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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53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6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53화

 

153화

 

 

 

 

 

 

 

 

착잡한 표정, 목구멍에 모래가 들어 있는 듯 껄끄러운 목소리다. 이무환은 그를 똑바로 바라본 채 두 번째 요청을 했다.

 

“먼저 당신의 검을 보았으면 싶은데.”

 

양류한은 손을 뻗어 침상 한쪽에 놓여 있는 검을 허공섭물로 잡아당겼다.

 

“얼마든지 보게.”

 

이무환은 양류한이 내미는 검을 서슴없이 받아 들었다.

 

양류한의 눈가로 미미한 떨림이 일었다. 조금의 경계심도 보이지 않는 이무환의 태도가 의외인 듯했다.

 

그때 이무환이 검을 무설강에게 건넸다.

 

스르릉.

 

무설강이 검을 뽑더니 바윗덩이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넓이 두 치 세 푼. 길이 두 자 아홉 치. 혈흔은 보이지 않네.”

 

이무환은 무설강의 설명이 끝난 후에야 양류한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이 가진 검은 이것 하나뿐이오?”

 

순간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눈이라도 찔렀는지 양류한의 눈꺼풀이 미미하게 떨렸다.

 

“하나… 더 있네.”

 

이무환의 눈이 반짝였다.

 

“그 검도 이것과 크기가 비슷하오?”

 

“길이가 이것보다 한 자 정도 짧은 단검이지.”

 

“그것은 어디 있소?”

 

양류한이 눈을 한 번 감았다 뜨고는 나직이 대답했다.

 

“잃어버렸네.”

 

“언제 잃어버렸소?”

 

“오늘 오후쯤.”

 

“그 일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소?”

 

“없네.”

 

묻고 대답하는 동안 두 사람의 눈동자는 실오라기만큼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무환의 질문이 이어졌다.

 

“부주가 살해당하던 시각에 어디에 계셨소?”

 

양류한의 눈동자가 찰나의 순간 흔들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우수에 젖은 눈이 더욱 깊어지는가 싶더니 양류한의 입이 열렸다.

 

“사매와 만나고… 잠시 혼자 생각할 것이 있어서 후원의 연못가에 앉아 있었네.”

 

“그 당시 당신을 본 사람은?”

 

“그건 나도 모르겠군. 구석진 곳에 앉아 있었으니까.”

 

 

 

이무환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곧장 설미랑을 만났다.

 

창룡부 제일의 미인이자 구룡삼화 중에 하나인 그녀는, 슬픔에 잠긴 상태에서도 목단처럼 화려한 아름다움이 온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여인이었다.

 

이무환은 금방이라도 침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양 대협이 유시 경에 소저를 만났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설미랑은 반쯤 넋을 잃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만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미안해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개인적인 일이라서…….”

 

“험험,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이야기 중에 소저의 사부이신 여 부주님을 언급한 적이 없었습니까?”

 

“그건… 없지는 않았어요. 대사형과 저의 사부님이시니까요.”

 

“어떤 이야기였습니까? 아아, 두 분의 개인적인 일 말고, 여 부주님과 연관된 이야기만 묻는 것입니다. 뭐, 말씀하시기 싫다면 안 해도 됩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위해서라면 뭐든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이다.

 

설미랑은 고개를 살짝 숙인 상태에서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부님이… 저와 대사형이 맺어지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설미랑을 바라보던 이무환의 눈이 커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 질문에 설미랑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발딱 쳐들었다.

 

“하지만 대사형과 사부님과의 갈등은 대사형이 검을 익히면서부터 자주 있어왔던 일이에요. 이번 일은 그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아, 그래요?”

 

이무환은 당신의 말은 뭐든 이해할 수 있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설미랑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 하. 이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칫하면 아름다운 얼굴이 상할 수도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기운 차리십시오, 설 소저. 그럼 저는 이만.”

 

 

 

밖으로 나오자 제갈신걸이 넌지시 이무환의 행태를 비꼬았다.

 

“총대주, 정말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오? 사실 저 정도 여인이면 남자가 넋을 잃고 멍청하게 바라봐도 누구든 뭐라고 하지 못할 거요. 안 그렇소?”

 

이무환은 그 정도쯤이야, 하는 투로 대답했다.

 

“화려하긴 한데, 아무래도 꼬맹이보다는 못하죠. 우리 옥이보다는 훨씬 더 못하고.”

 

무설강이 힐끔 이무환의 옆모습을 흘겨보았다.

 

“입에서 침이 떨어질 것 같던데…….”

 

이무환이 씩 웃었다. 온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웃음이었다.

 

“여자는 말이죠, 자신을 예쁘게 봐주면 경계심이 약해진다고 하더군요.”

 

설미랑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억지로 그랬다는 말?

 

무설강과 제갈신걸이 동시에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저 머릿속에는 능구렁이가 몇 마리나 들어 있을까? 한 번 갈라보고 싶은 표정들이었다.

 

그때 명세창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염추인도 검을 쓰는데, 찾아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만나보기는 해야겠지만 기대할 수 있는 말은 들을 수 없을 것이오. 그의 실력으로는 절대 그런 상처를 남길 수 없으니까.”

 

“그럼 다른 제자들은……?”

 

“그들의 능력으로는 익히지도 않은 검을 그토록 능숙하게 다룰 수 없소. 살기마저 숨기고 일수만천 여후량의 등에 검을 박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시오?”

 

무설강이 대신 답을 내렸다.

 

“검을 익히지 않은 자가 범인이라면, 무위가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자일 것이네.”

 

이무환의 입가에 가느다란 냉소가 걸렸다.

 

“그런 경지에 이른 자는 창룡부에 몇 명 되지 않지요.”

 

그리고 의심 가는 자들은 더 적었다.

 

‘흥, 창룡부의 부주를 죽이면 모든 일이 다 될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절대 네놈들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제2장. 검을 찾다

 

 

 

 

 

 

 

1

 

 

 

둥! 둥!

 

축시를 알리는 북소리가 막 울려 퍼졌다.

 

이무환은 제갈무진, 유철상, 백리웅을 수장으로 삼아 특조대원들을 세 개 조로 나누었다. 그러고는 그들로 하여금 창룡부를 교대로 감시하게 해놓고 일단 광룡대로 돌아왔다.

 

이무환이 돌아온 지 일각이 지났을 즈음, 영호승이 서찰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정문위사가 들고 왔는데, 오늘 밤에 약속했던 사람이 보냈다고 합니다.”

 

이무환은 마시던 차를 느긋이 다 비운 후에야 서찰을 펼쳐 보았다.

 

순간 글을 읽어가던 이무환의 눈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지끈거리던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갈 길을 알려주게. 인시 말에 가겠네.]

 

 

 

‘됐어!’

 

마침내 주용천이 신룡부에 등을 돌렸다!

 

물론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함정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적어도 팔 할 이상은 진실이라는 것이 이무환의 판단이었다.

 

이무환은 서찰을 가루로 만들어 없애고 운기를 했다.

 

한 시진 후.

 

운공을 마치고 눈을 뜬 이무환은 경비를 서고 있는 영호승을 불렀다.

 

“잠시 나갔다 올 일이 있어.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만약의 경우 대충 둘러대. 뒷간에 갔다고 하든 뭐라고 하든. 알았지?”

 

“예, 총대주. 그런데 어딜 가시려고……?”

 

대답하던 영호승이 묘한 눈빛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혹시… 무창에 가시려는 거 아닙니까?”

 

이무환은 영호승을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다가 갑자기 한숨을 터뜨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에휴… 뭐, 말해봐야 믿지도 않겠지만, 나에게는 그냥 꼬맹이일 뿐이야.”

 

당연히, 영호승은 이무환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추궁하지도 않았다.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은 그냥 넘어갈 이무환이 아니었다.

 

‘휴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괜히 무창 이야기를 꺼내서…….’

 

가만히 숨을 내쉰 영호승은 무조건 믿는다는 표정을 지은 채 또박또박 말했다.

 

“여긴 제가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걱정 말고 다녀오십시오, 총대주.”

 

그러고는 이무환이 말꼬리를 잡기 전에 재빨리 방을 나갔다. 영호승의 뒤통수를 노려보던 이무환은 방문이 닫히자 옷을 흑의로 갈아입었다.

 

‘분명히 나를 약 올리려고 한 말일 거야. 어디 갔다 와서 보자, 멋쟁이. 내 폭령잠마영단의 약효를 확실하게 퍼뜨려 줄 테니까.’

 

창문을 통해 방을 빠져나가자 반달보다 조금 큰 달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꼭 꼬맹이가 슬그머니 훔쳐보는 것 같았다.

 

‘이틀만 기다려라, 꼬맹아.’

 

암영무류를 펼친 이무환은 곧장 서쪽으로 날아갔다.

 

누구도 어둠 속에 묻힌 그의 움직임을 잡아내지 못했다.

 

 

 

2

 

 

 

서쪽 성벽에서 이십여 장가량 떨어진 곳에 조성된 작은 숲.

 

그 숲의 넓이는 기껏해야 천 평 정도에 불과했는데, 소나무와 전나무 등 사시사철 푸른 잎을 지닌 나무만이 심어져 있었다.

 

꽃나무 한 그루 없는 숲. 그래선지 구룡성 사람들은 그곳을 무화림(無花林)이라 이름 붙였다.

 

이무환이 지나가는 밤새의 그림자처럼 무화림으로 스며든 것은 인시가 거의 다 지나갈 무렵이었다.

 

그는 무화림의 한가운데 공터에 내려서서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곧 소나무 뒤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주용천이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주용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순찰을 핑계로 잠시 나왔네. 시간이 없으니 몇 가지만 짧게 묻겠네. 우선 하나, 내가 자네와 함께 갈 경우 뭐가 달라지는가?”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질 겁니다. 그리고 떳떳하게 하늘을 볼 수 있겠죠.”

 

“자네가 정말 그들을 이길 수 있다고 보나?”

 

“내가 아니라도 이대로 가면 신룡부는 무너질 수밖에 없죠. 아니, 주가가 무너진다고 해야 하나요?”

 

주용천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무슨 뜻인가?”

 

“신룡부의 적이 나 하나만이 아니라는 말이죠.”

 

“음, 자세히 말해주었으면 싶군.”

 

이무환은 주용천에게 다가가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수룡단주 호연청에 대해서 얼마나 알죠?”

 

“알 만큼은 아네.”

 

“창룡과 검룡조차 그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건 알고 있나요?”

 

“글쎄, 내가 알기로는 동방휘가 그들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아네만.”

 

이무환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마 주 단주님이 알고 계신 거와는 많이 다를 겁니다.”

 

“으음…….”

 

침음성을 흘리며 반신반의하는 주용천이다. 이무환은 그런 주용천을 향해 마지막 적에 대해 말해주었다.

 

“좌우간 그는 그렇다 치고……. 설마 주 단주께선 천세도인이 항상 뒤에 있을 거라 보는 건 아니겠지요?”

 

주용천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뒤틀렸다.

 

“설마… 그가 배신할 거라 보는 건가?”

 

“배신이 아니죠. 원래 목적이 그것일 테니까요. 그는 분명 모든 일이 결정되면 곧바로 주 부주를 제거할 것입니다.”

 

순간 주용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자넨 형님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가? 설령 자네 말이 사실이라 해도, 형님은 결코 천세도인에게 쉽게 당할 분이 아니시네.”

 

이번에는 이무환의 표정이 굳어졌다. 단순히 주용천의 주백천에 대한 믿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은 과연 주백천을 얼마나 아는 걸까?

 

문득 그 생각이 든 것이다.

 

자신이 주백천에 대해 아는 것은 수룡단에 있는 인물편, 자신이 직접 본 인상과 자신이 직접 느껴본 기운, 그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주백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너무 성급하게 판단했나? 가만, 그렇다면 호연청도……?’

 

하지만 그리 말하면, 수십 년간 어둠에 숨어 있던 천세도인은 더욱더 알 수 없는 자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짙은 안개가 눈앞을 가리고 있다. 곧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한순간에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오리무중의 상태가 되어버린 느낌.

 

다만 한 가지. 그 와중에도 이무환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주백천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 해도 결과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제가 잘못 판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 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호연청과 천세도인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주용천도 그 말에는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어두워진 표정으로 이를 지그시 악문 채 말을 이어가는 이무환만 바라볼 뿐이었다.

 

“주 단주에게 배신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형제끼리 검을 들이대고 싸우라는 것도 아닙니다. 신룡부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과 주가의 앞날을 생각해서 잠시 눈을 돌리라는 것이죠.”

 

주용천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는 결심을 한 듯 잇새로 신음처럼 물었다.

 

“그 일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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