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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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37화
137화
영호승이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검강을 뿜어내는가 싶더니, 막위의 도끼에서도 빛이 번쩍거렸다.
단우경의 단혼십절도가 전보다 배는 빨라졌고, 혁수린의 꼬챙이에서도 바늘처럼 가느다란 빛이 뻗어 나왔다.
채 오 초가 지나기도 전, 구유도문의 고수들이 하나둘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형세가 급변하자 싸우던 중에 두 사람이 도주했다.
이무환은 그 광경을 보고 후회했지만, 뱉어낸 말을 주워 담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오 초라고 할 걸.’
두 사람이 빠지자 영호승 등은 정확히 팔 초 만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한 사람을 쓰러뜨렸다. 여기저기 상처가 많은데도 모두가 환한 표정이었다.
“헉헉! 정말 질긴 놈들이었어.”
“훅훅훅, 그래도 우리가 이겼잖아. 움하, 하!”
“설마 한 번 뱉은 말을 번복하시지는 않겠지?”
“그럼, 총대주가 어떤 분인데…….”
이무환은 곁으로 다가오며 중얼거리는 네 사람을 째려보았다.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자잘한 상처 때문에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아주 쪼끔은 안 되어 보였다.
“그깟 놈들 처리하면서 그렇게 오래 걸리다니. 몸 좀 봐, 완전히 걸레가 되었네. 그래서야 뭘 준들 소용이 있겠어?”
영호승이 넌지시 말했다.
“아마 영단 두 개 정도 더 복용하면 다음부터는 상처가 줄어들 겁니다, 총대주. 물론 세 개면 더 좋겠지만…….”
“말이나 못하면……. 상처나 싸매! 그렇게 놔두면 성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피 다 빠져서 죽겠다!”
이무환은 툭 쏘아붙이고는 품속에서 대나무통을 꺼냈다.
네 사람의 눈빛이 반짝였다.
공손척조차 뭔가 싶어 힐끔거렸다.
이무환은 대나무통의 뚜껑을 열고 톡톡 털어서 네 개의 폭령잠마영단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뚜껑을 닫으려다 말고 두 개를 더 꺼냈다.
아깝긴 해도 투자를 할 때는 확실히 해야만 했다.
“받아. 일단 하나 먼저 줄 테니까, 먹고 바로 운기해.”
일단 네 사람에게 영단을 하나씩 건네준 이무환은 자신도 하나를 날름 삼키고 공손척에게 마지막 남은 하나를 내밀었다.
“받으쇼.”
“이게 뭔가?”
엉겁결에 영단을 받아 든 공손척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먹고 운기하슈, 좋은 약이니까.”
“무슨 약인데……?”
“먹기 싫으면 이리 주쇼.”
공손척은 반사적으로 영단을 움켜쥐고 슬그머니 입으로 가져갔다.
영호승 등의 희희낙락한 표정을 봐서는 몸에 나쁜 약 같지는 않았다.
제5장. 복수
1
이무환 등은 일단 자리를 옮겨 내상을 먼저 다스렸다.
하지만 일각이 지날 무렵, 이무환은 운기를 중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숫자는 많지 않았다. 고작 여섯 명.
그러나 숫자가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공손척에 비해 약하지 않은 기운을 지니고 있는 자들.
‘지미, 석치상만 온 게 아니었어. 아주 작정했군.’
폭령잠마영단 덕에 단전의 기운은 안정되었다 해도 내상이 다 나은 것은 아니었다.
여섯 명의 초절정고수. 지금 상황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다.
이무환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전음을 보냈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적이 오니까 천천히 운기를 중단해. 그리고 적을 상대할 때 최소한 두세 명이 함께 한 사람을 상대해.>
그러고는 공손척을 깨웠다.
“그만 중단하쇼. 적이 왔수.”
영호승 등과 달리, 공손척은 초절정에 이른 고수답게 곧바로 운기를 중단하고 눈을 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악이 담긴 눈으로 이무환을 주시했다.
적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복용한 영단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귀한 것임을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공을 익힌 자라면 누구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영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주다니!
‘광룡에 대한 소문을 다 믿을 것은 아니군.’
그래서 그런지 이무환의 얼굴이 다르게 보였다.
“고맙네.”
슬쩍 공손척을 바라본 이무환은, 그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앞쪽을 향해 턱짓을 했다.
“적이 생각보다 강할 것 같으니 최대한 조심해서 싸우되, 안 되겠으면 도망가쇼.”
공손척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이무환의 말에 불쾌감을 느낀 듯했다.
“무사는 불리하다고 등을 보이는 법이…….”
“아, 제길. 그래야 나도 도망가든지 할 것 아뇨.”
공손척이 미처 말을 다 맺지 못하고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구유마도 석치상을 죽인 이무환이 도망을 치겠다고 한다.
상대가 그만큼 강하다는 말인가, 아니면 불리할 때는 언제든 도망칠 수 있다는 뜻인가?
그의 마음을 짐작한 듯 이무환이 몇 마디 덧붙였다.
“나는 말입니다. 무사의 도리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갖은 멋 다 부리다가 이곳에서 개 떼에 물려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멋도 찾을 때 가서 찾아야지, 개 떼를 상대로 멋은 무슨…….”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이차에 걸친 암습. 숫자도 세 배가 넘는다. 구유마도마저 포함되어 있었으니 암습자의 실력에 대해선 운운할 것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 무사의 도리를 운운하며 죽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면, 그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문득, 표정이 굳어진 공손척의 입가로 쓴웃음이 번졌다.
‘구유마도가 포함된 암습자들을 개 떼라……. 훗, 강호의 사람들이 알면 뒤로 넘어가겠군.’
그사이 영호승 등이 일어났다.
이무환이 이마를 찌푸린 채 그들에게 물었다.
“멋쟁이, 그대들도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싸우고 싶어?”
“미쳤습니까? 총대주가 도망가면 곧바로 따라갈 겁니다.”
“내가 안 가면?”
“그럼 우리도 안 가지요. 총대주만 놔두고 어떻게 갑니까?”
네 사람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한 눈빛으로 이무환을 직시했다.
‘우리만 갔다가는 나중에 진짜로 맞아 죽을 거야’란 생각을 하며.
하지만 정말 생사를 가르는 상황이 되면, 그런 마음도 잊고 적을 향해 죽자 사자 달려들 거라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 대답만으로도 이무환은 마음이 흐뭇해졌다. 지금까지 투자한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흐음, 아낌없이 준 보람이 있군.’
그런 마음에 미소를 지을 즈음 적이 나타났다.
갈라진 먹구름 사이로 달빛이 슬쩍 고개를 내밀자 적의 모습이 확연히 보였다.
반달형으로 넓게 포진한 채 나타난 자는 모두 여섯. 사오십 대의 중년인이 다섯, 서른 전후로 보이는 장한이 하나였다.
이무환은 그들을 바라보다 눈을 빛냈다.
‘어? 저놈은?’
앞장서서 다가오는 서른 전후의 은의인. 그가 입은 은빛 장포가 달빛에 반사되어 번쩍거렸다.
구룡성에서 은빛 장포를 입고 저렇게 거들먹거릴 자는 오직 하나다.
신도연풍!
‘미친놈. 밤에 적을 치러 가는 놈이 저런 옷을 입고 오다니.’
신도연풍은 이무환의 상황을 살피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예상했던 대로다.
석치상이 이겼다면 굳이 힘을 뺄 필요가 없을 테고, 졌다면 상대도 그만큼 극심한 타격을 입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광룡의 모습이 말이 아니다.
여기저기 찢겨진 옷을 보아하니 얼마나 심한 격전을 치렀는지 보지 않았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석치상을 비롯한 구유도문의 제자들과 수하들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거야 아무래도 좋았다. 막강한 힘 하나가 사라진 게 아쉽긴 해도, 덕분에 자신이 광룡을 제거하기가 쉬워졌지 않은가 말이다.
‘광룡의 목을 들고 가면, 그동안의 모든 잘못 정도는 단숨에 만회할 수 있을 거다. 후후후후.’
잠풍십삼마 중 오마를 데리고 나왔다. 자신과 그들이 힘을 합친다면 멀쩡한 광룡이 둘 있어도 죽일 수 있었다.
하물며 부상당해서 발톱 빠지고 뿔이 부러진 광룡쯤이야!
신도연풍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이무환을 가리켰다.
“시작합시다. 다른 놈은 놓쳐도 상관없소. 하나, 저 한 놈만큼은 반드시 잡아야 하오.”
순간 좌우에 있던 다섯 사람, 오마가 일제히 대지를 스치며 미끄러졌다.
천천히 다가오던 자들의 걸음이 빨라진다.
한 사람 한 사람, 무기를 빼 드는 그들에게서 진한 살기가 피어오른다.
물 흐르듯 부드러운 신법, 정제된 움직임.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한 자들이다.
검을 든 자가 둘, 도를 든 자와 창을 든 자가 각각 하나씩,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기형 병기인 자모원앙월(子母鴛鴦鉞)을 들고 있다.
모두 처음 보는 자들. 수룡단의 인물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고수들이다.
특히 검을 든 자 중 얼굴을 청색 가면으로 가린 자.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그의 내면에서 절대의 기운이 느껴진다.
석치상에 비해 절대 약하지 않은 절대고수!
‘제기랄, 보통 놈들이 아니군. 잠풍련의 숨은 고수들인가?’
그럴 가능성이 컸다.
일천이 넘는 강호의 고수들이 적혀 있는 수룡단의 인물편에, 저 정도의 고수들이 단 한 사람도 적혀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잠풍련의 진짜배기 고수들 같다. 멋쟁이, 적을 상대할 때는 내가 한 말 명심하고 움직여.”
이무환은 뒤를 보지도 않고 다시 한번 주의를 주었다.
그러고는 나란히 서 있는 공손척을 바라보았다.
“노형이 오른쪽에 있는 협봉검을 든 자를 맡으쇼.”
“알았네.”
공손척의 눈이 협봉검을 든 자를 향했다.
능조염과의 싸움으로 상당한 내력을 손실당한 상태. 폭령잠마영단 덕에 팔구 성의 내력을 되찾았다지만, 전과 비교해 적지 않은 차이가 났다.
반면 상대는 내상을 입기 전이라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고수. 검을 잡아가는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나름대로 경험이 풍부한 그조차 다가오는 자들 중 아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도대체 저런 자들이 어디에 있다가 나타났단 말인가.’
스르릉.
공손척이 검을 뽑는 사이, 이무환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망설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이야기 나눌 것도 없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온 자들이다. 죽지 않기 위해선 상대를 죽여야 한다. 아니면 도망치든지. 물론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처음부터 꼬리를 말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이무환은 씩 웃으며 한 걸음에 죽 오 장을 나아갔다.
순간 그의 우수가 좌수 소맷자락 안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좌측을 향해 홱 뿌려졌다.
쒜에에엑!
어둠을 흔들며 터져 나오는 귀곡성!
창을 든 자를 향해 뻗어나가는 두 줄기 번개!
동시에 이무환의 신형이 번개를 따라 움직였다.
따당!
창두가 허공에 원을 그렸다 싶은 순간 무영뢰 하나가 허공으로 튕겨졌다.
그러나 이무환이 쏘아낸 무영뢰는 모두 두 개. 하나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서 어둠을 뚫었다.
쒜에엑!
창을 든 자, 창마(槍魔)는 이를 악물고 창두를 휘돌렸다.
뭔가가 다가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창을 뻗었다. 아마 감각이 조금만 둔했든지, 매일처럼 동료들과 격전을 치른 경험이 없었다면 눈뜨고 당했을 것이었다.
‘단순한 암기가 아니다!’
가공할 위력이 담긴 암기였다. 창에 팔성의 내력을 실어 튕겨냈는데도 손이 저릿했다. 그런데 또 하나가 날아온다.
번개 같은 속도보다 무서운 것은 암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마는 내력을 십성까지 끌어올린 채 회륜창(回輪槍)을 펼쳤다.
찰나 전면에 일 장 크기로 펼쳐진 창막에 두 번째 무영뢰가 틀어박혔다.
쾅!
강기로 이루어진 창막과 암기가 부딪친 거라 믿을 수 없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팔꿈치까지 밀려드는 충격!
이를 악다문 창마의 눈이 한껏 커졌다.
당금 구룡성에서 가장 유명한 자. 그리고 이제는 석치상마저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자, 광룡이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창마는 창을 쥔 손에 혼신의 내력을 집어넣고 이를 악물었다.
그때였다. 신도연풍의 외침이 어둠을 흔들었다.
“머리 위를 조심해!”
동시에 머리 위에서 밀려드는 섬뜩한 기운!
쒜에에엑!
허공으로 튕겨진 두 개의 무영뢰가 일시에 창마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창마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뒤로 튕겼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기에는 무영뢰의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미처 일 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한 발의 무영뢰가 그의 옆구리를 뚫고 지나갔다.
“크윽!”
창마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린다.
이무환은 무영뢰를 회수하자마자 또다시 발출했다.
두 발의 무영뢰를 한꺼번에 조절하기 위해선 상당한 내력이 필요했다. 내상을 입은 지금의 몸으로 연이은 발출은 아직 무리였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숫자를 하나라도 줄이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때, 도를 든 자와 자모원앙월을 든 자가 이무환의 후면을 공격했다.
“이놈! 여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