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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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60화
160화
감이랑은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가 대충 장포를 걸치고 나왔다. 그리고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허리를 두른 가죽띠에 두 개의 칼을 꽂았다.
하나는 면이 넓고 뭉툭한 감도(砍刀)였고, 하나는 끝이 뾰족한 첨도(尖刀)였는데, 둘 다 요리할 때 쓰는 칼이었다.
“제길, 다시는 사람을 향해 이 칼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비룡루를 나선 이무환은 곧장 적룡단으로 향했다.
도중에 유철상과 백리웅이 사십팔객의 조장 넷, 구룡수호단의 부단주 둘과 조장 다섯을 데리고 합류했다.
특조대가 적룡단으로 몰려가자 단주인 곽가위가 허둥지둥 뛰어나왔다.
그로선 광룡이 특조대를 이끌고 한밤중에 몰려왔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무슨 일로 왔는가?”
“정보를 좀 얻을 게 있어 왔습니다.”
“정보?”
“수룡단이 습격당했다는 것은 알고 있겠죠?”
“나도 조금 전에 들었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순찰 돌던 사람들 중 습격자들의 모습을 본 자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음, 그건 아직 잘 모르겠네. 이제 막 정보를 취합하던 터라…….”
“그래요? 그럼 아쉬운 대로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라도 저희가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적룡단에선 순찰조가 교대하면 순찰 도중 있었던 특이한 사항을 일지에 적어놓도록 되어 있었다.
수룡단이 습격당한 시간 전후로 어떤 일이 있었다면 순찰 일지에 적혀 있을 것이었다.
“그게… 본 당의 정보는 본다고 해서 아무나 알 수가 없는 거라…….”
정보를 내보이기 싫은 곽가위가 핑계를 대며 머뭇거렸다.
평소라면 충분한 핑계였다. 일지를 적을 때 일반적인 글과 적룡단 특유의 비문을 섞어서 적으니까.
그러나 이무환도 그 정도의 해결책은 가지고 있었다.
“그건 저희가 해결하지요. 마침 본 대에 그걸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적룡단의 비문을 알아볼 사람이 있다는 말에 곽가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감 씨!”
이무환이 부르자 맨 뒤에서 돌아선 채 얼쩡거리던 감이랑이 몸을 돌려 앞으로 나왔다.
감이랑을 본 곽가위의 눈이 커졌다.
“자네……!”
“오랜만입니다, 단주.”
감이랑은 일단 수룡단이 습격을 당한 시간대의 일지를 대충 살펴보았다.
당시 구룡성의 내성에서 벌어진 상황이 적힌 일지는 모두 이십여 장 정도 되었다. 감이랑은 그중 몇 곳을 골라 비문을 해석했다.
[신룡부 뒤쪽에서 갑자기 밤새들이 놀란 듯 한꺼번에 날아올랐습니다.]
[느닷없이 뭔가가 몸을 짓눌러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속하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동료인 정산과 복위가 죽어 있었습니다.]
[금룡부에서 기르는 개가 겁에 질려 낑낑대다가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는 걸 듣고서 확인해 보았는데, 담장 옆에 개 두 마리가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수룡단 쪽에서 비명이 들려 급히 달려갔는데, 검은 그림자들이 빠르게 북쪽으로 사라졌습니다. 뒤쫓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이 너무나 빨라 서쪽으로 꺾어지는 것만 보고 놓쳤습니다.]
이무환은 그 네 가지 내용 모두를 머릿속에서 뒤섞었다.
‘분명 놈들이 몰래 이용하는 개구멍이 있어.’
예상은 하고 있었다. 구룡성이 제아무리 넓다 해도 이토록 완벽하게 몸을 숨긴 채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니까.
문제는 비밀통로, 개구멍 입구가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입구가 신룡부에만 있는 것이 아닐 수도…….’
그동안 철저하게 감시했다. 그런데도 티끌만 한 단서 하나 잡지 못했다.
그렇다면 신룡부에 있을 거라 생각한 입구가 다른 곳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일단 놈들의 발을 묶어놔야겠어. 자, 가자고!”
적룡단을 나온 이무환은 특조대원들과 함께 신룡부의 담을 끼고 돌았다.
순찰을 돌던 몇 명의 적룡단원들과 신룡부의 경비무사들이 제풀에 놀라 옆으로 비켜섰다.
이무환은 신룡부의 담을 돌며 담장에 박힌 벽돌을 하나하나 철저히 살펴보았다.
특히 건물 외벽이 담장 대신 서 있는 곳은 손으로 두들겨 진짜 벽인지 알아보았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건물 안에서 놀란 사람들이 뛰어나올 정도였다.
“웬 놈이 벽을 부수는 것이냐?!”
“어떤 새끼야?!”
“특조대다!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모두 잡아갈 것이다! 아무도 나오지 마!”
“…….”
그렇게 한 시진에 걸쳐 신룡부 주위를 살폈지만, 수상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광룡이 특조대를 이끌고 미친놈처럼 돌아다닌다는 소문에 구룡성의 내성이 조용해졌다.
아마 날이 새기 전에는 잠풍련의 고수들도 움직이지 못할 터. 이무환은 일단 그것에 만족하고 수룡단으로 돌아왔다.
2
내성을 한바탕 휘젓고 수룡단으로 돌아온 지 반 시진.
자시가 넘어갈 무렵 유군명이 달려왔다.
“계획대로 설미랑을 구금했습니다.”
“그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은?”
“창룡부의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씩, 웃은 이무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가보자고.”
광룡사위만 데리고 창룡부로 간 이무환은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넘었다.
창룡부에 자신이 돌아왔다는 게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해선 창룡부의 눈도 속여야 했다.
유군명의 안내를 받아 넘어간 곳에는 특조대원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 때문인지 창룡부의 경비무사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무환이 담을 넘자 그제야 특조대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무환도 그들과 섞여서 한곳으로 사라졌다.
설미랑이 구금된 장소는 의당 지하였다. 그곳만큼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곳은 창룡부 어디에도 없었다.
유군명과 함께 들어간 의당 지하에는 제갈신걸과 무설강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기 직전 데려왔네. 아무도 모를 거네.”
무설강의 말에 이무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미랑을 바라보았다.
마혈과 아혈이 제압된 채 한쪽에 앉아 있던 설미랑은 이무환이 나타나자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았다.
이무환은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는 설미랑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왜 잡혀왔는지 대충은 짐작할 거야. 일단 아혈을 풀어주지. 큰 소리 지르면 다시 제압할 것이니까, 판단은 당신이 내려. 알았어?”
입술을 깨문 설미랑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항한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 광룡이라는 것쯤은 그녀도 아는 까닭이다.
이무환이 고갯짓을 하자 제갈신걸이 설미랑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설미랑은 터져 나오려는 목소리를 억지로 누르고 나직이 물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죠?”
“질문은 내가 할 거야. 당신은 그에 대한 대답만 하면 돼. 제대로 대답하면 내보내줄 테니까,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마.”
“당신에게 이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당연히 있지. 여 부주를 죽인 범인을 잡는 게 내 일이거든.”
“어이가 없군요. 제가 사부님을 해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요?”
“당신에게는 그럴 만한 실력이 없어. 하지만 당신 주위에는 그 정도의 실력을 지닌 사람이 있지. 내가 원하는 건 바로 그자야.”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모른다? 그럼 한 가지만 묻지. 양류한의 검을 누구에게 가져다주었지?”
이무환이 직접적으로 대놓고 묻자 설미랑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 무슨 말이에요?”
“염추인에게서 검을 받지 않았나? 양류한은 그렇게 알고 있던데.”
“나, 나는…….”
“염추인을 꼬드긴 게 단순히 검 때문이었나?”
이를 악문 설미랑이 잇새로 소리치며 악착같이 사실을 부정했다.
“나와 염 사제는 사형제간일 뿐이에요.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만 이무환은 티끌만큼도 동요하지 않고, 모든 사실이 다 드러났다는 듯 태연히 말했다.
“당신이 미처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어. 염추인이 검을 가져가는 걸 양류한이 봤지. 그리고 당신과 염추인과의 관계를 세세하게 아는 사람도 있어. 그 사람은 항상 당신을 주시하고 있었거든.”
설미랑이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꽤나 고집이 세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죄를 뒤집어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당신 때문에 죽어간 염추인이 불쌍하지도 않아? 제자를 잘못 둬서 살해당한 사부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
“누군지 대충 짐작은 하고 있어.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가 왜, 무슨 이유로 여 부주를 죽였는가 하는 것이야.”
“…….”
“잘 들어둬. 사부를 죽인 제자는 어떤 이유로든 용서받지 못해. 목이 잘려서 구룡성 정문 앞에 효시되는 걸 원한다면 입을 다물어. 사람들이 잘린 당신의 머리에 욕을 하고 가래침을 뱉을 거야. 어쩌면 오물을 던질지 모르지.”
설미랑의 몸이 잘게 떨렸다.
누가 뭐래도 그녀 역시 아름답기를 원하는 여인이었다.
그냥 죽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잘린 머리가 성문에 내걸리고, 사람들이 욕을 하며 침을 뱉는다는 걸 상상하니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죽고 싶어? 아마 당신이 보호하려는 사람은 당신이 죽어서 그 꼴을 당해도 나 몰라라 할 걸?”
설미랑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이무환이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아닐 거라고 생각해? 정말 그렇게 생각해? 흥! 웃기는 일 아냐? 그렇게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이런 일에 당신을 끌어들이다니 말이야.”
잠시 말을 멈춘 이무환은 설미랑에게 다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약속하지. 당신이 그 이유를 알려주면, 내 모든 걸 걸고 당신을 보호해 줄 거야. 하지만 입을 열지 않으면, 죄가 밝혀지든 말든, 사람들이 다 나를 욕해도 내가 직접 당신의 목을 자를 거야. 당신이 사부를 죽이는 데 일조한 것만큼은 확실하니까. 나는 사부를 개떡으로 아는 사람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거든. 당신도 알지? 내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잠풍련의 간자들을 모두 풀어주었다는 걸.”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일로 인해 구룡성에서 도는 소문이 있었다.
―광룡이 비록 미치기는 했지만, 자기가 한 말은 철저히 지킨다.
설미랑도 그 소문을 들었다. 하기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무환이 속삭이듯이 계속 채근했다.
“잘 생각해 봐. 그자는 자기 욕심 때문에 당신을 이용한 것뿐이야. 그런 자 때문에 목이 잘리고 싶어? 성문에 매달려서 남들이 뱉는 침에 범벅이 되고 싶어? 정말 그런 거야?”
악마의 속삭임이 의당에 울려 퍼진다.
무거운 침묵이 의당 지하를 내리눌렀다.
광룡사위는 물론이고, 무설강과 제갈신걸마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이무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물며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심혼을 짓누르는 이무환의 목소리에 설미랑은 온몸을 떨었다.
“난, 난…….”
“털어놓으면 속이 시원할 거야. 말해봐.”
순간, 설미랑의 두 눈에서 두 줄기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그분이 설마 사부님을 죽이기까지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흠, 죽일 줄 모르고 검을 가져다주었다는 건가?”
“예…….”
“그게 누구지?”
흠칫한 설미랑이 이무환을 올려다보았다.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었다. 한데 범인이 누군지 모른다는 뜻처럼 들리지 않는가.
“서, 설마… 모르고……?”
“아아, 짐작은 하는데 당신 입으로 확실하게 듣고 싶어 그러는 거야. 어차피 이제 다 말할 거잖아? 당신은 다 알고 있고. 말해봐. 속 시원하게 말이야.”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이무환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그들조차 이무환이 범인에 대해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3
“계집이 사라졌습니다.”
“언제 사라졌지?”
“자시쯤으로 추정됩니다.”
환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다시 물었다.
“당시 광룡의 위치는?”
“수룡단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음, 한발 늦은 건가?”
무릎을 꿇고 있던 흑의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제대로 일처리를 못한 점, 속하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대가 죽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하오나…….”
“지금 즉시 창룡부 일대에 대한 감시를 늘려. 혹시 광룡이 창룡부에 있는지도 다시 한번 알아보도록 하고.”
“예, 공자.”
“그리고… 사람을 무창의 용강통으로 보내서 귀조를 찾아봐라.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
흑의인이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가자 환비의 얼굴에 싸늘한 냉소가 걸렸다.
“생각보다 머리 좀 굴린다, 이건가?”
적수가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하기에 적당히 풀어놓았다.
그런데 광룡에 대해 알면 알수록 신경이 쓰였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몰아쳐야겠어.”
환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사부인 천세도인을 만나서 한 가지 물건을 요구해야만 했다.
“놈이 모든 내막을 알아낼 거라 보느냐?”
“확률은 반반입니다, 사부님. 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놈들을 더 흔들까 합니다.”
“이미 많은 것을 드러냈다. 여기에서 더 내보이는 것은 좋을 게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하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하느냐?”
환비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천세도인을 바라보았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풍 사형이 남긴 물건을 이용한다면, 지금까지 드러낸 힘만으로도 충분히 놈들을 흔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제야 천세도인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신도연풍이 남긴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서른두 알의 마단이었다.
비록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일을 수행하기에는 오히려 불완전한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천세도인은 사이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 방법도 괜찮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