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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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9화
호현과 호불위가 태극전을 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청수진인이 태극전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발밑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몸을 숙였다.
바닥에는 작은 떡 한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떡을 주워 살피던 청수진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이건…… 구지(九指)?”
양손으로 만졌는지 떡에는 사람 손 모양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중 오른손 검지가 있어야 할 곳이 찍혀 있지 않았다.
‘태사조께서 바로 내 앞에 계셨던 건가? 바로 앞에 사람이 있었는데 눈치조차 채지 못하다니…….’
떡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쉰 청수진인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태극전을 걸어 나갔다.
만약 청수진인이 조금만 주위를 볼 수 있었다면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떡이 떨어진 자리가 호현이 서 있던 자리였다는 것을. 그리고 방금 전, 호현의 이상한 행동도 말이다.
*
*
*
선학전을 향해 걷던 호현은 문득 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깨달았다.
‘뭐지? 씻고 옷도 갈아입었는데.’
품에서 나는 냄새에 고개를 갸웃거린 호현은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물컹!
손에 무언가 말랑말랑한 물체가 잡히자 호현은 손을 빼냈다.
“떡? 이게 왜 내 품에?”
손에 들린 물건이 쌀을 반죽해 만든 떡이라는 것을 안 호현이 의아해 할 때 호불위가 그 손에 들린 떡을 보고는 물었다.
“응? 그 떡은 어디서 났나?”
“그게…… 제 품에 들어 있었습니다.”
“자네 품에? 자네 혹시 공물로 올라온 음식에 손을 댄 것은 아니겠지?”
“제 옆에 계속 있으셨으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말을 하던 호현의 머리에 신선이 떠올랐다.
“혹시 신선께서 제 품에 넣어 주신 것이 아닐까요?”
“신선이? 신선이 할 일 없이 자네 품에 왜 떡을 넣어 두겠나.”
“그럼 제 품에 떡이 왜 들어 있겠습니까? 그것도 저도 모르게 감쪽같이요.”
호현의 말에 호불위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손을 내밀었다.
“이리 줘보게. 내가 좀 살펴보겠네.”
호불위의 말에 호현이 떡을 내밀었다. 떡을 받아 살펴보던 호불위가 웃으며 떡을 반으로 쪼갰다.
“헉! 신선님이 주신 떡을 왜 그러세요.”
“왜 그러기는. 이럴 때 하는 말이 있지. ‘이게 웬 떡이냐.’ 떡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으니 일단 먹게.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신선이 자네에게 떡을 줬을 것 같지도 않고.”
호불위가 떡을 먹는 것을 보던 호현은 입맛을 다시며 떡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밥을 먹지 못했는데 떡을 보니 더욱 입맛이 당겨 호현은 떡을 입에 넣었다.
‘신선님이 주신 떡도 맛은 일반 떡과 같네. 그런데 신선께서는 왜 나에게 선학전에 가라고 하신 거지? 혹시 나를 지켜보고 계시나?’
떡을 먹던 호현은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변에 신선처럼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학전은 무당파 외곽에 위치해 있다. 삼층 건물로 이루어진 선학전에 도착하자 호불위가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호현은 근처에 있는 나무 밑에 가서 앉더니 주먹밥을 꺼내 들었다. 떡 하나로는 배가 안 찼던 것이다.
주먹밥을 입에 넣으려던 호현은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슬며시 중얼거렸다.
“신선님, 주먹밥 좀 드시겠어요?”
“네! 사형, 저도 주먹밥 먹을래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현의 앞에 왜소한 체격을 가진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
그에 깜짝 놀란 호현의 몸이 뒤로 크게 넘어졌다.
“아! 사형, 위험해요.”
뒤로 넘어가던 호현의 머리가 나무에 부딪치려 하자 노인이 손을 내밀었다.
화악!
그러자 노인의 손에서 강한 흡입력이 생기더니 호현의 몸을 고정시켰다.
천천히 자신을 끌어당기는 부드러운 기운을 느끼며 호현은 몸을 바로잡았다.
“가, 감사합니다.”
“헤헤헤!”
호현의 인사에 노인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손을 내밀었다.
“사형, 주먹밥 줘요.”
노인의 말에 호현이 주먹밥을 내밀었다.
“헤헤헤! 운학은 주먹밥 좋아해요.”
주먹밥을 먹으며 환하게 웃는 노인을 호현은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진, 진짜 신선이신가? 하긴 사람이라면 땅에서 연기가 솟듯이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겠지. 게다가 아까 허공을 격하고 내 몸을 끌어 당겼잖아. 그것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그럼 진짜 신선?’
눈앞에 있는 노인이 신선이라는 생각에 호현의 얼굴에 존경심이 어렸다.
그러다 문득 호현의 얼굴에 낭패함이 어렸다.
‘이런! 신선 어르신에게 예를 갖추지 못했다니……. 이 얼마나 불경한 행동인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호현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방헌현 죽대 선생 박현 노사의 제자 호현이 신선 어르신께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호현의 예에 주먹밥을 맛있게 먹던 노인이 웃었다.
“헤헤! 사형, 그런데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요.”
‘사형? 그러고 보니 아까도 나를 사형이라고 불렀는데…… 왜 나를 사형이라고 부르는 거지?’
“신선 어르신, 왜 저를 사형이라고 부르시는 겁니까?”
“헤헤! 사형이 사형이니까 사형이라고 부르죠. 아! 그런데 사형, 사부님하고 사제들이 안 보여요.”
“사부님하고 사제들요?”
호현의 물음에 노인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하고 사제들이 안 보여요.”
“다들 어디 가신 겁니까?”
“몰라요. 운학이는 사부님하고 사제들 찾으러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어디에서도 사부님하고 사제들이 보이지 않아요.”
“운학? 신선 어르신의 함자가 운학이십니까?”
호현의 물음에 노인이 환하게 웃으며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헤! 내 이름이 운학이에요. 그런데 사형도 사부님하고 사제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진짜 왜 저를 사형이라고 부르시는 겁니까? 저는 운학 선인의 사형이 아닌데요.”
“헤헤! 사형, 왜 그래요. 나 사형 말도 잘 듣는 운학이에요. 사형이 기다리라고 한 태극전에서 이때까지 사형을 기다렸는걸요. 아! 그리고, 나 이제 혼자서도 옷 잘 빨아 입어요.”
운학이 보라는 듯 옷자락을 들어 보였다. 얼마를 입었는지 모를 정도로 낡고 헤지기는 했지만 깨끗한 회색의 도복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깨끗하군요.”
“헤! 그렇죠. 이제 내 옷은 사형이 안 빨아주셔도 돼요. 아! 앞으로 사형 옷도 제가 빨아드릴게요.”
미소 띤 얼굴로 말을 하는 운학을 보며 호현의 얼굴에 의문이 어렸다.
‘대체 신선 어르신께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구나. 어떻게 보면…… 조금 이상하신 것도 같고.’
운학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던 호현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신선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으로 여겨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으시겠지. 그런데 말을 들어 보면 사형이라는 사람과 나를 혼돈하고 계신 듯한데…… 사형이라는 분이 나와 닮은 건가?’
“저기, 신선 어르신의 사형이라는 분은……?”
“사형? 헤! 사형이 사형이지. 아! 사람 온다.”
선학전 쪽을 보며 중얼거린 운학이 순간 사라졌다.
“헉!”
갑자기 허공에서 꺼지듯 사라지는 운학의 모습에 호현이 당황해 할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형, 나 봤다고 사람들한테 말 하면 안 돼요.
“사람들?”
- 응, 사람들이 나를 보면 막 잡으려고 하구요. 그리고 어디다 막 데려가려고 해요.
“알겠습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호현이 운학에게 다짐을 할 때 선학전의 문이 열리며 호불위가 나왔다.
호현을 본 호불위가 의아한 듯 물었다.
“응? 자네 얼굴이 왜 그런가?”
“네? 제 얼굴이 왜요?”
“글쎄, 뭔가 좀 얼이 빠진 것도 같고…… 귀신이라도 봤나?”
‘귀신은 아니고 신선을 봤지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 않기로 신선 어르신과 약속을 했기에 호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제 선학전 안에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안에다 이야기를 했으니 들어가면 되네.”
“호 국주께서는 안 들어가십니까?”
“쩝! 내가 비록 무당의 속가라고는 하지만 도경은 나한테 영 맞지를 않아서……. 해 떨어질 때쯤 돌아올 테니 선학전 밖에서 기다리게.”
“알겠습니다.”
호불위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을 보며 호현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신선 어르신이 주위에 있는 것 같은데 모습을 볼 수가 없구나.’
운학을 떠올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호현은 고개를 흔들고는 선학전 안으로 들어갔다.
선학전 안에 들어간 호현은 바로 쾌쾌한 책 냄새들을 맡을 수가 있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절로 눈을 찡그리고 코를 막을 만한 냄새였지만 호현에게는 향기롭게만 느껴졌다.
“입구에서부터 이런 서향을 풍길 정도라니…… 실로 무당에 오기를 잘 했구나.”
숨을 들이마시며 중얼거리는 호현에게 한 젊은 도사 한 명이 다가왔다.
“무량수불, 무당의 이대 제자 동오라 합니다.”
“방헌현에서 온 호현입니다.”
“선학전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동오가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자 호현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선학전 내에 있는 서가 사이로 동오와 호현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서가에는 도경으로 보이는 서적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리고 서가 사이사이에 있는 통로에도 서적들이 이리저리 쌓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도경을 밟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동오가 말했다.
“선학전은 지상 삼층, 지하 일층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지하에도 도경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하에는 희귀 도경들과 원본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들었다는 말은 직접 보신 적은 없다는 말씀입니까?”
호현의 물음에 동오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드리기 부끄러우나 선학전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지 백 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 년?”
동오의 말에 호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에 이리저리 쌓여 있는 도경들을 보면 백 년이 아니라 이삼백 년은 정리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 백 년 동안 지하에 들어가 본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일 것입니다. 이번에 학사님들이 선학전을 정리하실 때 지하서고가 가장 큰 난관일 것입니다. 썩어 버린 책들도 상당할 테니 말입니다.”
“그렇군요. 썩어 버린 책들의 정리라면 신중하게 손을 대야 할 테니까요.”
대화를 나누며 지하를 제외한 선학전을 한 바퀴 돈 동오가 호현에게 말했다.
“선학전 내부는 모두 보신 듯한데…… 이만 나가시겠습니까?”
“혹시 책을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동오의 허락에 호현이 근처 서가에 꽂혀 있는 서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대덕경>
‘대덕경이라……. 예전에 읽어 본 책이군.’
대덕경이란 제목의 서책을 훑어보던 호현은 옆에서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동오를 보며 말했다.
“저 혼자 있어도 되니 볼일 보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동오의 말에 왜라는 질문을 하려던 호현의 머리에 명백이 면접을 볼 때 학사들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선학전에 무공비급인가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었지. 혹시라도 내가 무공비급을 발견할까봐 동오 도사가 자리를 비키지 못하는구나.’
동오가 자리를 비키지 못하는 이유를 깨달은 호현은 그냥 밖으로 나갈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주위에 있는 도경들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도경들을 놔두고는 나갈 수가 없구나.’
동오에 대한 마안함을 뒤로 한 호현은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을 하나씩 꺼내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을 하나둘씩 보다가 예전에 보지 못했던 책이 나오면 속으로 함성을 질렀다.
“사형, 나 심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