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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69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0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69화

 

169화

 

 

 

 

 

 

 

 

“이용할 때 철저히 이용하고, 털어낼 때 확실히 털어내라고 했소. 나로서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소만.”

 

이무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귀신같은 꼬맹이, 벌써 상황을 다 파악했군.’

 

상황만 파악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까지 눈치챘다.

 

사실 호연청의 세력을 어디까지, 언제까지 이용할 것인지 약간 고민이 되던 중이었다. 이용가치가 많다 보니 그만큼 털어내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그런데 남궁산산의 말을 전해 들으니 대충 선이 그어졌다.

 

‘으흠. 확실히 털어내라, 그 말이지?’

 

털어낼 때 털어내더라도 이용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꼬맹이에게도 확실하게 경고를 해주어야 했다.

 

“가서 꼬맹이에게 전해주쇼. 한 번만 더 말을 안 들으면 통나무에 매달아서 집으로 돌려보낼 거라고 말이오.”

 

움찔한 공은효가 어색한 표정으로 머뭇머뭇 말했다.

 

“저기… 혼내면 도망 가버린다고 하던 것 같던데… 정말 그대로 말을 전해야 하는 거요?”

 

이무환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요 여우가……!’

 

자신이 어떻게 나올지 빠삭하게 내다보는 꼬맹이다.

 

‘끄응, 그냥 확 쫓아가서 혼을 내버려?’

 

마음이야 그럴 거 같지만, 막상 만나면 혼을 내기는커녕 꼬맹이에게 거꾸로 당할지 몰랐다.

 

갈등이 이는 눈빛으로 힐끔 공은효를 바라본 이무환은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툭 한마디 내뱉었다.

 

“못 들은 것으로 하쇼.”

 

“알겠소. 그럼 이만…….”

 

포권을 취하고 돌아서는 공은효의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구룡성을 뒤집어엎었다는 광룡도 남궁 소저에게는 못 당하는군. 결국 광룡을 움직이려면 남궁 소저를 통하는 길이 지름길이라는 말인데…….’

 

 

 

6

 

 

 

어둠이 밀려들 즈음, 천룡부에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와룡부의 제갈무진이 일백의 무사와 함께 천룡부를 방문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양류한이 창룡부의 사람들과 함께 도착했다.

 

신임 천룡부주 이금환이 구룡성주로 뽑힌 것을 축하할 겸, 저녁 식사를 함께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진짜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구룡성에 아무도 없었다.

 

 

 

“창룡부와 와룡부의 무사들이 천룡부로 들어갔습니다.”

 

“광룡이나 다른 곳의 움직임은?”

 

“아직 조용합니다.”

 

환비의 보고를 받는 천세도인의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걸렸다.

 

“우리가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겠지.”

 

“그런 것 같습니다, 사부님.”

 

“십이지부의 지부장들 반응은 어떻더냐?”

 

“그들 역시 의견이 반으로 갈라져 있습니다만, 중립을 지키기로 맹서를 한 터라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준비는 되었느냐?”

 

“사부님이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공격을 시작할 것입니다.”

 

무면검마와 그를 따르는 수하들이 검룡부와 수룡단 공격에서 희생된 것이 아깝기만 했다. 하지만 그 바람에 막강한 적 두 곳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손해라고 할 것까진 없었다.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최대한 빨리 무너뜨려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야.”

 

“제자도 잘 알고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사부님.”

 

고개를 숙이는 환비의 눈이 천세도인의 앞을 주시했다.

 

탁자 위에는 약사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사부이신 천세도인이 하루에 한 번씩 복용하는 특제 만선대보탕이 담긴 사발이었다.

 

환비가 고개를 들 즈음, 천세도인이 약사발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흠, 오늘은 약향이 유난히 짙구나.”

 

“마침 최고 품질의 삼백 년근 하수오가 들어왔다고 해서 구해 넣었습니다.”

 

“호오, 그래?”

 

“큰일을 앞두었으니 드시고 힘을 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그래, 그래야지.”

 

천세도인의 입가로 몇 달에 한 번 보기 힘든 환한 웃음이 번졌다.

 

‘녀석, 이제 다 컸구나. 상아가 살아서 이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환비도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힘이 나실 겁니다. 아주 엄청난 힘이.’

 

흑귀에게서 연락이 왔다. 용강통의 작은 장원에서 청귀마조의 흔적과 엄청난 핏물을 발견했다고 했다.

 

실패했다는 말. 빌어먹을 일이었다. 

 

그렇다면 최후의 방법이라도 쓰는 수밖에…….

 

 

 

그 시각.

 

이무환도 천룡부의 상황을 보고받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흠, 두더지들이 굴에서 나올 때가 되었는데……. 어디 나도 슬슬 움직여 볼까?”

 

밖으로 나간 그는 영호승에게 간단히 명령을 내렸다.

 

“다 집합시켜. 두더지 나올 때 되었으니까.”

 

 

 

7

 

 

 

와룡부와 창룡부에서 온 무사들은 모두 삼백. 대부분이 일류 이상의 고수들인데다 그중에는 절정고수들만도 사십여 명에 이르렀다.

 

천룡부의 고수들까지 합하면 근 육십 명에 달하는 절정고수가 있는 셈. 그중 절대의 경지에 이른 고수가 둘,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가 열둘이었다.

 

가히 삼부의 최정예가 모두 모인 것이다.

 

그러나 천룡전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 하나 밝은 웃음을 짓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육도산은 찜찜한 얼굴을 펴지 않고, 입을 꾹 다문 채 한쪽에 앉아 있는 북궁만호만 바라보았다.

 

‘저 영감이 나타나다니…….’

 

천룡전에 무운천수 북궁만호가 삼십 년 만에 나타나고, 그가 이금환의 호위를 자처했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었다.

 

그가 나타났다면 양류한이 갑자기 천룡부를 밀겠다고 한 것도 꼭 잘못된 판단이라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만큼 무운천수 북궁만호라는 이름은 거대했다.

 

그의 이름이 회자되는 것만으로도 구룡성이 들썩일 정도니까.

 

하지만 약속을 어긴 것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전대 부주인 여후량이 검룡부를 밀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물론 새로운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되는 법. 양류한의 판단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육도산이 크게 불만을 터뜨리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설득해서 이곳까지 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육 노제는 여전하군.”

 

그때 북궁만호가 육도산을 향해 입을 열었다.

 

“킁, 저야 북궁 형보다 열 살은 젊지 않소?”

 

“성질은 여전한 것 같은데, 이제 좀 누그러뜨릴 때도 되지 않았나?”

 

갑자기 육도산의 귓전에 이무환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그쯤 되시면 성질 좀 가라앉힐 때 되지 않았습니까?”

 

 

 

육도산의 눈초리가 치켜떠졌다.

 

“흥, 꼭 어떤 놈하고 똑같은 말을 하시는구려.”

 

“어떤 놈?”

 

“그런 놈이 있소. 이제 스물 조금 넘은 놈인데, 아주 건방지고 싸가지가 없는 놈이지요.”

 

북궁만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광룡을 말하는 것 아닌가?”

 

“응? 어떻게 아셨소? 북궁 형도 그놈에 대한 소문을 들었소?”

 

“만났지. 그놈이 나더러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라고 기도하더구만.”

 

육도산의 눈이 커졌다.

 

“정말 북궁 형에게 그렇게 말했단 말이오?”

 

“그뿐이 아니네. 내가 네놈이라고 했다고, ‘놈놈하는데 기분 좋은 놈 어디 있냐.’며 따지지 뭔가.”

 

육도산이 풀썩 웃었다.

 

“허…….”

 

광룡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눈빛을 빛내며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이 북궁만호의 말에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광룡, 그라면 충분히 그런 말을 하고도 남았다.

 

누구보다 제갈무진이 잘 알았다.

 

“그 정도면 다행입니다. 전에는 제 보물 창고에다 냄새나는 장갑을 던져 놓고 갔지요. 그때는 어찌나 화가 났는지…….”

 

침묵으로 무겁게 짓눌린 천룡전에 열기가 피어났다.

 

모두가 광룡이라는 이름 하나 때문이었다.

 

북궁만호와 육도산, 제갈무진이 광룡이라는 안주를 놓고 요리를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한두 마디씩 양념을 가했다.

 

“솔직히 그와 말을 하다 보면 머리에서 허연 김이 솟는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김만 솟아? 나는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네.”

 

“흥! 그 정도면 다행이지. 나는 화를 참다 이 부러진 사람도 알고 있다네.”

 

“아, 글쎄, 나에게 귓구멍이 걸레로 막혔냐고 하지 뭐요?”

 

“좌우간 그놈 주둥이는…….”

 

웅성웅성…….

 

이금환은 빙그레 웃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참 대단하다. 이름 하나로 이 많은 사람들의 입을 열게 하다니. 물론 좋은 소리는 별로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어쨌든 나쁜 일은 아니다.

 

지나친 긴장으로 서로 간의 마음이 닫히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한데 지금 같으면 본래 지닌 힘보다 배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이금환은 이야기들이 오가며 어느 정도 분위기가 달구어지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자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장내가 조용해질 즈음, 이금환이 포권을 취하며 천룡전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이렇게 본 부를 돕기 위해 오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포권을 한 채 장내를 죽 둘러본 이금환은 포권을 풀며 제갈무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금도 비굴하지 않은 태도로, 묵직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만, 혹시라도 오늘 저녁에 어떤 일이 벌어진다면, 제갈 부주님께서 군사의 역할을 맡아 전체 상황을 지휘해 주시기 바랍니다.”

 

찰나간 제갈무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곳은 천룡부. 더구나 이금환은 다음 대 구룡성주로 선출된 사람이다. 그 대신 지휘를 한다는 것은 구룡성의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어찌 보면 단순한 부탁처럼 들렸다. 그만큼 자신의 위상도 높아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깊이 따지면 결코 단순하지도, 이익이 되는 것만도 아니었다.

 

‘내가 그의 말대로 전체 상황을 지휘한다면, 그는 가만히 앉아서 말 몇 마디로 와룡부주를 움직인 셈이 된다.’

 

뛰어난 군주는 함부로 전장에 나가 무용을 뽐내지 않는다. 그저 무용이 뛰어난 장수를 적절하게 부리면 될 뿐.

 

공을 세운 신하에겐 상을 주고, 과를 범한 신하는 등을 다독이며 격려하는 것만으로도 뛰어난 군주는 그 몫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승낙하면, 아마 이 시간 이후 누구도 이금환의 능력에 의심을 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와룡부주를 말 한마디로 움직인 이금환을 누가 능력없다 할 것인가!

 

더구나 자신을 부리는 것만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하아, 일이 이렇게 흐를 줄이야.’

 

거절하고 싶었다. 이대로 이금환의 위상이 굳어지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거절할 명분도 없고, 거절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제갈무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거절할 수 없는 일이라면 기분 좋게 숙여서 나쁠 것도 없었다.

 

“알겠소이다, 부주. 맡겨주시구려.”

 

“고맙습니다, 제갈 부주님.”

 

가볍게 고개를 숙인 이금환이 어깨를 폈다.

 

곧이어 이금환의 낭랑한 목소리가 천룡전을 흔들며 힘있게 울려 퍼졌다.

 

“당금 구룡성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모두가 아실 겁니다! 그러나 나 이금환은, 어떤 힘에도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잠풍련이든, 누구든! 구룡성을 좀먹는 자들을 단호히 물리칠 것입니다! 구룡성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분과 함께 목숨을 던질 것입니다!”

 

한마디 한마디에 진정이 담긴 목소리다.

 

짧은 순간, 이금환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열기가 천룡전 전체를 휘돌며 퍼져 나갔다.

 

“우리 모두! 대구룡성의 안녕을 위해 건배합시다!”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섰다.

 

너 나 할 것이 없었다.

 

무인의 열기가 모든 사람을 집어삼켰다.

 

“구룡성의 안녕을 위해!”

 

“신임 구룡성주를 위하여!”

 

“구룡성을 위하여!”

 

서른두 명의 군웅이 막 건배한 잔을 비웠을 때였다.

 

덜컹!

 

천룡전의 문이 세차게 열리더니 여덟 명의 중년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 중 선두에 선 중년인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나도 끼워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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