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01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01화
201화
제1장. 광룡, 천마령(天魔令)을 얻다
1
공손척은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이무환이 오면서 말했다. 자신에 대해선 굳이 말해줄 것 없다고.
이유는 하나였다. 순우결을 시험해 본다나?
어쨌든 순우결의 질문이 떨어지자, 이무환은 환하게 웃으며 나섰다.
“이무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남궁산산이 장단을 맞추듯 냉큼 말을 받았다.
“둘째 부인이 될 산산이에요.”
“하, 하, 하. 그냥 제 여동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동생보다 오히려 더 가까운 사이예요. 여동생과 한 침상을 쓰는 오빠는 없잖아요. 그죠, 태군사 아저씨?”
“인마, 그거야 침상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던 거잖아.”
“변명해 봐야 소용없어요. 다른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요, 뭐.”
“짜식이 고집은……. 좌우간 지금은 중요한 이야기 나누는 자리니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사람들 정신없잖아.”
“예, 오빠.”
순우결은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 바람에 이무환의 이름을 깜박 건성으로 흘려듣고 말았다.
그래도 인상 하나 쓰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도… 본 교를 돕기 위해 온 것인가?”
이무환도 담담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안 그러면 제가 이 먼 곳까지 미쳤다고 오겠습니까?”
유난히 ‘미쳤다고’라는 말에 힘을 주는 이무환이다.
순우결의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눈빛이 아주 약간 흔들렸다.
“허허허, 하긴 그렇지. 그런데 이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네. 목숨을 걸어야 할 경우가 많을 거야. 그래도 괜찮겠는가?”
“천마교의 군사라고 해서 머리가 세 개쯤 달린 무서운 분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얼굴도 잘생기고 마음씨도 고운 분이시군요. 하, 하. 역시 세상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다니까요. 아참, 일단 앉죠?
“음? 아, 그렇군. 자, 자리에들 앉읍시다.”
“뭐 하쇼? 앉아요. 꼬맹아, 너도 앉아.”
이무환이 먼저 자리에 앉고, 남궁산산이 이무환 옆에 앉았다. 막 앉으려던 순우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나이도 어린놈이 염환이나 공손척보다 먼저 엉덩이를 붙이다니.
버릇없는 그의 행동에 한마디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마 도움이 절실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멱살을 잡아서 밖으로 던져 버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나름대로 깊은 수양을 쌓은 사람답게, 숨을 길게 들이쉬며 끓어오르는 화를 억눌렀다.
‘끄응, 대체 저런 놈을 왜 보냈는지 모르겠군.’
일양신마와 역부산은 그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한쪽에 앉았다.
‘날 원망 말게, 군사.’
‘제길, 나도 이제 모르겠다.’
공손척과 염환, 모용상명도 괴이한 표정을 지은 채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순우결이 말문을 열었다.
“다시 한번 와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겠소이다. 현재 상황을 얼마나 알고 계신지 모르겠소만…….”
그가 미처 말을 맺기도 전이었다. 이무환이 불쑥 입을 열더니 순우결의 말을 싹둑 잘라먹었다.
“저기… 여기는 차 없습니까?”
뒤질세라, 남궁산산이 거들었다.
“군사 아저씨, 오빠는 차를 많이 마셔요. 붕어 저리 가라 할 정도죠. 아마 큰 주전자로 가져와야 할 거예요.”
순우결의 하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무환을 노려보는 그의 눈도 빨갛게 달궈졌다.
아마 그를 아는 사람들이 봤다면, 끓는 물로 눈을 씻어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천하의 순우결이 저리 쉽게 열 받다니! 하면서.
하지만 어쩌랴, 상황이 상황인만큼 참는 수밖에.
순우결은 이상할 정도로 화가 났지만,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탁자 밑의 손을 움켜쥐며 끓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어떤 작자가 애송이를 이렇게 버릇없이 키웠을까? 그런 의문을 품은 채.
“곧 가져올 거네. 그런데 자네 부친이 누구신가? 왜 자넬 이곳에 보냈는지 모르겠군.”
이무환의 두 눈 간격이 한껏 좁혀졌다.
“아버지요? 에이, 아버지 이야기는 하지 말기로 하죠, 짜증나니까.”
‘버르장머리 없는 놈,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데 왜 짜증이……. 가만?’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순우결의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무환이 순우결을 빤히 바라보았다.
“벌써 잊으셨어요?”
왠지 한심하다는 눈빛, 혀라도 찰 것 같은 표정.
순우결은 무릎에 얹어진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구룡성과의 합의를 없었던 일로 할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그냥 이놈만 빼고 일을 진행시켜?’
그때 이무환이 이름을 말했다.
“이무환입니다.”
“아, 맞아. 이무환이라고 했지.”
그런데 이상하다. 단순히 이름을 되뇌어봤을 뿐인데, 돌덩이가 가슴에 걸린 것처럼 답답했다.
‘응? 이무환……? 이무……. 가만? 이, 무, 환?!’
순우결의 붉어진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때마침 시비가 찻주전자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이무환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맛을 다지지 않았다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을지 몰랐다.
‘이, 이놈이… 광! 룡?’
이무환은 두 잔의 차를 연거푸 들이켰다. 다도라고는 손톱만큼도 염두에 두지 않고.
맛있게 마시기만 하면 되지, 다도는 무슨! 꼭 그렇게 강변하는 듯했다.
순우결은 이무환이 두 잔의 차를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 이미 붉어진 얼굴과 눈은 본래의 색을 되찾은 후였다.
대구룡성을 단번에 평정해 버린 천외광룡이 눈앞에 있다.
사우천과 거의 같은 힘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되는 잠풍련을 콧바람으로 날려버린 광룡이!
다른 사람들은 광룡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씹어대며, 순전히 광룡의 운빨이 좋아서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고들 떠들어댔다.
천마교였다면 그런 놈이 설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라고도 했다.
어떤 자는 광룡을 미친 뱀새끼에 비교하며, 미친 뱀새끼에게 농락당한 걸 보니 구룡성도 별것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순우결은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그는 광룡을 미쳤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얕보지도 않았다. 당연히 미친 뱀새끼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아는 것이다. 그러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처럼 수십 년간 대세력을 이끌어온 사람에게는 운이 어떻고 하는 말은 다 개소리나 다름없었다.
‘운도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살아나는 법이지.’
탁!
이무환이 찻잔을 소리 내며 내려놓자, 순우결은 묘한 눈빛으로 이무환을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정말 천외광룡인가?”
찻잔을 내려놓은 이무환이 씨익 웃었다.
“남들이 그렇게 불러주더군요. 하, 하, 하!”
“듣기로는 백 살 넘은 노인일지 모른다는 소문도 있던데, 생각보다 젊군.”
“노인은 무슨? 아직 팔팔한 청춘인데요.”
‘하긴 노인이라면 이제 열대여섯 살 된 계집아이와 오빠동생하며 노닥거리지 않겠지.’
순우결은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굴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광룡이 왔다.
미친 용이라는 말대로 성질이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득이 될지 해가 될지, 아직은 누구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적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왔다는 것이다.
‘잘만 이용하면 독도 약이 되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
순우결은 다시 한번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었다. 그러고는 이무환을 향해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이곳에 올 때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을 것 같네만, 혹시라도 좋은 생각이 있는가?”
이무환은 세 번째 잔이 다 채워진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계획이 별거 있습니까? 확 뒤집어놓으면 숨어 있던 쥐새끼들이 다 기어나오겠죠, 뭐.”
누가 광룡 아니랄까 봐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말한다.
사람들은 ‘그럼 그렇지!’ 하는 눈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순우결만큼은 신중해진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할 수 있겠나?”
이무환이 머리를 조금 내밀더니 조용히 말했다.
“군사께서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못할 것도 없죠.”
순우결도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뭘 도와주면 되겠나?”
“일단 교주님을 좀 뵙고 싶은데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나? 내가 이 일의 전권을 가지고 있다네.”
“그래도 좀 만나봅시다.”
“이유가 뭔가?”
이유야 있었다. 자신의 지론이 있잖은가.
대장은 대장끼리!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른 이유를 댔다.
“갑자기 어떤 집을 부숴 버렸는데, 그곳이 교주께서 기거하신 곳이면 미안할 것 같아서 말이죠.”
웃기지도 않은 말.
교주의 거처는 초절정고수 여덟 명이 상시 지킨다. 그리고 오직 서너 사람만이 그 존재를 알고 있는 한 사람이 그곳에 있다.
그곳을 부순다는 것은 광룡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어림없는 소리였다. 우내사천이 온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리고 그런 이유가 아니어도 당장 교주를 만나게 해줄 수는 없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네.”
“좌우간 좀 만나게 해주쇼. 깎아줄 테니까요.”
“깎아주다니? 뭘 말인가?”
순우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이무환은 눈을 크게 뜨고,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
“성공하면 대가를 줄 것 아뇨! 설마 공짜로 부려먹을 생각은 아니겠죠?”
얼굴이 일그러진 순우결은 넌지시 공손척을 바라보았다.
“얼마 정도를 바라고 있는 것인가?”
공손척은 슬며시 눈을 돌렸다.
자신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될 대로 되라고 놔두는 수밖에.
“단주하고 이야기해 보십시오. 모든 결정은 단주께서 하시니까요.”
이각 후.
순우결은 근엄한 표정의 노인에게 이무환의 말을 한마디도 가감없이 그대로 전했다.
순우결의 말이 끝나자 노인이 가볍게 웃었다.
“훗, 웃기는 놈이군.”
“그냥 무시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한번 만나보지. 염려 말고, 자네는 자네 일을 하도록 하게.”
“위험한 자입니다.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노인은 잔잔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순우결을 바라보았다.
“아우는 내가 누군지 잠시 잊었나 보군.”
오연한 표정. 하늘이 무너져도 가만히 응시할 것 같은 모습.
‘아차! 이런 실수를!’
순우결은 자책하며 즉시 고개를 숙였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던가.
천마교의 주인, 우내사천 중 한 사람.
앙천마존(仰天魔尊) 순우천이 아니던가!
만마의 주인인 그에게는 괜찮겠냐는 질문 자체가 모욕인 것이다.
“제가 어찌 만마의 주인이신 교주님의 위엄을 의심하리까. 명에 따르겠습니다.”
2
쾅!
반 자 두께의 탁자가 부서질 것처럼 들썩였다.
대전을 울리는 메아리가 사라질 즈음, 노성이 이어졌다.
“듣자 하니 외부에 도움을 청했다 들었소! 본 교가 언제부터 외부에 도움을 청해서 어려움을 해결했단 말이오?”
대전에 모인 사람은 모두 스물아홉 명.
열다섯 사람이 예순 전후의 노인이었고, 나머지 사람은 쉰 전후의 중년인들이었다.
당금 천마교를 좌지우지하는 최고위급 간부들이 모조리 모인 것이다.
탁자를 손바닥으로 치고 일어선 사람은, 그들 중 중간 정도의 나이에 홍포를 입고 있는 노인이었다.
그는 구마신 중 한 사람으로, 항상 홍포를 입고 있어서 홍포마신(紅布魔神)이라 불리는 가염천이었다.
순우결은 가염천의 노성에 담담히 입을 열었다.
“교주님의 재가 하에 진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설마 교주님의 판단을 의심하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누가 교주님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겠다고 했는가? 나는 오히려 그대들이 교주님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
“오죽하면 그런 방도를 택했겠습니까?”
“흥! 본 교의 무사들을 동원하면 될 일이 아닌가? 대천마교의 태군사가 그 정도 자신감도 없는가?”
모욕감을 느낄 정도의 공격적인 말투. 심하게는 비아냥거림마저 느껴진다.
가염천과 마주친 순우결의 눈빛이 한결 깊어졌다.
순우결은 깊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가염천을 직시한 채 냉정하게 대답했다.
“이제 와 말씀드립니다만, 본 교의 간부들 중에 상당히 많은 사람이 사우천의 간계에 넘어간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하거늘, 본 교의 누굴 믿고 그들과 싸우라는 말입니까?”
앉아 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술렁거렸다.
그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고 있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대로,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대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행여나 공격의 화살이 자신의 심장에 꽂힐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시간이 가면서 술렁임이 서서히 가라앉더니,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염천이 침묵을 깨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간부들 중 상당수가 적일지 모른다는 말. 그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모르지는 않을 터, 태군사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가?”
“어차피 입을 연 마당이니 다 말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