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70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70화
170화
이금환이 그를 보고 힘차게 포권을 취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부주님!”
천룡전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 그들은 철룡칠의와 철룡부주 무적철검 철군평이었다.
“늦지 않았나 모르겠군.”
“절대 늦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주 적절한 때에 오셨습니다.”
저벅, 저벅, 저벅.
철군평이 철룡칠의를 이끌고 위세당당하게 천룡전을 가로지르자, 그러잖아도 한껏 분위기가 고조되었던 각 부의 간부들 얼굴이 열기로 달아올랐다.
사부(四府)가 진정한 마음으로 뭉쳤다.
적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지지 않으리라!
그런 희망에 찬 표정.
천룡전이 무인의 열기로 휩싸인 그 시각.
어둠에 묻힌 두 곳에서 사백여 명에 달하는 무사가 일제히 몸을 날렸다.
그들의 목적지는 구룡성의 중앙, 천룡부였다.
이무환의 귀에 신룡과 금룡이 움직였다는 소식이 들어간 것은 소집한 사람들이 다 모였을 때였다.
이무환은 그 소식을 듣고도 뜸을 들이며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이 멍청하지 않다면 무작정 천룡부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공멸은 원치 않을 테니까.
“감 씨, 두더지굴 입구 발견된 곳이 몇 곳이라고 했죠?”
“내가 발견한 곳은 두 곳이오. 물론 더 있을지도 모르오만.”
“사람들은 배치해 놓았겠죠?”
“삼중으로 해놓았소.”
“흠, 그럼 곧 기어 나오겠군요.”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도 너무나 태평한 모습이다. 그런 모습에 불만이 쌓인 소천득이 물었다.
“이보게. 빨리 가봐야 하지 않겠나?”
“뭐가 그리 급합니까? 천룡부로 간 사람 중에 누구 때려죽이고 싶은 웬수라도 있어요?”
소천득은 눈만 부라리고 입을 다물었다. 말상대해 봐야 좋은 꼴 보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건 자신에게 공연히 화가 났다.
‘내가 미쳤지, 저놈에게 먼저 말을 걸다니.’
그때였다. 고개를 번쩍 쳐든 이무환이 소리쳤다.
“출발!”
구룡성 서쪽에서 붉은빛이 꼬리를 길게 끌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뒤로 돌아서 있던 소천득은 미처 그걸 보지 못했다. 하기에 이무환이 자신을 놀리는 것만 같았다.
“방금 천천히 가도 된다고…….”
이무환이 단칼에 그의 말꼬리를 자르고 도리어 큰 소리로 몰아쳤다.
“뭐 해요? 꾸물거릴 시간 없단 말입니다! 안 올 거면 여기서 놀고 있으쇼!”
그러고는 벙 찐 소천득을 놔둔 채 그대로 적룡단과 붙은 담장을 넘었다.
“시간 없어! 최단 거리로 통과해!”
‘빌어먹을 놈!’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이곳에 혼자 남을 수는 없는 일. 소천득은 헌원숭이 제자들과 함께 몸을 날리는 걸 보고 신형을 날려 담을 넘었다.
언제 기회가 오면 뒤통수를 한대 갈겨 주리라!
제8장. 약 먹은 천세도인, 그리고 파천삼법(破天三法)
1
제갈무진은 천룡부에 모인 무인들을 각 부별로 나누었다.
천룡부의 무사들, 와룡부의 무사들, 창룡부의 무사들, 철룡부의 무사들. 그러고는 주요 고수들을 따로 빼서 모두 다섯의 무리를 형성했다.
오행방어진의 주축이 이루어진 것이다.
다행히 각 부별로 무사들을 나누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고, 서로가 익히고 있는 무공의 괴리감도 최소화되었다.
오행의 방위를 맡을 사람들이 정해지자, 제갈무진은 즉시 그들을 움직여 천룡전을 감싸게 했다.
“양고! 싸움이 시작되면, 자네는 와룡의 무사들을 이끌고 목방(木方) 동쪽을 맡게. 창룡부는 화방(火方) 남쪽, 철룡부는 수방(水方) 북쪽을 맡고, 천룡부가 금방(金方) 서쪽을 맡아주십시오! 그리고 이 부주께선 선별된 오십 명의 고수와 함께 중앙의 토방(土方)을 맡아서 상황을 조절해 주시오!”
어차피 적들은 천룡부에 모인 사람들이 목적이지 건물을 부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이금환이 주목적일 터.
그런 만큼 격전장을 넓혀서 좋을 것이 없었다. 대연무장과 천룡전 전면의 넓은 공간이면 충분했다.
일사불란한 제갈무진의 지휘에 천룡전 내에 있던 주요 간부들이 일제히 밖으로 나가고, 장내에는 각 부의 부주들과 북궁만호만이 남았다.
바로 그때!
삐이익! 삐이익! 삐이이익!
서쪽에서 기다란 신호음이 연속적으로 울렸다.
적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신호.
제갈무진은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이금환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부주가 당하면 안 되오. 자신의 몸이 곧 구룡성의 운명과 같다는 점을 명심해 주시오.”
“제가 어찌 그걸 모르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동생에게 혼나기 싫어서라도 어떻게든 이겨낼 것입니다.”
일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제갈무진은 이금환의 눈을 보고 의아함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금 상황에서 어느 누가 태연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도, 철군평도, 심지어 구룡성의 살아 있는 전설 북궁만호조차 긴장으로 온몸이 굳어가거늘!
그런데 이금환의 두 눈에서는 일말의 여유마저 보였다.
무엇이 저 젊은 거인을 저리도 여유 있게 만들었을까!
‘가만? 동생?’
문득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이금환에게 사촌 동생이 상당수 되지만, 이금환이 이러한 상황에서 동생 운운할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동생에게 혼나기가 싫다니?
천하에 어떤 동생이 있어 천룡부주, 아니, 이제는 구룡성의 성주가 될 이금환을 야단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천룡부에 그럴 만한 자는 없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때 번쩍!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천룡부주 이금환이 아니라, 구룡성주 이금환이라 해도 야단칠 수 있는 자는 오직 그뿐이다!
‘신걸 말로는 그의 성이 이 씨라고 했는데…….’
“동생이라면… 호, 혹시……?”
제갈무진이 그답지 않게 더듬거리며 입을 열자, 이금환이 빙그레 웃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제가 말한 걸 알면 아마 아우가 화를 낼 겁니다. 그러니 모른 척해주십시오.>
제갈무진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는 결코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천하의 누가 구룡성의 와룡부주를 멍청하다고 할 것인가.
그는 그제야 모든 일의 전말을 대충이나마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그랬어. 이금환의 뒤에 그가 있었어! 그가 있었기에 일이 이렇게 흐른 거야! 멍청한 제갈무진! 이제야 그걸 알다니!’
그때 북궁만호가 제갈무진의 마지막 남은 의혹을 찌꺼기까지 깨끗이 태워 버렸다.
“무환이 놈은 왜 안 오는 거냐? 올 때가 되지 않았느냐?”
“곧 올 겁니다, 어르신. 아마 적기를 노리느라 늦는 것 같습니다.”
“큼,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그런 천방지축 같은 녀석이 그렇게 잔머리를 잘 굴린단 말이냐? 더구나 뭐? 환우사천만큼이나 강하다고?”
묵묵히 서 있던 철군평이 보충하듯이 한마디 했다.
“사실일 겁니다, 어르신. 구유마도 석치상도 그의 손에 죽었으니까요.”
처음 듣는 소리에 이금환과 북궁만호는 멀뚱히 눈을 뜨고 철군평을 바라보았다.
철군평이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말을 덧붙였다.
“저도… 졌습니다.”
그것도 구 초 만에 졌다. 하지만 그는 절대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설령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다행히 돌아가는 상황이 철군평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신룡부와 금룡부의 부주께선 무슨 일로 이곳에 오신 것이오?!”
방양고의 목소리다.
장내에 남아 있던 사부의 부주들과 북궁만호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졌다.
저들이 축하하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닐 터, 마침내 구룡성의 운명을 가를 일전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이금환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왔다네.”
주백천이 담담하게 방양고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장내에 아무도 없었다.
“이 부주께서 천룡부와 구룡성을 다스릴 수 있다는 능력만 보이면 될 일 아닙니까? 어차피 내일 아침에 판단하시면 될 일인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온 겁니까? 설마 힘으로 구룡성주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요?”
방양고가 시간을 끌며 질문을 던졌다.
주백천이 그의 마음을 알고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방양고, 쓸데없는 심기는 쓸 필요 없다. 우리는 시간을 끌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금화산도 커다란 덩치를 들썩이며 웃었다.
“클클, 와룡이 제법 잔머리를 굴리나 본데, 곧 그게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지 곧 알게 될 거다. 어디 슬슬 시작해 볼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담장 위에 올라서 있던 무사들이 일제히 안으로 진입했다.
빠르게 다가들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에게서 밀려드는 기운은 무겁고 강했다.
위협적인 압박!
공력이나 심기가 약한 자는 그 광경을 보고 숨이 턱턱 막혔다.
“저들은 제가 막을 테니 뒤로 물러나십시오.”
공손척이 천천히 장검을 빼 들고 앞으로 나섰다.
광룡이 준 영약 두 알 덕분에 반 단계 이상 강해졌다. 주백천이나 금화산이라 해도 한동안은 막을 수 있을 듯했다.
“음, 알겠네.”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방양고는 이를 지그시 깨물고 품에서 철필을 꺼내 들었다.
그가 무공을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와룡의 무사들조차 대부분 그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방양고의 옛 별호가 귀필(鬼筆)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신랄하고 변화무쌍한 철필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전면은 공손척에게 맡겨놓고, 다른 분들은 진세를 유지한 채 적을 상대하시오!”
방양고가 앞으로 나서려던 사람들을 향해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전면으로 나서려던 대여섯 명이 주춤거리며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때 천룡전의 문이 열리고 부주들과 북궁만호가 나타났다.
그들은 천룡전을 나선 즉시 연무장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순간 연무장을 에워싸고 있던 무사들이 재빨리 사방을 점하며 그들을 둘러쌌다.
오행의 방어진이 완성되자 북궁만호가 대노한 목소리로 주백천을 다그쳤다.
“주백천! 구룡률을 어기려 하다니! 네놈이 감히 구룡성을 능멸하겠다는 것이냐?!”
북궁만호의 일갈에 주백천의 얼굴이 이지러졌다.
천룡부뿐만이 아니라 구룡성 전체에 울려 퍼질 만큼 큰 외침이다.
구룡성의 무인들을 격동시키겠다는 뜻. 특히 십이지부의 지부장들을 노리는 일갈이다.
주백천은 냉소를 흘리며 북궁만호의 말을 일축했다.
“본인은 이금환의 능력을 시험하려는 것뿐이외다! 북궁 장로는 공연한 말로 본 성의 무인들을 현혹하지 마시오!”
“으하하하! 개도 안 믿을 헛소리로다! 정 그런 생각이었다면 네놈만 오면 되지 왜 무사들을 모두 데려왔단 말이냐?”
“흥! 그럼 그대들은 이금환만 남기고 모두 뒤로 물러설 수 있소?”
북궁만호가 눈을 부라렸다.
“대구룡성의 성주가 되실 분이시다! 또한 그 이전이라도 천룡부의 부주니라!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주백천!”
주백천의 두 눈에서 자광이 뿜어졌다.
‘구룡성의 성주’라는 말을 듣자 분노가 솟구쳤다.
그 자리는 자신의 것이야 하거늘!
그의 마음을 짐작한 금화산이 통통한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소리쳤다.
“더 들을 것 없소이다! 오늘이 지나면 누가 진정으로 구룡성을 다스릴 능력이 있는지 알려질 것이오! 신룡과 금룡의 무사들아! 저들에게 진정한 구룡성의 힘을 보여주어라!”
일순간, 압박해 들어가던 신룡부와 금룡부의 무사들 움직임이 빨라졌다.
바로 그 순간. 서쪽 하늘에서 붉은 불꽃이 하늘 높이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본 이금환이 노성을 내질렀다.
“주백천! 그대가 진정 구룡성을 잠풍련에게 넘기기로 작정했구려! 모두 잘 들으시오! 곧 잠풍련의 습격이 있을 것이오! 모두 철저하게 자리를 지키며 놈들을 막아내시오!”
이무환이 사람을 보내 전했다. 하늘로 붉은 화살이 치솟으면 잠풍련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그때는 철저히 방어에 치중하고 함부로 공세를 펼쳐선 안 된다고.
그런데 마침내 붉은 불꽃이 솟구쳤다.
이금환의 노성이 살심을 자극했는지 주백천의 눈에서 뿜어지던 자광이 더욱 짙어졌다.
어둠 속에서 확연히 느껴질 정도.
“사정 봐줄 것 없다! 오늘이 지나면 구룡성의 주인은 신룡이 될 것이다! 모두 놈들을 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