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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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79화
179화
소리 없이 몸을 날린 그는 단숨에 이 장의 거리를 좁히고 이무환의 등을 향해 쌍장을 내려쳤다.
거의 동시, 우측에 서 있던 장한이 번개처럼 발도하며 신형을 날렸다. 팽가의 팽효상이었다.
종남의 속가제자 노군화와 팽효상. 절정의 경지를 넘어 초절정의 경지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급습이다.
눈 한 번 깜박하기도 전에 두 사람의 공격이 이무환을 덮쳤다.
동시에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의 무기를 잡고 공력을 끌어올렸다.
이무환의 등을 향해 쌍장을 내려치는 노군화의 입가에 싸늘한 냉소가 걸렸다.
무쇠도 부수는 종남의 비기, 태을천강장의 장세다.
쌍장이 등에 틀어박히면 광룡이 아니라 광룡 할아비라도 심장이 터져 나갈 것이다.
‘역시 허장성세였어!’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이무환의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
조소를 띤 표정이 악귀의 얼굴처럼 느껴졌다.
등을 치는데 왜 얼굴이 보인단 말인가?
찰나의 순간, 눈앞에 뭔가가 아른거리는가 싶더니, 우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뇌리를 울리며 목이 콱 막혔다.
‘크어억!’
노군화가 제아무리 강호에서 난다 긴다 해도 상대는 광룡이다. 더구나 전력을 다한 일격필살의 급습은 그만큼 공격자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법. 찰나의 방심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자신을 과신했고, 광룡을 무시했다. 그 차이가 그의 몸을 지옥으로 던져 넣었다.
환상처럼 몸을 돌린 이무환은 뇌정갑을 낀 손으로 노군화의 양 팔목을 잡아 꺾고, 뒤이어 좌수를 뻗어 목을 움켜쥐었다.
“죽을 각오를 하라고 했지?”
동시에 목이 잡힌 노군화를 휘둘러 팽효상의 쾌도를 막았다.
악랄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무환에게는 단지 방어의 일환일 뿐이었다.
“헛!”
대경한 팽효상은 급격히 도의 방향을 틀었다.
그 바람에 팽효상의 옆구리에 미세한 틈이 드러났다.
찰나, 앞으로 미끄러지듯 나아간 이무환의 오른발이 번개처럼 팽효상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퍽!
“커억!”
허공으로 일 장이나 붕 떠서 날아가는 팽효상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무환은 그를 보지도 않고 노군화의 목을 움켜쥔 좌수에 힘을 주었다.
“사람이 말을 하면 믿어야 할 거 아냐?”
우두둑!
또다시 뼈 부러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린다. 입을 쩍 벌린 노군화의 몸이 파르르 떨리더니 힘없이 처진다.
숨을 한 번 쉴 정도의 짧은 순간, 그 모든 일이 벌어졌다.
‘설마 제압한 사람을 죽이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에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일말의 거리낌도 없는 행동. 미동조차 없는 차가운 눈빛!
미처 모르고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이무환이 왜 광룡이라 불렸는지 이해가 갔다.
그러나 동료의 죽음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이 미친놈!”
황보광과 정화풍이 동시에 이무환을 공격했다.
이무환은 머리가 처진 노군화를 내던지고 두 사람의 공세 사이로 뛰어들었다.
다섯 자의 거리를 두고 이무환과 황보광의 기운이 맞부딪쳤다.
콰광!
우수 일장에 황보광이 주르륵 밀려나고, 수룡전이 충격의 여파에 우르릉,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무환은 옆으로 미끄러지며, 뇌정갑을 낀 좌수를 정화풍의 검세 속으로 밀어 넣었다.
푸르스름한 장영이 십여 개로 늘어나며 정화풍의 검영을 쫓는가 싶더니, 두 손가락이 검날을 잡아 꺾었다.
따당! 쩡!
시퍼런 강기가 서린 정화풍의 검이 중동에서 부러지고, 반쪽 난 검날이 이무환의 손에 잡혔다.
이미 노군화의 죽음을 본 터. 사람들이 대경하며 소리쳤다.
“조심해!”
“물러서!”
황보광이 다시 쌍권에 공력을 집중시킨 채 몸을 날렸다. 하후영도 검을 뽑으며 정화풍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이무환의 신형이 유령처럼 흐릿해졌다 싶은 순간.
푹!
좌수에 들린 부러진 검날이 정화풍의 어깨를 관통했다. 그나마 정화풍으로선 최후의 순간 몸을 틀어 심장이 뚫리는 것을 모면한 것이 다행이었다.
“크흡!”
신음을 씹어 삼킨 정화풍이 비틀거리며 이 장 밖으로 몸을 피하자, 황보광과 하후영은 곧바로 공세를 취하지 않고 신중한 자세로 이무환의 앞을 막았다.
소천득과 모용상명도 이무환의 좌우로 다가서며 간격을 좁혔다.
쏴아아아…….
모래 쓸리는 것 같은 소리가 이무환을 중심으로 흘렀다.
바람도 없는데 이무환의 옷자락이 잘게 펄럭였다.
숨 막히는 정적! 짓눌린 침묵!
모두가 입을 닫고 수룡전의 중앙을 주시했다.
개천신권 황보광과 절명마수 소천득, 거기에 중원오신룡 중 잠룡과 도룡이 한 사람을 상대로 전력을 다 끌어낸다.
강호에 소문이 퍼지면 천하가 들썩일 것이었다.
아니, 아예 믿지를 않겠지.
그 와중에도 한쪽에서 바라만 보고 있던 헌원숭은 곤혹스럽기만 했다.
왜? 왜 광룡은 혼자 들어온 것일까?
함께 온 사람들을 왜 수룡전으로 데려오지 않은 걸까?
광룡이 광오해서? 아니면 정말로 미쳐서?
아닐 것이다. 절대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자신이 아는 광룡은 자만하지도, 무모하게 일을 처리하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지금까지 남의 힘을 빌려 적을 치는 잔머리를 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절대 손해 보는 짓은 하지 않는 사람, 그게 광룡이 아니던가.
‘뭔가 있어. 분명히…….’
그사이에 이무환을 중심으로 휘도는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
고오오오오오!
네 사람 한가운데 서 있는 이무환의 눈빛도 더욱 깊어졌다.
그를 포위한 네 사람 누구도 먼저 공세를 펼치지 않았다.
그들은 강호무림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자존심이 상하고 심경이 착잡했다.
아무리 회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절대명제를 이행하기 위해서라지만, 먼저 공격한다는 것이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무환이 그들의 속을 긁었다.
“어제 천세 늙은이의 공세가 어땠는지 알아? 아마 당신들은 상상도 못할 걸? 거기에 비하면 이건 봄바람이라고.”
제일 먼저 하후영의 가늘어진 눈매에서 싸늘한 광채가 번뜩였다.
‘오냐, 이놈! 어디 봄바람에 맞아 뒈져 봐라!’
파악! 쉬익!
하후영이 한 발 튀어나가는가 싶더니 도광이 대기를 사선으로 갈랐다.
순간 이무환의 입술 끝이 묘하게 틀어졌다.
그걸 보고 모용상명도 신형을 날렸다.
“하후 형! 말려들지 마!”
찰나였다. 이무환의 우수가 홱 뒤집어지며 손끝에서 붉은 구슬이 튕겨졌다.
땅!
귀청을 울리는 맑은 탄음!
대기를 사선으로 가르던 도광의 허리가 잘리고, 이를 악문 하후영을 향해 커다란 손바닥이 밀려갔다.
홍옥지에 이어 수룡회가 연환으로 펼쳐진 것이다.
“헉!”
대경한 하후영은 황급히 세 번의 칼질로 자신의 앞을 막았다.
도왕의 천절칠도(天絶七刀) 중 단설영(斷雪影)의 일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그림자를 모조리 잘라낸다는 절대의 도식.
상황에 따라 공방(攻防)을 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하후영이 애용하는 도식이었다.
그러나 커다란 손 그림자는 회오리처럼 휘돌며 단설영의 도망(刀網)을 짓눌렀다.
찰나간에 수룡회가 만압회로 바뀐 것이다.
쾅!
굉음이 일며 도망이 터져 나가고, 하후영의 몸뚱이가 뒤로 굴러갔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그 틈에 모용상명의 검이 지척에 이르렀다.
모용상명의 검강이 이무환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순간! 이무환의 신형이 좌우로 흔들리며 서너 개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어느 것이 진체인지 보고도 알 수 없는 극한에 이른 수류보다.
그사이를 모용상명의 검이 훑고 지나갔다.
모용상명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검이 허상만 베어냈다는 것을 느끼고 급히 몸을 뒤집었다.
일순간,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시퍼런 장영이 눈에 들어왔다.
‘흐읍!’
보는 것만으로도 이가 절로 악물릴 정도다.
항거하기에 부담이 되는 엄청난 위력의 장력!
자신이 선택할 방법은 둘. 이대로 몸을 굴려 피하거나 정면으로 부딪치는 길뿐이다.
‘피하지 않겠다, 광룡!’
각오를 다진 모용상명은 모든 공력을 검에 집중하고 허공을 향해 검을 뻗었다.
찰나, 번쩍! 그의 검첨에서 석 자 이상의 검강이 솟구쳤다.
결코 절대고수들에 뒤지지 않는 위력의 검강.
반천무영장을 펼치던 이무환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호오! 생각보다 강한데?’
이무환은 모용상명을 향해 뻗은 우수에다 천광지령의 기운을 쏟아냈다.
천광뇌벽이 펼쳐지자 모용상명의 검강이 석 자에서 더 뻗지 못하고 부서져 나가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쩌저적!
이를 악다문 모용상명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러나 모용상명은 이판사판이라는 마음에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물러나고 싶어도 물러날 수가 없었다.
“피해!”
황보광이 모용상명의 위기를 눈치채고 다급히 쌍권을 휘둘렀다.
소천득도 눈을 부릅뜬 채 신형을 날리며 쌍수를 뻗었다.
절대고수 두 사람이 합공을 해온다.
제아무리 자신이 강하다 해도 방심한다는 자체가 죽음과 직결되는 상황. 이무환은 일단 상대를 하나 줄일 작정으로 천강뇌벽에 탄자결을 섞어 모용상명의 검강을 쳐냈다.
콰릉!
뇌음이 일며 모용상명이 멀찌감치 나가떨어졌다.
이무환은 그 반탄력을 이용해 일 장가량 뒤쪽으로 날아갔다.
그 바람에 지척에 이르렀던 황보광과 소천득의 공세가 일 장가량 벌어졌다.
찰나의 여유!
이무환은 구성의 천광지령을 끌어올리고는, 양손을 엇갈려 천광뇌벽과 천광뇌령을 연이어 펼쳤다.
벌어진 거리는 찰나간에 다시 좁혀지고, 세 사람의 기운이 다섯 자의 거리를 둔 채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과광!
수룡전을 뒤흔드는 격돌음!
황보광이 또다시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소천득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서너 걸음을 물러섰다.
이무환은 두 사람과 부딪친 충격을 이용해서 허공을 날아 삼 장 밖으로 내려섰다.
쏴아아아아! 쿠르르릉!
뒤늦게 충격파가 수룡전 내부를 휩쓸었다. 커다란 건물 전체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렸다.
밀천회의 고수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특히 호연청은 격동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쉽지 않았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천세도인과의 격전에 대해 들은 것이 조금도 과장이 없는 사실이라면, 광룡이 환우사천만큼이나 강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부정하고픈 마음이 더 강했다.
황보광과 소천득이면 가능하겠지. 두 사람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 모용상명과 하후영까지 합공하면 이기는 거야 기정사실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자신의 마음처럼 흐르지 않았다.
적수를 찾기 힘든 고수 넷이 합공했는데도 두 사람이 부상을 입기만 했을 뿐, 조금도 우세를 보이지 못한 채 뒤로 밀렸다.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서로가 마찬가지. 그렇다면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결과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놈을 여기서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을지 모른다.’
벼랑 끝에 매달린 상황. 더 이상은 가릴 것도 없다.
광룡을 제거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자존심은 잠시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헌원 형, 함께 손을 씁시다.”
호연청의 전음이 귀청을 울리자, 헌원숭의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는 호연청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저었다.
<나는 합공하지 않겠소.>
<헌원 형?>
호연청을 바라보는 헌원숭의 눈은 조금 전과 달리 형형한 빛을 발하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회의 명으로 강호의 도산검림을 걸은 지 삼십 년, 나름대로 당당한 삶을 살아왔다 자부하오. 죽어도 후회 없을 만큼 말이오. 나 헌원숭, 이제 와서 후회할 일을 하고 싶지는 않소. 미안하오.>
헌원숭의 단호한 의지를 읽은 호연청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그러나 헌원숭을 다그치기에는 상황도 좋지 않고 시간도 너무 없었다.
호연청은 헌원숭의 마음을 돌리는 걸 포기하고 이무환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광룡, 남자답게 결판을 보자. 우리 셋을 이긴다면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