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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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78화
178화
“솔직히 광룡대의 능력으로 봐서 ‘대’로 불리기는 그렇지 않습니까? 해서 말인데… 광룡대를 광룡단으로 승격시켜 주면 어떻겠수?”
3
북궁만호와 함께 별원으로 돌아온 이무환은 대원들을 소집했다.
일단 광룡대에 있는 사람들 중 절정 이상의 경지에 이른 고수들을 골랐다.
무설강, 제갈신걸, 유철상, 와룡사십팔객의 조장들 중 부상이 심하지 않은 관철주와 서문학, 그리고 열세 명의 와룡객까지. 물론 광룡사위는 당연히 따라갈 것이었다.
한쪽에서 멀뚱히 구경하는 황산검문의 제자들 중에도 쓸 만한 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을 부려먹으려면 양심상 그만한 대가를 주어야 할 터, 받기로 한 보상금이 깎일까 봐 포기했다.
너무 돈만 밝힌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멋 좀 내려고 돈을 낭비할 순 없잖아?
대신 그들에겐 남궁산산이나 지키게 했다.
그렇게 인원을 추린 이무환은 곧바로 담사황을 만났다.
“담 궁주님, 도와주는 김에 한 번 더 도와주쇼.”
말이 도와달라는 것이지, 담사황의 귀에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광룡의 그물에 걸린 그로선 거부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그냥 떠나면 대가를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후우, 애초에 욕심을 부린 내가 잘못이지. 구룡성에 저런 놈이 있는 줄 알았다면 죽어도 장사를 떠나지 않았을 텐데.’
후회해 봐야 이미 그물에 걸린 상황. 담사황은 말이라도 힘차게 대답했다.
“말해보게! 뭘 도와주면 되겠나?”
“밀천회 놈들을 잡으러 갈 생각이오. 같이 갑시다.”
“밀천회?”
담사황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이무환은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비밀에 대해 털어놓는다는 듯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놈들이 있습니다. 아마 놈들에 대한 것을 알게 되면 제가 함께 가자고 한 것을 고맙게 생각할 겁니다.”
그 말에 담사황도 슬그머니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 그럼 같이 가도록 하지.”
담사황을 제외하고도 만겁궁의 사람들 중 초절정의 고수가 셋이다.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었다. 물론 대가와 상관없는 덤이었다.
그렇게 담사황마저 승낙하자 이무환은 즉시 영호승과 엽상을 와룡부와 철룡부로 보냈다.
일각 후.
공손척이 다섯 명의 고수와 함께 도착하고, 곧이어 철우평이 철룡칠의 중 셋을 데리고 천룡부의 별원으로 들어왔다.
철우평은 여전히 이 부러진 원한을 잊지 못하고 이무환을 흘겨보며 물었다.
“무슨 일로 부른 것이오?”
“할 일이 있어서 불렀소. 그냥 따라다니다가 힘만 좀 쓰면 되는 일이오. 뭐, 조심만 하면 이 부러질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요.”
이무환은 눈을 부라리는 철우평을 향해 씨익 한 번 웃어주고는, 별원의 앞마당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이제부터 미꾸라지를 잡으러 갈 거요. 사납게 덤빌지 모르니까 각자가 알아서 몸조심하시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제부터 우리의 이름은 광룡단(狂龍團)이오! 하, 하, 하! 곧 성주 위에 오르실 이금환 부주께서 허락한 이름이니 그렇게 아시오.”
광룡대가 광룡단이 되었다.
구룡성의 지휘 체계상 한 단계 승격했다는 말.
이무환은 그것이 자랑스럽다는 듯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별원 마당의 누구도, 광룡대가 광룡단이 되었다는 것에 감동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래가지 않을 이름이라 생각했으니까.
특히 철우평은 부러진 이 사이로 침을 찍, 뱉어내며 코웃음을 쳤다.
“훗, 광룡단? 아는 게 ‘광(狂)’ 자밖에 없나?”
하지만 앞날은 누구도 모르는 법이다.
광룡의 속은 더욱더 알 수 없고.
알았다면 결코 지금처럼 태연하게 있지 못했을 것이었다.
좌우간 이무환은 남들이야 광룡단이라는 이름을 돌아서면서 잊어먹든, 길거리 약장수에게 팔아먹든 상관하지 않고, 흐뭇한 웃음을 지은 채 일행을 둘로 나누었다.
그러고는 광룡사위와 엽상, 종리난경 등 기존의 광룡대에 있던 사람 중 몇 사람만 데리고 별원을 나섰다.
“자! 나중에 웃으면서 만납시다. 출발!”
제2장. 협상은 화끈하고 끈질기게
1
“광룡이 왔습니다!”
모용상명이 그답지 않게 다급한 걸음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평소라면 조카답지 않다며 한마디 했을 호연청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가 왔다고?!”
호연청은 칼날처럼 눈을 번뜩이며 벌떡 일어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천득과 황보광, 하후영 등도 벌떡벌떡 일어났다.
와중에도 헌원숭만은 침중하게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온 자들은 몇이나 되느냐?”
“광룡사위와 엽상을 비롯해서 십여 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훗, 그래? 다행이군.”
호연청의 눈가로 싸늘한 광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말하는 걸로 봐서는 십여 명 중 이렇다 할 자가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광룡만 처리하면 된다는 말이 아닌가.
황보광도 조금 편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에 대한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닌 것 같소.”
그 말에 호연청의 입가로 잔잔한 미소마저 번졌다.
“그러게 말이오. 우리가 너무 깊게 생각했나 보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굳은 표정을 풀었다. 모두가 그런 마음인 것은 아니었지만.
헌원숭은 오히려 가슴이 더 무거워졌다.
생각보다 빠른 광룡의 귀환.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그가 단순하게 광룡대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 오는 걸까?
절대 그럴 자가 아니었다.
‘겉으로 보면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 같지만, 광룡은 절대 무리한 일을 벌이지 않는다. 그걸 모른다면 당신은 오늘 참담한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호연청.’
그는 옆자리의 두 제자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내 명령이 없으면 절대 함부로 행동하지 마라.>
천룡부의 싸움에서 제자 하나를 잃었다. 그로선 더 이상 제자를 잃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린 지 반 각가량이 지났을 즈음.
“하, 하, 하! 안녕들 하셨습니까?”
이무환이 한 손을 들어 올린 채 웃는 모습으로 들어왔다. 꼭 십 년 만에 만나는 사람처럼 반가운 표정이었다.
호연청도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부상을 당했다 들었는데, 괜찮아 보이는군.”
“재수가 좋았지요.”
“그래, 이제 천룡부는 안정되었나?”
“그럭저럭 된 거 같습니다.”
“좌우간 수고가 많았네. 자네의 활약 덕분에 잠풍련의 마수를 완전히 부술 수 있었으니 구룡성의 무사들은 자네의 공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네.”
“글쎄요. ‘완전히’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군요. 천세도인의 제자가 백 명이나 되는 고수들을 데리고 빠져나갔으니까요.”
“그거야 어쩔 수 없지.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잠풍련도 몰아냈고, 구룡무제 시해를 주도한 천세도인과 주백천도 죽었으니 특조대도, 광룡대도 더 이상 존속할 상황이 아닌데 말이야.”
이제 광룡대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 또한 광룡대에 보태주었던 세력을 거두겠다는 뜻이다.
그리되면 수룡 삼, 육, 구대뿐 아니라, 구룡수호단과 헌원숭과 소천득 등 광룡대의 힘 중 칠 할가량이 빠져나간다.
제아무리 광룡이 강하다 해도 남은 힘으로는 결코 수룡단에 모인 자신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호연청의 일차적인 계산이었다.
이무환은 빙그레 웃으며 별걱정 다 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하! 사실 그동안 단주님의 도움이 컸지요. 하긴 저도 낯짝이 있지 언제까지 단주님의 신세를 질 수는 없지요.”
그러면서 태연하게 호연청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뭐, 곧 알게 되시겠지만, 앞으로 광룡대라는 이름은 불리지 않을 겁니다.”
“호, 그런가? 그거 참, 아깝군. 그래도 구룡성에 새로운 전설을 쓴 단첸데 말이야.”
“아까울 것은 없습니다. 대신 광.룡.단.이 만들어지니까요.”
너무 세게 후려쳤는가?
호연청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광… 룡단?”
“아마 오후에 정식으로 발표가 날 겁니다. 축하해 주실 거죠?”
호연청은 축하 대신 이무환의 머리통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주먹을 움켜쥐고 꾹 참았다.
“현재 본 성의 삼단은 각자의 고유 임무가 있네. 광룡단은 무슨 임무를 맡기 위해 만들어지는 건가?”
이무환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구룡성의 별동 단체로, 성주의 위엄을 지키는 일이 첫 번째고, 다음이 구룡성에 들어온 불순한 무리를 때려잡는 일이지요. 예를 들어…….”
이무환은 잠시 말을 멈추고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호연청은 속이 타들어갔다.
입을 열면 노성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악다문 이가 부서질 것 같은데도 그는 최대한 무심한 표정을 유지한 채 이무환만 노려보았다.
그때 이무환이 고저없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예를 들어… 잠풍련이나 사우 같은 무리들을 때려잡는 일 말입니다.”
호연청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저놈은 아직 우리를 모를지도 몰라.’
이무환은 그런 호연청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러고는 호연청이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물론 밀천회는 조금 예외라고 할 수 있지요.”
철렁!
호연청과 모용상명, 황보광, 소천득 등은 심장이 툭 떨어지는 소리가 귓속에서 들리는 듯했다.
이무환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찰나간에 서너 번도 더 변했다.
반면 헌원숭은 이를 악물고 뒷짐 진 손을 풀었다.
‘역시 다 알고 왔어.’
그렇다면 그만큼 승산이 줄어들었다는 말.
그로선 도무지 광룡과 싸울 마음이 나지 않았다.
광룡이 지닌 무위는 나중 문제였다. 늙은 너구리 천세도인을 농락하고, 이제 호연청마저 마음대로 가지고 논다.
거기다 추측할 수조차 없는 무위까지.
적으로서 가장 두려운 특징을 모조리 가지고 있는 사람이 광룡인 것이다.
바로 그때, 이무환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그래도 밀천회는 아직 구룡성에 큰 피해를 끼친 것은 없지 않습니까? 뭐, 욕심이야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것이고, 문제는 계속 욕심을 부릴 거냐, 아니면 욕심을 버리고 순순히 하늘의 뜻에 순응할 것이냐 하는 것인데…….”
그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갈등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결국 결정은 본인들이 하겠지요.”
이무환이 그렇게 말을 끝내고 입을 닫자, 호연청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일순간 극심한 변화를 일으키던 그의 표정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설마 자네 혼자 우리를 모두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미쳤수?”
말은 그리하면서도 여전히 태연한 이무환이다.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다는 말.
호연청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았네.”
황보광이 굳은 표정으로 그의 말을 받아 이었다.
“우리에 대해 알았다면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것도 알겠군.”
이무환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의 입가에서 시작된 미소가 서서히 얼굴 전체로 번졌다.
“하, 협상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까, 비밀 유지를 위해서 내 입을 막아야겠다? 와하하하! 그거 정말 반가운 소리군요!”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대소. 비웃는 말투.
호연청과 황보광은 물론이고, 수룡전 내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 차가운 분노의 눈빛이 일렁였다.
동시에 별다른 명이 없는데도 이무환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무환은 그들의 움직임이 뜻하는 바를 알면서도 턱을 치켜들었다.
절대고수들을 앞에 둔 채, 천하를 오시하는 모습으로!
“어디 자신 있으면 마음대로 해보쇼. 단, 죽을 각오를 하고 덤벼야 할 거요.”
눈을 내리깔고 보는 것이, 꼭 고양이가 쥐를 보는 것 같은 태도다.
한쪽 발로 바닥을 툭툭 치는 것도, 고양이가 앞발을 들어서 쥐를 상대로 톡톡 장난을 치는 것 같고.
그 모습에 스멀거리며 피어난 분노가 머릿속을 하얗게 태운다.
전날의 일대 격전을 두 눈으로 봤음에도, 장내의 고수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래, 어두워서 잘못 본 것일 거야.
―생각했던 것보다 천세도인이 약했을 수도 있어. 사실 당시에 천세도인은 제정신이 아니었잖아?
―어제 그렇게 큰 부상을 입었는데 벌써 다 나았을 리가 없다. 분명 허장성세일 거다.
분노가 눈을 가리고, 판단을 흐리게 했다.
억눌렸던 오만한 자존심이 고개를 들었다.
각파 최고의 기재 소리를 듣던 자신들이다. 저따위 미친놈 하나 상대하지 못해서 몸을 사려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죽이리라! 광룡을 죽여서 밀천회의 위대함을 보여주리라!
차가운 침묵이 대전을 짓누른 지 얼마나 흘렀을까.
제일 먼저 이무환의 뒤쪽에 서 있던 중년인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