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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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36화
136화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진 이마는 미친 듯이 칼을 휘둘러서 이무환의 접근을 막았다.
광란의 도영이 그물처럼 펼쳐졌다.
그러나 그가 막기에는 이무환의 암영무류가 너무나 빠르고 변화무쌍했다.
게다가 뇌정갑을 낀 이무환의 두 손은 이마의 도에서 뻗어 나온 도강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것이 더 이마를 질리게 했다.
“뭐 이딴 놈이……!”
공포에 사로잡힌 이마는 뒤로 물러서며 이무환을 향해 도를 내려쳤다.
마음이 흔들렸으니 제대로 된 도가 펼쳐지겠는가. 그런 위력으로는 광룡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이무환은 덥석, 이마의 도를 잡아 옆으로 잡아당기고는, 텅 빈 이마의 가슴에 일권을 틀어박았다.
퍽! 우두둑!
깊숙이 박힌 주먹에 갈비뼈가 조각조각 부서지며 심장까지 터져 버렸다.
“꺼어억!”
이마는 입을 쩍 벌린 채 일 장 뒤로 나가떨어졌다.
털썩, 땅에 떨어져 서너 바퀴 굴러간 그는 일어설 생각도 못한 채 몸만 부르르 떨다가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십여 년 전부터 석치상의 손발이 되어 호남을 질타하던 구유쌍마도의 최후치고는 너무나 허망한 죽음이었다.
쌍마도를 처리한 이무환은 손을 탈탈 털고 몸을 돌렸다.
한쪽에서는 공손척이 능조염과, 그 너머 저쪽에선 영호승 등이 여섯 명의 암습자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생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무환은 주위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잔잔한 눈빛으로 석치상만 바라보았다.
“이제 당신이 나설 차례인 것 같군.”
석치상은 구유쌍마도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 자리에 고요히 서있었다.
쌍마도가 광룡의 상대로서 부족하다는 것은 그도 짐작했다. 그럼에도 쌍마도가 나서는 걸 말리지 않았다.
헌원숭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광룡의 무위를 분석해 보기 위해서.
물론 합공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자신은 천중십마 중의 한 사람, 구유마도 석치상인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쌍마도가 십여 초를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줄이야.
“소문대로 정말 대단한 놈이로구나!”
“아마 직접 싸워보면 보기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건방진 놈!”
석치상의 눈썹이 잘게 떨렸다. 바람 때문이 아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그 어떤 기대감으로 인한 떨림이었다.
이무환은 그런 석치상의 마음을 알아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어디, 구유마도가 얼마나 무서운지 구경해 보자고.”
그는 석치상의 속을 쇠갈고리로 한 번 더 긁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신형을 날려 선공을 취했다.
석치상도 눈을 치켜뜨고 도를 잡아갔다.
“오냐, 이놈! 네놈의 실력이 주둥이만큼 강한지 보자!”
분노한 석치상의 손이 도병을 움켜쥔 순간, 이무환의 쌍장이 어둠을 내리눌렀다.
만압회와 구중만첩파가 연이어 펼쳐지며 석치상의 머리 위에서 우렛소리가 일었다.
우르릉!
수만 근 압력이 머리 위에서 짓눌러오자, 석치상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구유도를 느릿하니 잡아 뺐다.
하지만 느릿하게 보이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그의 도가 도집을 거의 다 빠져나왔다 싶더니, 번쩍! 한줄기 번개가 허공을 향해 솟구쳤다.
일도에 십팔변이 일어나며 번개가 수백 가닥으로 갈라졌다.
조각조각 터져 나가는 어둠! 진저리치는 대기!
만압회의 장력이 흩어지며 구중만첩파의 다섯 번째 파도가 소멸되었다.
이무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벼락같이 손을 휘둘렀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파도가 해일처럼 일어나 도세를 짓누르자, 석치상의 도가 좌우로 흐르며 이무환의 장세를 두 동강 냈다.
순간 갈라진 일곱 번째 파도 사이로 태산을 뭉갤 것 같은 파도가 밀려갔다.
이전의 파도보다 범위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집중된 힘은 무쇠조차 으스러뜨릴 것 같았다.
구유도에서 일어난 도강이 줄어들고, 석치상의 얼굴이 침중하니 굳어졌다.
콰르릉!
묵직한 굉음이 일며 석치상의 몸이 뒤로 죽 밀려났다.
이무환도 허공으로 이 장가량 솟구친 후 삼 장 밖으로 내려섰다.
그러나 땅에 내려선 동시, 이무환은 석치상을 향해 다시 신형을 날렸다.
천광지령을 끌어올리자, 뇌정갑을 낀 두 손에서 청광이 일렁거렸다.
얼굴이 굳은 석치상은 노기에 찬 일성을 토해내며 마주쳐서 도를 휘둘렀다.
“이노오오옴!”
콰르르릉! 쩌저저적!
일 장의 거리를 격한 채 천광뇌벽과 구유잔백이 뒤엉켰다.
찰나의 순간, 십여 번의 공방이 펼쳐지고, 두 사람에게서 일어난 기운이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바윗덩이가 무너져 내리고, 갈기갈기 찢긴 나무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어찌나 결전이 험악한지 십 장 떨어진 곳에서 싸우던 공손척과 능조염조차 그 여파에 영향을 받고 멈칫거렸다.
옆에서 보면 팽팽한 격전이 이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무환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반면 석치상은 그렇지 못했다.
석치상은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전 공력을 다 끌어올렸다.
일순간, 일 장 반경을 뒤덮은 석치상의 도망(刀網)이 이무환의 손에서 펼쳐진 천광수뢰공의 수강을 튕겨냈다.
동시에 밀려드는 살을 에일 듯한 도강의 기운!
일 장의 거리가 있는데도 칼날이 살갗을 스쳐 가는 느낌이었다.
소맷자락이, 옷자락이 여기저기 갈라지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도기가 당장이라도 팔과 온몸을 난자할 것만 같았다.
이무환은 빙굴에 빠진 듯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크!’
황급히 천광뇌벽과 천광뇌령을 연이어 펼친 이무환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상대는 누가 뭐래도 천중십마 중의 구유마도다. 조금의 방심도 허락지 않는 상대!
이무환은 마음을 다잡고 천광수뢰공을 구성까지 끌어올렸다.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이무환이 두 손을 쥐었다 편 찰나!
쩌적!
그의 두 손에서 시퍼런 번개가 번쩍였다.
석치상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자, 함부로 내보이지 않던 천린(天燐)의 인(刃)을 펼친 것이다.
천광수뢰장과는 또 다른 위력!
더구나 뇌정갑을 낀 채 펼쳐서인지 유난히 더 예리했다.
쩌정!
맑은 쇳소리가 울리며 석치상이 펼친 도망이 흔들렸다.
찰나, 도망 사이로 바늘 끝만큼의 틈이 드러났다.
이무환은 우수로 천린의 인을 펼치며, 좌수를 허리로 가져갔다.
툭, 좌수 엄지가 긴 잠에 빠져 있던 묵린도를 밀어 올렸다 싶은 순간, 어둠보다 더 시커먼 묵빛 도강이 벼락처럼 솟구치며 도망을 두 쪽으로 갈랐다.
콰앙!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는 석치상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무환이 도를 쓸 줄은 예상치 못한 듯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광룡이 도를 쓰는 걸 본 사람도, 들은 사람도 없었다. 광룡이 도를 차고 다니는 것은 순전히 멋이라는 소문이었다. 심지어 광룡대에서조차 그렇게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석치상 역시 신룡부의 정보만 접하고 그렇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광룡의 일도는 감각으로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강했다.
오죽 강하면 자신이 펼친 도망이 일거에 갈라질 정도!
그는 소름이 끼쳤다.
맨손만 해도 버거운데 도는 더 강했다.
이러한 도를 왜 여태 숨겼을까? 그리고 왜 갑자기 드러낸 걸까?
천외광룡!
왜 사람들이 광룡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려고 하는지 석치상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물러설 때도, 물러설 수도 없었다.
허공으로 떠오른 이무환이 다시 도를 휘둘렀다.
쉬아아악!
어둠을 숭숭 뚫고, 어둠보다 더 검은 흑우(黑雨)가 내렸다.
천지를 뒤덮은 어둠 속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묵빛 유성우(流星雨)!
“하아아앗!”
석치상은 전력을 다해서 구유도를 휘둘렀다.
촤르르르르.
도강이 그물처럼 펼쳐지며 석치상의 일 장 반경을 둘러쌌다.
일순간 묵빛 비늘이 소나기처럼 도망 위로 쏟아졌다.
처음에는 도망이 묵빛 유성우를 튕겨내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충격이 연속적으로 가해지면서 도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숭숭 구멍이 뚫렸다.
“크읍!”
석치상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도망에 구멍을 낸 묵빛 유성 몇 줄기가 석치상의 육신에 틀어박힌 것이다.
묵빛 유성의 위력을 맨몸으로 받아낼 만큼 석치상의 육신은 강하지 못했다. 그의 몸 여기저기가 검게 물들었다.
와중에도 석치상은 안간힘을 다해 뒤로 몸을 튕겼다.
삼 장의 거리.
만천묵린우를 펼쳐 내고 땅에 내려선 이무환은 이를 악물었다.
도에 관한한 천하제일을 다툰다는 구유마도를 상대로 연환공격을 했다. 단전이 흔들렸는지 기운이 들끓었다. 더는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게 없는 상황.
이무환은 석치상이 부상을 입은 채 뒤로 물러나자, 삼 장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러고는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묵린도를 들어 아래로 내리그었다.
순간 반월형의 거대한 묵린이 석치상을 향해 쏘아졌다.
묵린유성도의 두 번째, 단천묵린월(斷天墨鱗月)이었다.
동시였다. 이를 악문 삭치상이 벼락처럼 도를 내뻗었다.
촤아아아악!
일순간 구유도가 어둠 속에서 시퍼런 광채를 뿜어냈다.
그것은 단순한 도강이 아니었다. 석치상의 혼이 담긴, 그가 평생을 고련한 모든 것이 담긴 일도였다.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물러서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마음으로 펼친 일도, 구유잔백혼(九幽殘魄魂)!
콰아앙!
밤하늘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석치상의 몸이 허벅지까지 땅속에 파묻혔다.
“우웩!”
덩어리진 피를 토해낸 석치상은 구유도를 땅에 박은 채 안간힘을 다해 고개를 들었다. 가슴 어림을 스쳐 간 단천묵린월에 가슴이 갈라져서 벌떡거리는 심장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이무환은 칠 장 밖으로 내려서서 피 섞인 침을 뱉어냈다.
“퉤!”
그러고는 석치상을 바라보았다.
심장은 부서지지 않았지만 혈맥이 모조리 끊겼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니 곧 숨이 끊어질 듯했다.
그를 바라보던 이무환이 이마를 찡그렸다.
석치상의 마지막 일격이 내부를 뒤흔들었다. 조금만 방심했으면 더욱 극심한 내상을 입었을지도 몰랐다.
‘제길, 삼류무사도 숨겨놓은 한 수가 있다고 했는데, 너무 기분에 치우쳤어.’
솔직히 지금까지는 헌원숭이나 담사황, 소천득의 무위를 조금 얕본 면이 없잖아 있었다. 남들이야 그 말을 들으면 턱이 빠질 테지만.
그러나 그들 역시 석치상처럼 숨겨놓은 한 수가 있을 터. 아차하면 자신이 당할지 몰랐다.
스르릉.
묵린도를 도집에 집어넣은 그는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았다.
그때 석치상이 떨리는 입술을 벌려 가까스로 몇 마디를 뱉어냈다.
“아주… 멋진… 도…….”
그걸 끝으로 그의 입은 닫힌 채 열릴 줄을 몰랐다.
이무환도 자신의 본심을 솔직하게 말했다.
“마지막 일격은 정말 굉장했수. 저승에 가서라도 억울해하지는 마쇼. 정당한 대결이었으니까.”
언뜻 석치상이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기 없는 웃음.
물끄러미 석치상을 바라보던 이무환은 왠지 기분이 묘해졌다.
‘쩝, 고수도 죽긴 죽는군. 뭐, 나보다 약해서 죽긴 했지만.’
-천중십마 중 한 사람이 광룡에게 죽었다!
과연 구룡성의 주인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마 수많은 각도로 분석하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정말 정당하게 대결해서 진 것일까? 어둠 때문에 석치상이 실수를 한 건 아닐까?
어쨌든 상관없었다. 그들이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자신은 편해질 테니까.
‘내가 그들의 고민까지 생각해 줄 필요는 없지.’
이무환은 고개를 돌려 아직도 싸움이 계속 중인 뒤쪽을 바라보았다.
“곧 끝나겠군. 내가 끼어들 필요도 없겠어.”
석치상이 죽자 형세가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충격을 받은 듯 능조염의 냉정하던 도세도 급격히 흔들렸다. 그러한 도로는 공손척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채 십 초가 지나기도 전, 공손척의 검에서 뻗어나간 검강이 능조염의 심장을 관통했다.
“크억!”
능조염을 쓰러뜨린 공손척은 아연한 눈으로 석치상의 주검을 쳐다보았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거늘,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구유마도가…… 광룡에게 죽다니.’
그러든 말든, 이무환은 영호승 등을 바라보며 빽! 소리쳤다.
“십 초 안에 끝내지 못하면 영단이고 뭐고 없는 줄 알아!”
일순간, 영단을 복용하기도 전에 불끈 힘이 솟은 영호승 등은 더욱 사납게 적을 몰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