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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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50화
150화
이무환이 의당을 나온 것은 들어간 지 반 시진 만이었다.
그는 창룡전으로 돌아오자마자, 창룡부의 간부들을 향해 자신의 판단을 말했다.
“부주님의 상흔을 자세히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살해에 사용된 무기는 넓이 두 치 세 푼, 길이는 날만 한 자반 이상의 검으로 추정되오. 그 검이 등을 통해 심장을 부순 후 혈맥을 조각조각 터뜨렸소. 옷의 갈라진 부분이 가루가 된 것으로 봐서 범인의 무위는 검강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경지로 추측되는데, 특정한 무공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오.”
막연한 말이었다. 그러한 검은 헤아릴 수없이 많고, 그 정도의 무위를 지닌 자는 구룡성에만도 수십 명은 되었다.
창룡부의 간부들은, 그 정도는 자신들도 알고 있다는 듯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이무환은 그걸 보고도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문제는 부주님이 대항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이오. 그걸로 봐서 범인은 부주님과 매우 가까운 사이일 거라는 것이 본인의 판단이오.”
일순간 조롱에 가깝던 표정들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당신들 중에 범인이 있다!
그런 말처럼 들린 것이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나?”
여건평이 고요히 가라앉은 눈으로 이무환을 직시했다.
이무환은 무심한 눈으로 여건평을 마주 보며 고개를 한 번 까닥였다.
“물론이오. 호법들마저 물리고 한밤에, 그것도 창룡부 내의 외진 곳에서 만날 만한 사람, 등으로 검이 파고들 때까지 부주님을 안심하게 할 만한 사람이 창룡부의 사람들 말고 누가 있겠소?”
그럴 만한 사람이 외부에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중 창룡부를 아무도 몰래 방문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여건평은 당장 반박을 하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 외에 다른 증거는 찾지 못했는가?”
이무환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건평을 바라보았다.
“이보쇼. 이제 시작했는데 뭘 더 바라는 거요?”
“그 정도로는 범인을 찾을 수 없지 않겠나? 만일 대주의 말대로 본 부의 누군가가 범인이라면, 뭔가 더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 할 것이네.”
“물론 그렇게 할 것이오. 단, 창룡부에서 최대한 협조를 해준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말이오.”
“지나친 요구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협조하지.”
그 말에 이무환이 피식 냉소를 지었다.
“요구를 가려서 들어주겠다는 말씀 같은데… 뭘 착각하고 있군요. 내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협조요.”
“무조건적인 협조? 특조대의 말에 무조건 따라달라는 말인가?”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부주의 죽음인만큼 사건 조사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특조대에 있다는 걸 모르는 거요?”
“훗! 그러니까, 그대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걸 다 해달라는 거군.”
“거참, 같은 말을 두 번씩 하게 하네. 별로 좋은 버릇은 아닌데…….”
이무환의 투덜거림에 여건평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이십대 후반의 백의청년이 발끈하며 나섰다. 여후량의 셋째 제자인 온현이라는 자였다.
“아무리 특조대주라 해도 너무 무례한 것이 아닌가? 대공자께선 곧 창룡의 주인이 되실 분이네! 예의를 갖추게!”
창룡의 주인?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물론 확정되었다 해도 이무환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무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더욱 냉랭해졌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만일 조사를 방해하거나 협조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그냥 내 방식대로 밀어붙일 거요.”
온현의 목소리도 날카롭게 날이 섰다.
“본 부의 사람들을 잡아가기라도 하겠단 말인가?!”
그뿐만이 아니라 창룡부의 모든 사람들이 싸늘한 눈으로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이무환은 꿈쩍도 않고, 오히려 턱을 치켜들었다.
“그렇게 못할 것도 없지. 누구든 내 말이 미심쩍으면 마음대로 해봐. 당장 잡아갈 테니까.”
순간이었다.
쾅!
원로 중 한 사람, 동화민이 주먹 쥔 손날로 탁자를 후려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미쳤다고 하더니, 참으로 건방지기 짝이 없는 놈이로구나! 그래, 어디 이 늙은이를 잡아가 봐라!”
“부주님을 살해한 범인을 잡는 데 도와주지 않겠다는 거요?”
“흥! 범인은 당연히 잡을 것이다! 다만 네놈과 함께하지 않겠다는 것뿐이지!”
이무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여건평을 바라보았다.
“당신도 마찬가지 생각이오?”
“만일 그렇다면?”
“그럼 좀 복잡해지겠군. 일단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 가둔 후에 조사를 해야 할 테니까.”
설마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여건평의 눈이 가늘어졌다.
“우리 모두를?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이무환이 뇌정갑을 낀 손을 만지작거리며 씨익 웃었다.
“못할 것도 없지.”
그때였다.
“어디 소문만큼 강한지 한번 보자!”
온현이 소리치더니 갑자기 신형을 날렸다.
두 사람의 거리는 기껏해야 사 장. 단숨에 삼 장의 거리가 좁혀졌다.
일수만천이라 불리던 여후량의 제자답게 온현은 강맹한 기운이 실린 쌍수를 휘두르며 이무환을 덮쳤다.
이무환은 온현이 코앞에 이르러서야 두 손을 쫙 펼치고 온현의 손그림자 사이로 파고들었다.
쾅!
단발의 굉음이 창룡전을 흔들었다.
동시에 온현의 신형이 달려들 때보다 더 빠르게 튕겨졌다.
“크억!”
창룡부의 사람들은 단 일수에 허공으로 튕겨진 온현이 바닥에 떨어진 후에야 대경한 표정으로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광룡의 무위를 확인할 겸 온현을 말리지 않았다.
물론 온현이 광룡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들도 알았다. 그래도 십여 초는 상대할 줄 알았거늘, 설마하니 단 일수를 받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줄이야.
“원래는 죽여야 하는데, 팔목만 분질렀어. 하지만 봐주는 건 여기까지야.”
이무환도 그들의 뜻을 모르지 않았다.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면 혼자 덤벼들게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걸 알고도 단숨에 때려눕힌 것은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뺏기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 구룡성주 선출일이 하루 한나절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할 거요. 수룡단의 뇌옥을 구경해 보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말하쇼. 친절하게 안내해 줄 테니까.”
이무환은 창룡부의 간부들을 주욱 훑어보고는, 여건평에게서 시선을 멈추었다.
눈이 마주치자 여건평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좋아, 최대한 협조해 주지. 대신 내일 저녁까지 증거를 하나라도 찾아내 주게. 설마 그럴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
이무환은 여건평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게 해주겠다니 고맙군요. 그렇다면 나도 내일 저녁까지 증거 하나쯤은 보여주지요.”
그러고는 표정이 굳어 있는 사람들을 빙 둘러보았다.
“조사는 사람이 모여 있는 이곳부터 하지요. 지금부터 간단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첫째, 유시 말 경에서 술시 초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누가 증명해 줄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곽 장로님부터 시작하지요.”
대꾸할 사이도 없이 빠르게 말을 맺은 이무환의 눈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곽운산을 향했다.
곽운산은 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두 가지 질문을 하나의 대답으로 해결했다.
“나는 그 시간에 평운경 장로와 함께 있었네. 구룡성주 선출일이 이틀도 남지 않아서 이런저런 상의를 했지.”
이무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노곽을 바라보았다.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노곽이 노기를 씹어 삼킨 표정으로 대답했다.
“방 안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보고 있었네. 시비가 두 번이나 차를 가져다주었으니 의심스러우면 시비에게 물어보게나.”
이후는 자동으로 이무환의 눈이 향하면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빨리 대답을 마무리하고 이무환을 내보내겠다는 듯.
덕분에 이각이 지날 즈음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대답하고 여건평과 육도산만이 남았다.
“대공자.”
이무환의 눈이 향하자 여건평이 대답했다.
“나는 항상 유시에서 술시까지 지하 수련실에서 저녁 운기를 하네. 그러다 보니 아쉽게도 나를 본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지.”
지하 수련실에서, 그것도 항상 그렇게 했다면 현장 부재에 대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이유는 되어도 혐의를 완전히 벗은 것은 아니었다.
이무환은 일단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리고, 육도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육도산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일각가량 후원을 거닐었다. 그 후에 원로들과 함께 차를 마시는데 궁주의 피살 소식이 전해지더군.”
“후원을 산책할 때 본 사람이 있습니까?”
“없다. 왜? 범인이 나일 것 같으냐?”
“그거야 조사해 보면 알 일이지요.”
“흥! 어디 마음대로 조사해 봐라. 나는 떳떳하니까.”
육도산이 코웃음을 날리며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그때 육도산을 빤히 바라보던 이무환이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금년 춘추가 어떻게 되십니까?”
“아흔둘이다. 이제 나이도 문제가 되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 그쯤 되시면 성질 좀 가라앉힐 때 되지 않았습니까?”
“뭐, 뭐야?”
“우리 아버지가 그러는데 말입니다. 구룡성에는 나이 먹고 성질 사나운 노인들 많으니 조심하라고 하더군요. 한데 노인장을 보니 문득 아버지 말이 생각나지 뭡니까?”
사람들이 일제히 이무환을 바라보는데, 어떤 사람은 입을 살짝 벌리고, 어떤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당사자인 육도산은 말할 것도 없었다.
눈을 부릅뜬 그는 노기가 가득한 목소리를 더듬었다.
“네, 네놈이……!”
하지만 이무환은 볼일 다 봤다는 듯 몸을 돌렸다.
“자, 이제 다른 사람을 조사하러 갑시다.”
육도산은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차마 등을 보인 이무환을 공격하지는 못했다.
그사이 이무환은 벙찐 표정을 짓고 있는 일행을 이끌고 창룡전을 나섰다.
5
“저곳입니다.”
귀조는 수하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저만치 어둠 속에 작은 장원이 보였다. 불빛도 없어 음침하게만 보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귀조의 감각에는 적지 않은 사람의 기척이 잡혔다.
“이호, 귀살당의 사람들을 다 모으는데 얼마나 걸리겠느냐?”
“일각이면 충분합니다.”
“다섯 명을 빼서 뒤쪽을 감시하라고 해라. 분명 비상구가 있을 것이야. 수상한 놈이 보이면 모두 죽이도록. 우리의 목적인 계집 하나만 빼고.”
“예, 당주.”
귀조는 이호가 떠나가는 것을 보지도 않고 전면만 응시했다.
‘후후후, 저 까짓 놈들 쯤이야……. 오랜만에 피맛 좀 보겠군.’
당악은 주귀를 아느냐며 묻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척 봐도 강한 자들이었다. 그러한 자가 스무 명이 넘어 보인다.
왜 자신을 찾는 걸까?
확실한 것을 알기 전에는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일. 그는 술을 마시는 척하며 황산검문의 사람들을 훔쳐보았다.
그런데 눈치없는 작자 하나가 슬쩍 자신을 향해 눈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저런 멍청한 놈!’
그는 비틀거리는 시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자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가 홍루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한 사람이 앞으로 날아내렸다.
“자네가 주귀인가?”
공은효의 질문에 당악이 게슴츠레한 눈을 들어 대답했다.
“주귀? 그야 술귀신이 다 주귀지 별거있겠수?”
“글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보더군. 주귀가 누구냐고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그거야 그 사람들 생각이고, 내 생각은 또 다르죠. 꺼억…….”
당악은 짐짓 트림까지 해가며 술 취한 시늉을 했다.
하지만 공은효는 그의 행동에 돌아설 생각이 없는 듯 담담히 물었다.
“수하점을 알고 있겠지?”
“수하점? 그곳이 뭐 하는 곳인데요?”
당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완벽한 연기를 했다. 공은효조차, 정말 눈앞에 있는 자가 자신들이 찾는 주귀가 아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한쪽에서 담환이 불렀다.
“공 사제, 저쪽으로 가보세.”
공은효는 당악을 한번 더 바라보고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광룡이 용강통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슬그머니 뒤로 몸을 빼내려던 당악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광룡이 그랬다고?’
당악은 돌아서서 걸어가는 공은효의 등 뒤에 대고 나직이 물었다.
“정말 그가 그랬소?”
공은효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랬네. 자네, 주귀가 맞지?”
당악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공은효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왜 주귀를 찾는 거요?”
“우리는 황산검문의 사람들이네. 그를 만나면 우리를 수하점으로 데려다 줄 거라고 하더군.”
황산검문? 당악의 눈빛에서 흐릿한 빛이 사라졌다.
“수하점은 왜 가려고 그러는 거요?”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질문만 해댄다. 그러나 공은효는 기분 상하지 않은 표정으로 담담히 대답했다.
“우리가 보호해야 할 사람이 거기에 있다고 해서 가려는 거네.”
“보호해야 할 사람? 그게 누군데……?”
“약초에 대해 아는 사람. 그리고 여자아이 하나라네.”
모든 게 정확하다. 상대의 맑은 눈빛이 보니 해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광룡이 보낸 사람이라 하지 않았는가.
당악은 주위를 둘러보고 나직이 대답했다.
“오늘 수상한 자들이 얼씬거려서 모른 체했던 겁니다. 이해하십시오.”
“수상한 자들?”
“조금 전까지 얼씬거렸는데 갑자기 다 없어졌습니다.”
순간 공은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들이 온 목적이 뭔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가?”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다 갑자기 사라져서 잘 모르고 있…….”
당악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공은효가 급히 일행들을 불렀다.
“사숙, 사형! 이리 오십시오!”
그러고는 다급히 당악에게 말했다.
“수하점이 어딘가? 빨리 가세! 놈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면 그곳을 노릴지도 모르는 일이네!”
그제야 당악의 두 눈이 커졌다. 막연하던 불안감이 와락 온몸을 덮쳤다.
“따라오십시오!”
우두둑!
무사 하나의 팔을 단숨에 꺾어버린 귀조의 입가로 싸늘한 조소가 번졌다.
그의 주위에는 선혈이 낭자한 네 구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가 끽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사지가 찢어져 죽은 상태였다.
“안내해라. 제대로 안내하면 살려주마.”
팔이 꺾인 무사는 고통과 두려움에 벌벌 떨며 걸음을 옮겼다. 아마 안에서는 이들이 죽은 것조차 모를 것이 분명했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아혈이 제압당한 그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저들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자신의 동료처럼 처참하게 죽을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콰직!
곧 비밀 문이 강제로 부서졌다. 동시에 십여 명의 붉은 살귀가 컴컴한 지하 계단 안으로 안개처럼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