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40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40화
140화
‘그건 그렇고… 문제네, 신도연풍이 죽었으니 일이 복잡하게 되어버렸어. 황산검문 사람들이 곧 올 텐데…….’
신도연풍을 잡아 모든 일을 자백 받는 것이 황산검문의 일을 처리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증인인 신도연풍이 죽었으니 일이 조금 복잡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도연풍은 잠풍련의 사람이 아닌가.
‘잠풍련을 박박 파헤치다 보면 뭔가가 나오겠지.’
다행히 하종건도 아직 살아 있고, 약재가 구룡성에 들어와서 유통되었다는 증거도 남아 있었다.
최소한 구룡성의 사과를 받아내고, 그 일에 대한 배상을 받아내는 것 정도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 조금 복잡해졌을 뿐.
‘에혀, 일단 그 걱정은 나중에 하고……. 하아, 그거 참…….’
고진을 바라보는 이무환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까이 다가가자 살을 태우는 역겨운 냄새가 바람을 타고 밀려들었다.
하지만 이무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보같이…….”
갑자기 눈 가장자리가 찡하니 울렸다.
“연기가 꽤나 독하네.”
이무환은 연기 핑계를 대며 눈 가장자리를 슬쩍 문지르고는, 새카맣게 타버린 고진을 신도연풍에게서 떼어냈다.
살점이 타면 엉겨 붙는 것인 일반적인 일인데도 묘하게 두 사람의 몸은 쉽게 떨어졌다.
이무환은 여기저기 찢어진 장포를 벗어서 고진의 타버린 몸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그리고 장포에 싸인 고진을 안아 들고 일어섰다.
“조금만 가면 괜찮은 곳이 있어. 그곳에 일단 가매장을 하고, 몸 좀 추스른 후에 성으로 들어가자고.”
뇌옥에 있는 하종건에게 물으면 고진의 가족이 묻힌 곳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은 힘들지만 며칠 후면 그들 곁에 묻어줄 수 있을 듯했다.
그가 고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자식이니까, 아버지니까 웃으며 택한 길이겠지. 아버지라……. 제길… 괜히 멋대가리 없는 아버지가 보고 싶어지잖아. 외롭지는 않은지…….’
2
이충량은 저만치 검운장이 보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막상 오기는 왔는데, 들어가서 벌어질 일이 걱정이었다.
‘지미, 어디 가서 인피면구라도 하나 사서 쓸까?’
그런데 그가 머뭇거릴 때였다.
검운장의 정문이 활짝 열리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뭐, 뭐야?”
안에서 나온 사람들은 검운장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니, 검운장의 사람들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외부인들이었다.
이충량은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 장원에서 쏟아져 나온 자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어느 한곳에 멈추면서 입이 떡 벌어졌다.
“저, 정천… 무림맹? 저들이 왜 검운장에 모여 있는 거지?”
일이십 명이 아니다. 적어도 백 명 이상이다. 그것도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고, 개중에는 절정 이상의 고수들도 적지 않았다.
이충량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들 문제 때문에 다른 것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항주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곧 그 이상한 분위기의 정체가 뭔지 눈치채고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전쟁을 앞둔 팽팽한 긴장감. 이상한 기운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문제는 그 중심에 검운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아, 젠장! 대체 뭔 일이 벌어져서…….’
그때였다.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 거기 혹시 양충… 아니, 충량이 아닌가?!”
흠칫한 이충량은 검운장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전호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끄응, 눈도 밝군.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전호는 이충량을 객방으로 데려갔다.
“마침내 왔군. 하하하. 무환이에게 듣고 언젠가는 올지 모른다 생각했는데 말이야.”
“잘 지냈나?”
“나야 잘 지내긴 했는데…….”
왠지 어두운 얼굴이다.
이충량은 넌지시 궁금한 점을 물었다.
“항주의 공기가 무겁던데,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나?”
전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벌어졌지, 그것도 큰일이. 조금 전에 나간 사람들 봤지?”
“봤네, 왜 정천무림맹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나오는 거지?”
전호는 그간의 일을 대충 설명해 주었다.
수상한 자들을 잡기 위해 항주를 뒤진 것, 그들이 도망친 것, 그 후 강소에서 또 다른 자들이 절강으로 넘어온 것, 혈해방과 흑마련의 움직임까지.
“그 바람에 난리도 아니네. 사흘 전에 혈해방과 흑마련을 치기 위해서 정천무림맹, 우리 검운장, 항주의 문파들에서 지원받은 무사들까지 삼백의 무사가 출동했는데, 반수 이상이 죽고 돌아온 자는 백여 명에 불과했다네.”
그랬다. 그날 정천무림맹의 고수들 중 절반인 일백 고수와 검운장을 비롯한 항주의 무사 이백이 기세 좋게 검운장을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적을 섬멸하고 돌아올 거라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항주에서 이백 리 떨어진 후포(后浦)에서 적과 조우했다.
싸움이 벌어진 지 반 시진, 정천무림맹의 고수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으로 싸움에 임했는지 절감해야만 했다.
적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게다가 숫자도 두 배에 이르렀다. 싸움을 시작한 지 반 시진이 채 지나기도 전, 일백의 무사가 쓰러졌다.
결국 연합 세력은 무사들의 수가 반 가까이 줄자 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적들은 끈질기게 뒤를 쫓으며 연합 세력의 무사들을 추살했다.
그렇게 참담한 상황에서 삼십 리가량을 후퇴했을 때 한 사람이 나타났다.
“만일 본 가의 어른이신 천태도장께서 제때 도착하지 않으셨으면 아마 백 명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야.”
전호의 말에 이충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검운장의 가족사에 대해서는 남만큼 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천태도장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천태도장?”
“아마 자네는 잘 모를 거야. 뭐, 나도 확실히는 모르니까. 그런데 노장주께서 그분을 숙부님이라고 부르는 거 보니까, 본 가의 어른인 것은 분명한 것 같네. 좌우간 그분이 나타나서 악귀 같은 놈들을 때려눕히니까 적들도 더 이상 추적을 포기하고 물러났다고 하더군.”
어쨌든 그 일로 검운장이 발칵 뒤집혔다. 검운장에 남아 있던 정천무림맹의 고수 일백은 당장 놈들을 쳐야 한다고 방방 떴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천단주인 백혜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하루 정도면 이차로 파견된 무사들이 올 터, 하루를 기다렸다 그들과 함께 움직이자는 것이었다.
그제야 정천무림맹의 고수들도 조금씩 진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그들이 오자 또다시 적을 치기 위해 검운장을 나선 것이다.
비록 숫자는 이백 정도로 보였지만, 이충량은 숫자에 대한 의문은 갖지 않았다.
“엄청난 고수들이 끼어 있는 것 같던데, 그들이 누군지 아나?”
이충량의 말에 전호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나직이 말했다.
“놀라지 말게. 저들을 이끄는 사람이 바로, 진천검왕(振天劍王)이라네.”
놀라지 말라고 했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천검왕이라고? 우내십존 중 한 사람인 진천검왕 우내혁이 왔단 말인가?”
“그렇다니까? 그뿐이 아니야. 운양(雲陽) 구양진도 왔어.”
그 말에 이충량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우내십존 중 두 사람이 왔다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사마추경을 만나 좀 더 자세한 사정을 들어봐야만 할 것 같다.
“으음, 장인어른께선 어디 계시나?”
“별원에 계실 거네. 왜, 만나보려고?”
“혼나더라도… 그래야 할 것 같네.”
전호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아들을 잘 둔 덕분에 덜 혼날 거네. 노장주께서 무환이를 아주 좋아하시거든.”
“그, 그런가?”
“흐흐, 가세.”
이충량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그제야 생각난 듯 전호에게 물었다.
“혹시 최근에, 여자아이가 무환이를 찾아온 적 없었나?”
“여자아이가? 없었는데?”
“그래?”
이충량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후우, 강가의 모래 속에서 바늘 찾는 꼴이 되었으니……. 큰일이군, 큰일이야. 무환이 놈이 알면…….’
제6장. 광룡귀환
1
저만치 담사황을 만났던 호숫가 송림이 보였다.
이무환은 금빛 비늘이 찰랑이며 떠다니는 호수를 바라보며 방향을 틀었다.
송림 안에 임시 무덤을 만들어놓을 생각이었다. 고진도 번잡한 성안보다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한적한 송림을 더 좋아할 것 같았다.
그리고 송림은 몸을 추스르기에도 적당한 장소였다.
놈들이 먼저 돌아간 이상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또 공격해 온다면 정말 목숨을 걸고 싸우든, 아니면 도주를 해야만 할 것이다.
문제는 싸우는 것도, 도주하는 것도 현재의 몸 상태로는 쉽지가 않다는 점이다.
‘젠장, 정 안 되면 하는 수 없지. 들통 나더라도 밑천을 다 드러내는 수밖에…….’
송림이 다가오자 궁금함을 참고 있던 공손척이 넌지시 물었다.
“그는 누군가?”
“노형이 복용한 영단을 만든 사람이우.”
모두가 무덤을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공손척도 함께 흙을 쌓아 올렸다.
연이은 격전으로 심한 내상을 입어야 할 상황을 폭령잠마영단 덕에 모면했다. 그들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영호승 등은 그 영단 덕에 꿈에도 그리던 절정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던가.
다섯 사람은 경쟁하듯이 무덤의 흙을 반듯이 매만져 주었다.
이각 후.
얕은 봉분이 완성되자 이무환은 그 옆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품에서 작은 대나무통을 꺼냈다.
당호민은 한 알 복용할 때마다 이틀 정도 시간을 두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고, 몸도 좋지 않았다.
적의 추가공격이 없다 해도 해가 뜨면 칼날 위를 걷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적어도 구룡성주 선출 때까지는, 아니, 그 후에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그러니 당장은 몸을 추스르는 게 우선이었다. 부작용이 있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설마 완전히 미치지는 않겠지.’
자신은 아직 다섯 알밖에 복용하지 않았으니 여유가 있었다. 설령 약간의 이상이 있어도 충분히 다스릴 자신도 있었고.
하지만 영호승 등은 달랐다. 이미 여섯 알이나 복용한 상태다. 한 알 더 복용하면, 그것도 연달아 복용하면 광기에 빠질지도 몰랐다.
물론 그 일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미쳐서 덤벼들면 때려잡으면 되니까.
‘아니지, 눈알이 빨개지는 것만 보여도 일단 패고 봐야겠어.’
나름대로 방책을 세운 이무환은 대나무통의 뚜껑을 열었다.
뽕!
뚜껑이 열리며 은은한 약향이 대나무통에서 퍼져 나왔다.
순간 가부좌를 튼 채 막 운기를 하려던 영호승 등이 슬며시 눈을 뜨며 이무환을 향해 돌아앉았다. 공손척도 코를 움찔거리며 눈을 돌렸다.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지은 채 대나무통을 주시하는 다섯 사람을 보고 이무환의 마음이 흔들렸다.
‘이것들이! 공짜로 주니까……!’
그냥 냄새만 맡게 하고 뚜껑을 닫을까?
하지만 당장 자신부터 필요했다. 자신만 복용하고 다른 사람들은 냄새만 맡게 하면 너무 쪼잔할 것 같았다.
‘쳇, 마음이 바다같이 넓은 내가 이해해야지.’
그렇게 자찬한 이무환은 대나무통을 흔들어서 폭령잠마영단을 꺼냈다.
달달거리며 흔드는 것이 꼭 아까워서 손을 떠는 것처럼 보였지만, 누구도 그런 이무환을 비웃지 않았다.
특히 이무환의 성격을 잘 아는 영호승 등은 최대한 감지덕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눈치라도 보이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다시 뚜껑을 닫을지 모르니까.
그나마 그 표정에 마음이 풀어진 이무환은 자신의 살점이라도 떼어주는 것 같은 심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하나씩 받아. 연속 복용하는 거니까, 한꺼번에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일단 내상을 치유하는 정도에서 그쳐.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직 공손척만이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멀뚱멀뚱 뜬 채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이무환은 간단하게 주의사항을 말해주고, 폭령잠마영단을 다섯 사람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러고는 자신도 두 알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한 알도 아닌 두 알을 한꺼번에 복용하는 이무환이다. 그 모습을 보고 영호승과 막위, 단우경, 혁수린의 눈이 굳어졌다.
그제야 그들은 이무환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왜 그렇게 봐?”
영호승이 염려하는 표정으로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저… 총대주, 너무 무리하시는 게 아닌지…….”
“걱정 마. 내가 누구야?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하긴 이무환을 자신들처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더구나 이무환이 누군가? 광룡이 아닌가?
부작용으로 약간의 광기를 보여도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는 미친 용, 광룡이니까!
광룡이 미쳤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광룡이 광귀가 되면 문제가 커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