 누구도 구룡성이 외부인의 농락에 넘어가는 것을 바라지 않을 거라는 점을 말입니다.”

 

이를 악다문 턱에 힘을 준 철군평의 얼굴 근육이 잘게 떨렸다.

 

“내가 구룡성을 외부인에게 넘겨주려 했다는 말인가?”

 

“아니라고 하시겠지요. 얼마든지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 테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난 그들과 아무런……!”

 

이무환이 철군평의 변명을 잘라먹었다.

 

“관계가 없으시다? 석치상과 싸운 적도 없고, 사우도 모르신다?”

 

그러더니 철군평이 입을 열 틈도 없이 품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서 펴고는 탁자 위에다 던졌다.

 

팍!

 

아무렇게나 던진 얇은 종이가 단단한 원목 탁자에 깊숙이 꽂혔다.

 

“그럼 무적철검의 명예를 걸고 말씀해 보시죠. 여기에 적힌 내용이 사실입니까, 거짓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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