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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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45화
145화
제8장. 광룡, 창룡부를 청소하다
1
문을 두드릴 필요도, 특조대가 왔다는 것을 알릴 필요도 없었다. 광룡이 간다는 말이 전해졌는지 창룡부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이무환 일행이 창룡부 정문 앞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한 사람이 나왔다.
굳은 표정의 그는 정문위사가 아닌 창룡부의 영운당주 여종기였다.
“특조대주께서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이무환도 예의를 갖추는 사람에게까지 함부로 말하진 않았다. 정중한 여종기의 말에 이무환이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주님을 만나러 왔습니다만, 부주께선 안에 계십니까?”
“계십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주님을 찾아온 겁니까?”
“일단 만나 뵙고 말씀드리지요.”
이무환이 걸음을 옮기자, 여종기는 뒤로 물러서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먼저 부주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시가 급한 일인지라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절차라는 게 있는데…….”
여종기가 쉽게 앞을 비켜서지 않자 이무환의 얼굴에 다시 짜증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절차 찾다가 일이 터지면 당신이 책임질 거요?”
“무슨……?”
“책임지지 못할 거면… 비키쇼.”
그때 연무장 건너편의 전각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여 당주, 부주께서 특조대주를 안으로 모시라 하시네.”
그제야 여종기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비켜섰다.
이무환은 여종기를 스쳐 가며 안쪽에서 나온 자를 쳐다보았다.
사십대 후반의 나이, 네모난 비석을 목 위에 올려놓은 듯 각지고 판판한 얼굴, 붓으로 쭉 그은 듯 가느다란 눈을 지닌 자였다.
이무환은 그를 이건천의 장례식 때 본 적이 있었다.
‘여후량의 사대호법 중 한 사람인 노곽이군.’
노곽은 이무환이 연무장을 건너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몸을 돌려 앞장섰다.
“따라오시게.”
이무환은 노곽의 뒤통수를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앞쪽만 그런 게 아니라 뒤통수도 판판하군.’
창룡부의 열두 개 전각 중 가장 큰 건물인 창룡전.
그 안에 열여덟 명이 모여 있었다.
긴장한 표정, 굳은 얼굴의 그들은 일제히 이무환 일행을 바라보았다.
특조대주, 광룡이 왜 느닷없이 찾아왔을까?
모두가 그런 의문에 찬 눈빛이었다.
터벅, 터벅. 철걱, 철걱.
발자국 소리와 무기 흔들리는 소리가 어우러지며 묘한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앞장서 걷던 노곽이 서 있는 열일곱 사람과 섞이며 한쪽으로 비켜서자, 이무환이 걸음을 멈추었다.
동시에 그림자인 양 묵묵히 뒤따르던 사람들도 일제히 멈춰 섰다.
곧 전각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뒷짐은 진 이무환은 태연한 표정으로 전각 안을 쓸어보았다. 서너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천룡부에서 봤던 자들이었다.
그들을 세세히 살펴본 이무환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따라오려 하자 이무환이 손을 저어 그들을 멈춰 세웠다.
“대원들은 여기서 대기하도록.”
열여덟 쌍의 시선이 걸음을 옮기는 이무환의 몸에 화살처럼 꽂혔다.
그럼에도 이무환은 눈곱만큼의 표정변화도 보이지 않고 태연하게 걸었다.
어찌 보면 오만하게 보이는 모습인데도 누구 하나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광룡의 뒤에 있는 사람들이 누군가. 그들 중 천중십마에 속한 사람만 해도 둘이고, 그 두 사람이 아니라도 초절정고수들이 즐비했다.
그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막강한 대(隊)가 바로 구룡성의 특조대인 것이다.
‘우흐흐흐, 이 정도는 되어야 대주도 할 맛 나지.’
그렇게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상석으로 다가간 이무환은 여후량의 이 장 앞에 도착해서야 뒷짐을 풀고 포권을 취했다.
“특조대주가 창룡부의 부주를 뵙습니다.”
침중한 표정을 지은 채 상석에 앉아 있는 오십대 초반의 중년인, 그가 바로 창룡의 주인 일수만천 여후량이었다.
“자네에 대한 말은 많이 들었네. 직접 보니 정말 반갑군.”
“반갑다니 다행이군요. 사실 저를 보고 반갑다는 말을 한 사람은 부주께서 처음이십니다. 하, 하!”
너스레를 떨며 웃는 이무환을 보고도 여후량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나를 만나러 왔다고? 그래, 무슨 일로 온 것인가?”
“조사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
이무환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 모두가 흠칫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간 광룡이 특조대의 조사를 이유로 벌인 일이 어디 한두 가지던가?
구룡성의 누구도 그 말에 태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조사? 설마 전대 천룡이신 이건천 공의 살해 사건에 대한 조사는 아니겠지?”
“물론 그 일도 조사할 생각입니다. 하나…….”
이무환이 담담하게 대답하며 말꼬리를 끌었다.
그 틈을 타 여후량이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미 범인이 밝혀진 것으로 알고 있네만, 왜…….”
이무환이 척, 손을 들어 올려 여후량의 말을 끊었다.
“아직 제 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주.”
입술을 달싹이던 여후량은 이를 악물었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언제 자신의 말을 이무환처럼 손을 들어 올려 막은 자가 있던가.
하지만 그러한 일로 분노하기에는 상대가 좋지 않았다.
“으음, 좋네. 어디 계속해 보게.”
이무환은 다시 뒷짐을 지고서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저는 특조대의 대주이기도 하지만, 수룡단의 비밀 감찰대인 광룡대의 대주이기도 하지요. 일단은 특조대의 조사에 앞서 광룡대의 임무를 먼저 수행할까 합니다.”
뭔가를 예감했는지 여후량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슨… 말인가?”
이무환의 눈이 여후량을 직시했다.
“여건호의 살해 사건을 먼저 조사하겠단 말이지요.”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여후량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리며 창룡전에 죽음과 같은 침묵이 맴돌았다.
둘째 아들인 여건호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채 한 시진도 되지 않았다. 행여나 대세에 영향을 미칠까 싶어서 분노와 슬픔조차 억누르고 대책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광룡이 어떻게 그걸 알았단 말인가?
한참만에야 여후량이 침묵을 깼다. 광룡은 자신이 부인한다고 해서 통할 자가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나?”
이무환은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이제와 말이지만, 여건호는 특조대의 비밀대원이었습니다. 이제 왜 제가 이곳을 찾아왔는지, 어떻게 여건호의 죽음을 알았는지 아시겠습니까?”
여후량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열일곱 사람의 표정도 제각각으로 달라졌다.
이무환은 서찰을 품에서 꺼내 여후량을 향해 내밀었다.
어차피 수신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서신. 서신의 주인이 누군지 누가 알 것인가?
“보시지요, 여건호가 아침나절 저에게 보낸 마지막 서신이니까요. 어떻습니까? 아들의 필체가 맞습니까?”
여후량의 눈이 서찰을 향했다. 그리고 곧 그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건호가 쓴 게… 확실하네.”
이무환은 여후량만 주시한 채 차갑게 말했다.
“이제 그의 시신을 보고 싶습니다만…….”
여후량은 구룡성의 아홉 기둥 중 하나를 책임진 사람답게 숨을 서너 번 쉬는 사이 평정을 회복했다.
아들이 특조대원이었다는 사실은, 자신에게 아들이 둘인 줄로만 알았다가 셋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일 뿐,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다.
특조대에게 모든 일을 맡기면,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최소한 분노와 슬픔을 억눌러 놓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을 듯했다.
“좋네. 아들의 죽음에 대한 조사를 자네에게 맡기지.”
여건호의 시신이 있는 곳은 각 부마다 하나씩 있는 의당의 지하였다.
그곳에는 이무환과 여후량, 단둘만 들어갔다. 따로 할 말이 있는 이무환이 고집을 피웠기 때문이었다.
싸늘한 공기 속에 고약한 냄새가 맴도는 의당 지하.
여건호는 잠든 사람처럼 관 안에 누워 있었다. 죽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별다른 신체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여후량이 그런 여건호의 시신을 슬픔에 찬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사인이 너무 단순해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네.”
여후량의 말대로 사인은 아주 단순했다. 머리 뒤에 뚫린 구멍 하나가 사인의 모든 것이었으니까.
구멍은 새끼손가락 굵기였는데, 마치 송곳을 대고 망치로 힘껏 때린 것처럼 주위를 부수지 않고 깨끗하게 뚫려 있었다.
물론 정말로 그렇게 해서 죽은 것은 아니지만.
‘제길, 꼬맹이가 있으면 뭔가 더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르는데.’
옆에 남궁산산이 없다는 게 무척이나 아쉬웠다.
오죽하면 ‘머리를 떼어가서 보여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무창으로 가서 데려올 생각은 없었다. 사실 사인보다 여건호가 죽었다는 것, 그 자체가 더 중요했으니까.
여후량이 서운해 해도 하는 수 없었다. 살해범을 잡겠다고 동분서주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일을 처리하다 보면 살해범을 잡을 수 있을지도…….’
이무환은 여건호의 몸을 건성으로 살펴보고 고개를 들었다.
“서찰의 내용이 뭘 뜻하는 거라 생각하십니까?”
여후량이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곧 눈을 가늘게 뜨고 이무환을 바라보며 잇새로 말했다.
“창룡부에 있던 간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 아니겠나? 물론 그 이유는 창룡부를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일 테고.”
“부주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흥! 내 목에 칼이 틀어박혀도, 내 아들을 죽인 놈들과 함께할 생각은 없네. 그것만큼은 장담하지. 호 단주에게도 그렇게 말하게.”
이무환은 코웃음 치는 여후량을 향해 무심히 말했다.
“그들이 노리는 건 그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게 아니다? 그럼 뭘 노리는 거란 말인가?”
“어쩌면 부주의 목숨을 노리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무슨 말인가? 설마…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말인가? 창룡부의 주인인 나를? 훗! 나를 죽이면 표 하나가 사라지니 유리할 거라,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멍청한 놈들! 내가 그리 쉽게 당할 사람으로 보였나?”
냉랭히 소리친 여후량이 이무환을 직시했다.
“걱정 말게. 설령 내가 죽는다 해도 놈들은 조금도 이익을 얻지 못할 테니까. 오히려 본 부는 물론이고, 구룡성의 분노를 통째로 감당해야만 할 것이야.”
만일의 상황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놓은 듯 자신만만한 여후량이다.
하긴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 아닌가. 당연히 그 정도 대비는 미리 해두었다고 봐야 했다.
‘괜한 우려를 한 건가?’
이무환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 일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죽음까지 생각하고 계획을 세워놓았다면, 더 말한다 해서 여후량의 마음이나 행동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경고했으니 앞으로는 더욱 조심할 터. 그 정도만으로도 말한 성과는 어느 정도 얻었다고 할 수 있었다.
거기다 앞으로 한 가지 일만 더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되면 조금 더 안전해질 것이었다.
이무환은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여후량에게 허락을 구했다.
“좋습니다. 그럼 그 일은 부주께서 알아서 하시고……. 대신, 특조대가 창룡부의 사람들을 조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자네가 그리 말하는 걸 보니 단순한 조사는 아닌 것 같군.”
“바빠서 여유 시간이 한 시진 정도밖에 없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조사하려면 사람들을 한곳으로 불러내야 할 텐데, 아무래도 부주께서 허락해 주시면 더 빨리 끝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길어야 한 시진이라는 말.
여후량은 그래도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들어주지 않는다고 광룡이 그냥 물러설까?
‘저 미친놈이 그냥 갈 리가 없지.’
결론을 내린 여후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단, 너무 지나친 일은 자제해 주게.”
이무환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최대한 피를 보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물을 조사한다고 부수지도 말고.”
“그러죠.”
대답하는 이무환의 웃음이 짙어졌다.
‘아들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고 보면 여건호가 그냥 죽은 것은 아닌 셈이군. 좋아, 그 보답으로 당신의 복수를 내가 대신 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