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25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25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호현에게서 고개를 돌린 호불위는 탁자에 놓여 있는 빳빳하게 풀이 먹어진 백의를 조심스럽게 입기 시작했다.
사그락! 사그락!
풀이 어찌나 단단하게 먹여졌는지 백의에서는 종잇장이 넘어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서 옷을 입은 호불위가 말했다.
“나는 장문인을 뵙고 올 테니 쉬고 있게.”
호불위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방을 나온 호불위는 선인각 대청에 모여 있는 사형제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도 호불위와 같이 빳빳하게 풀이 먹여진 백의를 입고 있었다. 옷에 주름이 갈까봐 어디 앉지도 못하고 굳은 듯 서 있는 그들을 보며 호불위가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
*
*
호불위가 밖으로 나간 것도 모르고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호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림인이 보는 태극과 학사인 내가 보는 태극은 다르다라…….”
호불위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린 호현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양손을 좌우로 펼쳐보였다.
“무림인이 보는 태극이라……. 보면 알게 되겠지.”
작게 중얼거린 호현은 며칠 전 청묘진인이 보여줬던 태극권을 떠올리며 천천히 그 모습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어설프기 짝이 없고 청묘진인이 시전한 태극권과는 닮은 점이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호현의 움직임은 물이 흐르듯 부드럽고 멈춤 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제2-1장 태극호신공은 자연에 대한 예(禮)이다
청묘진인이 보여 준 태극권을 흉내 내며 한참을 움직이던 호현은 미간을 찡그리며 몸을 멈췄다.
“오른손과 왼 다리는 양과 하늘을 상징하고, 왼손과 오른 다리는 음과 땅을 상징한다고 했는데……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구나. 어찌 손과 발이 음과 양, 하늘과 땅을 상징한다는 말인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은 호현은 양손을 바라보았다.
무인으로서의 소양이 전혀 없는 호현에게 팔과 다리는 그저 팔과 다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물며 하늘과 땅, 음과 양이라니…….
“무인의 시선으로 태극을 보려고 했거늘…… 학사인 나에게는 무리인 것인가?”
태극권에서 자신이 보지 못한 무인들의 태극을 보려고 했던 호현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 태극권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을 찾아 봐야겠다.”
작게 중얼거린 호현은 방을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덜컥!
문을 열던 호현은 방 앞에서 양손을 내민 채 서 있는 사람을 보고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헉! 누구…… 명인 도사님?”
자신의 방 앞에 강시처럼 서 있는 사람은 바로 명인이었다.
‘왜 남의 방 앞에서 이러고 서 있는 거야? 깜짝 놀랐네.’
호현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명인이 눈을 뜨고는 웃었다.
“나오셨군요.”
“네? 저를 만나러 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안으로 들어오시지 왜 밖에서…….”
‘강시처럼 서 있으셨던 겁니까?’
뒷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린 호현에게 명인이 웃으며 말했다.
“안에서 하시는 일이 있으신 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명인을 방 안으로 청한 호현은 문을 닫고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스승님께서 호현 학사님이 불편한 것이 없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저는 불편한 것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호현이 문을 열었다. 명인이 나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준 것이다.
그런데, 명인은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멀뚱멀뚱 거리며 호현을 바라보았다.
“혹여 더 하실 말씀이라도…….”
“사부님께서 호현 학사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라고 하시더군요.”
“이야기? 무슨…….”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호현 학사와 이야기를 하면서 저에게 부족한 것을 찾아보라고 하시더군요.”
명인의 애매모호한 말에 호현은 난감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인가.’
속으로 중얼거리던 호현은 방금 전 자신이 방을 나서던 이유가 떠올랐다.
‘명인 도사 또한 무당파 사람이니 태극권에 대해서 잘 알 것이 아닌가. 명인 도사에게 태극권에 대해 물어봐야겠다.’
속으로 잘 됐다는 생각을 하며 호현이 입을 열었다.
“청묘진인께서 저에게 태극권을 보여 주셨습니다.”
“태극권을?”
명인이 의아한 듯 되묻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묘진인께서 태극권에 태극의 도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에 대해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에 대해서 저에게 가르침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지금 저에게 태극권을 알려 달라는 말씀입니까?”
명인의 말에 호현이 생각에 잠겼다. 무공을 익히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자신이 모르는 태극을 담은 태극권에 대해서는 관심이 갔다.
태극권은 무림인들의 것. 학사인 호현으로서는 태극권에 담긴 태극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태극권의 태극을 알려면…… 학사인 호현이 직접 태극권을 익히는 수밖에는 없다.
그런 생각이 든 호현이 명인을 향해 말했다.
“저에게 태극권을 전수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호현의 물음에 명인이 고개를 저었다.
“태극을 알기 위해 태극권을 익히고 싶어 하는 호현 학사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렵습니다. 태극권은 본문의 비기. 외부인에게 함부로 전수를 할 수는 없습니다.”
명인의 말에 호현은 아쉽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런, 내가 실수를 했구나. 태극을 담을 정도의 대단한 공부를 이리도 쉽게 가르쳐달라고 하다니.’
그 생각에 호현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제가 터무니없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한 말은 잊어 주시기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물어는 볼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태극권을 배울 수 없다니…… 아쉽구나.’
호현이 아쉬운 마음에 속으로 중얼거릴 때 그를 보던 명인이 입을 열었다.
“태극권 대신 태극호신공이라면 제가 알려드릴 수 있을 텐데요. 어떻습니까?”
‘태극호신공?’
“태극호신공은 무당에서 양민들의 건강을 위해 만든 기체조입니다.”
“그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극호신공은 태극권의 외형을 가지고 만들어졌습니다. 태극권에 호현 학사께서 보고 싶은 태극이 있다면 태극호신공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청묘진인께서 태극호신공의 기본이 태극이라고 말씀해 주셨거늘, 바보 같이 그 생각을 하지 못했구나.’
명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현이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가르쳐만 주신다면 이 호현, 열심히 배워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양손을 펼치며 가슴 앞에 모으는 태극호신공의 기수식을 펼친 명인이 천천히 양손을 둥글게 회전시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호현이 명인을 따라 양손을 둥글게 회전시켰다.
‘이것이 태극호신공.’
속으로 중얼거리는 호현의 눈에 명인이 펼치는 태극호신공이 담기기 시작했다.
*
*
*
늦은 밤, 선인각 공터에 호현이 나와 있었다. 명인에게 태극호신공을 배운 후 잡생각이 많이 나 밖으로 나온 것이다.
공터를 거닐던 호현은 문득 선인각을 바라보았다. 학사들은 모두 잠이 들었는지 선인각에는 불이 켜진 곳이 하나도 없었다.
속가무인들은 장문인을 만나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게 조용한 선인각을 바라보던 호현이 양팔을 좌우로 가슴 앞에 자연스럽게 벌리며 무릎을 살짝 굽혔다.
그러고는 명인에게 배운 태극호신공을 천천히 펼치기 시작했다.
사그락! 사그락!
호현의 움직임에 따라 옷자락이 부딪치며 작은 소리를 냈다.
태극호신공을 시전하며 호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태극은 조화를 뜻한다.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고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룬다. 즉, 태극은 조화에서 시작해 조화에서 끝이 난다. 청묘진인의 태극권은 끝없이 움직이는 물과 같다. 하지만 모르겠구나. 태극호신공에서 태극을 어떻게 봐야 할 지를…….’
하루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호현도 알고 있지만, 태극에 대한 호기심은 그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몇 번을 더 태극호신공을 시전하고 있을 때 호현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사형!”
바로 운학이었다.
“헉!”
갑자기 나타난 운학의 모습에 호현은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신선 어르신?’
“헤헤헤! 사형, 또 넘어졌다.”
자신이 넘어진 것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는 운학을 보며 호현이 한숨을 쉬었다.
“신선 어르신, 나타나실 때는 기척이라도 하고 나타나주십시오. 소생은 신선 어르신이 나타날 때마다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헤! 놀랬다고 수명이 줄지는 않아요.”
호현은 몸을 일으키며 운학을 슬며시 훑어보았다. 이때까지 운학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통에 그를 자세히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운학은 자신의 가슴밖에 오지 않을 정도로 작은 키에 백발을 허리까지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헤헤 거리며 웃는 입 사이로 이빨이 보였는데,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이빨은 새하얗게 윤이 나면서 깨끗했다.
‘치아가 좋은 것을 오복 중 하나로 치는데, 신선 어르신이라서 그런지 이빨이 무척 좋구나.’
“헤! 그런데 사형, 왜 달밤에 체조를 하고 계신 거예요?”
“체조? 아! 태극호신공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태극호신공요? 아닌데? 사형이 한 것은 태극호신공이 아니라 체조인데?”
“아닙니다. 무당 도사분께 직접 배운 것인데 어찌 태극호신공이 아니겠습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듯 호현을 보던 운학이 갑자기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태극호신공은, 이게 태극호신공이에요.”
말과 함께 운학이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호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명인 도사의 태극호신공과 같은 것 같은데, 뭐가 다른 거지?’
운학의 태극호신공과 자신이 배운 태극호신공을 비교해 보던 호현은 고개를 저었다.
둘이 비슷해 보였던 것이다.
‘따라해 보면 알겠지.’
속으로 중얼거린 호현은 운학을 따라 태극호신공을 펼쳤다. 그렇게 태극호신공을 펼치고 있을 때 부드러운 기운이 호현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응? 뭐지?’
자신의 몸을 감싸는 부드러운 힘에 호현은 몸을 멈추려 했다.
하지만 부드러운 힘이 호현의 몸을 강제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어?’
저절로 움직이는 자신의 몸에 호현이 의아해 하며 슬쩍 운학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알았다. 자신의 몸이 운학과 같이 움직인다는 것을 말이다.
‘아! 신선 어르신께서 내 몸을 조종해 태극호신공을 알려 주고 계신가보구나.’
그런 생각이 든 호현은 몸에서 힘을 빼고는 운학의 기운을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운학에 의해 태극호신공을 펼치던 호현은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같은 태극호신공이지만 펼칠 때마다 그 방향과 움직임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왜 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거지?’
어느 때는 빠르게 어느 때는 느리게 움직이는 태극호신공에 호현이 의문을 느끼며 말했다.
“신선 어르신, 왜 움직임이 다 다른 것입니까?”
“헤! 뭐가요?”
여전히 태극호신공을 시전하고 있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호현이 물었다.
“태극호신공이 펼쳐질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서요.”
“그야 주위의 기운이 계속 변하니 그렇죠.”
‘주위의 기운이 변한다?’
호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운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극호신공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