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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56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8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56화

 

156화

 

 

 

 

 

 

 

 

순간 이무환의 표정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내 수하를 믿소. 아무리 중한 비밀이라도 수하가 들을 수 없다면 나 역시 들을 이유가 없소. 그러니 개의치 말고 말씀하시오.”

 

종리난경이 이무환을 슬쩍 바라보았다. 갑자기 달라진 그의 모습이 생경하기만 했다.

 

여소화도 의외인지 잠깐 몸이 굳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붉혔다.

 

“제가 속 좁은 마음을 드러냈나 보군요. 죄송해요.”

 

“뭐, 죄송할 것까진 없소. 그건 그렇고… 이 차 한 잔 더 마셔도 되겠소?”

 

“예? 예, 그러세요.”

 

이무환은 출렁거릴 정도로 차를 가득 따르더니, 마치 맛있는 전병을 앞에 둔 아이처럼 밝게 웃었다.

 

“흠, 내 방에도 괜찮은 차가 있는데 말이오. 우리 꼬맹이가 가고 나니까 맛이 달라진 것 같지 뭐요.”

 

“꼬맹이요?”

 

“하, 하. 키는 요만한 것이… 아니, 이제 요만큼 컸는데, 어찌나 영악하고 잔머리를 잘 쓰는지, 조심해도 항상 당한다오.”

 

“당해요? 어떻게요?”

 

“저번에는 글쎄, 내 얼굴에다 도장을 몇 개나 찍어서…….”

 

머리가 어질어질해진 종리난경이 황급히 이무환을 말렸다.

 

“저, 총대주.”

 

“응? 왜?”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이 있다고 해서 오셨잖아요.”

 

“그랬지. 근데 왜?”

 

“이제 들어봐야지요. 총대주가 계속 말씀하시니까 여 소저가 말을 못하잖아요.”

 

“어? 그래? 흠, 어디 말해보시구려.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봅시다.”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던 여소화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고 이무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 이야기는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저만 알고 있어요. 그러니 믿을 것인지 안 믿을 것인지는 대주님이 판단하세요.”

 

이무환의 눈빛이 반짝였다. ‘당사자’라는 말이 어쩐지 묘하게 들렸다.

 

“음, 알겠소. 말해보시오.”

 

여소화는 숨을 깊게 몰아쉬고 나직이 말문을 열었다.

 

“설 언니는 양 사형하고만 사귀는 게 아니에요. 양 사형도 그걸 알고 있어요. 그 때문에 더 마음이 다급해져서 아버지를 만난 것인지도 몰라요.”

 

반짝이던 이무환의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자신만 좋아한다 생각했던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면 누구들 마음이 다급해지지 않겠는가.

 

양류한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터. 조금이라도 빨리 혼인에 대한 일을 매듭짓고 싶어서 오전에 여후량을 만난 것일 게 분명했다. 그랬다가 불가(不可)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고.

 

양류한에게는 아주 불리한 내용이었다. 만일 이 사실을 안다면 장로와 원로들이 더욱 심하게 다그칠 것이 분명했다.

 

‘거참, 이래저래 양류한만 구석으로 몰리는군.’

 

이무환은 속으로 혀를 차며 여소화에게 물었다.

 

“그녀가 사귀고 있다는 다른 사람이 누구요?”

 

여소화가 입술을 깨물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큰오빠예요.”

 

이무환의 눈빛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그게 사실이오?”

 

“우연히, 아주 우연히 큰오빠와 설 언니가 함께 있는 걸 봤어요.”

 

여소화가 그 말을 하며 얼굴을 붉힌다.

 

단순히 그 사실 때문에 두 사람이 사귄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 듯했다.

 

‘음, 입술이라도 닦고 있었나 보군.’

 

나름대로 짐작한 이무환이 계속 물었다.

 

“그게 다요?”

 

여소화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무환은 진짜 중요한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다는 걸 느낌으로 알고 여소화의 입이 열리기만 기다렸다.

 

잠시 숨을 고른 여소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한, 양 사형은 절대 범인이 아니에요.”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라도 있소?”

 

대답하는 여소화의 목덜미가 언뜻 붉어진 듯 보였다.

 

“제가… 어제저녁에 양 사형을 봤어요. 한참을 연못가의 구석진 곳에 앉아 계셨는데, 해가 완전히 질 때쯤 일어나서 방으로 돌아갔어요. 아버지가 살해범에게 당한 그 시간에 양 사형은 방에 있었던 거죠.”

 

“나중에 다시 나왔을 수도 있지 않소?”

 

여소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양 사형은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린 후에야 방을 박차고 나오셨어요.”

 

“여 소저가 계속 지켜보았나 보군요.”

 

여소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달처럼 고운 그녀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은 듯 보였다.

 

사실이라면 근 반 시진이 넘게 양류한을 지켜봤다는 말.

 

이무환이나 종리난경이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쯔쯔쯔, 양 가도 어지간히 사람 보는 눈이 없군. 내가 봐서는 설미랑보다 이 아가씨가 훨씬 나은데.’

 

그동안 여소화는 두 사람을 멀리서 지켜보며 쓰린 가슴만 움켜쥐었을 것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내색도 못한 채.

 

그러다 부친인 여후량이 살해당하고, 자신이 사모하는 양류한이 유력한 용의자로 대두되자 하는 수 없이 말하는 듯했다.

 

“설 소저가 언제부터 대공자와 사귀었소?”

 

“정확히는 몰라요. 단지 제 생각으로는 몇 달 된 거 같아요. 양 사형이 그 사실을 안 것은 최근이고요.”

 

이후로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 더 이어졌지만 특별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이무환은 찻주전자가 비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중요한 정보를 말해주어서 고맙소. 나중에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할 때가 있을지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겠소?”

 

여소화는 눈을 내리깔고 개미가 싸우는 소리보다 더 작게 대답했다.

 

“예, 할게요.”

 

이무환은 그런 여소화에게서 눈을 떼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걸음을 떼려 할 때였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돌린 이무환이 여소화에게 마저 물었다.

 

“대공자가 여 소저의 식구들과 별로 닮은 것 같지 않던데, 내가 잘못 본 거요?”

 

여소화가 눈을 들어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큰오빠는 아버지가 다른 여인에게서 얻은 아들이에요. 칠 년 전에 아버지를 찾아 이곳으로 왔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혼인하기 전에 아버지가 좋아했던 여인이 낳은 아들이라고 했어요.”

 

이무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다면 여건평이 여건호나 여소화와 닮은 구석이 거의 없다는 것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흠, 일단은 설미랑의 주위부터 조사해봐야겠군.’

 

 

 

임시 거처로 돌아온 이무환은 특조대의 간부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십여 명이 방 안에 모이자, 이무환은 설미랑의 주위를 조사하기 위한 첫 번째 명을 내렸다.

 

“제가 설미랑을 만나고 올 겁니다. 그 후부터 무 형님과 제갈 형이 그녀를 철저히 미행하쇼.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면 안 됩니다.”

 

철사자와 뇌고자의 눈이 조금 커졌다.

 

“미행? 우리 둘이 말인가?”

 

“왜요, 자신 없습니까?”

 

자신 없냐고 말하며 빤히 바라보는 이무환이다.

 

그 얼굴에 대고 누가 자신 없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무설강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난색을 표했다.

 

“자신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거 참…….”

 

“그녀가 만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알아두어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어서 두 분께 맡기는 것이니 절대 들키지 않게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제3장. 수룡단(守龍團) 습격사건

 

 

 

 

 

 

 

1

 

 

 

삼월의 태양이 서산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기를 쓰고 버티던 신시 말. 구룡성의 서문으로 무사 열세 명이 들어섰다.

 

복장도 가지각색, 나이도 삼십대부터 오십대까지 골고루 섞여 있었는데, 십여 장의 간격을 두고 들어선 그들은 성안에 들어온 후 모두 같은 객잔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이 머무는 객방으로 한 사람이 찾아왔다. 호연청의 조카인 모용상명이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수고야 모용 공자가 더 했지, 이제 온 우리가 무슨 수고를 했다 그러는가?”

 

모용상명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듯 수천 리 길을 마다않고 와주신 것만도 고마울 뿐입니다.”

 

오십대 중반의 백의중년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천하의 잠천신룡이 어지간히 애가 닳았었나 보군. 이제 한물간 우리를 이리도 반기다니 말이야.”

 

“황보 대협께서 한물갔다면 세상의 권사들이 모두 비통함에 젖어 술통에 빠질 겁니다.”

 

모용상명의 대꾸에 백의중년인, 황보광이 피식 웃었다.

 

“어째 그동안 말재주가 일취월장한 것 같군.”

 

모용상명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그런 면이 없잖아 있었다. 모두가 한 사람 때문이었다.

 

광룡 이무환!

 

이상하게도 그를 몇 번 상대해 본 사람들은 모두 변한다. 자신도 예외가 아니고.

 

처음에는 호연청이 변한 걸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호연청의 ‘자네도 그를 몇 번 상대해 보면 알게 될 거네’ 했을 때까지도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를 몇 번 만났을 뿐인데도, 자신과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말투가 변했다고 말했다.

 

아니라고 변명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 봐도 달라진 것이 분명했으니까.

 

어쩌면 너무 그자에게 신경을 썼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하긴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광룡의 행동과 말투는 천하의 누구라도 신경 쓰지 않고 견딜 수가 없을 것이었다.

 

‘황보 대협도 변할까?’

 

모용상명은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

 

우내십존 중 한 사람, 개천신권(蓋天神拳) 황보광이다.

 

하지만 내기를 하라면, 모용상명은 광룡에게 판돈을 걸 것이었다.

 

‘그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훗.’

 

모용상명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자 황보광 옆에 있던 갈의중년인이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구룡성의 물이 좋은가 보군. 모용 공자가 저렇게 환하게 웃다니 말이야. 아니지, 구룡성에 아름다운 꽃이 많다던데, 그래서 그런가?”

 

모용상명이 곧바로 받아쳤다.

 

“정 대협께서 원하시면 소개시켜 드리지요. 다만 뒷감당은 정 대협께서 다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

 

“엉? 하하하! 이거 이제 말로도 못 당하겠구먼.”

 

갈의중년인, 일도진천검 정화풍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들도 고조된 분위기에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그때 황보광이 웃음을 지우고 물었다.

 

“이후의 계획을 알았으면 싶군.”

 

“수룡단에 계시면서 저희와 함께 움직여 주시기 바랍니다.”

 

황보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저… 그리고 수룡단으로 들어가기 전에 부탁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 말해보게. 잠천신룡의 부탁을 내 어찌 마다하겠는가?”

 

“수룡단에 성격이 조금 특이한 사람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그와 부딪치면 한발 양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쪽에 서 있던 삼십대 중반의 청의장한이 물었다.

 

“혹시 천외광룡이라는 자를 말하는 거 아니오?”

 

“그렇습니다, 하후 형.”

 

“오면서 그자에 대한 말을 들었소. 듣자 하니 그자로 인해 구룡성이 발칵 뒤집혔다던데, 정말 그렇소?”

 

“사실입니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말도 들었소만.”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요.”

 

모용상명의 담담한 대답에 천수도룡 하후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자에게 우리가 꼭 양보해야 할 이유라도 있소?”

 

천수도룡(千手刀龍) 하후영.

 

구유마도와 함께 천하제일도를 다투는 도왕(刀王) 하후중천의 장자이며, 중원오신룡 중 한 사람이 바로 그다.

 

강호의 선배도 아니고, 멋대로 행동하는 나이 어린 사람에게 무조건 한발 양보한다는 것이 그의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하기야 이 자리의 누가 모용상명의 마음을 알 것인가.

 

“그도 무작정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끄러워져 봐야 좋을 게 없는 상황이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는 겁니다.”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는 터다. 당연히 시끄러워지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았다.

 

하후영이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 또 물었다.

 

“굉장히 강하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소?”

 

모용상명은 잠깐 망설였지만 어차피 알게 될 일, 쓴웃음을 지으며 사실대로 말했다.

 

“일이 좀 우습게 되었습니다만, 명부신사 헌원 대협과 절수 소 대협도 그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계획했던 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사부님.”

 

“놈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

 

“특조대를 모조리 끌고 창룡부에 들어가서 조사를 한답시고 여기저기를 쑤시더니, 지금은 조용히 있습니다.”

 

“그대로 놔둘 생각이냐?”

 

“수룡단을 건드려 볼 생각입니다.”

 

“수룡단을?”

 

천세도인의 칼날처럼 뻗은 눈이 자신을 향하자, 환비는 담담히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호연청이 가진 힘도 정확히 알아볼 겸, 수룡단을 건드려 놈을 끌어낸 후 창룡부의 일을 완전히 정리할 생각입니다.”

 

천세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것도 좋겠지. 하지만 내일 일에 지장이 갈 정도로 무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라.”

 

“예, 사부님.”

 

깊게 고개 숙이는 환비의 눈에서 은은한 기광이 흘러나왔다.

 

‘때로는 혼돈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법이지요, 사부.’

 

하지만 그도 잠시,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귀조가 왜 연락이 없지?’

 

 

 

3

 

 

 

무설강과 제갈신걸을 보조하던 엽상이 소식을 가져온 것은 석양이 서산 골짜기에 처박힌 후였다.

 

“설미랑이 은밀하게 여건평을 만났다는 소식입니다, 총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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