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99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99화
199화
이무환은 못미더운 눈으로 엽상을 흘겨보고는, 노응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몸을 하도 심하게 떨어서, 악다문 잇새로 거품 섞인 핏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에이, 그냥 처음대로 하자고. 이보쇼, 당신도 그게 좋겠지?”
노응사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열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열 사람의 이름을 다 말한 후, 노응사의 입이 닫히자 이무환이 또 물었다.
“그럼 이제 그 사람들의 신상명세에 대해서 말해봐. 길게 말고 짧게. 물론 자세하면 더 좋고.”
노응사의 눈알이 좌우로 굴렀다.
이름만 말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더 자세한 것을 원한다. 그것은 정말 비밀 중의 비밀이거늘.
노응사가 망설이자 이무환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왜? 싫어? 어이, 눈발!”
“예, 단주!”
“톱하고 망치 찾아와! 못하고 집게도 좀 찾아보고!”
“알겠습니다, 단주!”
“사람이 말이야, 좋게 대해주며 협조를 해야지 말이야. 어차피 이름까지 밝혔으면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정도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
틀린 말도 아니다. 더구나 고문 전문가처럼 보이는 놈이 톱과 망치에 집게까지 찾으러 간 마당이다.
노응사는 겨우 입을 벌려 대답했다.
“마, 말… 하겠소.”
이무환의 질문은 그 후로도 조금 더 이어졌다.
“그 사람들 친구도 있지?”
“그 사람 무공에 대해 아는 거 있어?”
“혹시 그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 같은 거, 아는 거 없어?”
“어? 너무 떨지 마. 살려준다니까? 정말이야.”
그렇게 이각, 이무환의 질문이 대충 끝나자, 노응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질문을 했다. 이를 갈면서.
“천하에 너처럼 더럽게 지독한 놈이 있다니……. 네놈은… 대체 누구냐?”
물론 이무환은 기분 좋게 대답해 주었다.
“나? 남들이 광룡이라고 부르지. 뭐, 천외광룡이라고 좋게 불러주는 사람도 있긴 한데, 나는 그냥 광룡이 편해.”
노응사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머릿속이 윙윙 울렸다.
광룡이… 떴다!
“구, 구룡성의 미치광이……!”
노응사는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재수가 없었는지 뇌 속에서 핏줄이 터져 다시는 제정신을 찾지 못했다.
광룡단이 태진궁을 나선 것은 태양이 용호산 머리꼭대기에 올라선 오시 정각이었다.
자신들이 떠난 후에 명위종이 올 터. 뒤처리는 그에게 맡겼다.
광룡단이 태진궁을 나설 때였다. 이무환이 남궁산산을 보며 말했다.
“나는 마음씨도 좋아. 그래도 죽이지는 않았잖아? 하긴 차라리 미쳐서 사는 게 더 나을 거야. 그렇지, 꼬맹아?”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일제히 이무환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그들 중 이무환이 마음씨 좋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헤헤, 그래서 내가 오빠를 좋아한다니까.”
“단주야말로 인의대협의 표본이죠.”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바보 아니겠습니까?”
“음하하, 쌍도끼를 자식에게 물려줄 때 단주의 무용담을 들려줄 겁니다.”
“저는 칠도회의 삼사를 살려줄 때부터 눈치챘습니다, 단주.”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걸음만 옮겼다.
그들은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징그러운 놈. 열 명의 이름만 알려주면 된다고 해놓고, 온갖 비밀을 다 캐내다니. 수룡단에 왔을 때 저놈에 대해 먼저 파악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제기랄!’
‘지미, 이 부러진 복수를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아무래도 이들을 총교로 데려가면 안 될 것 같은데. 특히 광룡은……. 뭔가 큰일이 일어날지도…….’
2
용호산에서 천마교의 총교가 있는 무이산맥의 주산 황강산(黃崗山)까지는 오백 리 길이었다.
광룡단은 관도를 따라 가지 않고 보다 빠른 지름길을 택했다. 사우천의 눈길도 피할 겸, 한시라도 빨리 천마교에 도착하기 위함이었다.
흑우령이 무너진 사실을 사우천도 곧 알게 될 터. 그전에 천마교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그만큼 유리해질 거라 생각한 것이다.
태진궁을 출발한 지 이틀 후.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깎아지른 듯한 절곡으로 이루어진 협곡을 빙 돌아간 광룡단의 눈에 수백 장 절벽으로 이루어진 협곡이 보였다.
“이제 거의 다 왔네.”
일양신마가 걸음을 늦추며 말했다.
첩첩산중의 산길을 달리다 보니 오백 리가 아니라 천 리를 온 것만 같았다. 그나마도 일행을 이끈 천마교의 호위들이 일대의 지리를 잘 알기에 이틀 만에 도착한 것이었다.
이무환은 그림처럼 펼쳐진 협곡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길이 아닌 곳으로 수백 리를 오다 보니 편함과는 거리가 먼 행로였다. 잠도 절벽 밑 움푹 파인 곳에서 자고, 먹는 것도 대충 사냥을 해서 구워먹었다.
자신이야 별 상관없었다. 그보다 열 배 힘든 일도 비룡도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면 고생이라 할 것이 없었으니까.
문제는 남궁산산이 생각지 못한 고생을 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돌봐주고 신기영이 찰싹 달라붙어서 일일이 챙겨주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어젯밤부터는 비까지 내렸다.
유철상이 재빨리 나뭇가지를 꺾어 비바람을 막지 않았다면 병까지 들었을지도 몰랐다.
‘오죽하면 춥다면서 품속으로 파고들었겠어?’
어쨌든 이제 목적지에 도착했다.
조금만 더 가면 세상에 그 모습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천마교의 총교를 볼 수 있을 듯했다.
꼬맹이도 그 생각에 어제의 고생을 모두 잊은 듯 밝은 표정이었다.
이무환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저 협곡 안에 있나 보죠?”
“협곡을 지나가면 총교의 건물들이 보일 것이네. 이제 삼십 리 정도만 더 가면 되지.”
아직도 삼십 리를 더 가야 한다고? 그런데 왜 다 온 것처럼 말한 거요?
이무환이 그런 눈빛을 담아 일양신마를 째려보았다.
역부산은 이무환과 눈이 마주치기 전에 호위들을 닦달하며 먼저 출발했다.
“앞서라, 공호!”
협곡의 입구로 다가가자 십여 명의 무사가 양옆에서 나오더니 일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천마교의 무사들이었다.
“정지! 그대들은 누군데 협곡을 통과하려는 건가?”
호위무사들 중 광룡단을 천응표국으로 안내했던 장한, 공호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몇 마디 말이 오가는가 싶더니 경비무사들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고개를 돌린 그들은 다가오는 역부산을 보고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공호가 한 말이라고는 그저 단순한 몇 마디뿐이었다.
“열혈마종 공께서 천응표국의 표사들과 함께 오셨다. 길을 터라.”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멋모르고 역부산의 앞을 막았다가 떡이 되어 나가떨어진 경비무사가 수십 명이었다. 개중에는 순찰과 경비를 책임지는 마경당에 부임한 지 삼 일 만에 병신이 된 부당주도 있었다.
그러니 경비무사들에게는 일양신마보다 열혈마종이 훨씬 더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입구로 다가간 역부산이 인상을 쓰며 한마디 던졌다.
“경비 똑바로 서!”
“옙! 들어가십시오, 대공!”
역부산은 오랜 만에 기가 살아서 넓은 어깨를 쫙 펴고 걸어간다.
그때 십여 장 뒤쪽에서 소곤거리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아지도 자기 집 앞에서는 호랑이를 보고 짖는다는 말이 헛소리는 아니라니까. 안 그래, 꼬맹아?”
“아이, 너무 그러지 마요, 오빠.”
빌어먹을!
그렇게 백여 장가량을 들어가자 양쪽 절벽의 위용이 점점 거대하게 일행을 짓눌렀다.
붉은 바위가 수백 장 높이로 솟아 있다.
반듯한 면은 하늘의 칼로 뚝 잘라낸 것만 같다.
게다가 그 길이 십 리를 뻗어 있다.
이무환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의 장관이었다.
“이야! 진짜 굉장하군. 앞뒤를 막고 공격하면 도망갈 데도 없겠어. 아니지, 저 위에서 커다란 돌만 던져도 어지간한 적은 다 막아내겠는데?”
앞장서 가던 사람들은 움찔 어깨를 떨고, 뒤따라가던 사람들은 눈에서 강기를 쏘아낼 것처럼 노려보았다.
‘꼭 말을 해도, 재수 없게!’
‘으이그, 저 인간 입을 확 한 대 쳐버리면 좋겠는데!’
‘십 리 협곡을 지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하여간 입방정하고는.’
대부분이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사우천에선 아직 자신들이 온 것을 알지 못할 것이었다.
설령 뭔가를 알았다 해도 이곳은 천마교의 영역이 아닌가.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앞을 막지는 못할 것이었다. 막는다 해도 별 상관이 없긴 했지만.
그렇게 백 장을 들어갔을 때였다.
이무환이 검지로 절벽 위를 가리키며 역부산에게 물었다.
“역 형, 근데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은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는 거요? 미리 준비해서 올라가는 거요?”
역부산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 위에 있는 사람들? 누구 말인가? 저 위에는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네만?”
“응? 아닌데? 절벽 위에 사람들이 제법 있는데? 한 이십 명쯤. 저 사람들도 천마교 사람들일 거 아뇨?”
이무환이 말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바로 그 순간!
“오빠! 달려!”
한 소리 빽 내지른 남궁산산이 이무환을 손을 잡아끌었다.
눈치라면 이무환도 남궁산산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눈을 번쩍 뜬 그가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방울소리 나게 달려서 이곳을 벗어나! 빨리!”
제일 먼저 광룡사위를 비롯한 일조가 달렸다. 다른 사람들도 얼떨결에 이무환을 따라 땅을 박찼다.
그와 동시.
우르릉.
갑자기 허공에서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달리면서 일제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서 바위가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개중 큰 것은 황소만 했다.
백수십 장 높이에서 떨어지는 바위다. 제아무리 고수들이라도 해도 정통으로 맞으면 끽소리도 못한 채 어육이 될 터. 기겁한 사람들은 두 다리에 전력을 쏟아 붙고 내달렸다.
천둥벼락 같은 소리만 아니었다면, 정말 다리 사이에서 방울 소리가 들렸을지도 몰랐다.
“벽에 붙어서 달려!”
“빌어먹을!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저 재수 없는 인간 때문에…….”
“제기랄, 진짜 정 안 드는 놈이라니까.”
사람들은 달리면서도 한소리씩 해댔다.
이무환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꼬맹아! 내 손 꼭 잡아! 장다리! 빨리 따라와! 어이! 뭐해? 달리라니까!”
우르르릉! 콰과과광!
절벽에 부딪치며 부서지고 쪼개어진 바위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바윗덩이!
위에서 떨어지는 바위만 조심하면 될 상황이 아니었다. 튕겨나가서 옆으로 날아들고, 암반에 떨어져 다시 튀어 오르고, 떼굴떼굴 구르며 덮쳐 오는 것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조각조각 부서진 수천수만 개의 파편은 강전만큼이나 위협적이었다.
“으아악!”
퍽!
“크억!”
눈 깜짝할 사이, 뒤로 처진 천마교의 무사 중 둘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커다란 바위에 깔려 버렸다.
몸이 반쯤 뭉개진 그들은 이미 즉사한 듯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렸다.
사방팔방에서 날카롭게 부서진 수만 조각의 파편이 날아들고 있었다. 걸음을 멈춘 순간 천하의 그 어떤 강적보다도 위협적인 돌덩이들이 덮칠 터. 한눈 팔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은 달리면서 공력을 주입한 무기로 전면과 측면과 상단을 보호했다.
다행이라면 절벽에 바짝 붙어 달린 덕에, 어느 쪽이든 한쪽만 막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검막과 도막, 장막 등 그들이 펼칠 수 있는 모든 방어막이 다 펼쳐졌다.
따다다다당!
우르르릉! 콰과광!
콩 볶는 소리가 우렛소리와 뒤섞여 메아리쳤다.
와중에 여기저기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는 자는 없었다.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야말로 혼신의 공력을 다해서 경공을 펼쳤다.
강궁을 떠난 화살도 그들보다 빠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마 그들 대부분이 평생 동안 오늘처럼 빨리 달려본 적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오십 리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오십여 장이었다.
바위가 떨어지는 곳을 벗어나는 촌각의 시간이 용호산에서 이곳까지 달려온 이틀보다 더 긴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협곡을 벗어난 후에도 한참을 더 달렸다.
그들이 걸음을 멈춘 것은, 바위가 떨어지는 곳에서 이백여 장을 훌쩍 벗어난 후였다.
콰르르르르…….
뒤쪽에서는 우렛소리가 절벽을 울리며 메아리치고, 뿌연 먼지구름이 일어나고 있었다.
“후우…….”
“제기랄…….”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각기 자신들의 동료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광룡단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 서너 명이 파편에 맞아 피를 흘리긴 해도 그리 심한 것 같지는 않았다.
반면 천마교의 무사는 세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장로의 호위무사 중 둘은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한 사람은 이곳까지 온 것이 신기할 정도로 다리를 크게 다쳤고, 한 사람은 어깨뼈가 완전히 부서진 듯했다.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협곡이 수십 장만 더 길었다면 상당히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을 것이었다.
“어떤 개자식들이 감히 본교의 영역에서 수작을 부린 거야?”
역부산이 욕을 하며 씨근덕거렸다. 눈앞에 범인이 있으면 당장 찢어 죽일 것 같은 기세였다.
“똥물에 튀겨 죽일 놈들! 잡기만 해봐라! 가랑이를 찢어 죽일 테니까!”
“저놈들이 우리의 정체를 알고서 공격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무환이 먼지구름이 이는 협곡에서 눈을 떼고 일양신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확히는 모르고 있을 거네.”
그럴지도 몰랐다.
“하긴 알았다면 훨씬 더 넓게 공격을 했겠죠, 아니면 독이라도 던져 넣든지.”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 사람들의 송곳 같은 시선이 이무환의 뒤통수에 집중되었다.
그놈의 입방정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또……!
이무환은 뒤통수가 찌릿찌릿 하자 슬쩍 뒤를 돌아다봤다.
“왜들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요?”
몇 사람이 허공을 쳐다보며 입을 오물거렸다.
‘저 자식의 요구를 받아들인 내가 바보지.’
‘몰라서 묻냐?’
‘돌덩이는 왜 저 자식을 피해간 거야? 뒤통수나 후려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