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5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5화
‘태을진검 청현 사숙, 태극인 청묘 사숙…… 꿀꺽!’
평소 같으면 얼굴도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위에 있는 쟁쟁한 무당의 명숙들과 같이 있다고 생각하니 호불위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게다가 자신을 부른 백발의 장로를 향해서는 고개조차도 들지 못했다.
‘무당일검 청수 사숙.’
무당일검 청수, 어느 문파든 일검이라느니 일권이라느니 하는 명호를 다는 자는 그 분야에 있어서 최고라는 말이다.
그러니 검으로 천하의 수위에 꼽히는 무당에서 검에 있어 최고라는 말은 천하제일검에 가장 근접한 사람 중 하나라는 말이다.
말이 쉬워 천하제일검이지, 현 무림에서 검을 무기로 사용하는 수 없이 많은 자들 중 최소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말이니…… 호불위로서는 감히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탁!
갑자기 자신의 어깨에 올려지는 커다란 손에 호불위가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언제 다가왔는지 솥뚜껑만 한 거대한 손을 가진 노도사, 패권 청진이 웃으며 서 있었다.
“하하하! 다 큰 어른이 뭐가 그리 부끄러워 굳어 있는 게냐! 우리가 너를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으냐.”
무당의 무공 중 유일하게 패(覇)에 기반을 두고 있던 패천권을 익히고 있는 청진의 놀림에 호불위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제자가 어찌 그런…….”
“하하하! 농담이다.”
웃으며 호불위에게서 시선을 돌린 청진이 호현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이번에 명백에게 태극의 가르침을 준 호현 학사인가?”
청진의 말에 주위에 있던 장로들이 의아한 얼굴로 호현을 바라보았다.
“명백에게 가르침을 줘?”
“그게 무슨 말인가?”
명백이 무아를 겪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장로들에게 청진이 웃으며 말했다.
“명백이 오늘 무아를 겪었다는군.”
“명백이 말인가?”
“무당의 복이로군. 허허! 그래서 청온 사제가 보이지 않는 게로군.”
“그렇겠지요. 아마 지금쯤 명백을 데리고 장문 사형을 만나고 있을 겁니다.”
“무아라……. 호! 그런데 도사가 학사에게 태극의 가르침을 받다니, 이거 주객이 전도된 격이군.”
동진 등을 청했던 장로가 미소를 지으며 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호현 학사의 도에 대한 가르침이 실로 놀라운 경지에 이르셨나 봅니다.”
청수진인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저었다.
“명백 선인에게 어찌 저 같은 학사가 가르침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그저 명백 선인께서 깨달음을 얻을 때 그 자리에 제가 있었을 뿐입니다.”
“선인?”
명백을 선인이라 칭하는 호현의 모습에 청수진인이 의아해하자 동진이 웃으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평소 무림인을 보지 못한 호현 학사의 눈에는 무아에 이른 명백 도장의 모습이 인세의 것으로 보이지 않은 듯합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동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청수진인이 문득 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에서 들으니 청경 사제를 만나러 온 듯한데…….”
‘안에서?’
청수진인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돌려 장생각 밖을 쳐다보았다.
‘장생각 입구에서 나눈 말을 이곳에서 들었다고?’
장생각 입구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최소한 십 장 이상이었다. 게다가 중간에 문까지 하나 있는데 그것을 격하고 이야기를 들었다는 말에 호현이 놀란 눈으로 청수진인을 바라보았다.
“귀가 참 좋으시군요.”
무당의 명숙인 자신에게 귀가 좋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멍하니 호현을 보던 청수진인이 미소를 지었다.
“귀가 좋다는 말은 호현 학사에게 처음 듣는군. 그런데 어쩐다……. 청경 사제는 오늘 장문 사형의 명을 받고 황궁에 갔는데.”
“황궁이라면 황도관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청경진인이 황도관에 갔다는 말에 호현의 얼굴로 난감함이 어렸다. 스승인 죽대 선생의 편지를 주고 그에게서 태청신단을 받아야 하는데 그가 없다니…….
‘어쩐다? 스승님께서 군말 없이 보내주신 이유는 태청신단 때문인데…… 그걸 못 구해 가면 실망이 크실 거야.’
죽대 선생의 실망 하는 얼굴이 떠오르자 호현이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본 청수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청경 사제를 못 만나면 곤란한 일이 있는 모양이군. 그래, 무슨 일로 청경 사제를 만나러 온 것인가?”
“제가 무당에 온 이유는 청경진인에게서 한 가지 얻을 것이 있어서입니다.”
“무당에서 얻을 것이라……. 학사님이 좋아할 만한 물건이 본 문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군.”
청수진인의 말에 청진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원하는 것이 있으니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뭔지는 몰라도 명백에게 무아를 겪게 해줬으니 본 문의 은인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몰라도 청경 사형에게 얻으려고 온 것이라면 제가 구해 줄 수도 있을 겁니다. 호현 학사께서 원하는 것이 뭔가?”
“하긴 청경 사제가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라고 못줄 것이 없겠지.”
“맞는 말입니다. 호현 학사는 명백의 은인이니까요.”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호현이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 이분들에게서 얻을 수 있겠구나.’
“태청신단입니다.”
뚝!
호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로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모습을 호현이 이상하다는 듯 보고 있을 때 호불위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휴! 내 이럴 줄 알았지.’
“태청신단을 얻으러 온 거였나?”
굳은 얼굴로 청수진인이 묻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호현의 말에 청수진인이 수염을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걱정이 많겠군.”
“네?”
“집에 위중한 환자가 있으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것인 인지상정이지.”
‘위중한 환자?’
환자라는 말에 호현이 의아해할 때, 청수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태청신단이 영약이기는 하나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네. 잘못 사용하면 치료는 고사하고 환자를 죽이는 독이 돼 버리지.”
그러고는 잠시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호현 학사, 내가 잘 아는 명의가 한 명 있네. 그를 소개해줄 테니 만나 보겠나? 자네가 원한다면 내가 직접 자네와 함께 의원을 만나주겠네.”
쿵!
청수진인의 말에 호불위의 입이 쩍 벌어졌다.
‘무당제일검이 호현 학사를 위해 움직인다?’
무당제일검이 움직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아는 호불위가 경악을 하고 있을 때, 호현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의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가 오해를 할 만한 말을 한 적은 없는데?’
“의원을 소개해 주신다는 말은 감사하지만 저희 집에는 환자가 없습니다.”
“환자가 없다?”
호현의 말에 청수진인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가끔씩 무당에는 영약을 구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무림인들도 있었고 일반인들도 있다. 하지만 둘 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무림인들에게 태청신단은 최상의 내상 치료제였고, 일반인들에게 무당의 영약은 신선들이 만드는 선단으로 여겨졌다.
물론 무림인들에게 태청신단은 십 년의 내공을 쌓아주는 영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공 쌓자고 무당파에 가서 태청신단을 달라고 하는 미친놈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호현도 아픈 사람을 위해 태청신단을 구하러 온 줄 알았던 청수진인이 의아한 듯 물었다.
“환자가 없는데 왜 태청신단이 필요한 건가? 설마 내공을 쌓으려고?”
“학사인 저에게 내공이 무슨 필요겠습니까. 태청신단은 스승님이 드실 겁니다.”
“스승님? 방금 집에 아픈 사람이 없다고…….”
“아프시지는 않은데 연세가 많으셔서 몸이 많이 허하십니다. 그래서 건강에 좋은 태청신단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호현의 말에 청수진인과 청진진인 등의 얼굴이 멍해졌다.
“지금…….”
청수진인이 자신이 하려는 말이 너무 어이가 없는지 말을 멈추자 청진진인이 대신 말했다.
“지금 자네 스승의 몸보신을 위해 태청신단을 구하려 한다는 건가?”
“네.”
호현이 하는 말이 진짜인지 농담인지 구분을 하지 못한 청수진인 등이 그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허! 삼백 년 전 천하제일 고수였던 오룡제협이 아내인 천수검녀의 백발이 너무 안타까워 만 리 길을 달려 천산에서 백 년에 한 번 핀다는 백년설화를 구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스승의 몸보신을 위해서 무당에 태청신단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전 제자들을 데리고 와야겠습니다.”
청진진인의 말에 청수진인 등이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제자들은 왜?”
“스승의 몸보신을 위해 태청신단을 구하려는 호현 학사를 보면 제자들이 훗날 늙어 기력이 쇠해진 저를 위해 소림사에서 대환단은 안 되더라도 소환단이라도 하나 구해 올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청진진인이 웃으며 하는 말에 청수진인이 한숨을 쉬고는 호현을 바라보았다.
“명백 사질이 자네에게 받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아무리 태청신단이 귀하다 해도 한 알 정도는 줄 수 있네. 하지만 태청신단 같은 귀물은 반드시 필요한 사람에게 가야 하는 것이네.”
청수진인의 말에 호현이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말씀 중 죄송하지만…… 태청신단이 그렇게 귀한 물건입니까?”
“태청신단에 대해 모르나?”
“청경진인께서 예전에 저희 스승님이신 죽대 선생이 낙향을 하실 때 몸보신에 특효라면서 태청신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호현은 그 이후에 생긴 일들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던 무당 장로들은 죽대 선생이 몸살이 나서 태청신단을 복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얼굴에 허탈함이 어렸다.
“몸살 기운에 태청신단을 복용했다? 허!”
“몸살에 태청신단이 특효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군요. 이거 참…….”
“나도 한 번 먹어 보지 못한 태청신단이 몸살에 사용될 줄이야.”
장로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청수진인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러댔다.
“휴! 예전 청경 사제가 황도관 관주로 갈 때 전대 장문인께서 태청신단 한 알을 내린 적이 있는데…… 그걸 다른 사람에게 줬다는 말이군. 그것도 태청신단이 어떤 물건인지도 설명하지 않고…… 하아!”
청경진인의 괴행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태청신단을 이렇게 사용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청수진인이었다.
한숨을 쉬며 머리를 흔든 청수진인은 호현에게 태청신단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태청신단의 약효와 효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호현의 얼굴에는 놀람과 함께 죄책감이 어렸다.
비록 호현이 먹은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는 사람까지 살릴 수 있는 영약을 고작 죽대 선생의 몸살 약으로 사용했으니 말이다.
‘허! 돼지 목에 진주라더니, 마치 그 꼴이 아닌가.’
그 사실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호현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당 장로들을 향해 포권을 하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무당의 보물인 태청신단을 염치없이 달라고 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네. 자네와 자네 스승이신 죽대 선생께서는 태청신단을 몸에 좋은 보약 정도로만 알고 있었으니, 염치가 없다고 할 수는 없네. 게다가 말을 들으니 자네가 태청신단 값으로 무당에서 일을 하러 왔지 않나?”
“태청신단이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귀물이기에 망정이지, 만약 값을 매길 수 있었다면 호현 학사는 무당에서 뼈를 묻어야 했을 것이야.”
청진진인의 말대로 태청신단이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이라면 천금의 값어치를 할 것이다.
즉, 호현이 태청신단 값만큼 무당에서 일을 하려면 죽을 때까지 해도 값을 다 하기 어려울 것이다.
청진진인의 말에 호현은 할 말이 없다는 듯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청수진인이 입을 열었다.
“청경 사제가 태청신단을 죽대 선생에게 주었다면 그것은 그만한 사정이 있었을 터이니, 호현 학사는 태청신단을 몸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