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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29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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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광룡기 129화

 

129화

 

 

 

 

 

 

 

 

“며칠을 함께 다녀봤소만, 그에 대해 반도 파악하지 못했소. 다만 분명한 것은, 나의 능력으로는 그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오.”

 

명부신사가 스스로의 능력에 회의(懷疑)를 품는다.

 

겸손해서가 아니다. 그만큼 광룡 이무환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하기야 최대의 적이 될 수도 있었던 만겁존자 담사황조차 이무환에게 막혀 욕심을 접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호연청의 이마에 서너 줄기 주름이 깊게 파였다.

 

소천득도 의외라는 눈으로 헌원숭을 돌아보았다.

 

헌원숭은 두 사람의 눈길을 받으며 남은 차를 마저 마셨다.

 

‘만일, 그를 팽(烹)시킬 생각이라면, 그대도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할 거다, 호연청.’

 

 

 

 

제2장. 날짜를 당겨라

 

 

 

 

 

 

 

1

 

 

 

“제길, 이놈이나 저놈이나 속에 너구리들만 키우고 있으니 원…….”

 

방으로 돌아온 이무환은 골난 아이처럼 중얼거리며 차를 물처럼 벌컥벌컥 마셨다.

 

한눈팔면 코나 귀가 아니라 목이 잘릴 판이다.

 

아홉 마리 용이 아니라, 구백 마리 너구리와 여우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현재의 구룡성이다.

 

은근히 짜증이 났다. 확! 뒤엎어 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더 답답했다.

 

남궁산산이 재빨리 차를 따르고 물었다.

 

“천세도인을 못 봤다면서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 잠풍련의 련주예요?”

 

“나도 확실히는 몰라. 그렇게 짐작할 뿐이지. 그 늙은이 아니면 의심할 사람이 마땅히 없거든.”

 

“오빠, 아예 신룡부와 금룡부를 확 쳐버리면 어때요? 몽땅 죽이면 숨겨놓은 세력을 드러낼 것 아니에요.”

 

이무환이 힐끔 남궁산산을 쳐다보았다.

 

‘독한 꼬맹이. 누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참고 있나? 뒷감당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많은 희생도 희생이지만, 그리하면 신룡부는 물론이고, 잠풍련의 모든 세력이 죽기 살기로 들고일어날 터. 누가 이기든 구룡성의 힘 중 반은 날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구룡성이 갈기갈기 찢겨질 가능성도 많다.

 

한마디로 죽도 밥도 아니게 된다는 말.

 

그 후로 벌어질 일은 굳이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천마성과 무림맹은 물론이고, 숨어 있던 운(雲)과 우(雨)의 세력이 아귀처럼 달려들 테니까.

 

물론 지금도 그들 중 일부 세력이 스며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구룡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구룡성이 쪼개지든 터져 버리든 상관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백조부의 간절한 부탁만 없었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몰랐다.

 

‘아버지에 이어 할아버지까지 그러니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젠장!’

 

“그렇게 해서 해결될 거 같으면 진작 했지!”

 

이무환은 한마디 쏘아주고 찻잔을 또 입으로 가져다 댔다.

 

그때 탁자 위의 손에 턱을 얹고 앉아 있던 남궁산산이 넌지시 불렀다.

 

“오빠.”

 

“왜?”

 

“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요?”

 

은근한 목소리. 요사스럽게 반짝이는 눈동자.

 

‘이게 또 왜 이래?’

 

흠칫한 이무환은 경계의 눈빛으로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눈을 살짝 치켜뜨고 머리를 모로 꼬았다.

 

‘가만, 이 꼬맹이라면 그럴듯한 묘책을 생각해 낼 수 있지 않을까?’

 

눈앞에 있는 여우가 누군가! 단숨에 광룡의 방을 차지한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아닌가!

 

이무환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건성으로 물었다.

 

“말해봐. 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남궁산산이 슬그머니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엉덩이를 슬쩍 든 이무환은 언제라도 피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고리눈을 떴다. 그때 남궁산산이 소곤거리듯 말했다.

 

“구룡성주 선출일을 앞당기자고 하는 거예요. 많이도 필요없이 하루나 이틀 정도만.”

 

말이 끝날 즈음에는 남궁산산의 입술이 귀에서 한 뼘 되는 곳까지 접근했다. 한데도 이무환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날짜를 앞당긴다?”

 

자신은 물론이고, 호연청과 그의 세력 역시 저들이 구룡성주 선출을 서두르는 것에 대해 반대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저들이 서두를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구룡성주 선출에 대한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구룡성주 선출일은 삼월 열하루.

 

구룡의 부주들도 그렇게 알고 있고, 구룡성의 일만 무사들도 그리 알고 그날만 기다리고 있다.

 

물론 자신은 지금도 그것이 못마땅했다.

 

저들은 치밀하게 세워놓은 계획을 향해 달려가고, 자신들은 그들을 쫓는 형국이 벌써 한 달째 아닌가.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미친 듯이 설친 것일지도 몰랐다.

 

한데… 그 와중에도 시일을 앞당긴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이무환의 눈이 기름이라도 부은 듯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앞당기자고 하면 무슨 수가 날까?”

 

“일단 그 말을 하면, 저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겠지. 아마 우리가 갑자기 미치지 않았나 고민할 거야.”

 

‘이미 구룡성 사람들이 다 오빠를 미쳤다고 생각하는데요, 뭐.’

 

남궁산산은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고 소곤소곤 말을 이어갔다.

 

“일반적으로 당황한 사람은 마음이 급해져요. 그리고 잔뜩 긴장할 거예요.”

 

남궁산산의 입술이 얼마나 가까이 접근했는지 귓불에 바람이 살랑였다.

 

이무환은 움찔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아주 피하지는 않았다.

 

“긴장하면 좋을 게 없잖아?”

 

“어느 정도의 적당한 긴장은 그렇죠. 하지만 긴장이 지나치면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남의 도움을 받고 싶어하죠. 아마 숨겨놓았던 힘 중 상당 부분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시간이 앞당겨진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하려면 서두르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찌푸려졌던 이무환의 인상이 순식간에 펴졌다.

 

“흠, 그럴듯하군. 그런데 그들이 우리의 제의를 순순히 받아들일까?”

 

“쉽게 응낙하지 않고, 행여나 무슨 꿍꿍이가 있는가 그 이유를 알려고 눈에 불을 켤걸요?”

 

“그럼 우리에게도 이득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이득이 없는 건 호연 단주죠. 저들이 호연 단주의 숨어 있는 세력을 찾아낼지 모르니까.”

 

귓불에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는 느낌이 전해지는가 싶더니, 귓가에서 남궁산산의 숨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동시에 진한 복숭아향이 콧속으로 확 밀려들며, 팔뚝에 부드럽고 푹신한 느낌이 와 닿았다.

 

“잠깐! 생각할 것 좀 있으니까 조금만 떨어져 줄래?”

 

속으로는 조금 아쉬웠지만, 지금은 남궁산산의 공격을 순순히 받아줄 때가 아니었다.

 

“피이, 알았어요.”

 

남궁산산이 입을 삐죽이며 뒤로 물러앉자, 이무환은 검지로 이마를 짚고 물끄러미 찻잔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숨길 것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승룡원과 담사황 정도.

 

그중 승룡원이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들은 구룡성 전체에 퍼져 있는 세력. 설령 존재가 드러나 피해를 입는다 해도 전체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반면에 적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 많다. 특히 천세도인과 잠풍련의 진정한 힘에 대한 것은 아직 제대로 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호연청의 세력 역시 마찬가지. 겉으로 드러나 있는 세력에 헌원숭과 소천득이 합류했고, 곧 개천신권 황보광이 합류할 것이라는 것 정도다.

 

물론 그에게는 또 다른, 아직 파악되지 않은 세력이 있을 것이었다. 구룡성 안이든, 아니면 밖이든.

 

‘밖에 있다면, 그들 역시 서둘러서 들어오겠군. 좋아! 한번 해보자!’

 

결정을 내린 이무환은 이마에서 손을 떼고 남궁산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이, 왜 그렇게 봐요? 그렇게 보니까 이상하잖아요.”

 

남궁산산이 살짝 몸을 꼬며 눈을 흘긴다.

 

‘이 꼬맹이가?!’

 

이무환은 어이가 없어 벌떡 일어서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입을 열었다.

 

“너… 수하점으로 가 있지 않을래?”

 

“왜요? 제가 걱정돼요?”

 

‘누가 너 걱정해서 그런 줄 아냐? 내가 너 때문에 신경 쓰여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그렇지.’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의미가 조금 달랐다.

 

남궁산산이 광룡대에 있으면 아무래도 움직임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의 경우 호연청까지 적으로 변하면 그야말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네가 아무리 진으로 몸을 보호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오빠 말 들어라.”

 

“오빠는 내가 옆에서 보살펴 줘야 하는데…….”

 

“걱정 마라. 나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으니까.”

 

“차는 누가 끓여줘요?”

 

“내가 끓여 마시지 뭐.”

 

“잠잘 때 외로울 텐데…….”

 

‘요것이!’

 

이무환은 눈을 부라리며 나직이 말했다.

 

“엊그제까지도 혼자서 잘 잤어.”

 

“정말 가야 돼요?”

 

“그래.”

 

“그럼 오빠가 직접 데려다 줘요. 혼자가면 무섭단 말이에요.”

 

‘무섭기는! 아마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무창 사람들이 너를 더 무서워하게 될 거다!’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시무룩해진 채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남궁산산을 보니 그 말이 목구멍으로 쑥 넘어갔다.

 

“으음, 좋아. 내가 데려다 주지.”

 

언제 그랬냐는 듯 남궁산산이 밝게 웃었다.

 

“오빠, 그럼 우리, 무창 구경도 하고 그래요. 만날 이곳에서만 있으니까 심심했거든요. 사산도 올라가 보고, 황학루도 올라가 보고, 옥이 언니 선물도 사고요.”

 

“이곳에서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르는데 놀기는…….”

 

“아이, 일단 구룡성주 선출일을 앞당기자고 하면, 내일 하루 정도는 아무도 쉽게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우리 무창 가서 놀아요, 네? 딱 반나절만요. 응? 오빠아아.”

 

여우 뺨을 치고도 남을 남궁산산의 판단이니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았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잔말 말고, 노는 것은 포기해. 나중에 일이 다 끝나면 그때 놀아줄 테니까.”

 

“정말요? 정말 그때는 놀아줄 거예요?”

 

“그, 그래…….”

 

이상하다. 분명 자신의 뜻대로 된 것 같은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마치 남의 손안에서 놀아나는 느낌. 머리 위에 여우가 앉아 있는 기분이다. 올가미를 든 여우가.

 

‘혹시… 저 여우가 미리 무창에 갈 것까지 생각하고 날 떠본 거 아냐?’

 

하지만 남궁산산은 이미 볼일 다 봤다는 듯 흥얼거리며 침상으로 다가가 철퍼덕 엎어졌다.

 

“아아아, 이렇게 좋은 곳을 떠나야 하다니.”

 

이무환은 엎어져서 두 다리를 놀리는 남궁산산을 힐끔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를 흔들 때마다 둥근 엉덩이가 출렁인다.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여우에게 홀릴 것만 같았다.

 

“잠깐 일 좀 보고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네, 오빠아아!”

 

 

 

2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단주!”

 

커다란 목소리가 집무실을 뒤흔드는가 싶더니 곧바로 문이 열렸다.

 

덜컹!

 

호연청은 대처할 새도 없이 문이 열리자 홱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만으로도 누군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이곳에서 저렇듯 안하무인으로 행동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끄응, 정말 어쩔 수 없는 놈이군.’

 

얼굴이 일그러진 그는 놀란 마음을 재빨리 진정시키고 태연히 물었다. 

 

“무슨 일인데 이리 갑자기 찾아온 건가?”

 

이무환은 문을 열고 멈칫했다.

 

안에는 호연청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서른쯤 되어 보이는 백의인이 함께 있었는데,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듯 착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이무환은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있다가 올까요?”

 

“아니네, 들어오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무환은 조금 전의 미안해하던 표정을 싹 지운 채 실실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백의인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말은 많이 들었다. 멀리서 본 적도 몇 번은 되었고. 그러나 광룡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흐트러진 모습, 장난기마저 보이는 표정.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이 당금의 구룡성을 뒤집어놓은 광룡이다.

 

백의인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무환을 얕보지 않았다.

 

이무환 역시 백의인을 보고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저자는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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