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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44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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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광룡기 144화

 

144화

 

 

 

 

 

 

 

 

“제가 알고 있으면 지금 이러고 있겠습니까? 당장 잡으러 가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광룡이라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했다. 

 

호연청도 그걸 알기에 미심쩍어하면서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충 행색이라도 말해보게. 알아볼 만한 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죽자 사자 싸운 사람의 모습까지 모른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무환은 대충 그들의 모습을 설명했다.

 

창, 도, 자모원앙월, 협봉검을 든 자, 신도연풍까지만.

 

청색가면인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말 때문이었다.

 

“제가 아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호연청이 눈살을 찌푸리며 확인하듯이 물었다.

 

“그들 중 본단의 인물편에 나온 자가 하나도 없었단 말이지?”

 

“그렇다니까요?”

 

“알아볼 만한 무공도 없었고?”

 

이무환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대답을 계속하기도 귀찮다는 표정으로.

 

호연청은 다시 속이 끓어올랐지만, 초절한 인내심을 발휘해 꾹 참았다.

 

“놈들이 다시 움직일 거라 보는가?”

 

이무환의 고개가 또 위아래로 움직였다.

 

호연청이 그런 이무환을 향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슬쩍 고개를 든 이무환은 반쯤 남은 차를 천천히 마셨다. 마시는 것인지 입만 대고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천천히.

 

그러다가 가늘어진 호연청의 눈매가 잘게 떨릴 즈음에야 입을 열었다.

 

“오늘하고 내일, 이틀 동안 놈들을 정신없이 몰아치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호연청의 눈매가 떨림을 멈췄다.

 

“놈들을 정신없이 몰아친다? 어떻게 말인가?”

 

이무환이 고개를 내밀며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야 저도 모르죠. 저조차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정도가 되어야 저들 역시 정신이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제대로 미쳐 보겠다는 말. 

 

호연청의 귀에는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호연청은 비웃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결코 나쁜 계획이 아닌 것이다. 그걸 행할 사람이 광룡인 이상은.

 

‘그리되면 숨겨진 힘을 다시 드러내지 않을 수 없겠지. 우리는 그 그늘에 가려진 채 움직일 수 있을 테고…….’

 

호연청의 눈이 자연스럽게 옆을 향했다.

 

“네 생각은 어떠냐? 나는 허락하고 싶다만.”

 

묵묵히 듣고 있던 모용상명이 이무환의 계획에 동의했다.

 

“괜찮은 생각입니다.”

 

그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광룡에게 몰리는 관심만큼 자신들은 적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겠는가. 그것만으로도 광룡의 어이없는 계획은 제법 쓸모가 있었다.

 

“언제부터 움직일 생각이오?”

 

모용상명이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이무환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무환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광룡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을 했다.

 

“아무 때나, 기분 내킬 때 움직일 거요.”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도 되죠?”

 

 

 

호연청의 집무실을 나온 이무환은 내심 코웃음을 쳤다.

 

‘흥! 내가 다 말해줄 줄 알고?’

 

호연청과 모용상명은 분명히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런데 왜 자신은 다 말해줘야 한단 말인가?

 

물론 상대의 정확한 정체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들이 쓴 무공은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그것만 해도 상당한 정보였다. 나중에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 만날 경우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무환은 손해 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그들의 정체를 안다고 해서 달라질 상황도 아니고, 호연청이 적이 되었을 경우를 생각하면 나중을 위해 아껴두는 게 나았다. 

 

‘그런데 왜 그자가 나중에 한번 보자고 했지?’

 

청색가면인의 말투가 묘하게 느껴졌었다.

 

자신의 느낌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분명히 적으로서의 말투가 아니었다. 그러니 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만나자면 못 만날 것도 없지. 혹시 알아? 뜻밖의 말이라도 듣게 될지.’

 

 

 

무설강이 찾아온 것은, 방으로 돌아온 이무환이 차를 한잔 따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몸은 좀 괜찮은가?”

 

“형님 눈에는 제가 괜찮은 것처럼 보입니까?”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이무환이 눈을 슬쩍 추켜올리며 괜한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그래봐야 혈색만 좋아 보이는 이무환이다.

 

‘그렇게 보이네.’

 

무설강은 그 말이 이 사이를 빠져나오려는 걸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도 이제는 광룡을 상대하는 법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상황이 촉급한데 몸을 다쳐서 큰일이군.”

 

“그래도 그럭저럭 견딜 만합니다.”

 

“그 약은 복용했는가?”

 

폭령잠마영단을 말함이다. 이무환은 무설강에게도 다섯 알을 주었다. 덕분에 절대의 경지를 눈앞에 둔 무설강이었다.

 

“예. 아마 오늘 하루만 지나면 어느 정도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힐끔 무설강을 바라보는 이무환의 눈이 가늘어졌다.

 

왠지 무설강의 표정이 무거워 보인다. 단순히 자신의 몸이 걱정되어 온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뭐 달리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본론을 꺼내는 무설강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우가 단주를 만나러 갔을 때 금환이에게서 사람이 왔네. 조금 기다려 보라고 했는데, 시간이 없다며 나에게 말만 전하고 갔네.”

 

이무환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다 멈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자신과 이금환과의 관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무설강과 남궁산산뿐이다. 물론 이금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없을 때 두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라는 말까지 해놓았으니까.

 

문제는, 자신이 곧 올 거라 했는데도 무설강에게 말을 전하고 갔다는 점이었다.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급한 일이 발생했다는 말.

 

이무환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일이랍니까?”

 

“그건 자세히 말하지 않고, 그냥 급히 만났으면 한다더군.”

 

급히?

 

생각했던 대로 뭔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어디서 만나자고 합니까?”

 

“천룡부네. 특조대 조사차 온 것처럼 와서 자신을 찾으라고 하더군.”

 

“흐음…….”

 

턱을 매만지던 이무환이 벌떡 일어섰다.

 

“오라면 가지요. 그리고 어차피 나가는 길에 두어 가지 일을 더 처리해야겠습니다.”

 

 

 

4

 

 

 

이무환은 특조대원 중 십여 명만 대동하고서 광룡대를 나섰다. 그가 광룡대를 나서자 대여섯 명이 골목골목에서 몸을 숨겼다.

 

이무환은 그들을 본 척도 하지 않고 곧장 천룡부로 향했다.

 

잠시 후.

 

이무환을 비롯한 특조대가 천룡부의 정문 앞에 도착하자 엽상이 앞으로 나섰다.

 

“특조대다! 조사할 것이 왔으니 문을 열어라!”

 

신룡부의 원로원 건물조차 조각조각 부서졌거늘, 당금의 구룡성에서 누가 감히 특조대의, 아니, 광룡의 앞을 막으랴!

 

끼익, 경첩이 끌리며 정문이 열렸다.

 

이무환은 엽상을 앞세운 채 천룡부로 들어갔다.

 

부리나케 천룡전의 문을 열고 나온 이충선이 냉랭하게 물었다.

 

“무슨 일로 온 것인가?”

 

이무환이 앞으로 나섰다.

 

“조사차 왔소이다. 대공자 이금환은 어디 있습니까?”

 

유난히 싸늘한 말투. 이충선의 표정이 펴졌다.

 

광룡의 목표가 자신이 아닌 것만도 다행이거늘, 눈엣가시 같은 이금환이라면 더욱더 환영할 일이었다.

 

“금환이는 후원의 거처에 있네. 한데 무슨 일인가? 금환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제발 그랬으면 하는 표정이다.

 

이무환은 당장 이충선부터 잡아 족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냥 놔두어야만 했다. 좀 더 큰 것을 얻기 위해서.

 

“조사해 보면 알겠지요. 아무리 직계라 해도 구룡지주의 살해 사건에 관련되었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허, 그래야겠지. 가슴이 아프지만, 금환이가 환마라는 자와 관련되었다면 어쩔 수 없지.”

 

이무환은 그의 입에 큼지막한 말뚝을 하나 박아주고 싶은 걸 꾹 참고 걸음을 옮겼다.

 

“천룡부의 누구도 이번 조사에 개입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니 후원으로의 출입을 금하겠습니다.”

 

“알겠네. 걱정 말고 철저히 조사하게.”

 

 

 

이무환은 후원으로 들어가 이금환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대답과 동시, 거침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 있는 이금환이 보였다. 굳은 표정, 심각한 눈빛이었다.

 

이무환이 이금환의 앞자리에 앉자, 이금환이 찻주전자를 들어 찻잔을 채웠다.

 

이무환은 단숨에 찻잔을 비우고 이금환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오?”

 

“여건호가 죽었소.”

 

여건호라면 이무환도 두 번이나 본 사람이었다. 그는 창룡부주 여후량의 둘째 아들로, 승룡원의 주요 간부 중 한 사람. 이금환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할 만했다.

 

“범인은 밝혀졌소?”

 

이금환이 고개를 저었다.

 

“오시 초에 자신의 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데, 범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소.”

 

이금환의 말대로라면, 사인에서도 특별한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방에서 발견되었다면 사이가 가까운 사람에게 죽었다는 말인데…….’

 

눈살을 찌푸린 이무환이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였다. 이금환이 말을 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여건호가 뭔가를 알아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닌가 하오.”

 

“그게 무슨 말이오?”

 

“새벽 무렵에 사람을 통해 서찰이 왔소. 보시오.”

 

이금환이 한통의 서찰을 내밀었다. 이무환은 서찰을 받아 펼쳐 보았다.

 

 

 

[부내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했습니다. 하나 짐작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 보다 정확한 사실을 알아낸 후 사람을 보내든, 아니면 내가 직접 가든지 하겠습니다.]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여건호의 죽음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문제는 서찰이 말하는 ‘수상한 움직임’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다.

 

“창룡부에 숨어 있던 간자들이 움직인 것 같군요. 그것도 여건호를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자들이. 여건호는 그걸 밝히려다 들켰고 말이죠.”

 

“내 생각도 그렇소.”

 

“하면 그들이 왜 움직였다고 보는 거요?”

 

이금환이 이마를 좁힌 채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철룡부처럼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 아니겠소?”

 

그럴 가능성이 가장 컸다. 창룡부만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구룡성주 선출에서 변수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무환은 그 가능성을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철룡부는 중립을 지키던 곳이었지만, 창룡부는 반대편에 서 있는 세력이 아닌가. 

 

거센 저항이 있을 터,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넘어갈 리가 없었다.

 

더구나 그러한 일이 벌어지면, 철룡부 때와 달리 검룡부와 호연청이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당장 전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과연 잠풍련이 단숨에 창룡부를 뒤집어엎을 수 있을까?

 

전력을 다 드러낸다면 모를까, 은밀한 공격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무환의 머릿속으로 번개처럼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이무환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내가 직접 가서 알아봐야겠소. 쓸데가 있으니, 이 서찰은 내가 가져가죠.”

 

“나도…….”

 

“그냥 여기에 있으쇼. 그게 더 안전하니까. 그리고 내가 움직이라고 할 때 움직이쇼.”

 

“하지만…….”

 

“거, 말 좀 들으쇼. 형까지 죽으면 일이 더 커진다니까.”

 

형!

 

그 말 한마디에 이금환의 몸이 굳었다.

 

몸이 굳은 이금환을 향해 이무환이 물었다.

 

“근데 내가 준 약은 다 먹었수?”

 

이금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수. 그거, 형이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약이더라고.”

 

이금환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덕분에 천룡의 검을 펼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정말 그렇더군.”

 

엉겁결에 반말을 하고는 어색한 표정을 짓는 이금환이다.

 

이무환은 그런 이금환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갑자기 후원이 들썩거릴 정도로 버럭 소리쳤다.

 

“환마란 자를 정말 모른단 말이오? 좋소! 내 당신이 구룡지주의 죽음을 방관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아서 가져오겠소! 그리고 조사가 끝날 때까지 당신은 천룡부를 떠나선 안 되오! 천룡부를 벗어나면 내 즉시 뇌옥에 처넣을 테니까!”

 

그러고는 홱 돌아서며 나직이 말했다.

 

“내 말 명심하슈. 형이 잘못되면, 내 칼이 제일 먼저 천룡부를 향해 휘둘러질 거요.”

 

이금환이 붉어진 눈으로 이무환의 등을 빤히 바라보았다.

 

“알… 겠네, 아우.”

 

이무환은 투덜거리며 방을 나섰다.

 

“제기랄! 내 맘대로 잡아갈 수도 없고! 에이, 다른 곳이나 가봐야겠군.”

 

 

 

이무환은 짜증난 표정을 지으며 천룡부를 나섰다.

 

멀리서 이충선과 이충현이 웃음 짓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들을 향해서는 눈도 주지 않았다. 그들의 웃음을 보면 돌아가서 주먹을 날릴지 몰랐다.

 

‘빌어먹을 자들. 두고 봐. 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들 둘만큼은 절대 그냥 놔두고 떠나지 않을 것이니까.’

 

그렇게 천룡부를 나선 이무환은 남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이무환이 수룡단이 아닌 남쪽으로 가자 엽상이 물었다.

 

“총대주, 어디로 가실 겁니까?”

 

이무환은 다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창룡부로 갈 거야!”

 

그러고는 전음으로 몇 마디 명령을 따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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