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67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67화
167화
4
“뭐라고? 그게 정말이냐?”
“그렇다니까요? 항주 일대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데요. 무림맹에서 수백 명이나 왔는데도 막상막하라고 해요.”
사마강은 용아의 말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더없이 편안한 생활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보이지 않던 길도 보였다. 덕분에 보름 전에 이미 떨어지는 낙조를 베었다.
이제 떠오르는 태양만 베면 된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검을 잡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베면 돌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두려웠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놔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하지만 항주가 피로 뒤덮였다면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마강은 방을 나가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진초련은 요리의 간을 보고 돌아서다 사마강의 눈과 마주쳤다.
“잠시 할 이야기가 있소.”
그녀는 사마강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로 가요.”
뒷마당으로 나간 사마강은 뒷짐 진 손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떠나야 할 것 같소.”
진초련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가보세요.”
“다시 오겠소. 반드시.”
“너무 마음 쓰지 않으셔도 돼요.”
“솔직히… 함께 가고 싶소. 그런데 너무 위험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할 수가 없소.”
끝내 진초련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곧 안정을 되찾고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이가 있어요. 이곳에서 마음도 안정되었고요. 그냥… 잊으세요.”
“상관없소! 내가 용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오? 그건 걱정 마시오.”
“공자의 집안이 결코 평범한 집안이 아닐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런 집안에서 저를 받아줄 거라 생각하나요?”
“만일 집안에서 싫어하면… 내가 이곳에서 살겠소.”
입술을 질근 깨문 진초련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말도 안 돼요. 그럴 수는 없어요. 저는… 이미 겪어봐서 잘 알아요. 절대 받아주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그냥 한때의 추억이라 생각하고 잊으세요.”
“더 이상 말하지 마시오. 그냥 이곳에서 내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빌어주기나 하시오. 알겠소?”
“무사안녕을 빌어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진초련이 말을 맺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사마강이 그녀를 덥석 끌어안았다.
“내가 말이오. 고집이 무척 세다오. 남이 하지 말라면 더 하는 성격이오. 아버지도 그래서 포기하다시피 했소. 무슨 말인지 알겠소? 다른 생각 말고, 무조건 기다리시오.”
진초련은 눈물이 왈칵 치밀었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용아를 낳고 떠밀리듯이 도망쳐야 했다. 용아를 살리기 위해서. 그게 벌써 십이 년 전이다.
그 후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을 생각이었거늘, 또 한 사람이 좋아졌다. 상대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녀 역시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람도 대단한 집안의 사람인 듯했다.
절대 맺어질 수 없는 인연. 그녀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이 원망스럽다. 하늘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
그때 사마강이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고 말했다.
“만일 당신이 사라지면, 저 바다 속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찾으러 갈 거요. 그러니 절대 도망치지는 마시오. 알겠소?”
진초련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사마강의 가슴을 타고 흘렀다.
‘알았어요, 도망치지 않을게요. 사실 저도… 다시는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마강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진초련도 손을 둘러 사마강의 허리를 안았다. 더 이상 운명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사마강이 손에서 힘을 풀고 나직이 말했다.
“그리고 옥이라는 아이 말이오. 아무래도 나와 외사촌간 되는 동생과 연인 사이인 것 같소. 당신이 좀 잘 보살펴 주시오.”
뜻밖이었는지 진초련이 사마강의 가슴에서 고개를 들었다.
“예?”
“아마 당신도 잘 생각해 보면 알지 모르겠소. 그가 나에게 성하루를 추천했으니까.”
진초련도 사마강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누군가가 성하루를 알려줘서 왔다고. 그때 한 사람을 떠올렸었다. 아무래도 그가 맞는 듯했다.
“알 것 같아요. 옥이는 걱정 마세요.”
바로 그때였다.
“엄마!”
갑자기 용아가 뒷마당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다 후다닥 안으로 도망쳤다.
진초련이 깜짝 놀라 품에서 벗어났다.
사마강은 헛기침을 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험, 날씨 한번 좋군. 그럼… 다녀오겠소.”
제7장. 오빠는 잡아줄 사람이 있어야 해요
1
소식은 바람을 타고 구룡성 전역에 퍼졌다.
객잔과 주루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선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이 천룡전에서 벌어진 구룡성주 선출에 대한 것이었다.
―천룡부의 새로운 부주에 오른 이금환이 구룡성주로 선출되었다!
―능력 검증을 위해 결정이 하루 연기되었다고 한다!
청천벽력이었다.
구룡성의 사람들 거의 모두가 신룡부주 주백천과 검룡부주 동방휘, 둘 중 한 사람이 구룡성주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금환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다니!
모두가 나름대로 추측하며 열을 올렸다.
―다른 부주들이 주백천과 동방휘가 득세하는 것을 원치 않아서 이금환을 지지했다.
―한마디로 두 사람 물먹으라고 이금환을 뽑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백룡객잔에 머물러 있는 남궁산산이야 그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았지만.
“크크, 오빠가 주백천과 호연 단주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군요.”
당호민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광룡이 이금환을 지지한 부주들을 조종하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아마 그랬을 거예요.”
“허어, 구룡부의 부주들은 모두가 대문파의 장문인과 같은 지위를 지닌 사람들인데, 광룡이 그들을 움직일 수 있단 말이냐?”
남궁산산이 피식 웃으며 간단하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오빠는 할 수 있어요. 오빠는 구룡을 제압하는 광룡이거든요.”
절대의 믿음.
당호민은 남궁산산의 믿음에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구룡성의 부주들이 그렇게 쉽게 넘어갈까?”
남궁산산이 당호민의 노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오빠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세요?”
당호민이 미간을 좁혔다. 그러잖아도 주름이 가득하던 그의 이마에 잔주름이 겹겹이 포개졌다.
그러고 보니 광룡을 만나본 것은 기껏해야 네 번 정도다. 그나마도 주로 약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
물론 그도 이무환이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구룡의 주인들만 할까 싶었다.
게다가 이제 기껏 이십대 초반의 나이가 아닌가?
-광룡이 천하제일성 구룡성의 아홉 주인을 주물럭거린다네.
아마 그 말을 하면, 강호의 친구들이 술을 마시다 코로 다 뿜어낼 것이다.
“글쎄다. 아무리 내가 그를 잘 모른다 해도, 그가 구룡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은 믿기가 힘들구나.”
아마 누구에게 물어도 마찬가지 대답이 나올 것이다.
이무환의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한은.
“오빠는요, 이해불가한 사람이에요. 아무도 오빠의 진정한 힘을 다 몰라요. 심지어… 저도요. 아마 오빠가 작정하고 힘을 다 드러내고 마음만 먹으면, 구룡성의 성주가 되는 건 일도 아닐 거예요.”
당호민은 힐끔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어찌나 표정이 진지한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라.’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하긴, 아이들은 전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하기에 그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때 남궁산산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
“하지만 가끔 엉뚱한 일을 저지르기 때문에 옆에서 바로잡아 줄 사람이 있어야 돼요.”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당호민이 보기에는 ‘오빠 옆에는 제가 있어야 돼요. 그래야 말썽을 덜 피워요’란 말을 하고 싶은 표정처럼 보였다.
‘허허허, 차라리 저렇게 말하니 좀 아이답군.’
내심 빙그레 웃음을 지은 당호민은 귀여운 손녀를 보는 눈빛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여기에 계속 있을 거냐?”
“아뇨. 아마 앞으로 하루 동안 구룡성이 뒤집어질 정도로 시끄러워질 거예요. 오빠도 반쯤 미쳐서 뛰어다닐 거구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이곳에서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있겠어요?”
“그럼……?”
다시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당호민을 향해서 남궁산산이 환하게 웃었다.
“당연히 오빠를 도와야죠.”
2
고개를 반쯤 숙인 채 턱을 괴고 있는 호연청의 표정이 사뭇 신중하다.
이무환은 세 번째 찻잔을 비우며 슬쩍 호연청을 바라보았다.
천룡전에서 돌아온 호연청은 화를 내지도, 많은 말을 하지도 않았다.
벌써 이각째.
호연청은 그저 앞에 놓인 찻잔이 식은 것도 모를 정도로 깊숙한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다.
수룡전에 모인 사람들도 묵묵히 앉아서 호연청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아함……. 쩝쩝…….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이무환이 하품을 하고 입맛을 다셨다.
사람들이 송곳처럼 예리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누가 미친놈 아니랄까 봐!’ 그런 눈빛으로.
이무환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찻주전자를 들어서 잔을 채웠다. 남들은 아직 한 잔을 다 비우지 않았는데 그 혼자만 네 잔째였다.
호연청이 눈을 슬쩍 치켜뜨고는 찻잔을 집어 드는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말해보게. 자넨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이무환이 멈칫했다.
“갑자기 무슨 말씀입니까?”
“이금환을 앞세운 거 말이네. 자네야?”
“나 원, 갑자기 왜 남의 소매로 코를 닦는 겁니까? 더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송곳 같던 눈빛이 뚝 꺾어졌다.
‘정말… 저놈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서…….’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그때 모용상명이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이 대주와 그는 결코 남이 아니지 않은가?”
후르륵, 찻잔을 비운 이무환이 찻잔으로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
쾅!
찻잔이 한 뼘 두께의 나무탁자에 깊숙이 박혔다.
“똥통에 빠진 걸 건져 주면 되었지, 지금 나에게 몸까지 씻겨달라는 거요, 뭐요?!”
이무환은 버럭 소리치고 모용상명을 노려보았다.
사실 모용상명도 그 일에 대해선 할 말이 없었다. 이무환이 창룡부의 음모를 뒤집어놓은 것만큼은 분명했으니까.
“창룡부와 철룡부가 주백천을 지지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쇼.”
그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만약 여건평이 창룡부를 대표해서 나왔다면, 철군평이 신룡부를 지지했다면 이러고저러고 할 틈도 없이 당했을 테니까.
이무환은 호연청과 모용상명의 가슴을 쿡 찌르고 탁자에 박힌 잔을 빼냈다.
‘헹, 어림없지. 어디서 책임을 몽땅 나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해?’
그때 호연청이 침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백천이 보고만 있을 거라 보는가?”
이무환은 찻주전자를 들어 다섯 번째 잔을 따랐다.
‘붕어 새끼가 따로 없군.’
역시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이길 자신만 있다면 당장 달려들어서 찻잔으로 주둥이를 후려치고 싶은 표정들.
그러든 말든, 이무환은 느긋이 찻잔을 채운 후에야 대답했다.
“그러면 주백천이 아니죠. 아마 그 양반, 지금쯤 진짜 용처럼 머리에 뿔이 두 개쯤 솟아났을 겁니다.”
그러고는 힐끔 호연청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이무환이 바라보는 뜻을 왜 모를까?
‘건방진 놈! 왜, 내 머리에도 뿔이 난 것처럼 보이냐?’
호연청은 숨을 크게 들이쉬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천세도인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네. 자넨 어떻게 할 건가?”
이무환이 별 걱정 다 한다는 듯 태연히 말했다.
“움직이면 다 때려잡아야죠.”
“검룡부와 수룡단을 한꺼번에 공격한 자들이네. 광룡대만으로 가능하겠나?”
이무환이 눈을 치켜떴다.
“미쳤습니까? 보나마나 신룡부와 금룡부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게 뻔한데 광룡대만으로 어떻게 막습니까? 아예 기름동이를 끌어안고 불구덩이에 들어가라고 하지 그러십니까?”
천룡부를 장악하는 능력을 보이라는 것은 순전히 핑계다. 진심으로 그걸 바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시간을 벌겠다는 뜻일 뿐.
성주로 선포되기 전에 천룡부를 무너뜨릴 시간을!
당연히 호연청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험, 그래서 하는 말이야. 어차피 자네가 나설 수밖에 없는데,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게나. 많이는 도울 수 없지만, 최대한도로 돕겠네.”
이무환은 잠시 대답을 미룬 채 붕어처럼 입을 벌리고 차를 쏟아 넣었다.
그러고는 찻잔을 탁자에 난 구멍에 집어넣고 눈에 힘을 주었다.
“좋습니다. 최대한도로 도와주시겠다면 제가 맡죠.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만, 최.대.한.도로 도와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