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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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47화
147화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 중 몇 사람은 반쯤 입을 벌린 채 질렸다는 눈으로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여후량 역시 마찬가지 마음이었다.
‘도대체가…….’
마흔한 명을 추려낸 것은 그만한 확신이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말 몇 마디로 잠풍련의 간자 열넷을 추려내더니, 이번에는 가볍게 던진 거짓말, 아니, 거짓인지 진실인지조차 알 수 없는 몇 마디로 두 명을 더 추려냈다.
보고 있자니 그조차 몸이 으슬으슬 떨릴 지경이었다.
‘다섯이 남았다는 말은 사실일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광룡만이 알뿐.
바로 그때, 이무환이 오른쪽의 열여섯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걸친 채.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약속만큼은 철저히 지켜. 당신들은 목숨도 건지고, 무공도 보존한 채 구룡성을 나갈 수 있을 거야.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나, 광룡이 약속하지. 만일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싸워서라도 당신들은 무사히 내보내주겠어.”
열여섯 사람이 고개를 쳐들고 이무환의 입만 바라보았다.
솔직히 열 중 두셋의 믿음만을 가지고 우측으로 나왔다. 그나마도 그렇게 하는 게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구룡성 제일의 풍운아 광룡이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한다.
비록 완전한 믿음은 아니라 해도 반 정도는 믿음이 싹텄다.
그러한 마음으로 한 사람이 물었다.
“정말…이오?”
“물론이지! 단, 아까도 말했지만 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 줘야 한다는 전제가 달려 있긴 하지만.”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좋소. 뭐든 대답하겠소.”
이무환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믿어주니 고맙군. 흠, 그럼 첫 번째 질문을 모두에게 하지. 제대로 대답한 사람은 자그마한 상도 있을 거야. 원하면 그 사람만 따로 밖으로 빼내줄 수도 있고.”
열여섯 사람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상이라니!
그들에게는 이무환이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디 이런 눈길을 한두 번 받아봤나?
이무환은 별일도 아니라는 듯 여전한 표정으로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자, 첫 번째 질문!”
사람들이 일제히 이무환의 입을 주시했다.
이무환이 스윽,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저기 남은 사람들 중 잠풍련의 사람이 누구지?”
순간이었다.
벙 찐 표정을 짓고 있던 열여섯 중 한 사람이 재빨리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오!”
그러자 뒤질세라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저기 유 조장도 잠풍련의 사람이오!”
“저기 고 당주도…….”
순식간에 스물다섯 사람 중 일곱이 지적을 당했다.
창룡부의 간부들은 물론이고, 특조대와 수백 명의 무사들마저 눈을 왕방울만 하게 떴다.
여후량이 입을 쩍 벌리고 더듬거렸다.
“마, 맙소사! 정말 기가 막히군!”
이무환이 뒤에 서 있는 무설강 등을 향해 명을 내렸다.
“제압하쇼! 저항하는 놈은 죽여도 상관없어!”
그러고는 지적당하지 않은 열여덟 사람을 향해서도 소리쳤다.
“뭐 해! 죽고 싶어? 나머지는 한쪽으로 물러서든지, 아니면 그자들을 제압해!”
지적당하지 않은 열여덟 명이 일제히 일곱 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항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이무환의 마지막 말이 그들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저항하는 놈은 죽여도 상관없다는 말인즉, 저항하지 않으면 죽이지 않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 저항이 약해진 덕에 죽은 사람은 셋에 불과했다. 그리고 넷이 생포되었다.
다행히 지적당하지 않은 열여덟 명은 큰 부상을 입지 않았는데, 그들 중 몇 사람이 절정의 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끝나자 공수양이 씩씩거리며 이무환에게 다가갔다.
“이제 사과하게! 내 명예가 실추된 만큼 반드시 자네의 사과를 받아야겠네!”
그뿐이 아니었다. 그동안 참고 있었던 몇 사람이 이무환을 노려보며 사과하기를 기다렸다.
사과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태세다.
하지만 이무환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
“여러분들이 거기에 끼어 있어서 저들을 순조롭게 제압할 수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면 됐지요. 뭐, 사과를 원하신다면 하겠습니다만…….”
옆에서 이무환의 말을 듣고 있던 여후량이 악을 쓰듯 물었다.
“혹시 고의로 저 사람들을 포함시킨 것 아닌가?”
“괜찮은 방법 아니었습니까? 왜요? 부주님도 제 사과를 받고 싶으신 겁니까?”
여후량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2
이무환은 지체없이 잠풍련의 간자들을 수룡단으로 압송했다.
그러고는 순순히 투항한 간자들에 대한 심문을 자신이 직접 맡았다.
사람이 스물이나 되었지만, 복잡할 것도 바쁠 것도 없었다. 열여섯 명을 한꺼번에 심문했으니까.
이무환은 그들을 심문하기 전에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의 대답이 잘못된 걸 지적하면 그때마다 은자 이십 냥의 도주 자금을 줄 거야. 그리고, 보다 좋은 정보를 건네주는 사람 다섯 명에게는 백 냥을 주겠어.”
처음에는 미심쩍어하며 대충 대답했다. 오자마자 품속에 있는 것마저 모두 뺏어간 사람이 돈을 주겠다니.
혹시 풀어주겠다는 것도 거짓말 아닐까? 그런 의심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무환이 정말로 은자를 내놓자,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사람의 잘못된 말을 지적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은밀히 도주하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한데, 이무환에게 있던 것마저 빼앗겨 빈손인 상황이었다.
더구나 어차피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 망설일 것도 없었다.
이무환은 그들의 대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은자를 펑펑 풀었다.
물론 오늘 들어간 돈은 모두 호연청에게 받아면 되니 이무환으로선 아까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기왕이면 편하게 도망치는 게 낫지. 왜, 풀어준다는 게 안 믿어져? 걱정 마. 지금까지 약속을 어긴 적은 없으니까.”
그렇게 일각가량 시간이 지나자, 나중에는 차례를 지켜 말해야 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자자, 순서를 지키라고. 다음 사람, 말해봐. 어떤 정보가 있지?”
사실 그들에게서 중요한 정보를 얻어낸다는 건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을 이용함으로써 잠풍련의 하위 조직을 흔들어보자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가끔은 생각지도 못했던 중요한 정보가 나왔다.
당연히, 이무환은 그 정보를 말한 사람들에게 백 냥씩의 상금(?)을 주었다.
반 시진 후.
단숨에 천 냥이 넘는 돈을 쓴 이무환은 뇌옥을 나와 특조대를 소집했다. 그리고 뇌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수룡단의 옷을 입힌 후 특조대 사이사이에 섞었다.
“자, 외성을 한 바퀴 돌고 오자고! 자유를 찾아 떠나려는 사람들인데 환송은 해줘야 하지 않겠어?”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이무환은 미처 잠풍련이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전에 열여섯 명을 빼돌렸다.
어쩌면 그들을 추적하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걸 바랄지도 몰랐다. 그러면 추적하는 수만큼 구룡성 안에 있는 잠풍련의 무사들 수가 적어질 테니까.
“소문을 낼까? 그럼 적어도 백 명은 빠져나갈지 모르는데.”
이미 단련이 되어 그러려니 하던 사람들조차 그 말에는 눈을 힐끔거렸다.
3
환비는 두 손을 깍지 끼고 턱을 괸 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쫓아야 하지 않겠나, 사제?”
금철종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듯 그는 일각 이상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답답해 죽겠군! 너무 멀어지면 잡지도 못할 거네! 어때? 내가 따로 쫓을까?”
천천히 고개를 저은 환비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니? 배신자들을 그냥 놔두면 본 련의 무사들이 흔들릴지 모르네. 반드시 잡아서 죽여야 되네, 사제!”
금철종이 강력하게 자신의 주장을 고집했다.
그러나 환비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금철종을 응시했다.
“쫓을 수도, 쫓지 않을 수도 없는 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광룡이 이런 잔머리를 쓰다니, 뜻밖이군요.”
금철종이 잔뜩 인상을 쓰며 물었다.
“사제, 왜 쫓으면 안 된다는 건가?”
“그들을 쫓아서 잡으려면 적어도 백 명의 인원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요?”
“백 명 정도 동원하는 거야 어려울 것이 없지 않은가?”
환비가 조금 짜증나는 눈빛을 지었다.
“많은 인원은 아닙니다. 하나 적은 인원도 아니지요. 그들이 나가면 그만큼 공백이 생깁니다. 더구나 밖에서 당하기라도 하면 문제가 더 커지지요. 아마 광룡은 지금 우리가 움직이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사형은 놈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생각이십니까?”
그제야 이해가 되는지 금철종이 움찔했다.
“하지만 본 련 무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네.”
“그래서 놈이 교활하다는 겁니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우리만 곤란하게 되었으니까요.”
금철종은 환비의 눈치를 보며 앓는 소리를 했다.
“끄응. 어차피 마찬가지라면, 배신자들을 잡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꼭 그들을 잡는 것만이 최선은 아닙니다. 그들을 놔두고도 사기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요.”
찌푸려졌던 금철종의 표정이 펴졌다.
“방법이라도 있나?”
환비의 입가로 차가운 웃음이 번졌다.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놈이 교활한 짓으로 창룡부에 투입된 본 련의 무사들을 줄이긴 했지만, 그래 봐야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말입니다.”
“음, 나야 사제가 그렇다면 그렇게 알겠네만…….”
그때 환비가 금철종을 바라보며 물었다.
“만겁궁의 사람들은 계속 금룡부에 머물고 있지요?”
“물론이네. 왜? 어디 쓸데라도 있나?”
“좀 필요할 데가 있을지 몰라서요.”
대답하는 환비의 눈이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귀조의 탐색망이 용강통에서 광룡의 흔적을 찾았다. 이제 곧 광룡이 계집을 숨긴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광룡, 나를 재미있게 해주었으니, 나도 그대를 재미있게 해주지. 물론 재미를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제9장. 황산검문, 구룡성에 들어오다
1
‘음, 꼬맹이가 없으니까 너무 심심하군.’
이무환이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을 때다. 밖에서 경비를 서던 영호승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총대주, 황산에서 손님이 왔다고 합니다.”
이무환은 운공을 마치고, 아니, 졸다 말고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다행히 정신을 둘로 나누고 있던 터라 영호승의 목소리를 놓치지는 않았다.
‘쩝, 봄은 봄이군. 눈만 감으면 졸리니…….’
목을 두어 번 틀어 정신을 차린 이무환은 가부좌를 풀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마침내 기다리던 사람들이 왔다. 이제 또 일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제길, 쥐꼬리만큼 받는 돈에 비해서 너무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단 말이야. 아무래도 녹봉을 올려달라고 해야겠어. 얼마나 달라고 할까? 오십 냥만 올려달라고 할까? 아니지, 백 냥으로 올려달라고 해야지. 올릴 때 팍 올려야…….’
잠깐 돈을 생각하다 보니 정신이 맑아졌다.
이무환은 두 팔을 한 번 쭉 펴고 밖을 향해 물었다.
“지금 어디에 있지?”
“외성의 만통객잔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 몇 명이나 왔지?”
“스물한 명이라고 합니다.”
“멋쟁이, 가서 무 형님하고 뇌고자, 눈발, 석사자를 데려와.”
이무환은 영호승을 시켜 네 사람을 데려오게 했다.
막위와 단우경과 혁수린은 당연히 동행할 것이니 자신까지 총 아홉. 그 정도면 충분할 듯했다.
곧 네 사람이 거처에서 나왔다.
“무슨 일인가?”
이무환이 자신들만 불렀다는 것을 알고 무설강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무환은 크게 인심 쓴다는 표정을 지으며 힘차게 말했다.
“무 형님, 외성으로 갑시다! 오늘 저녁은 제가 내지요!”
웬일? 어디서 공돈이 생겼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눈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공돈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광룡이 저녁을 사겠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이무환과 함께 광룡대를 나섰다.
이무환 일행이 만통객잔에 도착한 것은, 삼월 팔일의 석양이 막 신룡부의 건물 위로 떨어질 무렵이었다.
황산검문의 사람들은 만통객잔의 후원 전체를 빌린 상태였다.
이무환 일행이 후원으로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 공은효가 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이 공자, 오랜만이오.”
“몸은 좀 어떻습니까?”
“덕분에 다 나았소. 자, 안으로 들어갑시다. 소개해 드릴 분이 있소.”
이무환은 공은효와 나란히 안으로 들어갔다.
무설강과 제갈신걸과 유철상은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이무환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영호승과 단우경과 혁수린과 엽상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막위만은 그들과 달랐다. 그는 잔뜩 기대 어린 표정을 지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유 낭자는 안 왔나?’
황산에서 스물한 명이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았다. 그녀의 무공은 황산에서 백위 이내에 겨우 들 정도일 테니까.
어깨가 축 처진 막위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맨 뒤에 처져서 후원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이무환이 공은효에게 넌지시 물었다.
“근데 공 대협, 유 낭자는 안 왔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