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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34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9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34화

 

134화

 

 

 

 

 

 

 

 

“정말 무 형님하고 나란히 서 있으면 볼만하겠군.”

 

공손척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또 뜬금없는 말을 한다. 아무래도 공연한 짓을 하는 것 같다.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법.

 

그때 이무환의 말이 나직이 이어졌다.

 

“근데 제갈 부주가 왜 지금처럼 중요한 때에 노형을 밖으로 돌리는 거죠?”

 

제갈 부주?

 

공손척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슨 말인가?”

 

“아차, 이런 멍청하기는. 비밀 임무를 띠고 있나 본데 그것도 모르고 물어봤군요. 하하, 그 말은 그냥 못 들은 것으로 하십시오.”

 

대체 이놈 뭐야?

 

공손척은 이무환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망설였다.

 

자신을 안다는 것. 와룡부주를 직접적으로 부른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두 사람의 신분이 구룡성과 관계되어 있다고 봐야 했다. 그것도 최고위직과 관계된 자.

 

‘다른 부주의 자식들인가?’

 

절정에 이른 호위무사들을 둔 청년.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죽여서는 안 되었다. 어차피 눈앞에 있는 자들이 알고 있다면 그 윗선도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비밀이었던 것이 비밀이 아니게 된 것이다.

 

공손척은 무거워진 표정으로 신음을 흘리듯 중얼거렸다.

 

“으음, 미처 몰랐군. 나를 아는 사람이 그리도 많다니.”

 

“뭐,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기, 여우 뺨 때릴 만큼 영리한 꼬맹이나 바로 알아보지, 누가 노형의 겉모습만 보고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때 점소이가 요리를 들고 왔다.

 

“자! 일단 술이나 한잔하시죠.”

 

이무환은 점소이가 술병을 내려놓자 곧바로 공손척을 향해 잔을 내밀었다.

 

거부해 봐야 자신만 우스운 꼴이 될 뿐. 공손척은 이무환을 직시한 채 술잔을 받았다.

 

쪼르르르…….

 

갈색을 띤 맑은 술이 잔에 가득 찼다.

 

공손척은 기세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듯 술잔이 차자마자 단숨에 목구멍 안으로 털어 넣었다.

 

동시에 이무환이 극비의 정보를 털어놓듯이 속삭였다.

 

“혹시 구룡성을 뒤집어놓은 미친놈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공손척이 입안에 든 술을 삼키려다 멈칫했다.

 

‘천외광룡을 말하는 건가?’

 

순간 이무환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게 접니다.”

 

“읍, 쿨룩!”

 

목이 턱 막히고 술이 기도로 들어갔다.

 

참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천하 고수도 막지 못했다.

 

거친 기침이 터져 나오며 목에 걸렸던 술이 전면으로, 이무환을 향해 확 뿜어졌다.

 

“쿨룩. 콜… 록. 콜…….”

 

기침이 서너 번 이어지며 공손척의 냉막하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머리를 쑥 내밀고 있던 이무환은, 무안한 표정으로 입술을 닦는 공손척을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주르르…….

 

뺨과 이마에서 흘러내린 술방울이 코에, 턱에 맺혀 뚝뚝 떨어졌다.

 

‘크, 냄새, 피할 걸 그랬나?’

 

그때 작은 수건을 꺼낸 남궁산산이 이무환의 얼굴을 닦아주며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안주와 함께 안 드셔서 다행이네요. 그죠, 오빠?”

 

이무환이 그런 남궁산산을 향해 눈을 흘겼다.

 

‘퍽도 다행이다, 꼬맹아!’

 

영호승 등은 아무것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 술잔만 내려다보았다.

 

공손척의 얼굴이 제 색을 찾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미안… 하군.”

 

미안하다는데 뭐라 할 건가.

 

자신도 기침으로 복수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무환은 언제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봐도 대범하게 말이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뭐. 하, 하!”

 

공손척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무환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그럼 자네가 서웅기를 죽였겠군.”

 

“서웅기요?”

 

“용항에서 적혈삼마를 죽이지 않았나?”

 

이무환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야산에서 서웅기의 시신을 봤지.”

 

그때 허공에 대고 약속했다. 서웅기를 죽인 사람에게 술 한잔 따라주겠다고.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지금 그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공손척은 묘한 감흥에 젖어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무창에 나온 건가?”

 

술잔을 막 입술에 댄 이무환이 멈칫했다. 조금 전의 공손척처럼.

 

공손척은 자신도 모르게 슬쩍 몸을 뒤로 젖혔다.

 

그걸 보고 남궁산산이 소리 죽여 웃었다.

 

“크크크…….”

 

이무환은 괜히 죄 없는 남궁산산만 째려보았다.

 

“이 꼬맹이를 아는 분에게 데려다 주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곳에 계실 겁니까?”

 

“아니네. 내일 아침 일찍 들어오라는 명이 떨어졌네.”

 

“그래요? 그럼 기다릴 거 뭐 있습니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오늘 밤에 함께 들어가지요.”

 

“지금 말인가?”

 

“이 꼬맹이를 데려다 줄 동안만 이곳에서 기다리시죠.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니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듣기로는 와룡과 광룡이 손을 잡았다 하지 않던가.

 

“음, 알겠네. 그렇게 하지.”

 

이무환은 그제야 술잔을 들어 소흥주를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우흐흐흐, 피하지 않길 잘했지. 무 형님 못지않은 자야. 잘하면 쓸 만한 고수 하나 거저 얻게 생겼어.’

 

급박한 상황. 한 사람의 고수가 아쉬운 판이다.

 

얼굴 전면으로 술 한잔 마시고 공손척 같은 고수를 얻을 수만 있다면 열 잔도 상관없었다.

 

여우 뺨을 때릴 남궁산산만은 못하지만, 그도 여우 대가리를 두들겨 팰 정도의 머리는 있었다.

 

 

 

그 시각.

 

석치상은 어둠 속에 녹아든 채 무창성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제법 걸리는군.”

 

성문을 나서는 자도, 성벽을 넘는 자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두 시진. 생각보다 나오는 게 늦었다.

 

“이러다 아침에 나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부님. 명을 내리시면 제가 사제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서 찾아보겠습니다.”

 

석치상의 미간이 좁아졌다.

 

“여럿이 갈 필요는 없다. 놈은 반드시 나온다. 저 넓은 곳에서 두 사람을 찾으려고 해봐야 인원만 분산될 뿐이야. 일단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리도록 하고, 한 사람만 안으로 들여보내라. 그에게 성문 근처에서 기다리며 놈이 나오는지 살펴보라고 해.”

 

“예, 사부님.”

 

능조염이 뒤로 물러나자 석치상은 눈을 좁히고 이를 악물었다.

 

‘너는 오늘 내 손에 죽는다, 광룡. 결코 신도 애송이 따위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니라.’

 

 

 

제4장. 광룡 대 구유마도

 

 

 

 

 

 

 

1

 

 

 

이무환은 당악의 안내를 받으며 수하점의 지하에 도착했다.

 

당악은 이무환이 의자에 앉자마자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가 찻주전자를 내왔다. 큰 걸로.

 

광룡의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야 했으니까.

 

“아주 좋은 차가 들어왔습니다. 드시면서 화를 식히시지요.”

 

쪼르륵.

 

이무환은 찻잔을 집어 들며 변명하듯이 쏘아붙였다.

 

“한두 번 봤으면 알아봐야지, 어디서 대뜸 욕하고 달려들어?”

 

 

 

수하점의 담을 넘자 대여섯 명의 경비가 대뜸 포위했다.

 

자신은 반갑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잘 있었나?”

 

그렇게 인사까지 해가며.

 

그런데 무사들이 눈짓으로 의견을 교환하더니, 한 놈이 나서서 욕을 하지 않는가.

 

“어린놈이 싸레기밥만 처먹었나, 어디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것이냐?”

 

“몰래 담을 넘다니, 죽으려고 환장한 놈들이구나!”

 

뭐, 단순한 욕이었지만, 인사까지 한 자신에 비하면 쌍욕을 한 거와 다름없었다. 

 

당연히 자신은 참지 않았고, 직접 손을 쓰지도 않았다.

 

“멋쟁이, 얼마나 늘었나 볼까? 때려눕혀.”

 

그의 말 몇 마디에 영호승 등 광룡사위가 나서서 여섯 명을 때려눕혔다.

 

당악이 정신없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광룡사위가 이미 여섯 명의 무사를 잘근잘근 다져 놓은 후였다.

 

 

 

“그때의 사람들이 아니어서 몰라봤나 봅니다.”

 

“그럼 왜 왔냐고 물어보기라도 해야지?”

 

당악이 슬쩍 이무환을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물어보기도 전에 때렸다고 하던데…….”

 

이무환은 못 들은 척 후루룩 차를 비웠다.

 

그때 당호민이 백귀와 함께 석실로 들어섰다.

 

“늦은 밤에 어인 일인가?”

 

“꼬맹이를 이곳에 맡길까 해서 왔습니다.”

 

“산산이를?”

 

당호민의 표정이 굳어졌다. 남궁산산을 맡긴다는 게 무슨 뜻인지 짐작한 때문이다.

 

“그렇게 하게나. 비록 이곳에 절대지경의 고수는 없지만, 도산검림의 구룡성보다는 안전할 거네.”

 

지하 통로가 미로처럼 뻗어 있다. 게다가 기관이 첩첩으로 설치되어 있다. 그러한 것이 절대지경의 고수를 완전히 막지는 못할 테지만, 적어도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은 벌어줄 것이다.

 

이무환도 그걸 알기에 남궁산산을 이곳에 맡길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

 

이무환은 아까워하는 표정을 억지로 감추고 세 알의 폭령잠마영단이 든 유지를 꺼내 내밀었다.

 

“그게 뭔가?”

 

당호민은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유지 뭉치를 받아 들고 풀어보았다.

 

일순간 당호민의 눈이 커졌다.

 

“이, 이것은? 이걸 어떻게……?”

 

“얼마 전에 그걸 만든 자가 숨어 있던 곳을 찾았습니다. 그곳에 조금 남아 있더군요.”

 

“그런데 왜 이걸 내게 주는 건가?”

 

“그냥 꼬맹이 보호료라고 해두죠.”

 

“허허허, 이거 너무 큰 선물이군.”

 

당호민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곧 무슨 생각이 났는지 폭령잠마영단을 내려다보았다.

 

“내 깜박 잊었군. 자네가 놓고 간 주걱에 남았던 미량의 약을 분석해 봤네. 한데 말이야…….”

 

당호민이 말을 끊자, 이무환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당호민을 바라보았다.

 

“뭐 새로운 거라도 알아내셨습니까?”

 

“새로운 내용이라고까지 하기에는 뭐하네만, 그 약을 적잖게 얻었다면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군. 다름이 아니라, 전에 내가 그 약을 다섯 개 이상 복용하면 몸에 무리가 갈지 모른다고 했잖은가?”

 

“그랬지요.”

 

“그런데 두세 개 정도는 더 복용해도 괜찮을 것 같네. 연단할 때 오래된 산삼을 넣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수백 년 이상 된 것을 사용한 게 아닌가 생각되는구먼. 그 정도 오래된 것이면 단순한 삼이 아니라 영물이지. 내 생각으로는 그 영물의 약효가 불순한 기운을 억누른 것이 아닌가 싶네.”

 

이무환은 입이 쩍 벌어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다섯 개만 먹어야 된다는 게 얼마나 아쉬웠던가!

 

그런데 두세 개 정도는 더 먹어도 된단다.

 

더구나 수백 년 이상 된 영물산삼이라니!

 

비룡도에서 삼을 발견하고 도라지 캐먹듯 먹어서 잘 안다.

 

열한 살 때 섬 뒤쪽 절벽 밑에서 아버지 몰래 놀다가 발견했는데, 심심할 때마다 큰 것을 하나씩 캐먹어서, 아버지에게 말했을 때는 남은 것 중 제일 오래된 것이 백 년 근에 불과했다.

 

나중에 삼의 연령을 알아보는 방법을 물어보고 나서야, 자신이 먹은 것 중에 삼백 년 이상 된 것이 다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은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마 말했으면 그때 맞아 죽었을지도 몰랐다.

 

좌우간 아버지는 남아 있는 것만 보고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좋아했었다. 아들을 강하게 키울 수 있게 되었다면서.

 

물론, 아버지는 그것을 전부 자신에게 먹이지 않았다.

 

나 하나, 너 하나. 아버지는 그렇게 먹고, 먹였다.

 

어쩌면 자신이 만년해령실을 먹고도 견딜 수 있었던 건, 어릴 때부터 삼을 많이 먹어서인지도 몰랐다.

 

“흠, 수백 년 된 것이면 내공 증진에도 도움이 많이 되겠군요.”

 

“물론이네. 적절한 방법으로 복용하면 상당한 도움이 될 거야. 단, 약효가 그만큼 강하니까 이틀 이상 시간을 두고 복용하게나.”

 

이무환은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이상한 눈빛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영호승을 비롯한 네 사람의 눈이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얼래? 저것들이 왜……?’

 

순간, 얼마 전에 자신이 저들에게 한 말이 퍼뜩 떠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영단을 두어 개씩 더 주고 싶은데, 독이 된다 하니 더 줄 수가 없어. 이해들 해.”

 

 

 

이무환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지, 지미. 괜히 그 말을 해 가지고…….’

 

 

 

2

 

 

 

수하점을 나선 이무환의 표정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꼭 영호승 등에게 영단을 두어 개씩 더 주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상했다.

 

막상 남궁산산을 남기고 떠난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 한쪽 구석이 텅 빈 것만 같았다.

 

‘제길, 제기랄, 지미…….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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