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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06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06화

 

106화

 

 

 

 

 

 

 

 

“커헉!”

 

“흐흐흐, 죽일 놈…….”

 

그 당시 헌원숭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이무환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이무환의 행동 하나하나가 무모하게만 보였다.

 

어떻게 보면 철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적진이나 다름없는 곳 한가운데로 들어가다니.

 

그러던 중에 구자천의 우측에 있던 자가 손을 꼼지락거리는 게 보였다. 흠칫한 그는 급히 궁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자신이 미처 경고성을 발하기도 전에 그자의 손이 움직였다. 시간이 없었다.

 

“조심……!”

 

동시에 헌원숭도 전력에 가까운 공력으로 궁을 튕겼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 것은 그다음이었다.

 

두 줄기 시퍼런 암전이 등을 꿰뚫은 순간, 이무환의 몸이 허공에 또 하나 생겨난 것이다.

 

‘저, 저럴 수가!’

 

하지만 놀란 것은 헌원숭만이 아니었다.

 

이무환은 능공비가 최고조에 이르러야 펼칠 수 있다는 신법의 극치, 부운환위(浮雲換位)를 펼쳐서 암전을 피하던 중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음소를 짓던 자의 가슴을 기화살이 뚫고 지나갔다.

 

소리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무음무형의 기어시!

 

‘과연 명부신사!’

 

어찌나 은밀한지, 음소를 흘리던 자는 자신의 가슴이 뚫린 것도 모르고 웃었다. 그러다 구멍 난 심장에서 피분수가 뿜어지는 걸 보고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무너졌다.

 

그리고 이무환이 땅에 내려섬과 동시에 그 대신 암전을 맞은 장로 하나가 입을 쩍 벌린 채 쓰러졌다.

 

한 번의 암습 실패로 두 명의 원로가 쓰러진 상황.

 

땅에 내려선 이무환은 구자천과 원로들을 직시했다.

 

원로들은 멍하니 서 있고, 구자천은 입을 꽉 다문 채 파르르 눈을 떨고 있었다.

 

이무환은 그들을 한번 둘러보고 몸을 돌렸다.

 

더 이상은 손쓸 것도 없었다.

 

‘끝났군.’

 

 

 

 

제3장. 한 마리를 때려잡으면 한 마리가 줄어든다

 

 

 

 

 

 

 

1

 

 

 

술시 무렵.

 

이무환은 영호승과 막위와 혁수린, 그리고 아직 부상에서 완쾌되지 않은 단우경까지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툭!

 

이무환이 유지에 싸인 조그마한 뭉치 네 개를 탁자 위에 던지자, 영호승과 막위와 혁수린과 단우경이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이게 뭡니까?”

 

영호승이 네 사람을 대표해서 물었다.

 

이무환이 속으로는 무지 아까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틀에 하나씩 복용하고 밤새 심법을 운용해서 기운을 다스려.”

 

어디서 들어본 말이다. 

 

그런데 어디서 들었지?

 

막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우경은 아예 모르니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이고, 영호승과 혁수린은 탁자 위의 유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느라 말을 못했다.

 

“왜, 싫어?”

 

이무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영호승과 혁수린이 홱 손을 뻗어 유지 뭉치를 움켜쥐었다.

 

뒤질세라 막위와 단우경도 일단 유지 뭉치를 움켜쥐고 보았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주려 했던 걸 다시 가져갈 수도 있는 사람이 이무환인 것이다.

 

영호승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어, 어떻게 이걸……?”

 

“그거야 거기 갔을 때 챙겼지 뭐. 내가 시험 삼아 사용해 보니까, 그럭저럭 괜찮더라고.”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가 아닌 것 같다. 입맛을 다시는 걸 보니 무지 아까워하는 표정이다.

 

그렇다면… 굉장히 좋다는 뜻!

 

유지 뭉치를 움켜쥔 영호승과 혁수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한두 개가 아닌 것 같다. 슬며시 손바닥의 감촉으로 세어보니 다섯 개다.

 

당호민의 말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다섯 개 이상은 먹어봐야 소용없고, 오히려 몸을 망칠지도 모른다고 했지.’

 

그때 뒤늦게 이무환의 말뜻을 깨달은 막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이거 당 노인이 말한 그 영단……?”

 

그러더니 유지 뭉치를 잽싸게 품속에 넣었다.

 

단우경도 언뜻 눈치 채고 눈을 떨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영단이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무환은 네 사람이 감격에 겨워 눈을 떨자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걸 보니 아깝다는 생각도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러더니 결국은 아까워하던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것도 잊었다.

 

‘역시 베풀면 기분이 좋다니까. 흠, 천하에서 나처럼 영단을 마구 베푸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움하하!’

 

이무환이 기분 좋게 말했다.

 

“너무 급하게 얻으려 하지 마. 천천히 얻을수록 그만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

 

“예, 총대주!”

 

“나는 잠시 갔다 올 데가 있으니까, 돌아가며 교대로 호법을 서주고 두 명씩 운기를 해.”

 

“예, 총대주. 저… 그런데 남궁 소저가 오늘은 보이지 않는데…….”

 

영호승이 행여나 이무환의 심기를 건드릴까 극도로 조심하면서 물었다.

 

이무환이 힐끔 남궁산산의 방 쪽을 바라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그 약 주면서 먹고 운기하면 예뻐진다고 했더니, 지금 자기 방에 가 있어. 아마 운기하고 잠들었나 봐. 그러니 나갈 때 조용히 나가.”

 

깨면 같이 가자고 졸라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네 사람은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부럽다는 표정을 한 채 방을 나섰다.

 

‘저것들은 왜 또 저런 표정이야?’

 

이무환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을 나섰다.

 

구자천과 약속한 시간이 다되어가고 있었다.

 

 

 

2

 

 

 

귀향루에 들어가자 수룡단의 대원인 점소이가 눈짓으로 밀실 쪽을 가리켰다.

 

이무환은 아무도 없는 안쪽의 다실로 들어가서 밀실의 문을 열었다.

 

순간 그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였다.

 

분명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 뜻을 전하라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탁자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은 천추도왕 구자천, 본인이 아닌가 말이다.

 

“뜻밖인가?”

 

이무환은 대답을 하지 않고 일단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비록 그 시간은 서너 걸음 옮기고 의자를 잡아당기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이무환의 뇌리에 떠올랐다 정리되었다.

 

이무환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더한 것 같군요.”

 

구자천의 얼굴에 씁쓸한 자조의 표정이 떠올랐다.

 

“오면서 몰래 나왔지. 나 구자천이 말이야.”

 

“가족이 많지 않습니까?”

 

이무환의 말대로 구자천은 다른 부주에 비해 가족이 많았다. 그는 두 명의 부인에게서 모두 일곱의 자식을 두었다. 그중 아들이 셋이고, 딸이 넷이었다. 

 

설마 그중 믿을 만한 자식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대답하는 구자천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있지, 믿을 만한 자식도. 그런데도 내가 직접 올 수밖에 없었다네.”

 

‘믿을 만한 자식도’라는 말인즉, 믿을 수 없는 자식도 있다는 말.

 

이무환은 구자천의 아픈 곳은 건드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전에 자네에게 묻지. 잠풍련을 몰아내면 구룡성이 옛날처럼 돌아갈 거라 생각하나?”

 

“저는 시간을 이전으로 돌릴 재주가 없습니다. 변화는 어쩔 수 없죠.”

 

“구룡성에 들어와 있는 호랑이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이무환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호랑이는 무슨, 그냥 굶주린 늑대들이지요.”

 

구자천이 이무환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굶주린 늑대라……. 하긴 그럴지도 모르겠군. 한데 그들을 다 잡을 수 있을까?”

 

“못 잡을 것도 없지요. 분명한 것은, 한 마리를 때려잡으면 그만큼 늑대든 여우든,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단순한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더구나 운이 좋으면 두 마리도 한 번에 잡을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한 마리도 잡을 생각을 않고 포기하면 영원히 늑대도, 여우도 잡을 수 없습니다.”

 

노력한다는 것과 포기한다는 것의 차이. 그것은 작으면서도 큰 차이였다. 하늘과 땅만큼이나.

 

구자천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쓰디쓴 미소를 배어 물었다.

 

“나는 그 작은 차이를 몰라서 차라리 욕심을 냈지. 어차피 잡을 수 없다면 그들 중 제일 강한 늑대와 함께 놀자고. 그들 무리에 자식이 끼어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자위를 하면서 말이야.”

 

“그래 봐야 배불러지면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게 늑대입니다.”

 

권력을 잡으면 언제든 팽 당할 수 있다는 말.

 

맞는 말이었다. 알면서도 쉽게 당할 자신이 있어 내민 손을 잡았다. 자신이 누구에게 뒤통수를 맞을 거라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이 누군가! 구룡 중 도룡의 주인이 아닌가!

 

그런데…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식들도, 수하들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놈이 무슨…….’

 

구자천은 천천히 숨을 들이켜고 이무환을 직시했다.

 

“나에게 뭘 바라는가?”

 

이무환이 심해처럼 깊은 눈으로 마주 보며 답했다.

 

“왼손을 들어야 할 때, 오른손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나? 지금 정리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오늘의 만남은 비밀로 묻어둘 겁니다. 부주께선 평소와 같이 생활하십시오. 그래야 최후의 순간 부주의 결정이 전체를 좌우하게 될 테니까요.”

 

분명히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염려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손을 바꿔 든 순간 그들이 도룡부를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그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을 책임질 수 있는가?”

 

“그날, 광룡대가 도룡부에서 점심과 저녁, 두 끼를 먹지요, 뭐. 밥값 대신 청소도 좀 해드리고.”

 

구자천의 눈이 커졌다. 입술이 씰룩거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비싼 밥값을 받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야겠군. 대신 음식은 충분히 준비하지.”

 

“기왕이면 맛있는 것으로 준비해 주십시오.”

 

끝내 구자천의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맺혔다. 낮에 벌어진 일은 다 잊은 듯이.

 

“주방을 다 털고 최고의 숙수를 초빙해서라도 그렇게 하지.”

 

 

 

3

 

 

 

이무환은 구자천이 나간 지 반 각이 지나서야 귀향루를 나왔다.

 

밤바람이 시원하게 귀밑을 훑고 지나갔다.

 

‘흠, 일단 하나는 거꾸로 돌려놨고…….’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삼십여 장을 걸었을까? 저만치 외성에서 제일 화려하다는 남문통이 보였다.

 

걸음을 멈춘 이무환은 문득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았다.

 

꼬맹이도 없고, 멋쟁이도, 도끼도, 쌍칼도, 꼬챙이도 없다. 아무도 없다.

 

길거리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 묘했다. 홀가분한 듯하면서도 왠지 텅 빈 느낌.

 

‘나도 참……. 비룡도를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혼자 있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냐.’

 

아버지도 자신과 같은 느낌일까?

 

‘천만에! 아마 잘되었다고 매일 술 마시러 정한도에 가실걸? 옆에서 잔소리하는 내가 없으니 얼마나 편하겠어?’

 

일순간 콧등을 씰룩이던 이무환의 눈이 반짝였다.

 

‘가만, 술이나 한잔할까? 혼자 마시는 술이 더 맛있다는데.’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생각해도 멋진 생각 같았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챈 듯 저 앞에서 주루의 깃발이 어서 오라는 듯 나부꼈다.

 

 

 

[매화루]

 

 

 

다섯 송이의 매화가 그려진 것이 제법 운치 있게 느껴졌다.

 

‘흠, 주루의 이름도 좋군. 매화향이 풍기는 곳에서 술 한잔이라, 캬아!’

 

이무환은 속으로 입맛을 다시며 매화루로 향했다.

 

 

 

매화루로 들어간 이무환은 촌놈처럼 여기저기 둘러보고는,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곧 열 일고여덟쯤 되어 보이는 어린 점소이가 달려왔다. 엽차를 따르며 힐끔거리는 것이 자신의 잘생긴 얼굴에 감탄한 것처럼 보였다.

 

‘자식, 사람은 볼 줄 알아서.’

 

이무환은 간단하게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백주 한 병하고, 야채와 돼지고기 볶은 거 한 접시 가져와.”

 

“알겠습니다요, 공자님!”

 

주문을 마친 이무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복을 입고, 뒤로 묶었던 머리를 조금 풀어 옆으로 흐트러뜨린 후 무사건을 매었다. 평소와 많이 다른 행색에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편해진 이무환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 술꾼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술꾼들의 대화 중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광룡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그놈은 정말 미쳤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나올 수가 있느냐.

 

그러면서도 기가 막힌 술안주가 생겨 즐겁다는 듯 쉬지 않고 씹어댔다.

 

이무환은 피식거리면서 엽차를 홀짝였다.

 

곧 점소이가 야채돼지볶음과 백주 한 병을 가져왔다.

 

쪼로록.

 

이무환은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서 단숨에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뜨거운 기운에 위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기분 좋은 느낌.

 

‘좋군.’

 

이무환은 술잔을 내려놓고 젓가락으로 야채돼지볶음을 집었다.

 

그가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갈 때, 주렴이 걷히고 무사 다섯이 주루 안으로 들어왔다.

 

안주를 입 안에 집어넣은 이무환은 담담한 눈으로 그들을 주시했다.

 

도검과 기형 병기를 찬 그들은 주루 안을 둘러보더니 이무환의 우측 자리로 다가와 앉았다.

 

이무환은 고기를 씹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떤 놈들이지?’

 

왠지 수상하게 느껴지는 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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