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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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81화
181화
2
수룡전의 내전에 열 사람이 마주 앉았다.
구룡성 쪽에선 이무환과 북궁만호, 무설강, 공손척, 철우평 등 각부의 대표들이. 그리고 호연청 쪽에선 호연청과 황보광, 헌원숭, 소천득, 모용상명이 정천무림맹과 밀천회의 대표로 나섰다.
호연청이 말문을 연 것은, 이무환이 차를 넉 잔이나 비운 다음이었다.
“삼악의 흔적을 쫓던 중놈들이 구룡성에 뿌리내렸다는 정보를 얻었소. 그때부터 본 맹은…….”
이무환과 북궁만호 등 둘러앉은 구룡성의 사람들은 호연청의 말이 이어질수록 정천무림맹의 집요함에 혀를 내둘렀다.
나철위가 십수 년을 검운장에서 지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면서도 더 철저했다.
호연청은 구룡성에 몸을 담고 혈악 야율모궁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하지만 야율모궁은 철저하게 몸을 숨긴 채 구룡성의 각부에 뿌리를 내렸다.
그들이 어찌나 철저히 움직이는지, 호연청은 그들의 세력을 단숨에 뿌리 뽑으려 했던 생각을 포기해야만 했다.
대신 그들의 힘을 파악하며 대응할 힘을 내부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구룡수호단이 만들어진 것은 그때부터였소. 그런데 장소가 천하제일성 구룡성이라는 것이 문제였소.”
자칫하면 잠풍련을 제거하기 전에 구룡성과 다툴지 모르는 일. 그것은 정천무림맹으로서도 절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잠풍련도 구룡성의 눈을 의식해서 힘을 빠르게 기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견제하며 힘을 기르다 보니 순식간에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자신들이 정천무림맹 사람인지 구룡성 사람인지조차 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잠풍련의 중심 세력은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답답한 가운데 또 이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제야 호연청은 정천무림맹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구룡성의 부주 중 몇 사람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풍련이든 정천무림맹이든 외부의 세력이 자신들의 터전에서 설치는 것을 좋아할 자들이 누가 있을까.
천하제일성, 대구룡성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결국 호연청으로선 자신의 정체를 최대한 숨기고 뜻을 펼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모두가 호연청의 뜻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몇 사람은 극비리에 호연청과 뜻을 함께하고 잠풍련에 대항하기로 했다.
그렇게 힘을 키워갈 무렵, 팔월의 사건이 터졌다.
잠풍련이 먼저 역천사룡을 움직여서 선수를 친 것이다.
다행히 모든 화살이 천룡부로 집중되었다. 그들만 무너뜨리면 된다 생각한 듯했다. 덕분에 검룡부와 창룡부는 힘을 보존할 수 있었다.
밀천회가 본격적으로 끼어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힘이 밀리니 어쩔 수 없었소. 무리가 가더라도 회에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그러다 보니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오.”
호연청은 말을 끝내고 이무환과 북궁만호를 바라보았다.
언뜻 들으면 정천무림맹이 마를 물리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든 것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정도와 협의를 지키려는 정파 협사의 표상처럼 말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만 않다는 것을 이무환과 북궁만호는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정천무림맹이나 밀천회가 다른 욕심은 없었단 말이죠?”
이무환이 먼저 콕 집어서 물었다.
호연청은 이무환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이무환에게 분노가 끓어오르는 눈빛을 강하게 보내면서.
“우리는 정의를 위해서 목숨을 걸기로 맹약한 사람들이네.”
“그래서 절대 욕심이 없었다?”
“물론이네.”
“그런데 왜 단주와 동방 부주는 어제의 싸움에서 뒤로 빠졌수?”
계속 다그치는 이무환이다.
호연청은 눈썹 한 올의 미동도 없이 이무환을 직시했다.
이글거리는 눈빛. 협상이고 뭐고 판을 다 뒤집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네.”
“혹시 우리가 함께 다 죽기를 바란 것 아니었수?”
이무환은 그 말을 하며 머리를 쑥 내밀고 눈을 들이밀었다.
호연청의 눈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나는 그렇게 악독한 사람이 아니네.”
“우리가 다 죽으면 그때 간단하게 구룡성을 접수하려고 했지요?”
“말 못할 이유가 있다지 않았는가?!”
호연청이 버럭 소리쳤다.
“글쎄, 그게 뭐냐니까요?!”
이무환도 마주 소리쳤다.
호연청은 이를 악물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절대, 밝힐 수, 없네.”
“동방 부주를 앞에 세워놓고 뒤에서 구룡성을 움직이려고 했지요?”
으드득!
호연청이 또 이를 갈았다.
뿌드득!
잡고 있던 탁자 모서리가 호연청의 손안에서 부서졌다.
“정말 끝까지 그럴 건가?”
협상이고 뭐고 다 끝났다는 표정.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눈빛.
호연청이 작심했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정천무림맹과 밀천회의 대표들 역시 이무환과 각부의 대표들을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몸을 뒤로 뺀 이무환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의자에 등을 기댔다.
“솔직히 말해봐요. 어차피 다 끝난 마당인데 말 못할 게 뭐 있습니까? 사실이라고 해도 더 안 따진다니까요?”
누가 광룡 아니랄까 봐 말거머리보다 더 끈질기다.
모두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협상장에서 저렇게 상대를 윽박지르며 끈질기게 달라붙는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
오죽하면 북궁만호가 헛기침을 하며 말렸다.
“험. 무환아, 일단 그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하지만 이무환은 끝까지 들어야겠다는 듯 또 물었다.
“내가 돌아오면 무조건 죽일 생각이었죠? 나만 죽이면 구룡성을 통째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을 테니까요. 그런데 내가 쉽게 당하지 않으니까 성질이 많이 났죠?”
사람들이 헛힘 빠진 것처럼 축 처졌다.
도대체 협상을 하자는 것인지, 시비를 걸자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다.
‘누가 아우를 광룡이라고 불렀는지 몰라도, 이름 하나는 참 잘 지었군.’
‘광룡의 이는 언제 안 부러지나?’
‘석치상도 참 재수가 없지. 어쩌다 저런 친구를 건드려서…….’
그때였다. 호연청이 부르르 떨더니, 발끈해서 고함을 질렀다. 그의 고함 소리가 어찌나 큰지 수룡전의 내전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오냐, 그래! 너만 죽이면 다 될 거 같았다! 돌아오면 어떻게든 죽일 생각이었지! 그래서 천세도인에게 죽든지 말든지 놔두었다! 되었느냐?”
귀가 멍멍했다.
태풍이 휩쓸고 간 농지처럼 내전의 분위기가 납작하니 내려앉았다.
이제 알았으니 어쩔 거냐! 하는 표정의 호연청.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연한 이무환.
두 사람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표정을 지은 채 입을 꾹 닫고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때 이무환이 속삭이듯이 입을 열었다.
“혹시 더 감추는 것 없어요? 단주께서 단순한 정천무령주가 아니라 밀천회의 무슨 책임자라든지, 그런 거요. 제가 봐서는 있을 거 같은데. 우리 꼬맹이가 그랬거든요. 단주가 순순히 대답하면, 분명히 숨겨놓은 게 또 있을 거라고요. 있죠?”
제3장. 때려잡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말하쇼
1
탁!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이무환이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네가 못 봐서 그렇지 얼마나 웃겼는지 아냐?”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면서요?”
사실이 그랬다.
웃기는커녕 금방 엉덩이에서 뭐라도 떨어질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거머리 중의 대왕 거머리를 보는 표정을 한 채.
그래도 어쨌든, 자신은 웃음을 참느라 천광지령의 기운을 끌어올려야 할 정도였다.
“나만 웃겼으면 됐지 뭐. 그 사람들이 해학이 뭔지나 알간?”
남궁산산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에휴, 오빠도 참…….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이무환이 다시 찻잔을 채우고는, 홀짝 입안에 털어 넣고 입을 열었다.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결국 입을 열더라고. 시간은 좀 걸렸지만.”
시간이 걸린 것은, 호연청이 머리꼭대기까지 끓어오른 분노를 가라앉히는데 일각 정도 걸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 덕분에 자신은 차를 두 잔이나 더 마실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호연청이 말이야, 자신은 정천무령주이면서 밀천회의 힘을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용천단주라고 하더라. 크크크, 좀 더 높은 줄 알았더니 나와 같이 단주였어. 그러고 보면 광룡단으로 바꾸기 정말 잘했지 뭐.”
남궁산산은 그 말을 하며 웃는 이무환을 보며 새삼 다짐했다.
‘조금 가볍게 보이긴 하지만, 내가 옆에서 조금씩 고치면 되지 뭐. 그게 내조 아니겠어? 헤헤헤.’
그때 이무환이 조금 심각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좌우간, 그자들하고 사우와 묵운의 무리를 상대하기로 했다. 그리고 잠풍련의 잔당도 잡고 말이다. 호연청이 벌써 추적조를 붙였다고 했거든. 그러고 보면 그 사람도 참 끈질긴 사람이야. 도망간 사람들까지 다 잡으려고 하다니.”
‘오빠가 왕거머리라면, 호연청은 새끼 거머리일 뿐이죠. 아마 호연청이 오빠의 말을 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머리를 감싸고 쓰러졌을 걸요?’
남궁산산은 그렇게 생각하며 찻잔을 채웠다.
“그런데 그들을 잡는 일에 오빠가 꼭 나설 필요가 있나요?”
“환비 때문이지 뭐. 사부를 이용할 정도라면 그 고약한 심성으로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잖아.”
물론 그것이 아니라도 절대사천좌의 무공을 수거하는 것 또한 자신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자신이 광노의 무공을 잇고 천광계(天光界)의 주인이 된 이상, 귀찮아도 그 정도 일은 처리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전부를 다 잡을 수는 없는 일. 환비 정도만 잡고 끝낼 생각이었다.
무면검마와의 약속 때문이기도 했지만, 거기에는 형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환비라면 언제든 위협이 될 수 있는 자이니까.
“그럼 섬에는 언제 갈 거예요?”
“환비를 잡고, 사우천도 부수고, 그러고 나서 가지 뭐. 어차피 가는 길이잖아. 아! 조부님하고도 약속한 게 있으니까 검운장도 들르고 말이야. 내가 원래 약속은 칼 아니냐.”
남궁산산이 이무환의 마지막 말에 방긋 웃었다.
“저도 약속을 잘 지키는 오빠가 좋아요. 섬에 함께 가자고 한 것도 분명히 지킬 테니까요.”
움찔한 이무환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이 떠올랐다.
“하, 하. 내, 내가 그랬어?”
“예, 오빠. 어제 오빠가 옥이 언니하고 비교해 본다고 가슴 만질 때 그랬잖아요.”
“그, 그랬던가?”
남궁산산이 대못을 때려 박듯이, 얼굴을 바짝 대고 한 자 한 자 콕콕 찔러서 이무환의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분명히, 그랬어요, 오빠가.”
순간 밀려드는 달짝지근한 향기.
갑자기 심장이 쿵쿵거리며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곧 구룡성주 취임식에 가야 하는데도 이무환의 머릿속에서는 자꾸 엉뚱한 생각만 들었다.
“그럼 뭐, 지켜야지. 그런데… 꼬맹아, 우리… 서로 입술 닦아주는……. 읍.”
역시 이런 방면에선 꼬맹이가 자신보다 한 수 위다.
반쯤 감긴 이무환의 눈앞에서 봄바람에 날린 복사꽃이 함박눈처럼 떨어졌다.
‘까짓거, 안 가면 어때?’
이곳이 무릉도원인데, 그 따분한 곳에 왜 간단 말인가!
“꼬, 꼬맹아…….”
“아이, 오빠…….”
이무환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며 남궁산산의 가슴 위로 거의 다 전진했을 무렵이었다.
“총대주! 빨리 오시랍니다!”
엽상이 북궁만호의 명으로 이무환을 데리러 왔다.
정말 웬수가 따로 없었다.
2
둥! 둥! 둥! 둥!
성문에서 일백 번의 북소리가 울렸다.
구룡성주의 취임식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하지만 대구룡성의 취임식답지 않게 모든 절차가 간결하게 진행되었다.
수백의 무사가 죽임을 당한 지 하루도 안 된 상황이다. 와중에 신룡부와 금룡부의 부주가 죽는 불상사까지 일어났다.
피를 딛고 올라서는 자리인만큼, 이금환은 취임식을 성대하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제일 전면에 천룡부, 와룡부, 철룡부, 창룡부, 검룡부, 도룡부, 마룡부의 부주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신룡부는 주용천이, 금룡부는 장로였던 장시경이 임시 부주로 참석했다.
그다음 줄에는 어깨에 힘을 준 적룡단주 곽가위와 화룡단주 장완, 그리고 굳은 표정의 호연청이 십이지부장과 함께 앉아 있었다.
호연청이 그 자리에 아직 앉아 있는 것은 이무환의 반협박을 못 이겼기 때문이다.
“사람들하고 가서 자리나 채워주쇼. 우리 형 성주 되는데 천중십마와 우내십존과 중원오신룡이 몇 명 끼어 있으면 더 보기 좋지 않겠수?”
뜻은 그럴듯했다.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아 그렇지.
철저히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들러리까지 서야 하다니!
‘빌어먹을 놈. 아주 철저히 이용해 먹는군.’
아마 자신의 바로 뒤에 앉아 있는 황보광이나 소천득, 헌원숭도 속이 쓰린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오늘이 아니었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였다.
함께하기로 한 일이 언제 끝날지 몰라도,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만이 머리 덜 빠지고 오래 사는 길이었다.
그나마 그 일이 환비를 잡고, 삼악 중 하나를 상대하는 것이라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어차피 밀천회로선 그들을 그냥 놔둘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제기랄,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그때였다.
둥!
백 번째 북소리가 울리더니 북궁만호가 일어나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