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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03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2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03화

 

103화

 

 

 

 

 

 

 

 

4

 

 

 

이무환은 광룡대로 돌아오자마자 호연청을 만나 지난밤의 일을 설명했다.

 

헌원숭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호연청은 놀라지 않았다. 대신 짐짓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뺨맞은 데다 돈마저 뺏긴 셈이니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솟았을 거네. 놈들이 이판사판으로 나오지 않을까 모르겠군.”

 

이무환이 차가운 표정으로 씩 웃었다.

 

“그거야말로 진짜 반가운 소리군요.”

 

호연청의 미간이 좁아지며 세 줄기 주름이 그어졌다.

 

“아직 정면 대결을 하기에는 우리의 힘이 약하다는 점을 알아야 하네.”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 와룡부의 사십팔객이 특조대에 합류하면, 놈들도 대놓고 무력시위를 하지는 못할 겁니다.”

 

호연청이 이번에는 정말로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조용히 앉아 있던 헌원숭도 의외인지 표정이 굳어졌다.

 

“와룡부의 사십팔객?”

 

이무환이 간단하게 제갈무진과의 일을 설명했다.

 

호연청이 반색하며 눈빛을 반짝였다.

 

“그게 정말인가?”

 

“아마 오늘 중으로 광룡대에 올 겁니다.”

 

호연청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잘됐군, 아주 잘됐어! 그리만 된다면야 해볼 만하지!”

 

이무환이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계획 하나를 털어놓았다.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내일부터 금룡과 도룡을 압박할까 합니다.”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이를 것도 없지요. 마단에 대한 것도 드러났으니 그 일을 핑계 삼으면 명분도 충분하고, 잠풍련의 사람들이 저들 속에 섞여 있는 것도 사실이니 그걸 핑계 삼아도 무작정 반발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호연청이 신광을 뿜어내며 물었다.

 

“나에게 부탁할 것이 있을 것 같은데, 어디 말해보게.”

 

역시 만만치 않은 호연청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부탁이라는 말로 돌린다.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한발 뒤로 빠질 여지를 남겨놓자는 생각이겠지.

 

그렇다고 뒷일이 걱정돼 할 말을 못할 이무환도 아니었다.

 

“단주께선 일이 시작되기 전에, 연줄이 있는 부주님들께 미리 통고를 해서 신룡부의 움직임을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다 동원하라는 말이다. 이제 본격적인 전쟁이 코앞이니 모든 것을 내보이라는 뜻이다.

 

호연청은 단번에 말뜻을 이해하고 이무환을 뚫어지게 직시했다.

 

기회란 자주 오지 않는다. 이무환이 선봉을 서겠다는데, 그도 뒤로 물러설 수만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걱정 말게. 내 힘닿는 대로 모든 사람을 동원해서 신룡부를 고립시키겠네.”

 

“더 보태줄 사람이 있으면 미리 보태주시고요.”

 

호연청이 움찔했다. 하나 이미 기호지세다. 더구나 와룡사십팔객이 합류하기로 한 이상 자신 역시 뭔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음, 많이는 안 되도 이십 명 정도는 더 빼낼 수 있을 거네.”

 

더 될 것이다. 하지만 이무환은 일단 그 정도로 만족하고 고개를 돌려 헌원숭을 바라보았다.

 

“제자분들이 오신다고 들었는데, 언제나 오십니까?”

 

묵묵히 앉아 있던 헌원숭이 입을 열었다.

 

“아마 오늘 저녁쯤 도착할 것이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이무환이 농담처럼 말했다.

 

“흐음, 헌원 대협 정도의 고수가 두어 명만 더 있어도 한꺼번에 확! 뒤집어 버리는 건데…….”

 

순간 호연청과 헌원숭의 눈에서 동시에 기광이 흘러나왔다.

 

이무환은 두 사람의 눈빛을 느끼고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지미, 진짜로 몇 명 더 있는 것 같잖아?’

 

 

 

이무환이 호연청을 만나고 광룡대로 돌아온 지 두 시진 후. 와룡사십팔객이 수장인 비객(秘客) 유철상과 네 조장의 통솔을 받고 광룡대로 찾아왔다.

 

단단해 보이는 체구에 각진 얼굴. 무설강과 형제라 해도 믿을 것 같은 무심한 표정. 유철상을 처음 본 이무환의 입가에 가만히 미소가 떠올랐다.

 

‘돌사자가 하나 더 늘었군.’

 

방에 들어온 돌사자 유철상이 이무환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덩달아 네 명의 조장도 허리를 깊게 숙였다.

 

아마 얼마 전이었다면 절대 허리를 숙이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제갈무진의 명이 있다 해도.

 

그러나 지금의 이무환은 전날과 달랐다. 

 

마룡부를 봉문시킨 천외광룡이 바로 이무환인 것이다.

 

유철상은 그것만으로도 이무환이 자신의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철상이 삼가 특조대주를 뵙소이다.”

 

다섯 사람이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하자 이무환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아, 너무 그러면 내가 쑥스럽잖습니까?”

 

그러면서 손을 저었다.

 

유철상은 허리를 펴고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펴고 싶어서 허리를 편 것이 아니다. 이무환이 손을 젓자 저절로 허리가 펴졌다. 그것도 큰 거부감 없이. 그만큼 격차가 크다는 뜻이었다.

 

해맑은 표정, 남자인 자신이 봐도 부러울 정도로 잘생긴 얼굴, 쑥스러운 듯 손을 젓는 순진한 모습.

 

‘이 젊은이가 진짜 광룡 맞나?’

 

유철상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아직 모르는 게 있었다. 이무환에겐 광룡이라는 이름뿐 아니라 악귀라는 별호도 따라다닌다는 걸.

 

“당분간은 자리가 좁아서 지내기가 조금 불편할 겁니다. 그러니 이해하고 지내세요.”

 

그러던 차에 들려온 이무환의 염려 가득한 목소리.

 

유철상은 감동마저 느끼고 힘차게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대주! 아무리 좁다 해도 한겨울 산속에서 지내던 때보다는 나을 겁니다!”

 

“먹는 것은 미리 부탁해 놨으니까, 그리 섭섭하지 않게는 나올 겁니다.”

 

“수련할 때, 배고프면 짐승을 잡아 생으로 먹던 저희들이올시다. 염려 놓으십시오.”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마음이 편하군요. 우리 한번 잘 지내봅시다.”

 

“예, 대주!”

 

그렇게 와룡사십팔객의 대형이라 할 수 있는 유철상의 눈과 가슴에 감동이라는 두꺼운 껍질이 하나 덧씌워졌다.

 

그야말로 제갈무진과 방양고가 꿈에도 짐작치 못한 일이었다.

 

 

 

좌우간, 그들이 오자 수룡단의 비어 있던 방이 꽉 차버렸다. 그도 모자라 두 명씩 지내던 방에 세 명씩 지내게 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지금은 전시에 가까운 상황이 아닌가.

 

당분간은 불편할 테지만, 마흔여덟 명의 고수가 합류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명줄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거와도 같았다. 

 

불만은커녕 모두가 환영했다.

 

남궁산산도 자신의 방을 비우고 이무환의 방에서 함께 지내겠다고 했지만, 아주 당연히! 이무환이 펄쩍 뛰며 반대했다.

 

“내가 미쳤냐?”

 

광룡대원들은 그런 이무환을 보고 별걸 다 부끄러워한다며 쑥덕거렸다.

 

“볼장 다 봤으면 그냥 함께 지내지, 광룡이 부끄러워하긴…….”

 

 

 

 

제2장. 쏜다, 쏴!

 

 

 

 

 

 

 

1

 

 

 

쏴아아아!

 

파도가 해안가를 쓸고 밀려간다.

 

출렁이는 파도에 선교(船橋)가 흔들리며, 금방이라도 자신을 밟고 선 사람들을 내동댕이칠 것만 같다.

 

하지만 이충량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선교를 걸어 배에서 내렸다.

 

땅에 발을 디딘 순간, 이충량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 제기랄, 마음먹고 갔으면 지금쯤 천 리는 갔겠군.”

 

하필이면 옥이가 떠난 그날 밤부터 거센 봄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이삼 일 간격으로 들어오던 배가 닷새 만에 들어왔다. 그 바람에 오늘에서야 겨우 상산에 도착한 것이다.

 

이충량은 썰렁한 상산의 선창가를 둘러보며 걸음을 옮기려다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해안가에 밀집한 판잣집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그는 그 근처에서 부인과 아들을 낳고 오순도순 살았다. 역병에 부인을 잃기 전까지.

 

이제 그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집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떠난 뒤, 역병이 돈 곳은 모두 불태워졌으니까.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오. 내 잘못으로 당신을 그렇게 떠나보내 놓고 또 다른 여인을 좋아하고 있다오.’

 

죽어가던 부인의 마지막 말이 파도 소리에 섞여 귓전에 메아리친다.

 

 

 

“우리 환이…… 부탁해요.”

 

 

 

힘이 없어 구석까지 내몰린 것이 억울해서 강하게 키웠다.

 

와중에 아들의 원망 어린 눈빛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렇게 키울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강호로 나가게 될 터, 자신처럼 힘이 없어서 쫓겨 다니며 살게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물론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았다. 자신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리한 것은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을 잊기 위함이었다.

 

이기적인 마음이라 해도 하는 수 없었다. 그때만큼은 미칠 것 같았으니까.

 

다행히 아들은 잘 커주었다. 지나치게 잘 커서 이제는 걱정이 될 정도로.

 

‘그러니 당신도 이제 저승에서나마 편히 쉬구려. 내 비록 다른 여인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오.’

 

이충량은 착잡한 표정으로 판잣집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아들을 생각하자 갑자기 걱정이 밀려들었다.

 

“후우……. 그놈과 옥이가 서로 좋아한 것은 알았지만, 설마 장래까지 약속한 사이일 줄이야.”

 

걱정이 태산보다 더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옥이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확실한 사실을 알았다. 그저 친구처럼 지내던 두 사람이 최근에 와서 친구라는 관계를 넘어섰다는 걸.

 

“썩을 놈. 그럼 미리 말을 했어야 할 거 아냐?”

 

하지만 이제 돌이켜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에혀……. 그놈 돌아오면 보나마나 난리를 칠 텐데…….”

 

옥이 엄마와 도망칠까?

 

젠장! 그럴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쫓겨서 도망치다니!

 

아버지의 자존심상 그건 말도 되지 않았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일단 옥이나 찾고 보자.”

 

아들이 옥이에게 항주 검운장에 대한 것을 말했을지 몰랐다.

 

옥이가 그 말을 들었다면 당장 갈 곳이 없는 이상 그곳으로 갔을 가능성이 컸다. 아들의 소식도 들을 겸.

 

이충량은 두 손을 움켜쥐고 걸음을 옮겼다. 항주를 향해서.

 

‘그 노친네, 이제 성질 좀 죽었겠지?’

 

그때 문득, 저만치 작은 객잔이 하나 보였다.

 

 

 

[성하루]

 

 

 

객잔은 작은데 들락거리는 사람이 제법 많이 보였다.

 

‘식사나 하고 갈까?’

 

그런데 가까이 가자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언뜻 안이 보이는데, 빈자리가 없었다.

 

마음이 다급한 그는 그대로 성하루를 지나쳤다.

 

‘제길, 기다리느니 다른 데로 가야겠군.’

 

 

 

2

 

 

 

해질 무렵, 헌원숭의 제자들이 구룡성에 도착했다.

 

그러나 외부에서 구룡성에 들어온 무사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구룡성 서문이 막 닫히기 직전, 삼십대 도객 둘과 역시 등에 도를 멘 노인 하나가 서문으로 들어섰다.

 

“정지!”

 

항상 그렇듯이 서문의 위사가 앞을 막았다.

 

그때, 서문과 인접한 건물에서 한 사람이 나오더니 위사들에게 나직이 소리쳤다.

 

“자네들은 물러서게!”

 

힐끔 눈을 돌리던 위사는 나타난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안응이 우문 각주님을 뵙습니다.”

 

“그 사람들은 내 손님이네. 내가 신분을 보장할 테니 그냥 통과시키게.”

 

“그러시다면야…….”

 

위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즉시 옆으로 비켜섰다.

 

우문 각주라 불린 자는 곧바로 세 사람을 향해 다가가 몇 마디를 나누었다.

 

“오시느라 힘들지는 않으셨습니까?”

 

“힘들 게 뭐 있겠나? 일단 들어가세.”

 

“예. 한데 또 오실 분이 있으신지요?”

 

“곧 아이들이 열 정도 더 올 것이네.”

 

우문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위사를 불렀다.

 

“말씀 들었나?”

 

위사는 눈치 빠르게 깊은 것은 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우문 각주님. 오시는 대로 통과시키겠습니다.”

 

“흠, 그럼 수고하게. 안응이라 했던가? 내 자네의 이름을 기억해 두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반 시진이 지날 무렵.

 

등에 도를 멘 노인의 말대로 열 명의 도객이 서문을 통과했다.

 

구유마도 석치상.

 

그가 마침내 구유도문의 도객과 함께 구룡성에 발을 디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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