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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39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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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광룡기 139화

 

139화

 

 

 

 

 

 

 

 

빌어먹을 놈이 자신의 상태를 알아본 것 같다.

 

그런데 묘했다. 신도연풍의 말을 들으니 은근히 오기가 끓어올랐다.

 

이무환은 그 자리에 선 채, 천광지령의 내력을 끌어올리며 일단 흔들린 내력부터 안정시켰다.

 

‘너구리 같은 놈! 내가 네놈 입맛에 맞춰주면 광룡이 아니지!’

 

숨을 두어 번 쉬는 사이 부글거리던 단전이 조금 가라앉는다. 아무래도 아직 완전히 퍼지지 않았던 폭령잠마영단의 기운이 내상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이무환은 쾌재를 부르며 신도연풍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신도연풍이 칠 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다. 이무환이 조소를 지으며 신도연풍의 속을 긁었다.

 

“겁에 질려 도망친 줄 알았는데, 아직도 거기에 있었나? 밤에 적을 치러 가는 놈이 그런 옷을 입고 오다니, 멍청한 놈.”

 

“미친놈! 허장성세를 떨어봐야 소용없다! 내가 속을 줄 아느냐?! 이미 반 이상 내력을 소모한 네놈은 절대 본 공자의 상대가 아니다! 으하하하!”

 

대소를 터뜨린 신도연풍은 은화마선을 쥔 손에 힘을 주고 한 걸음에 일 장의 거리를 좁혔다.

 

찰나였다!

 

이무환의 신형이 활시위에서 벗어난 살처럼 신도연풍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묵린도가 하늘 높이 쳐들리며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순간이었다. 묵빛 신월이 어둠을 가르며 쏘아졌다.

 

단천묵린월!

 

“헉! 이놈이!”

 

아연한 신도연풍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은화마선을 휘둘렀다.

 

쾅!

 

일성 굉음이 일며 충격파가 이무환과 신도연풍을 감싸고 회오리쳤다.

 

순간 이무환은 반탄력을 이용해서 뒤로 비스듬히 십 장가량 날아갔다.

 

반면에 신도연풍은 비틀거리며 일곱 걸음을 물러선 후 겨우 몸을 세웠다.

 

끝이 세 치가량 부러진 은화마선, 흐트러진 머리카락, 창백한 얼굴. 신도연풍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을 들어 이무환을 직시했다.

 

조금 전만 해도 무면검마와 합공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놈이 무면검마조차 바로 공격하기가 애매한 위치로 피해 버렸다.

 

성급하게 달려든 바람에 충격은 충격대로 받고, 광룡을 위험지역에서 벗어나게 만든 것이다.

 

분노가 끓어오른 신도연풍은 은화마선을 고쳐 쥐고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이 여우 같은 새끼……!”

 

신도연풍의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이무환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내상이 심하지만 할 말은 하고 봐야 했다.

 

“후후!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신도연풍! 나에게 조금만 더 힘이 있었다면, 멍청한 네놈은 벌써 죽었어!”

 

“이, 이 개자식이!”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가 뒤쪽 풀숲에서 튀어나오더니, 냅다 신도연풍의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면검마와 십여 장의 거리를 벌린 상황. 일행들에게 먼저 도주하라는 말을 하려던 이무환이 그를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풀숲에서 튀어나온 자, 그는 다름 아닌 고진이었던 것이다.

 

 

 

고진이 신도연풍을 본 것은 우연이었다.

 

얼핏 십여 명의 고수가 구룡성을 나서는 걸 보고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데 신도연풍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즉시 신도연풍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내력이 달리는 그로선 신도연풍을 쫓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한 알의 폭령잠마단을 복용하고 정신없이 뒤를 쫓았다.

 

그렇게 십 리를 쫓아갔을 무렵, 걸음을 멈춘 신도연풍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다.

 

고진은 최대한 태연을 가장하고 신도연풍의 곁을 지나갔다.

 

천만다행히도 신도연풍은 그에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마도 내력이 평범해 보이는 그를 삼류무사로 생각한 듯했다.

 

그 후 고진은 오 리를 더 간 후 풀숲에 몸을 숨겼다. 신도연풍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뭔가 중요한 일이 있어 나온 것일 터, 기다리다 보면 어떤 움직임이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무창 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싸우는 소리가 멈춘 후 일각가량이 지나자 신도연풍이 나타났다.

 

그제야 고진은 어렴풋이 신도연풍의 목적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신도연풍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기를 얼마, 신도연풍 일행과 광룡이 싸우기 시작했다.

 

풀숲에 몸을 숨긴 고진은 고민 끝에 두 알의 커다란 폭령잠마단을 모조리 복용했다. 그러고는 삼양신법으로 잠력을 격발시킨 채 기회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절호의 기회가 왔다. 신도연풍이 풀숲에서 삼 장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밀려온 것이다. 더구나 신도연풍은 부상을 입은 데다, 신경을 온통 이무환에게만 쓰고 있었다.

 

고진은 이를 악물고 혼신을 다해 몸을 날렸다.

 

단 한 번의 기회!

 

실패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자신의 몸이 견디지 못할 테니까.

 

‘하늘이시여! 제발 도와주소서!’

 

 

 

‘저, 저자가……!’

 

이무환은 급히 도를 좌수로 바꿔 잡고는, 고진을 돕기 위해 한 발의 무영뢰를 빼내어 던졌다.

 

신도연풍이 뒤에서 다가오는 고진을 향해 몸을 반쯤 돌림과 동시.

 

쒜엑!

 

한줄기 번개가 신도연풍과의 거리를 찰나간에 좁혔다.

 

반쯤 몸을 돌렸던 신도연풍은 대경하며 은화마선을 휘둘렀다.

 

순간 고진이 신도연풍을 덮쳤다.

 

“죽어라! 악마 같은 놈아!”

 

앞으로 뻗은 고진의 두 손에서 붉은 화염이 뻗어 나오는 듯했다.

 

땅!

 

가까스로 무영뢰를 쳐낸 신도연풍은 그 자리에 주저앉듯이 몸을 낮추고 은화마선을 휘둘렀다.

 

퍽! 퍼벅!

 

은화마선이 고진의 옆구리를 후려침과 동시 고진의 두 손이 신도연풍의 어깨와 등을 후려쳤다.

 

무영뢰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고진에게 연이은 충격을 받은 신도연풍은 신음을 흘리며 땅을 한 바퀴 굴렀다.

 

고진도 일 장 옆으로 떨어져 두어 바퀴를 굴러갔다.

 

그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더 충격을 받았을 거라 생각한 고진이 벌떡 일어서더니, 두 팔을 벌리고 신도연풍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기껏해야 일 장 반의 거리. 신도연풍은 은화마선대신 좌수로 고진의 복부를 후려쳤다.

 

“죽어라, 미친놈!”

 

퍽!

 

풍의 무공을 익힌 신도연풍이다. 바위도 으스러뜨릴 장력이다.

 

인간의 육신으로 견디기에는 너무 강한 위력!

 

그러나 고진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신도연풍을 끌어안았다.

 

언뜻 보면 더 이상 힘도 없으면서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고진은 신도연풍이 방심한 사이, 그의 몸을 부둥켜안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죽… 어!”

 

“이, 끄으으…….”

 

신도연풍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퍽퍽!

 

당황한 그는 바위조차 부술 주먹으로 고진의 몸을 두드렸다.

 

하지만 고진은 철벽인 양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반탄력이 그의 주먹을 튕겨냈다.

 

불가사의한 광경!

 

와중에 이무환은 어렴풋이 상황을 짐작하고 눈을 부릅떴다.

 

‘서, 설마?’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서른 알의 폭령잠마영단을 복용한 고진이 단전의 기운을 일시에 폭발시킨 듯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숨 몇 번 쉴 시간이면 그 기운이 다할 것이다. 그리고 고진도 죽겠지.

 

이무환조차 고진이 그 기운을 끌어내기 위해서 폭령잠마영단 세 개를 복용했다는 건 알지 못했다.

 

‘고진!’

 

이무환은 당장 달려가 돕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이 움직이면, 청색가면인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세를 펼칠 게 분명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 이무환은 무영뢰를 움켜쥐고 기회만 엿보았다.

 

도울 수 없다면, 하다못해 신도연풍이라도 죽여야 했다.

 

고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사이 신도연풍은 고진의 손을 떼어내기 위해 은화마선마저 내던지고 고진의 두 팔을 붙잡았다.

 

바로 그 순간!

 

화아아악! 

 

고진의 두 손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아니, 그의 두 손만이 아니라 온몸에서 불길이 뿜어졌다.

 

그의 몸에서 폭주한 진기가 한계를 넘어서자, 그가 익힌 삼양심법이 그의 몸조차 태워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불길은 곧 신도연풍에게로 옮겨 붙었다.

 

그리고 절대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불길이 순식간에 두 사람을 삼켜 버렸다.

 

“죽… 어……. 악… 마…….”

 

“끄아아아!”

 

신도연풍의 입에서 공포에 찬 비명이 터져 나오고, 불길에 휩싸인 고진의 입에서 흐느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버지……! 여보……! 송아야… 내 아들……!”

 

불길이 그의 목소리를 타고 하늘로 치솟았다.

 

사람들 모두가 싸우는 것도 잊은 채 잠시 손을 멈추고 공포스러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무환이 소리쳤다.

 

“고진!”

 

그때다. 불길 속의 고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불길이 조금도 뜨겁지 않은지 웃는 표정이다. 웃는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듯 느껴진다.

 

이무환은 그런 고진의 표정에 공연히 화가 났다.

 

“멍청한 인간아! 내가 잡아준다고 했잖아! 그렇게 가족들에게 빨리 가고 싶었어?”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이미 대답할 수 없는 몸이 된 고진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제길, 구할 수도 있었는데……!’

 

고진에 대해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그런데도 고진의 죽음을 보니 참을 수 없는 아픔이 밀려들었다. 동굴 벽에 남아 있던 한 서린 글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다.

 

새카맣게 타버린 몸으로 웃고 있는 고진의 얼굴이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평온해 보였다.

 

이제 다 끝났다는 듯. 할 일을 다한 사람처럼.

 

이무환은 도주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자신이 떠나면 저들이 고진의 시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지미, 죽어서도 말썽이군.’

 

순간 저 밑바닥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대상조차 확연치 않은 분노!

 

어쩌면 지랄 같은 이 세상에 대한 분노였을지도 몰랐다.

 

이무환은 그 분노를 무면검마에게 터트렸다.

 

“씨발! 꺼져! 다 꺼져 버려! 셋을 셀 때까지 안 꺼지면, 나중에 어떻게 되든 말든 당신들부터 죽여 버리겠어!”

 

일순간, 이무환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흘러나왔다.

 

어둠조차 고개를 숙이고, 달빛이 그의 기운을 타고 사방으로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도 부상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

 

도마와 협봉검을 든 자, 귀검마가 질린 표정으로 물러섰다. 

 

광룡이 허세를 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전의 상황으로 봐서는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월마마저 단우경의 도끼에 가슴이 쪼개져서 꺼꾸러진 터였다. 아무리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해 봐도 동귀어진이 최선인 상황. 두 사람은 이곳에서 죽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마가 슬쩍 무면검마에게 물었다. 신도연풍이 죽어버렸으니 현재 수장은 무면검마였다. 아니,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무면검마가 수장이었다.

 

결국 무면검마도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물러서자는 말. 도마와 귀검마의 뒷걸음질이 빨라졌다.

 

그때 묘한 표정으로 이무환을 바라보던 무면검마의 입술이 미미하게 달싹거렸다.

 

<나중에… 따로 한번 만났으면 싶군.>

 

한줄기 전음이 이무환의 귀청을 울렸다.

 

이무환은 무면검마를 쏘아보며, 역시 전음으로 빽, 소리쳤다.

 

<나중이고 지랄이고! 친구의 무덤을 만들어줘야 하니까, 빨리 꺼져 버려!>

 

 

 

세 사람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에야 고진과 신도연풍을 태우던 불길이 잦아들었다.

 

이무환은 숨을 천천히 들이쉬며 미친 듯이 날뛰는 기운을 억눌렀다.

 

잠깐 시간이 난 틈을 이용해서 겨우 기운을 다스렸는데, 조금 전 분노를 표출하면서 다시 단전이 거세게 흔들린 것이다.

 

‘지미, 사람이 둘로 보이려고 하네.’

 

하지만 표를 내지 않고 오히려 눈에 힘을 주었다.

 

사람들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오기라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자신은 광룡이니까! 광룡은 광룡다워야 하니까!

 

‘킁,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구. 비룡도에서는 이보다 더할 때도 일 년에 몇 번씩이나 있었는데 뭐.’

 

정말로 그랬다.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닐지도, 어쩌면 원수의 자식을 데려다 고생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겠는가 말이다.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완전히 닮지만 않았다면, 어머니와 함께 살 때가 기억나지 않았다면! 분명 그렇게 확신하고 도망쳤을지 몰랐다.

 

‘후우우……. 후으으읍. 후우우…….’

 

몇 번 숨을 들이쉬고 뱉는 사이 그럭저럭 단전의 기운이 가라앉았다. 사물도 뚜렷이 보였다.

 

이무환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고진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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