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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27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4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27화

 

127화

 

 

 

 

 

 

 

 

이무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몇 사람이 특조대워들의 앞을 막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네놈들이 감히!”

 

그들의 말에 걸음을 멈추는 특조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퉁!

 

헌원숭의 빈 활이 튕겨지면 어김없이 한 사람이 나뒹굴었다.

 

소천득의 손이 열십자로 교차하면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알 새도 없이 한 사람이 엎어졌다.

 

순식간에 서너 명의 노인이 나뒹굴자 나머지는 순순히 손을 내리고 대항을 포기했다.

 

“과연 명부신사…….”

 

주용천이 잇새로 헌원숭의 별호를 내뱉으며 소천득을 바라본다. 원로들을 단숨에 제압하는 그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눈빛.

 

이무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주용천의 의문을 해소시켜 주었다.

 

“들어봤는지 모르겠군요. 절수, 강호에선 절명마수라 불리는 양반이지요.”

 

주용천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헛! 절명… 마수 소천득?”

 

헌원숭이 특조대와 함께 움직인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기에 나름대로 그를 상대할 대응책도 세워두었다.

 

하지만 절명마수 소천득이 함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상태였다.

 

‘아, 안 돼! 소천득까지 있다면 소용없어!’

 

그때 마치 주용천의 머릿속을 보기라도 한 듯 이무환이 나직이 말했다.

 

“혹시라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버리쇼. 지금이라도 말리란 말이요. 다 죽이고 싶지 않으면.”

 

주용천은 이를 악물고 힐끔 이무환을 살펴보았다.

 

광룡과 일 장 반의 거리. 게다가 광룡의 눈은 앞을 향해 있다.

 

급습하면 성공할지도.

 

조금 전, 귀혼척 악갈을 일수에 꺼꾸러뜨린 것만 보지 않았어도 한 번 실행에 옮겨봤을 것이다.

 

그러나 널브러진 악갈의 꿈틀거리는 모습을 빤히 보고 있는 상태에서는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이무환의 전음이 귀청을 울렸다.

 

<당신에 대한 평판이 나쁘지 않아서 알려주는 건데, 어지간하면 이번 일에서 빠지쇼. 어릴 때 병이 도졌다고 하든, 팔다리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든, 핑계를 대고 열흘만 쉬란 말입니다. 그럼 당신과 당신의 가족도 살고, 신룡부도 사라지지 않을 거요.>

 

<무, 무슨 엉뚱한 소리를…….>

 

<전쟁이 벌어지면, 많은 사람이 죽을 거요. 내가 완전히 돌지 모르거든. 그러니 모레까지 당신이 그대로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당신도 죽을지 모른다, 그 말이오.>

 

마지막 한마디에 막 벌어지려던 주용천의 입이 닫혔다.

 

“…….”

 

이무환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전음을 이어갔다.

 

<천중십마뿐만 아니라, 우내십존도 들어올 거요. 호연청이 작정을 했으니까. 그들의 첫 번째 목표가 바로 신룡부인데, 천세도인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신룡부를 지켜주지는 못할 거요. 근데 말이죠, 나는 호연청에게도 구룡성을 넘겨주고 싶지 않거든요? 무슨 말인지 모르진 않겠죠?>

 

바로 그때였다!

 

반항을 순순히 포기한 채 정원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던 노인들 중 하나가 이무환이 고개를 돌린 틈을 타 신형을 날렸다.

 

구부정한 어깨, 창백한 안색, 탁한 눈빛.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노인이었는데, 허공으로 몸을 날린 순간부터 그의 몸과 눈빛이 일변했다.

 

갑자기 노인 하나가 날아들자, 영호승과 막위가 앞으로 나서며 검과 도끼를 빼 들었다.

 

“어딜 감히!”

 

순간, 날아들던 노인이 영호승과 막위를 향해 두 손을 휘둘렀다.

 

후우웅! 쩌저정!

 

한줄기 바람이 두 사람의 검과 도끼를 휘감는가 싶더니 양쪽으로 튕겨냈다.

 

비틀거리며 물러선 두 사람은 검과 도끼를 고쳐 잡았다.

 

힘을 얻은 후 첫 번째 싸움이거늘, 제대로 된 초식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밀리다니!

 

자신들을 위해 영단을 소비한 이무환을 보기가 민망하기만 했다.

 

“다시 해보자, 늙은이!”

 

두 사람은 이를 악물고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노인도 두 손을 다시 휘돌리며 영호승과 막위를 덮쳤다.

 

“오냐, 네놈들 먼저 죽여주마!”

 

그때였다. 노인을 주시하던 이무환의 눈빛이 반짝였다.

 

노인의 장심 중앙에서 회오리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단순한 기운이 아니었다. 언뜻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노인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회오리에는 철벽조차 으스러뜨릴 기운이 내포되어 있었다.

 

풍의 무공!

 

그것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기운을 형상화시킬 정도다. 아직은 영호승 등이 감당할 수 없는 경지의 무공.

 

한순간만 삐끗해도 생사가 갈릴 터, 이무환은 영호승과 막위가 두 번째 격돌을 벌이고 뒤로 밀려나자 즉시 소리쳤다.

 

“둘 다 물러서!”

 

이무환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영호승과 막위는 입술을 깨물며 뒤로 물러났다.

 

그사이 이무환의 우수가 좌수 소맷자락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찰나! 눈부신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고막을 울리는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쒜에에엑!

 

“헛!”

 

금빛과 은빛이 어우러진 찬란한 빛줄기가 날벼락처럼 날아들자, 영호승과 막위를 재차 덮치려던 노인이 반사적으로 손을 저었다.

 

쾅!

 

빛줄기 하나가 그의 장력과 부딪치며 하늘 높이 튕겨졌다.

 

하지만 빛줄기는 하나가 아니었다.

 

휘이이익!

 

또 다른 빛줄기가 노인의 어깨를 관통하며 지나갔다.

 

노인이 신음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주춤한 순간!

 

쉬리리리리릭!

 

노인의 머리 위에서 찬란한 빛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퍽!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빛줄기가 노인의 천정혈을 관통하고 이마로 빠져나와 이무환의 손안으로 빨려들었다.

 

이무환은 뇌정갑을 낀 손으로 두 개의 무영뢰를 받아 소매 속에 감추었다.

 

사람들이 본 것은 두 줄기 눈부신 광채가 전부였다.

 

빛이 번쩍이고, 날아들던 노인이 허무하게 무너진 것은 눈 한 번 깜짝일 순간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주용천과 영호승 등 이무환 근처에 있던 사람들만이 봤을 뿐이었다.

 

‘탈혼마조(奪魂魔祖)가… 탈혼마조가 단 일수에 죽다니. 대체 광룡이 사용한 것이 뭐기에……!’

 

주용천은 정신이 없었다. 혼이 마비되어 버린 것 같았다.

 

탈혼마조는 신룡부의 정식 원로가 아니다. 천세도인이 구 년 전에 끌어들인 자로, 그를 보좌하는 천세칠노 중 하나다.

 

분명한 것은, 그의 무공이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는 것.

 

그런데 광룡은 그런 탈혼마조를 일수에 죽여 버렸다. 마치 자신에게 보라는 듯이.

 

전율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치달았다.

 

이무환의 전음이 귀청을 두드리는데도 주용천은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잘 생각해 보고, 내일 저녁까지 마음을 결정하쇼.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것 명심하시고.>

 

이무환은 거기까지만 전음으로 보내고 전면을 바라보았다.

 

“안 말릴 거요? 정말 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겁니까?”

 

퍼뜩 정신을 차린 주용천은 앞을 바라보았다.

 

원로원 안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비명과 신음. 광룡이 주백천과 말다툼을 하는 사이에 배치한 제검단의 무사들이 특조대에 대항하는 듯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주용천은 일단 안쪽을 향해 벼락같이 소리쳤다.

 

“멈춰라! 신룡부의 무사들은 무기를 내리고 뒤로 물러서라!”

 

 

 

잠시 후.

 

여기저기서 들려 나온 사상자들로 넓은 정원이 가득 채워졌다.

 

개중에는 원로들조차 끼어 있었다.

 

주용천은 이를 악물고 사상자들을 바라보았다.

 

제검단 무사들 중 육십 명 가까이가 쓰러졌다. 당분간 무공을 펼치기가 힘들 정도로.

 

그나마 다행이라면, 죽은 사람이 탈혼마조까지 합해도 다섯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그들과 상대한 특조대는 십여 명 정도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들의 부상은 제검단이나 원로에 비하면 심하다 볼 수도 없었다.

 

이무환은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도, 겉으로는 불같이 화를 냈다.

 

“흥! 특조대원에게 대항하는 것도 모자라 부상을 입혔단 말이지?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더니, 한번 해보자는 거지? 안 되겠어! 이제부터 대항하는 놈들은 다 죽여!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러고는 곧장 원로원주 천세도인의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누구도 그의 앞을 막지 못했다. 주용천마저 억지로 발을 떼며 그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특조대의 무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배 이상 강했다.

 

대항이 실패한 이상, 광룡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황. 이제는 오히려 광룡의 눈치를 살펴야 할 판이었다.

 

 

 

덜컹!

 

문을 세차게 열어젖힌 이무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천세도인의 방은 황량하게 느껴질 정도로 검소했다.

 

작지 않은 방인데도, 한가운데 있는 탁자 하나와 네 개의 의자, 벽 쪽의 나무 침상, 문방사우와 단순한 장식의 자기가 놓인 사방탁자가 가구의 전부였다.

 

굳이 멋 부린 걸 찾으라면 벽에 걸린 네 개의 족자와 창문을 가린 백색 휘장 정도가 다였다.

 

방 안의 광경만으로는 그가 진짜 칠정오욕을 다 내던진 도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방 안을 자세히 훑어보는 이무환의 표정은 더욱 싸늘해져만 갔다.

 

이유는 단 하나,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침상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고, 탁자와 의자도 깨끗하니 반듯했다. 물론 매일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원로원에는 십여 명의 시비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이무환은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드륵.

 

의자를 치우자, 미세하지만 의자의 다리와 방바닥이 맞닿은 곳에 쌓인 먼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적어도 며칠간은 의자를 빼지 않았다는 말.

 

침상은 더했다. 사람이 매일 자다 보면 침상에 사람의 냄새가 배이게 마련이다. 그것도 상당히 진한 냄새가. 

 

그런데 천세도인의 침상에선 그 냄새가 너무나 미약했다.

 

설마 침상을 사나흘에 한 번씩 갈거나 씻지는 않았을 터. 그것이 말하는 바는 다름이 아니었다.

 

이 방이 천세도인의 방일지는 몰라도, 항상 기거하는 곳은 아니라는 것.

 

“천세도인이 매일 이곳에서 지냈다고 말하지는 마쇼. 나도 눈치가 있는 놈이니까. 어디 있죠?”

 

이무환의 질문에 주용천은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천천히 돌아선 이무환이 직시하자 결국 입을 열었다.

 

“믿을지 모르지만, 원로원주에 대한 것은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하네.”

 

이무환은 무심한 눈으로 방 안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는, 툭 던지듯이 물었다.

 

“비밀 통로라도 있소?”

 

“그것도…….”

 

이무환은 난색을 표하는 주용천을 빤히 바라보았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소? 당신이 부주에게 있어 비밀을 공유하기에는 못미더운 존재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주용천의 몸이 태풍에 흔들린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정말 그럴까? 형님은 정말 나를 못 믿어서 모든 것을 숨긴 것일까?

 

그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명멸했다.

 

지금껏 크게 마음 쓰지 않았던 것들이 모조리 마음에 걸린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천세도인, 신룡부의 변화, 천룡부와의 다툼, 그리고 구룡성주에 대한 욕망.

 

그 어느 것도 자신이 깊게 관련된 것이 없었다. 자신은 그저 겉으로만 맴돌았을 뿐.

 

형님인 부주가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면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라고 하면 왼쪽으로 갔다.

 

명이 떨어지면 행하는 꼭두각시. 그게 자신이었다.

 

왠지 허탈해지는 마음에 힘이 쭉 빠졌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주용천이 억지로 입술을 떼었다.

 

“나는… 모르겠네.”

 

이무환은 볼일 다 봤다는 듯 몸을 돌렸다.

 

“모르면 한 번쯤 생각해 보쇼. 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생각이 있거든 시간을 정하고 무화림(無花林)으로 나오쇼.”

 

가족을 위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용천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에겐 아내와 이남일녀의 자식이 있다. 능력이 더 뛰어남에도 형의 아들들에게 가려져 항상 어깨가 처져 있는 두 아들이 언젠가 말했다.

 

‘차라리 구룡성을 나가면 어떠냐고 했지.’

 

그는 그 말을 듣고 아들들만 호되게 나무랐다.

 

형제간의 정이라는 건 이해득실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고. 언젠가는 알아줄 날이 있으니 조금만 참으라고.

 

그러나 서른이 다된 두 아들은 지금도 형 아들들의 질시에 찬 견제를 받으며 묵묵히 신룡대의 조장 직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까?’

 

그때 문득,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둘째 형이 떠올랐다. 그 누구보다 자질이 출중했던 형이었다. 그러한 형이 언제부턴가 술독에 빠지더니, 이삼 년간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고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동안 큰 의문을 품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게 하나둘이 아니다.

 

‘큰형님과 한바탕 크게 싸운 것 같았는데…….’

 

그가 생각에 잠긴 사이, 밖으로 나간 이무환이 소리쳤다.

 

“비밀 통로가 있을지 모르니까, 건물을 다 부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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