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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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59화
159화
어쨌든 그를 만나는 일은 나중 문제였다.
“단주는 뭐라고 해? 연락 온 거 없어?”
“소식을 전한 단원의 말에 의하면, 일단 돌아오셨으면 하는 거 같습니다.”
비비 꼬인 사건이 하나하나 풀어지고 있는 상황, 당장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수룡단의 일을 나 몰라라 하고 눌러앉아 있을 수만도 없는 일.
‘어차피 좀 더 자세한 것을 알려면 시간이 필요해. 내가 물러나면 범인이 마음을 놓을지도 모르고 말이지.’
이무환은 내심 생각을 정리하고는, 명세창에게 무설강과 제갈신걸을 비롯해 광룡대의 간부들을 불러 모으도록 지시했다.
창룡부에는 무설강과 제갈신걸, 유군명과 수룡단 삼대, 구대가 남기로 했다.
이무환은 세 사람에게 지시 사항을 상세히 전하고는, 구룡수호대와 사십팔객을 이끌고 창룡부를 나섰다.
뒤에서 창룡부 간부들의 반기는 눈길이 느껴졌지만 내심으로는 코웃음만 나왔다.
아마 자신이 무설강 등에게 지시한 내용을 알면 떠나가는 자신의 뒤통수를 결코 웃으면서 쳐다보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우흐흐. 나이만 먹었지, 저렇게 순진하다니까.’
6
수룡단에 도착한 이무환은 곧바로 수룡전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도 여기저기 격전의 흔적이 보였다.
많이 부서진 건물은 없었다. 그러나 정원 곳곳의 나무가 베어지고 꺾여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특히 수룡전 앞마당의 상황은 더욱 심했는데, 다른 곳과 달리 바닥의 청석마저 파헤쳐져서 마치 공사판처럼 어수선해 보였다.
그만큼 고수들의 격전이 벌어졌다는 뜻.
이무환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수룡전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위사들이 고개를 숙이는 사이, 갑자기 수룡전의 전각문을 거세게 밀쳤다. 위사들이 미처 안에 기별을 하기도 전이었다.
덜컹!
수룡전의 문을 열고 들어선 이무환이 소리쳤다.
“단주!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정말 놀란 것처럼. 무지 당황한 것처럼.
수룡전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호연청이나 헌원숭, 소천득, 모용상명 등 이무환의 성격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며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왔나?”
그저 호연청만이 건성으로 한마디 내뱉을 뿐.
그러나 황보광이나 하후영, 정화풍 등 모용상명과 함께 온 열세 명의 고수는 언짢은 표정으로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잘 봐줘야 이십대 초반. 새파랗게 젊은 놈이 도대체 예의를 어디다 빠뜨리고 왔기에 저리 건방진 행동을 한단 말인가!
아마 이곳이 구룡성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면 한바탕 야단을 치고 혼쭐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손님의 자격으로 온 이상 심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냥 지나가기는 뭐했는지, 정화풍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쯧쯧, 아무리 칼날 위에서 살아가는 무사라 해도 기본적인 예의범절 정도는 지켜야 사람대접을 받거늘.”
이무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호연청과 모용상명, 헌원숭과 소천득은 그런 이무환을 묘한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그사이 호연청의 이 장 앞에 도착한 이무환이 턱으로 정화풍을 가리키며 물었다.
“단주, 어디서 온 분들입니까? 처음 보는 분들 같은데요.”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서 온 분들이라네, 이 대주.”
헌원숭과 소천득도 외부에서 왔다. 몇 사람 더 들어왔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이해할 수만은 없었다.
쓱, 정화풍을 째려보는 이무환의 말투에 가시가 돋았다.
“도와주기 위해서 온 사람은 아무에게나 저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보군요.”
그러잖아도 턱짓에 기분이 상해 있던 정화풍이 눈을 부라렸다.
“그대가 예의를 지켰으면 내가 그리 말했겠는가?”
이무환의 눈빛도 착 가라앉았다.
“내가 무슨 예의를 안 지켰다는 거요? 당신은 당신 집에 적이 쳐들어와서 사람이 죽었어도 온갖 예의를 지키며 행동하나 보죠?”
“나는 적어도 그대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
“어이구, 참 대단하신 분이군요.”
“뭐야?!”
‘은근히 사람 속 긁는 놈이군.’
그때 문득, 모용상명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 이놈이 광룡?’
아무래도 그런 듯했다. 아니라면 호연청 등이 묵묵히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그와 부딪치면 한발 양보해 주십시오.”
모용상명의 당부를 상기한 정화풍은 부글거리는 화를 꾹 참았다.
“최소한 어른들이 있는 방에 들어갈 때는 미리 전갈을 하고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그게 그렇게 잘못한 거요? 미안하지만 말이오. 나는 동료들이 죽어간 판에 그따위를 예의라고 따지는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러니 그런 예의는 당신 동료들에게나 가르치쇼.”
이무환이 짜증난다는 듯 거칠게 말하고 고개를 돌리자 하후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대가 광룡인가?”
이무환의 눈이 하후영을 향했다.
“남들이 그렇게 부르더군. 그런데 당신은 누구지?”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반말이 튀어나온다.
‘역시 이자가 광룡이었군.’
하후영은 눈에 힘을 주고 차갑게 말했다.
“나는 하후영이라고 한다.”
“하후영? 복우의 천수도룡?”
하후영이 이무환의 말을 흉내 냈다.
“남들이 그렇게 부르더군.”
그러면서 강렬한 눈빛으로 이무환을 찍어 눌렀다.
하지만 이무환은 눌리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흥, 다섯 마리 토룡 중에 한 마리가 또 기어나왔군.’
오히려 속으로 코웃음 친 이무환이 눈썹 하나 끄떡하지 않고 턱을 치켜들었다.
“그런데 왜 부른 거지?”
“나이도 어린 사람이 어른들 앞에서 너무하는 거 아닌가?”
“밑도 끝도 없이 건방지다고 하는데, 그대라면 가만히 있겠어?”
“그거야…….”
그때다.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괴이한 눈빛. 왜 저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일까?
‘가만? 뭐야? 저 자식, 여태 나한테 반말했잖아?’
반말하는 게 하도 자연스러워서 미처 깨닫지 못했다. 깨닫고 나니 이무환의 말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속에서 뭔가가 치밀고 올라왔다.
하후영은 와락 구겨진 얼굴로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네가 지금……!”
그가 분노를 다 표현하기도 전에 이무환이 말을 끊었다.
“칼 좀 쓴다고 들었는데, 기분 풀고 싶으면 조금 기다리지 그래? 아직 단주와 나눌 이야기가 남아 있거든?”
이무환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하후영이 냉랭히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기다려 주지.”
묵묵히 지켜보던 호연청이 때를 노려 끼어들었다.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서로 인사나 나누게.”
이무환은 하후영에게서 시선을 떼고 황보광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일행 중 그가 제일 강하게 보였다.
“무환입니다.”
조금 전까지와 달리 정중한 태도로 포권을 취하는 이무환이다.
은근히 어떻게 나오나 보고 있던 황보광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마주 포권을 취했다.
“황보광이라 하네.”
“아! 대협께서 개천신권이라 불리는 황보 대협이셨군요. 하, 하! 영광입니다!”
당장 두 손을 맞잡고 감격에 겨워 몸을 떨 것 같은 이무환의 말투다.
호연청과 모용상명, 헌원숭, 소천득은 속으로 탄식하며 ‘속지 마시오’를 연발하고, 황보광과 함께 온 사람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정화풍과 하후영은 이무환의 모습을 보며 조금 전의 일을 상기해 보았다.
‘내가 너무 과민 반응을 보였던 게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그러든 말든, 이무환은 환한 표정으로 나머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위경이라 하네. 강호에선 칠환검이라 불러주지.”
“손풍이라 하네.”
“역산우라 하오.”
“윤사평이네.”
정중하게 마주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노골적으로 이무환을 경시하며 건성으로 인사했다.
그래도 인사를 하며 어느 정도 분위기가 가라앉자 호연청이 입을 열었다.
“그래, 창룡부의 일은 어떻게 되었나?”
이무환은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창룡부의 일을 말해주었다.
“범행에 사용된 검을 양류한의 방에서 훔친 자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그래? 그게 누군가?”
이무환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의 눈이 향한 곳에는 염화릉이 서있었다. 수룡단이 공격받았다는 말을 듣고 그 역시 창룡부에서 온 듯했다.
이무환은 최대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여 부주의 막내 제자인 염추인입니다.”
담담히 서 있던 염화릉이 눈을 부릅떴다.
“무, 무슨 말인가? 추인이가 검을 훔쳤다니?”
호연청도 놀라서 고함치듯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이 대주? 설마 잘못 안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충격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조사를 해봤는데, 사실인 것 같습니다.”
“추인이는, 추인이는 지금 어디 있는가? 내가 직접 물어봐야겠네!”
염화릉이 다급히 소리쳐 물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무환의 무심한 표정이 찰나간 흔들렸다. 아버지에게 아들의 죽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라 해도 담담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오기 직전… 의당의 지하, 여 부주의 관 앞에서 염추인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시, 시신이라고?”
염화릉이 휘청거리려는 몸을 겨우 세우고 이무환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당장 ‘네놈이 죽였느냐!’라며 고함이라도 내지를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마도 자신으로 인해 여 부주께서 돌아가셨다 생각해서 자결한 듯싶습니다.”
이무환의 그 말에 모용상명이 눈을 예리하게 빛냈다.
“가만, 그럼 염추인이 여 부주를 살해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구려.”
“내가 언제 염추인이 여 부주를 살해했다고 했소?”
염화릉이 안달하며 재촉하듯 물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해보게나. 그럼 추인이 왜 자결했단 말인가?”
“여 부주를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살해에 사용된 검을 염추인이 훔쳐서 범인에게 가져다주었을 거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여인과 관련된 것은 말하지 않았다. 아직 조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그 말만으로도 장내가 침묵에 눌려 무겁게 가라앉았다.
염화릉은 눈을 꽉 감고 이를 악물었다.
절대 그럴 리 없다며 부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것마저 아니라면 염추인이 범인이라는 말이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더욱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이무환은 침묵이 길어질 것 같자 먼저 입을 열었다.
“좌우간 조사를 더 해보면 확실한 것이 드러날 테니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고, 염추인의 시신은 조사를 마치는 대로 장로께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염화릉이 눈을 뜨고 잇새로 말했다.
“알겠네.”
이무환은 그쯤에서 호연청을 바라보며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단주님, 잠풍련 놈들의 행방을 알아보셨습니까?”
겨우 정신을 차린 호연청이 고개를 저었다.
“추적을 하지 못했네.”
“그렇게 강한 자들이었습니까?”
호연청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얼굴에 청색 가면을 쓴 자 때문에 쫓을 수가 없었네. 그자만 아니었어도 추적해서 놈들이 숨어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을지 모르거늘…….”
“적룡단의 순찰무사들이 곳곳에 깔려 있었을 텐데, 그들에게 알아보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에게 들킬 자들이었다면 습격하기 전부터 경고가 있었겠지.”
사실이 그랬다. 그러나 선입견이라는 것이 때로는 벽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제가 가서 한번 알아보죠. 헛수고라 해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죠 뭐. 혹시 압니까? 쥐구멍이라 생각했는데 그 안에 늑대가 살고 있을지.”
제4장. 돌아온 전설(傳說)
1
이무환은 엽상과 광룡사위를 대동하고서 비룡루로 갔다.
콰직!
문을 부수다시피 열고 들어가자 감이랑이 화들짝 놀라 뛰쳐나왔다.
“왜 이러나? 왜 문을 부수는 건가?”
“왜 이러긴! 온다고 해놓고 왜 안 온 거요?”
“주루가 팔려야 갈 것 아닌가?”
“잔말 말고 오늘부터 임무를 맡으쇼!”
“글쎄, 주루를 먼저 팔고…….”
뭉그적거리던 감이랑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무환이 주루 한가운데 박힌 기둥을 잡고 흔드는 것이 아닌가.
“이봐! 지금 뭐 하려고 하는 거야?”
“안 움직이면 주루를 다 때려 부술 거요. 그럼 불쏘시개로라도 팔 수 있겠지. 도끼! 도끼 좀 빌려줘 봐!”
“가! 간다고! 간다니까!”
감이랑이 두 손을 들고 소리쳤다.
그제야 이무환은 흔들던 기둥을 놓고 감이랑을 쳐다보았다.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옷을 입고 나오쇼. 지금 적룡단에 갈 거니까. 사실 그래서 찾아온 거요.”
“적룡단에?”
감이랑이 눈살을 찌푸리자 이무환이 다시 기둥을 잡았다.
“시간없다니까요?”
“아, 알았네! 알았으니까, 기둥에서 손 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