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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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51화
151화
제1장. 허허실실(虛虛實實)
1
딸랑! 딸랑! 딸랑!
급박하게 울리는 방울 소리. 수하점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뭐, 뭐야?”
“무, 무슨 일이오?”
물건을 둘러보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수하점의 무사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수하점의 무사들 역시 정확한 상황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즈음 백귀가 뛰어들 듯이 당호민의 방으로 들어섰다.
“침입자가 있습니다, 어르신.”
방울이 쉬지 않고 울릴 때부터 짐작하고 있던 일. 당호민은 침착한 표정으로 물었다.
“몇 명이나 되느냐?”
“열 명이 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기관이 빠르게 뚫리고 있습니다.”
당호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딸랑, 딸랑…….
말을 나누는 사이에도 방울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린다. 기관이 부서지고 있다는 뜻.
그만큼 강한 자들이라는 말이다.
이곳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황.
“일단 손님부터 내보내라.”
“지금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때 남궁산산이 들어왔다.
“침입자인가요?”
“그렇단다. 기관이 계속 부서지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보통 놈들이 아닌 것 같다. 일단 몸을 피하고 보자.”
남궁산산의 두 눈에서 한광이 일렁였다.
당가의 원로인 당호민이 피하자고 할 정도면 그만큼 강한 자들이라는 말이다.
“따로 피할 곳이 있나요?”
“비밀 통로를 통해서 빠져나가야 할 것 같다.”
“그곳도 적들에게 막혔을지 몰라요. 아니, 막혔을 거예요.”
“하지만 이곳에서 저들과 맞서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모두 몇 명이나 있죠?”
“삼십 명 정도 된다만, 그들로는 막을 수 없을 것 같구나.”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을 거예요.”
당호민의 눈빛이 흔들렸다. 단 하루, 남궁산산이 얼마나 똑똑한지 아는 데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머리가 똑똑하다고 해서 모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저들의 목표는 산산이일 게야. 정 안 되면 이 아이라도 살리는 수밖에…….’
당호민이 그런 생각을 하며 이를 지그시 악물 때였다.
남궁산산의 눈에서 일렁이던 한광이 사이할 정도로 번들거렸다.
“안은 저에게 맡기고, 백귀 아저씨는 수하들과 함께 통로를 막으세요.”
백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수하들만으로 막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적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두 사람이 피할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런데 돌아서려는 백귀의 고막에 남궁산산의 전음이 울렸다.
“적이 들어오거든 제 말대로 하세요. 일단 밝은 횃불을 준비하시고…….”
백귀는 남궁산산의 말대로 이십 명의 무사를 이끌고 통로를 막았다.
이미 통로를 지키던 열 명의 무사는 저들에게 당했다고 봐야 했다. 이들마저 당한다면 남은 사람은 당호민과 남궁산산뿐이었다.
이를 악문 백귀는 초승달처럼 휘어진 작은 칼을 들고 적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밀랍처럼 창백한 그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하얗게 보였다.
‘어르신 덕분에 십오 년을 더 살았다. 죽는다 해도 아쉬울 것 없지. 어디 와봐라!’
바로 그때였다.
쾅!
석문이 부서지며 귀조가 통로 안으로 들어왔다.
귀조는 앞을 막고 있는 백귀를 보고 싸늘히 웃으며 명을 내렸다.
“쓰레기들을 치워라!”
붉은 안개가 안으로 밀려들었다.
그와 동시, 백귀의 양옆에 있던 두 사람이 들고 있던 횃불을 꺼버렸다.
순간, 암흑천지가 되어버린 통로에 백귀의 목소리가 울렸다.
“함께 죽자, 이놈들!”
당악은 수하점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대경했다.
“놈들이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사도종이 다급히 소리쳤다.
“안내하게!”
당악은 부서진 비밀 문을 넘어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황산검문의 사람들도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당악은 바닥에 떨어진 횃불을 하나 집어 들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십여 장을 가기도 전에 서너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횃불에 비친 시신들은 심장이 뚫리고, 목이 반쯤 잘린 채 구석에 처박힌 상태였다.
“개새끼들!”
당악은 이를 으드득 갈며 빠르게 통로를 통과했다.
통로의 벽이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는데, 그 안에도 심장이 뚫린 시신이 한 구씩 들어 있었다.
사도종은 적의 손속을 짐작하고 황산검문의 제자들에게 소리쳤다.
“엄청난 고수가 끼어 있다! 모두 조심하도록 해라!”
스릉! 챙!
황산검문의 제자들은 모두 검을 빼 들고 몸을 낮췄다.
이십여 장을 들어가자 벽을 타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비명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였다.
“가자! 놈들이 앞에 있다!”
수하들의 비명이 통로를 울린다.
백귀는 입술을 깨물고 손에 들린 칼을 휘둘렀다.
“얼마든지 와라!”
그의 전신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끈적거리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만큼은 여전히 싸늘했다.
“지독한 놈!”
귀조는 노성을 내지르곤 스윽, 일보를 내딛었다.
불이 갑자기 꺼지는 바람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암흑이라 해도 적을 구분하는 것 정도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밝던 곳이 어두워지니 모두가 장님이 된 상태였다.
감각만으로 상대해야 할 상황.
그때 놈들이 무차별적으로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감각만으로 한꺼번에 달려드는 적을 상대한다는 게 쉬울 리 없었다. 그 바람에 하찮은 놈들을 제거하는 동안 세 명의 수하가 덧없이 죽었다.
어찌 분노가 일지 않으랴!
일보를 내딛은 그는 백귀의 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쉬익!
백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손에 들린 칼을 열십자로 휘둘렀다.
쩌정!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며 백귀의 칼이 옆으로 튕겨졌다.
순간 귀조의 갈퀴처럼 구부러진 손가락이 백귀의 가슴을 찍어갔다.
백귀는 다급히 왼손을 들어 귀조의 손가락을 막았다.
콰직!
귀조의 손가락이 백귀의 팔을 잡더니 그대로 부러뜨려 버렸다.
백귀는 신음 한마디 흘리지 않고, 튕겨진 칼로 다시 귀조의 목을 노렸다.
귀조는 좌수를 뻗어 칼날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우수로 백귀의 팔꿈치를 움켜쥐고 힘을 주었다.
와득!
백귀의 팔뼈가 으스러지며 힘없이 꺾였다.
눈을 부릅뜬 백귀는 발로 귀조의 허리를 후려 찼다.
그러자 귀조는 백귀의 발마저 잡아 부러뜨려 버렸다.
우두둑!
“으아아아!”
백귀는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귀조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덥썩!
귀조는 백귀의 목을 움켜쥐고 냉혹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들어가서 나머지 놈들을 처리해라.”
이미 적을 모두 처치한 상황. 아홉 명의 혈의인은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쪽을 향해 달려갔다.
귀조는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있는 백귀를 향해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참으로 징그러운 놈이지만, 네놈의 투지만큼은 높게 사주마.”
“크르륵, 죽여… 개새…….”
“흐흐흐. 걱정 마라, 깨끗하게 죽여줄 테니까.”
그때 문득, 뒤쪽 통로 안에서 소란스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희미한 빛이 밀려들었다.
귀조는 백귀의 목을 잡은 채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당악과 황산검문의 사람들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백귀 아저씨!”
“멈춰라!”
동시에 싸늘한 검기가 귀조를 향해 밀려들었다. 당악의 바로 뒤를 따르던 담환이 다급한 김에 신검합일로 몸을 날린 것이다.
귀조는 백귀의 목을 부러뜨릴 것인지 찰나간에 고민했다.
죽이는 것이야 손에 힘만 주면 될 일이었다. 숨 한 번 쉴 시간도 필요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차이가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더구나 뒤에서 밀려드는 검기는 단순한 검기가 아니었다.
죽어가는 놈 하나 끝장내자고 위험을 자초할 수는 없는 일. 귀조는 백귀의 몸뚱이를 한쪽으로 밀치면서 그 힘을 이용해 옆으로 석 자가량 몸을 피했다.
순간 담환의 검이 귀조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귀조는 손을 옆으로 뿌리며 담환의 검을 쳐냈다.
땅!
담환은 훌쩍 여섯 자가량을 물러서서 검으로 귀조를 가리켰다.
귀조는 상대의 강함을 알고 눈살을 찌푸렸다.
강철조차 부러뜨리는 자신의 손이 저릿했다. 자신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강함이다.
‘이놈들은 또 뭐야?’
문제는 그런 자가 한두 명이 아니라 적어도 이십 명은 되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놈들이지?’
그때 담환의 검에서 시퍼런 검강이 죽 뻗어 나왔다.
귀조는 우뚝 서서 두 손에 공력을 집중시켰다.
자신보다 좀 약해 보이긴 해도 큰 차이는 아니었다. 그런 놈들이 통로를 꽉 메우고 있었다.
‘제기랄!’
놈들을 모두 이길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만 끈다면, 수하들이 목표물을 잡을 것이었다. 그러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훗, 통로가 좁다는 게 이럴 때는 유리하군.’
바로 그때 각소산이 소리쳤다.
“사정 볼 것 없다! 시간이 없으니 합공을 해서라도 뚫어라!”
담환에 이어 백리성혼과 공은효가 나섰다.
세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귀조를 향해 달려들었다.
통로에 검풍이 일며 세 줄기 검강이 귀조를 향해 뻗어갔다.
귀조는 유령처럼 몸을 날리며 세 사람의 공격을 피했다.
공간이 좁다는 점은 귀조에게 유리함과 불리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상대의 진출을 막을 수 있는 반면, 자신 역시 마음대로 몸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전면만 막으면 된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귀조는 간간이 반격을 가하며 세 사람의 전진을 막았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세 사람의 합공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십여 초가 지날 즈음, 귀조가 주춤거리며 물러서기 시작했다.
합공에 밀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쯤이면 안으로 들어간 수하들이 그 계집을 잡았을지 몰랐다. 아직도 잡지 못했다면 수하들에게 이들을 맡기고 자신이 잡는 게 나을 것이었다.
어쨌든 귀조가 물러서자 세 사람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뒤에서 그 광경을 보던 사도종을 비롯한 황산검문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담환과 백리성혼은 차대 황산제일검의 자리를 다투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 둘에 공은효까지 합세했는데도 승부가 바로 나지 않다니!
새삼 잠풍련의 가공할 힘이 느껴졌다. 저 안에 저런 자가 또 있다면 많은 희생을 각오해야 할 터. 표정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귀조가 음침한 귀소를 흘리며 안쪽으로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흐흐흐, 죽고 싶으면 어디 들어와 봐라!”
뒤에서 비치는 횃불로 인해 그림자가 너울거렸다. 사방에는 죽은 사람들의 시신으로 가득했다.
바닥을 흐르는 검붉은 선혈이 횃불에 반사되어, 저 안쪽이 지옥으로 통하는 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언제 어디서 암습이 있을지 모르는 일. 사도종은 이를 악물고 잇새로 소리쳤다.
“놈들이 숨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서 쫓아라!”
황산검문의 제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백귀 아저씨!”
그때 당악이 백귀에게 달려갔다. 죽은 줄 알았던 그가 꿈틀거리는 것이 아닌가.
당악이 다급히 백귀를 안아 들자, 백귀가 눈을 뜨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어서……. 안에 어르신과 아가씨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간 귀조는 걸음을 멈추었다.
어이가 없었다. 안쪽을 모두 정리했을 거라 생각한 수하들이 제법 넓은 지하 광장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대체 뭐 하는 것이냐?!”
귀조의 노성에 혈의인 중 하나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바로 앞에서 두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그 바람에…….”
“뭐야?!”
귀조가 대답한 혈의인에게 명을 내렸다.
“네가 가봐라, 구호!”
구호라 불린 혈의인은 입술을 깨물고 세 사람이 사라진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다섯 걸음쯤 걸었을 때였다.
스스스스…….
갑자기 구호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귀조는 그제야 뭔가를 깨닫고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기문진?!”
설마 잡다한 물건이 널려 있는 곳에 기문진이 설치되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빌어먹을!”
기관뿐만이 아니라 기문진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그다.
그러나 앞에 있는 기문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한 통과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뒤에서 쫓아오는 자들이었다.
“너희들은 뒤를 막아라! 앞은 내가 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