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76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76화
176화
제1장. 광룡단(狂龍團)
1
“저기, 바쁜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나머지는 잠시 미루죠.”
담사황은 멍한 표정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그거야… 바쁘다면 내일 이야기하지. 그런데… 왜 그러나?”
“하, 하. 꼬맹이가 왔거든요.”
‘꼬맹이? 조금 전에 말한 그 꼬맹이?’
담사황은 실소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이무환을 빤히 바라보았다.
‘완전히 잡혀 사는 건가?’
그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기분이 별로였지만, 그렇다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 역시 그 마음을 잘 아니까.
“와하하! 왔냐?”
“오오오빠아아!”
백 년 만에 극적인 상봉을 하는 오누이 같았다.
남궁산산과 함께 온 당호민과 황산의 제자들도, 주위를 오가던 천룡부의 무사들도,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두 사람을 벙 찐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광룡 맞아?
대부분이 그런 눈빛이었다. 물론 광룡사위를 비롯한 광룡대원들이야 일상사를 보는 것처럼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저 안 보고 싶었어요?”
“며칠이나 떨어져 있었다고 보고 싶고 말고 하겠냐? 그래도 걱정은 조금 되었지.”
저게 반가워하는 사람의 말투가 맞아?
그런데도 남궁산산은 여전히 웃음 띤 얼굴이다.
“저도 오빠가 조금 걱정되었어요. 제가 없으면 뜬눈으로 밤 샐지 몰라서 말이에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끝내 광룡대원들조차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든 말든 이무환과 남궁산산은 밝게 웃으며 여전히 헛소리만 했다.
“야, 임마. 내가 왜 뜬눈으로 자? 눈을 감고 자지.”
“피, 오빠는 눈뜨고도 잘 잔다면서요.”
“그거야 물속에서 잘 때나 그러지. 그런데 왜 말 안 듣고 구룡성에 들어온 거냐?”
“그거야 오빠 도와주려고 왔죠, 뭐. 제가 없으면 오빠 혼자 고생할 거 아니에요.”
“너 없어도 잘할 수 있어, 임마.”
“헹, 제가 말 안 했으면 범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었을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 좌우간 어차피 왔는데, 이제 와서 볼기를 때릴 수도 없고, 들어가자.”
“예, 오빠!”
“어? 그런데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키가 큰 것 같네?”
“원래 컸어요.”
“가슴도 더 커진 것 같고 말이야.”
“원래 컸다니까요? 보여줘요?”
“여자가 어디서! 놔둬, 임마. 나중에 나만 볼 거니까.”
그렇게 어이없는 대화를 나누던 이무환이 당호민과 황산의 제자들을 보고 활짝 웃었다.
“오시느라 수고들 했습니다. 자, 들어가시죠.”
그러고는 남궁산산의 머리를 흩뜨리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자, 꼬맹아.”
사람들이 정신을 차린 것은, 두 사람이 나란히 별원 쪽으로 사라진 후였다.
‘광룡, 광룡하더니, 역시 제정신이 아닌 것은 분명하군. 혹시 영단을 정량보다 더 복용한 거 아니야?’
‘저 사람이 정말 우리 일을 해결해 줄까?’
그래도 어쩌랴. 여기까지 온 이상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당호민과 황산검문 제자들은 곤혹한 표정을 지은 채 광룡사위의 안내를 받으며 별원으로 들어갔다.
이무환은 영호승을 시켜 당호민과 황산의 제자들이 쉴 만한 곳을 마련해 주도록 했다.
남들이야 믿든 말든, 꼭 남궁산산과 단둘이서만 있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둘이서만 방 안으로 들어가, 은은한 대황초가 켜진 탁자에 마주 앉은 지 반 각이 지났다.
미지근하게 식은 차를 한 잔 따라 마신 이무환은 남궁산산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너, 밀천회라고 알아?”
남궁산산의 눈이 동그래졌다. 생전 처음 듣는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밀천회요?”
그러나 이무환의 눈을 완전히 속일 수는 없었다.
바람 한 점 없는 호수처럼 잔잔하던 꼬맹이의 눈 깊은 곳에서 갈등의 물결이 일렁인다.
“알지? 그렇지?”
이무환이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고 뚫어지게 바라보며 재촉했다.
남궁산산은 이무환이 확신을 가지고 묻는다는 걸 알고 한쪽 눈을 찡긋하며 배시시 웃었다.
“우리 오빠, 촌뜨기인 줄 알았는데 제법이네요?”
“잔말 말고 인마,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봐.”
“저도 많이는 몰라요. 그냥 우연히 세가의 서고에 있는 책을 읽다가 실마리를 잡고 조금 알아봤을 뿐이에요. 그런데 알려진 것이 너무 적어서 기껏해야 껍질만 봤을 뿐이죠.”
한 번 관심을 가지면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그런 남궁산산이 대충 알아보고 넘겼을 리 없다.
그런데도 정말 알아낸 것이 껍질뿐이라면, 밀천회의 내면이 얼마나 철저하게 비밀에 쌓여 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거짓말이면… 너…….”
“오빠가 저 버려도 뭐라고 않을게요.”
남궁산산이 먼저 선수를 치자, 이무환은 붕어처럼 입만 벙긋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음, 음, 누가 버린다고 했나? 그냥 볼기 몇 대 치고 말려고 했지.’
그때 남궁산산이 웃음을 지우고 고개를 저었다.
“정말 많이는 몰라요.”
이무환도 더는 추궁하지 않고, 너의 모든 것을 다 믿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알고 있는 것만 말해봐.”
남궁산산이 탁자에 팔을 걸치더니, 머리를 앞으로 내밀며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정천무림맹이 밀천회를 만든 것은 삼백 년 전이에요. 절대사천좌에게 강호의 주도권을 뺏겼을 때 말이에요. 당시 구파칠가를 중심으로 각파 최고의 고수와 인재들 백 명이 차출되었어요.”
“가만, 구파오가가 아니라 구파칠가라고?”
“당시에는 산서 모용세가와 하남의 하후세가가 한창 기세를 올릴 때라서 오가가 아니라 칠가라 불렸어요.”
“흠, 모용세가와 서문세가라…….”
‘그럼 모용상명과 하후영이 그들의 후예인가?’
좌우간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지금은.
이무환이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남궁산산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게 백 명의 고수와 기재들이 차출되어서 힘을 길렀는데… 어이없게도 갑자기 절대사천좌가 사라져 버렸어요. 천자산이 무너진 그날에요.”
‘흐흐흐, 나는 그날의 일을 알고 있단다, 꼬맹아.’
그때 남궁산산이 묘한 눈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헛, 저 여우가!’
흠칫한 이무환은 표를 내지 않고 입가에 매달린 웃음을 지웠다.
“험, 계속 말해봐.”
좀 더 바짝 붙어 앉은 남궁산산은 이무환의 코앞에 머리를 들이밀고, 눈을 빤히 바라보며 나직이 말을 이었다.
“적이 사라졌으면 각파로 돌아갔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어요. 나중에 그들의 후예가 나타날지 모르니 그때를 대비해서 계속 밀천회를 존속시켜야 한다고 했죠.”
“그, 그래?”
이무환이 더듬거리며 멍하니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그 어떤 섭심마공보다 무서운(?) 눈빛, 향기가 남궁산산의 눈과 입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음, 음, 이러면 안 되는데…….’
남궁산산이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는 암암리에 기재들을 차출해서 밀천회의 모임을 이어왔어요. 무려 삼백 년 동안이나 말이에요, 오빠.”
“그, 그래서?”
“밀천회 회원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들의 총단이 어디 있는지, 회주가 누군지, 누가 회원인지도 말이에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무환은 한 자 앞에 있는 남궁산산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남궁세가의 기재도 밀천회에 차출되었을 거 아냐? 그럼 밀천회에 대해 아는 게 상당히 많을 것 같은데.”
“밀천회에 들어간 기재들은 절대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는 맹서를 한다고 해요. 본 가에서 밀천회에 들어가신 분들도 절대 입을 열지 않았죠. 열면 본 가에 어떤 피해가 있을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게 제대로 지켜질까?”
무려 삼백 년이다. 간사한 사람의 입이 그 오랜 세월 비밀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처음부터 지금까지 완벽하게 비밀이 유지되지는 않았어요. 오빠는 백여 년 전 모용세가와 하후세가가 칠가에서 빠진 결정적인 이유가 뭔지 알아요?”
“설마 비밀을 누설했다고……?”
“어느 날, 두 곳의 수뇌 십여 명이 며칠 사이에 무공을 잃었어요.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에게 당했는지 절대 입을 열지 않았죠. 그리고 두 집안은 그 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요.”
무서운 일이었다. 단지 입을 열었다고 가문을 몰락시키다니.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 후부터는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정말 철저하군.”
남궁산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좌우간 본 가도 기재 차출 때문에 불만이 많았어요.”
세가의 기재가 밀천회에 들어간다는 것은 영광이라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마음은 결코 그렇지가 않았다. 그러잖아도 힘이 쇠락하고 있는 판에 절세기재의 부재는 그들에게 있어 막대한 손실이었다.
그렇다고 밀천회가 남궁세가를 도와주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남궁세가로선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남궁산산은 이무환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말을 이었다.
“기재를 빼앗긴 본 가는 정천무림맹에 정식으로 요구했지요. 차출한 기재들을 돌려보내 달라구요. 그런데 정천무림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이제 밀천회의 결정을 움직일 힘이 없었으니까요.”
정천무림맹이 만들고도 마음대로 하지는 못한다는 말. 한마디로 그만큼 밀천회의 힘이 크다는 말과도 같았다.
이무환은 쿵쿵 뛰는 심장의 박동을 감추기 위해 딱딱한 말투로 밀천회를 씹었다.
“겉만 정파지, 욕심을 부리는 것은 다 똑같군. 나쁜 놈들.”
“그죠, 오빠?”
쪽!
“나는 그런 놈들이 싫어.”
“저도요.”
쪽!
“입술에 연지 안 칠했지?”
“안 칠했어요.”
쪽!
뺨에서 부딪치기 시작한 남궁산산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 근처까지 접근했다. 복사꽃 향기에 머리가 멍할 지경이다.
이무환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꼬맹이의 입술이 갈라진 석류처럼 붉게 보인다.
“어… 꼬, 꼬맹아, 내가 입술 닦아줄까?”
“으응…….”
“총대주! 자루는 옆방에 놓겠습니다!”
밖에서 엽상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이무환이 남궁산산의 이가 몇 개인지 세고 있을 때였다.
‘빌어먹을, 눈발! 그냥 놓고 가면 입술에 종기가 나나?’
하지만 찰싹 달라붙은 꼬맹이 때문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물론 꼬맹이를 떼어놓을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그사이 손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이무환은 절대 말리지 않았다.
‘으음, 역시 아직은 옥이 것보다는 작아…….’
2
아침이 밝았다.
동쪽 하늘에서 떠오른 황금빛 태양이 구룡성을 비추었다.
이슬에 젖은 천룡전의 지붕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갈 무렵.
이무환은 장포를 걸치고, 무영뢰가 든 가죽띠를 팔목에 차고, 뇌정갑을 낀 후 묵린도를 옆구리에 끼웠다.
남들이야 안 믿을지 몰라도, 예쁜 소저를 옆에 두고 그럴 리가 있냐며 잘근잘근 씹어댈지 몰라도! 이무환은 밤을 새워 운기를 했다. 폭령잠마영단 하나를 더 복용하고서.
한계치를 넘어 위험할지 몰랐지만, 전신으로 퍼진 만년해령실의 기운이 폭령잠마영단의 폭주하는 기운을 억제해 줄 거라 믿었다.
어제처럼 서로 융합되면 더 좋고.
사실 아니어도 하는 수 없었다. 내상을 최대한 빨리 치료해야 하는데, 방법이 마땅히 없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모험을 한 덕에 내상이 팔 할가량 치유되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전날의 기운보다 더 강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단전에 뭉쳐 있던 만년해령실의 기운이 완전히 용해되었기 때문인 듯했다.
‘흠… 내상만 완전히 나으면 파천삼법의 마지막 수법을 펼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무환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침상을 바라보았다.
꼬맹이가 침상 위에 누워서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짐짓 눈에 힘을 준 그가 말했다.
“오늘은 침상이 하나라 그냥 재워줬지만 내일은 안 돼.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니까. 알았지?”
남궁산산은 베개에 얼굴을 반쯤 파묻고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예, 오빠. 침상 하나 구해올게요.”
다른 방에 가라고 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표정.
사실 이무환도 다른 방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험, 그럼 갔다 올게.”
“최대한 많이 받아내세요, 오빠. 그래야 옥이언니와 우리가 살 장원을 멋지게 짓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