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66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66화
166화
감이랑의 말에 수룡구대 대원 둘이 기울어진 소나무 밑을 치우고, 푹 꺼진 바위 옆을 파냈다.
깊게 팔 것도 없었다. 삽질을 몇 번 하자 곧 판판한 석판이 드러났다.
감이랑이 그걸 보고는 가까이 다가가서 석판 옆을 손으로 쑤셨다. 그러고는 불끈 힘을 주었다.
“으챠!”
석판의 두께는 한 뼘 가까이 되었다. 하지만 깊게 묻히지 않아선지 감이랑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위로 들렸다.
감이랑은 석판 밑을 힐끔 보고 석판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렸다.
쿵!
“제길, 봉쇄했군.”
석판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그러나 한 자 밑으로는 양쪽 벽에서 밀려든 흙으로 가득 채워진 상태였다.
아마 파낸다 해도 통로의 끝을 찾을 수는 없다고 봐야 했다. 그 정도는 감안하고 봉쇄했을 테니까.
감이랑은 미련을 버리고 다른 곳을 살펴보기 위해 그곳을 벗어났다.
상대가 어떤 식으로 비밀 출구를 만들었는지 안 이상 다른 곳을 찾기가 더 쉬울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각 후 두 번째 비밀 출구를 신룡부 서쪽에서 찾아냈다. 그러나 그곳도 봉쇄된 후였다.
감이랑의 걸음이 빨라졌다.
은근히 오기가 일었다.
적이 봉쇄한 두 곳은 잠풍련의 고수들이 처음 발견되었던 곳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아마 발견될 것을 우려해서 봉쇄한 듯했다.
그러나 출입구는 두 곳 외에도 또 있을 게 분명했다.
본래 여우들은 굴을 여러 개 파놓으니까.
‘좋아!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놈들!’
언제부턴지 감이랑의 눈빛이 육 개월 전으로 돌아왔다.
스윽,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벽돌의 색깔, 개수, 상태까지도 한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
혈관을 타고 흐르는 짜릿한 느낌!
감이랑은 냉소를 지은 채 신룡부를 한 바퀴 빙 돌았다.
간혹 신룡부의 무사들이 눈살을 찌푸린 채 주시했다. 하지만 상대가 광룡대라는 걸 알고는 더러워서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신룡부를 두 번째 돈 그가 도룡부의 담장을 살펴볼 때였다.
도룡부의 담장이 건물의 벽으로 바뀌는 부분을 지나가던 순간, 감이랑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찾았다!’
3
금교신이 천천히 종이를 펼쳤다.
한 장, 두 장… 종이가 펼쳐질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덧씌워졌다.
마지막 아홉 번째 종이가 펼쳐졌다.
모두의 눈이 금교신을 향했다.
금교신이 왠지 모르게 곤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발표하시지요, 금 장로.”
주백천이 초조함을 감추고 발표를 재촉했다.
금교신은 고개를 들더니 아홉 명의 부주를 둘러보았다.
마침내 머뭇거리던 그의 입이 열렸다.
“발표하겠소이다.”
극도로 달아오른 긴장감이 당장 천룡전을 터뜨릴 것처럼 짓눌렀다.
모두가 귀를 열고 금교신의 입을 주시했다.
“먼저… 신룡부의 주백천 부주를 지지하신 분은… 모두 세 분이오.”
주백천과 금화산의 표정이 굳어졌다. 두 사람의 가늘게 뜬 눈이 바삐 돌아갔다.
셋.
이탈하는 곳이 있을지 모른다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대로 한 곳 정도가 이탈한 듯했다.
누굴까? 마룡부일까? 아니면 도룡부일까?
‘흥! 감히 나를 배신하다니. 어느 놈이든 가만두지 않겠다.’
반면, 호연청과 동방휘는 내심 안도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남은 사람은 여섯. 그중 기권을 한 자들이 둘일 경우 네 사람이 동방휘를 택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설령 기권이 셋이라 해도 삼 대 삼. 비기는 결과가 나오면 보름 후 재선출을 하게 된다.
적어도 보름의 시간은 벌 수 있을 터. 그 정도면 상황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여유 있는 웃음이 호연청과 동방휘의 입과 얼굴에 번졌다.
마룡과 도룡 중 하나가 이탈했다. 철룡이 신룡을 거부했다. 거기다 잘하면 와룡이 검룡의 손을 들어줄지 모른다.
‘후후후, 광룡이 일처리를 제대로 해줬어.’
호연청은 내심 만족해하며 금교신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때 금교신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두 번째 발표를 했다.
“검룡부의 동방휘 부주를 지지하신 분은… 모두 두 분이오.”
순간, 호연청과 동방휘는 아연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크게 떴다.
‘믿을 수 없어! 말도 안 돼!’
당장 그렇게 소리치며 벌떡 일어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뜻밖의 결과에 희비가 엇갈렸다.
굳어 있던 주백천과 금화산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여섯 중 둘이라니!
더 볼 것도 없이 주백천의 승리였다.
기권을 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지만, 어쨌든 이겼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금화산은 눈웃음을 지으며 축하한다는 표정으로 주백천을 바라보았다.
“허허, 역시 그렇군요. 생각보다 기권한 분이 많지만, 어쨌든 축하합니다, 부주, 아니, 구룡성주.”
주백천은 대소를 터뜨리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입가에 희미한 웃음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여 답례했다.
“허, 허. 이거 쑥스럽소이다. 적어도 다섯 분의 지지를 받으며 이기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얼굴이 일그러진 호연청과 동방휘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이를 부서지도록 악물었다.
한 사람에서 밀렸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검룡부와 창룡부와 천룡부만 해도 셋이다. 은밀하게 철군평이 협조한다는 말을 했으니, 그까지 합하면 넷.
그런데 둘이라니!
‘가만? 양류한이 천룡부를 추천했지?’
호연청은 슬쩍 고개를 틀고 이무환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양류한이 우리를 지지할 거라 하지 않았는가?>
이무환이 고개를 모로 꼬며 대답했다.
<했으니까 두 표 나온 거 아닙니까. 어? 아직 끝나지 않은 거 같은데요?>
바로 그때, 손에 들린 종이를 바라보던 금교신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은 쓸개를 씹은 듯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주름진 입술도 보일 듯 말듯 떨렸다.
어느 순간, 그의 떨리던 입술이 집게로 잡아 억지로 벌린 듯 힘겹게 열렸다.
“에… 그리고… 천룡부의 이금환 부주를 지지하는 분이… 모두… 네 분입니다.”
쿠구궁!
벼락이 천룡전의 지붕을 뚫고 장내로 떨어졌다.
“뭐요?!”
“그게 무슨 말이오, 금 장로!”
주백천과 금화산이 벌떡벌떡 일어섰다.
호연청과 동방휘도 입을 반쯤 벌린 채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었다.
금교신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종이를 한 장 한 장 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사실이 그러하니 어쩌겠소?”
‘천(天)’ 자가 쓰인 종이는 모두 네 장.
금교신이 결코 잘못 보거나 셈을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이군!”
“어떻게 저런 일이……?”
십이지부장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쿵!
그때 북궁만호가 발을 들어 천룡전의 바닥을 굴렀다.
진각이 천룡전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북궁만호가 내력을 실어 일성을 터뜨렸다.
“맹서를 잊었는가!”
웅웅웅!
그의 목소리가 천룡전을 흔들고 밖에까지 퍼져 나갔다.
“금 장로! 결론을 분명히 말하게!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부주가 누군가? 천룡의 주인이 아닌가?”
“그, 그렇다네, 북궁 장로.”
“그럼 뭘 망설이는가!”
순간 주백천이 소리쳤다.
“잠깐 기다리시오! 이의가 있소이다!”
북궁만호의 하얀 눈썹이 역팔자로 꺾어졌다.
“이의?”
“그렇소이다. 이금환은 천룡부조차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있소이다. 그런 이금환이 구룡성을 다스린다면 천하가 비웃을 것이오!”
“이금환 부주가 천룡부를 제대로 이끌지 못할 거라고 누가 그러던가?”
“본 성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외다, 북궁 장로. 천룡부는 이청선과 이충현이 장악하고 있지 않소이까?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이금환 부주와 사이가 좋지 않지요. 사실이 그러하거늘, 천룡부조차 이끌어갈 능력이 없는 이금환이 대구룡성의 성주가 된다면, 그거야말로 우스운 일이 아니겠소이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곳에서 혀를 차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쯔쯔쯔, 저 양반은 이충현과 이충선이 갇혔다는 걸 아직 모르나 보군.”
이무환이었다. 혼잣말처럼 작은 목소리였지만, 장내가 워낙 조용해서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들으라고 공력을 살짝 가미하기도 했지만.
주백천이 살기가 도는 눈빛으로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저 찢어죽일 놈이!’
호연청의 어깨가 잘게 흔들렸다.
‘이충선과 이충현이 갇혔다고? 언제?’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일고,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을 향해 집중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화살처럼 자신에게 날아드는데도 이무환은 모른 척 허공만 바라보았다.
천장 한쪽 구석에서 거미가 열심히 집을 짓고 있었다.
‘정말 열심히 짓는군. 사람도 저래야 하는데 말이야. 노력할 생각은 않고 쓸 데 없는 욕심이나 부리고 있으니 원.’
불붙은 기름동이를 던져 놓고 나 몰라라 하는 이무환 대신 북궁만호가 냉랭히 코웃음 치며 말했다.
“흥! 저 청년의 말대로다. 오늘 아침, 원로회의의 결과에 따라 이충선과 이충현은 뇌옥에 갇혔다. 천룡부의 모든 무사들은 이금환 부주를 따르기로 했지. 더 할 말이 있는가?”
주백천은 부릅뜬 눈으로 북궁만호를 노려보았다.
아침에만 해도 천룡부는 관심 밖이었다. 구룡성의 모든 관심은 검룡부와 수룡단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그사이에 일을 벌인 듯했다. 외부로 새는 것을 철저히 숨긴 채.
‘어떤 놈이 이런 수작을 벌였단 말인가!’
주백천은 이를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대로 물러날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북궁만호.’
한편 호연청은 눈을 반쯤 감은 채 상황을 저울질했다.
이금환이 최대 지지를 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다행이었다. 적어도 주백천이 되지는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그렇다. 그에게는 마지막 방법이 남아 있었다.
마치 그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두툼한 살집에 턱을 묻고 있던 금화산이 눈알을 빠르게 굴리더니, 메기처럼 두꺼운 입술을 열고 말했다.
“구룡률에 따르면, 부주들의 이의가 있을 경우 하루의 말미를 두고 부주가 제시한 이의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어 있소이다. 이 금룡부주 금화산도 이금환 부주의 능력을 의심하는 바, 결정을 내일로 미루었으면 하오.”
호연청이 재빨리 동방휘에게 전음을 보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동방휘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금화산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어 말했다.
“본 검룡부도 그 의견에는 동의하오!”
묵묵히 앉아 있던 제갈무진도 동의를 표했다.
“그리해서 모든 것을 깨끗이 결정할 수 있다면, 그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만큼 이금환에 대한 믿음이 약하다는 말. 당사자인 이금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한 채 입을 열었다.
“먼저 미진한 저를 지지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걱정 또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제가 구룡성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거늘, 어찌 여러분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여하튼, 하루 동안 저 자신이 천룡부를 무난히 이끌어갈 수 있다는 능력을 보일 것인즉, 금 장로님께선 모든 결정을 내일 오시(午時)로 미뤄주시기 바랍니다.”
낭랑하면서도 무게 있는 목소리다.
말하는 도중 전신에서 맑고 웅혼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결코 절대고수에 못지않은 기운!
장내의 군웅들은 새삼 이금환의 무위를 짐작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와중에 십이지부장 중 몇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천룡공자가 이미 천룡이 되어 있었군.”
“천룡의 검을 얻은 것 같은데?”
“허어,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는데, 정말 대단하구먼!”
“몇 년만 지나면 구룡무제 어르신에게 뒤지지 않는 천룡이 되겠어.”
그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주백천과 금화산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호연청과 동방휘의 눈에 서린 곤혹감이 짙어졌다.
이무환은 무저의 늪보다 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하루의 시간밖에 없으니 모든 힘을 다 끄집어내겠지? 훗! 길고 긴 하루가 되겠어.’
하루라고 해서 다 같은 하루가 아니다.
피로 얼룩진 어제보다 몇 배나 힘들고 긴 하루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가 있을 것이었다.
천외광룡 이무환이!
‘여차하면, 진짜 미친 짓 한번 제대로 해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