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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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46화
146화
밖으로 나온 이무환은 즉시 특조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잔뜩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는 특조대원들에게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몇 마디 주의를 준 그는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명을 내렸다.
“창룡부의 사람들을 모두 불러낼 테니, 그대들은 사람들을 살펴보시오. 특히 손을 잘 살피시오. 여자의 것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을 지닌 남자가 있는지, 여자들 중 사람의 머리통에 구멍을 뚫을 정도로 지법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있는지 말이오.”
엉뚱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특조대원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믿음에, 창룡부의 사람들은 과연 광룡다운 명령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여후량조차 조금은 타당성이 있다는 마음에 이무환이 마음대로 하도록 놔두었다.
물론 속으로는 말도 안 되는 조사를 한다며 의심의 눈으로 이무환을 노려보았지만.
“사람들을 연무장으로 집합시켜라!”
여후량이 명을 내리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곧 창룡부의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연무장으로 나왔다. 오직 여후량의 친가족들과 원로원의 일곱 노인만이 제외되었다.
명이 떨어진 지 일각.
연무장이 수백 명의 사람으로 가득 찼다. 더 이상 나오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반 각이 지난 후, 이무환이 재차 명을 내렸다.
“원로원의 일곱 노인과 정향원의 부주님 가족과 제자 외에, 안에 사람들이 남았나 찾아보시오! 부주님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면 수상한 자이니 제압하도록 하고!”
여후량이 아! 하는 감탄성을 터뜨렸다.
‘그랬군! 나온 사람이 목적이 아니라 나오지 않은 자들이 목적이었어! 과연!’
그때 이무환의 말이 이어졌다.
“반항하거든, 피는 보지 말고 뼈를 부러뜨리도록 하시오!”
여후량이 슬쩍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무환은 꿈쩍도 하지 않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꼭 여후량에게 들으라는 듯이.
“최대한 피를 보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집도 부수지 말고!”
여후량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끄응, 빌어먹을 놈.’
잠시 후.
안쪽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싸우는 듯했다.
그리고 곧 아홉 사람이 안에 있다가 잡혀 나왔는데, 그중 다섯 사람이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끌려나왔다.
그래도 다행히 다섯 다 피는 보지 않았다. 그중 유철상이 끌고 나온 자는 끌려오면서도 악착같이 바지를 추스르며 소리쳤다.
“아직 다 싸지도 않았는데 이런 경우가 어디 있소?!”
유철상이 무뚝뚝하니 말했다.
“창룡부의 무사들은 기가 빠졌군. 명이 떨어졌으면 싸다가도 끊었어야지.”
아무래도 뒷간에서 일을 보다가 끌려온 듯했다.
사람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래도 이무환만은 잘했다는 표정으로 유철상을 바라보며, 팔다리가 부러진 다섯 사람에게 다가갔다.
“이름과 나이를 말해보시오?”
“장평, 서른두 살이오.”
“지위는?”
“창룡검대 제오조 조장이오.”
“언제 창룡부에 들어왔소?”
“오 년 전이오.”
이무환은 그렇게 묻고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게 했다.
“손을 내밀어보시오.”
장평은 이를 갈면서 손을 내밀었다.
이무환은 그의 손을 눈으로만 보지 않았다. 손으로 만져도 보고 뒤집어서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무환은 그런 방식으로 다섯 모두를 똑같이 조사했다. 마치 특조대원들에게 자신처럼 하라는 듯.
그런데 다섯 사람에 대한 조사가 거의 다 끝날 즈음, 이무환이 갑자기 손을 뻗더니 다섯 중 두 사람의 혈도를 제압했다.
“허억!”
“무슨 짓……. 켁!”
이무환은 쓰러진 두 사람을 향해 씩 웃고는 엽상을 불렀다.
“눈발!”
“예, 총대주!”
“대원들은 불렀어?”
“옙! 곧 도착할 겁니다!”
“이 두 사람, 압송해서 뇌옥에 집어넣으라고 해!”
여후량이 다급히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가?”
두 사람은 창룡부의 최정예인 창룡검대의 무사들이었다. 아주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게 할 수는 없었다.
“조사해 볼 것이 있어서 그럽니다. 심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죄가 없다면 곧 풀려나지 않겠습니까?”
이무환은 그 말만 하고 무설강과 제갈신걸, 유철상을 비롯한 사십팔객의 조장들, 구룡수호단의 간부들, 그리고 영호승 등 네 사람에게 명을 내렸다.
“시작하시오!”
창룡부의 사람들은 모두 열여섯 줄로 늘어서 있었다.
특조대원들은 각기 한 줄씩 맡아 사람들을 조사했다. 이무환이 하던 방식 그대로.
지위는? 이름은? 나이는? 창룡부에 들어온 때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게 했다.
조사는 매우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특조대원들도 이무환처럼 손을 잡고 세세히 살펴보았다.
가끔 여자들의 손을 잡았을 때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도 했다. 석상 같은 표정의 무설강도, 유철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이무환도 그랬다. 더구나 그때마다 소리쳐서 세밀함을 강조했다.
“세밀히 살펴보시오! 손톱 사이에 피가 묻었는지도 보고!”
조사를 진행하는 와중에 특조대의 나머지 대원들이 도착했다.
그들 중 반은 밖에서 접근하는 사람들을 막고, 나머지 반은 한쪽에 우두커니 서서 이무환의 명이 떨어지기만 기다렸다.
딱 한 시진. 조사가 끝났다.
이무환을 비롯한 특조대원들은 마지막 사람에 대한 조사가 끝나자 앞으로 모였다.
여후량은 아들의 살해범을 잡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나마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 조사는 다 했나?”
“부주님 덕분에 별 탈 없이 조사를 마쳤습니다.”
“별다른 일 없이 끝나 다행이군. 그럼 해산을…….”
그때 이무환이 또 손을 척 들어 여후량의 말을 끊었다.
“조사를 끝냈으니 이제 결과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후량이 눈을 치켜떴다.
“무슨 말인가?”
이무환은 씩 웃고는 특조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무 대원부터 말해보시오!”
무설강이 입을 열었다.
“오철위, 진하경, 부건양…….”
그의 입에서 다섯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무환의 눈이 제갈신걸을 향했다.
“뇌고자, 말해보쇼.”
제갈신걸이 네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뒤이어 유철상이, 백리웅이, 백장청이……. 마지막으로 혁수린이 세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이상입니다, 총대주!”
이름이 불린 자는 모두 마흔한 명이나 되었다. 그중에는 조장들도 있었고, 당주 급 간부도 있었고, 장로 급 지위를 지닌 자도 둘이나 있었다.
이무환은 혁수린의 대답이 끝나자 늘어선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방금 이름이 불린 사람은 앞으로 나와주시오!”
무사들이 웅성거렸다.
이무환이 다시 소리쳤다.
“조사를 위한 것이니 빨리 나와주시오. 빨리 끝나야 나머지 사람들도 쉬지 않겠소?!”
웅성거리던 무사들이 옆을 두리번거렸다.
은연중 빨리 나가라는 압박이었다. 그래야 자신들도 들어가서 쉴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사람들의 눈치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나오는 것만은 아니었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미치겠군! 곡마단의 원숭이 취급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심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아는 이상은 하고 싶은 말을 속에 꾹 담아두어야만 했다.
‘미친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람?’
‘저 새끼는 벼락 맞아 죽지도 않나?’
마지막으로 장로 급에 해당하는 창승각주 공수양이 나왔다.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알고나 싶습니다, 부주!”
공수양이 벌게진 얼굴로 소리치자 이무환이 대신 나섰다.
“그야 부주님의 아들인 여건호 공자를 죽인 자를 찾기 위해섭니다. 그 일을 위해 잠시 앞으로 나오라 했는데, 그 정도도 협조해 줄 수 없단 말입니까?”
더 반박하면 협조할 마음이 없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공수양은 분노가 끓었지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사이 이무환이 손짓을 해서 특조대를 불렀다.
특조대원들이 이무환과 여후량을 비롯해, 앞으로 나온 마흔한 명의 창룡부 무인을 둘러쌌다.
여후량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이무환에게 물었다.
“정확하게 알았으면 싶군. 저들을 불러낸 이유가 뭔가?”
이무환은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마흔한 명을 둘러보며 냉랭히 말했다.
“간단합니다. 저들의 몸에서 흐르는 기운이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 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십여 명 정도, 많으면 반 정도는 분명 잠풍련과 관련된 자들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여후량과 창룡부의 장로, 호법, 간부들이 일제히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게 사실인가?”
마흔한 명 중 반 이상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웅성거리고, 모든 창룡부의 무사들은 입을 꾹 닫고 눈을 부릅뜬 채 상황을 주시했다.
이무환은 여후량을 똑바로 쳐다보며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제 목을 걸지요.”
광룡이 목을 걸었다.
여후량은 아무 말도 못하고 턱을 치켜든 이무환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좋… 네. 어차피 맡겼으니 끝까지 맡기지.”
이무환은 씩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돌려 마흔한 명의 무사를 바라보았다.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마쇼. 그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될 테니까.”
분노에 몸을 떠는 자, 불안감에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자, 이를 악물고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자. 각양각색의 표정이었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던 이무환이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자신이 잠풍련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저쪽으로 가시오.”
일순간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다고 갈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이무환의 말이 이어지자 사람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저쪽으로 가는 사람은 목숨도 건지고, 무공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을 거요.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소.”
마흔한 명 중 일부 몇 명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다 둘러보는 이무환의 눈빛과 마주치자 이를 악물고 좌우로 눈알을 굴렸다.
열을 셀 시간이 지나기도 전이었다.
네 사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수백 명이 모여 있는 연무장인데도, 주위가 너무도 조용해서 그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울렸다.
그때 이무환이 다시 고요를 깼다.
“어차피 버텨봐야 소용없어. 뭐, 잠풍련의 손에 죽을까 봐 걱정되는가 본데, 그래도 일단은 사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어? 구룡성에서 나가게 해줄 테니, 멀리 도망칠 수도 있고 말이야.”
이무환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지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엽상에게 명을 내렸다.
“눈발, 열을 세어. 그래도 마지막 기회는 주어야지.”
엽상이 천천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와중에도 이무환은 계속 중얼거렸다.
“사실 이 자리에서 그냥 족칠 수도 있어. 나도 번거로운 것은 싫거든. 그래도 어쩌겠어? 마음이 약해서 그러지 못하는 걸. 물론 끝까지 버티는 사람은 그만큼 더 괴로울 거야. 가끔은 나도 나를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어서…… 찢어 죽이지는 않겠지만, 강호에서 살아갈 생각은 버려야…….”
중얼거리는 이무환의 몸에서 한겨울 북풍처럼 차가운 기운이 스멀거리며 피어난다.
눈빛이 마주치자 얼음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진다.
다섯을 셀 때, 여섯 사람이 머뭇거리더니 또 우측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아홉을 셀 때 네 사람이 다급히 무리를 이탈했다.
결국 자신이 잠풍련의 사람임을 시인한 사람은 모두 열넷. 남은 사람은 스물일곱이었다.
이무환은 그들 스물일곱을 바라보면서 손을 만졌다.
“훗, 이제 다섯이 남았군.”
스물일곱 중 다섯 명이 잠풍련의 사람이라는 말.
“내가 직접 셋을 세겠어. 이게 마지막이야. 하나, 둘, 셋.”
셋이라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 스물일곱 중 두 사람이 이를 악문 채 우측으로 걸음을 옮겼다.
순간, 이무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저 두 사람은 미처 생각 못했는데? 그럼 여전히 다섯이 남은 건가?”
걸음을 옮기던 두 사람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