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96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96화
196화
그는 급히 광룡단을 쓸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몇 사람에게서 잠시 멈췄다.
‘맞아, 저자는 만겁궁의 삼존자 중 하나인 수라존자 염환이야. 그리고 저자는… 황산검호 담환…….’
그러다 소천득에게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저자,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헛! 설마, 절… 수?’
경악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속이 답답해지고 목이 탁 메었다.
문제는… 천중십마 중 한 사람인 절명마수 소천득도 수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 맙소사! 어떻게 저들이 이곳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실실 웃고 있는 이무환이 보였다.
가만? 눈앞에 있는 얄미운 놈이 단주라 했던가?
‘으으음, 비밀이라더니, 위장을 하기 위해서 저놈을 단주로 내세운 건가?’
그때 문득, 얄미운 놈이 말한 단체의 이름이 뒤늦게 뒤통수를 후려쳤다.
‘응? 광… 룡… 단?’
동시에 심장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제9장. 잘못한 게 있으면 바로잡아야지
1
사상자를 수습하는 데 반 시진가량이 걸렸다.
수습이 끝나자, 부상자와 명위진을 마차에 실은 표행은 곧장 동쪽으로 내달렸다.
본래 무향에서 하루 쉬고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습을 받은 이상 예정대로 움직일 수만은 없었다.
태양이 파양호로 침몰할 즈음, 무향을 지나친 표행은 쉬지 않고 응담(鷹潭)까지 달렸다.
해시 초.
응담에서 비치는 불빛이 보이자, 표행의 선두를 달리던 사람들이 속도를 줄였다.
사람보다 말들이 더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투레질을 하며 겨우 걸음을 옮기는 말들의 입에서 거품이 뚝뚝 떨어졌다.
아마 조금만 더 달렸다면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말들에게는 안 되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간단하게 손을 본 부상자들을 의원에게 보여야 했다.
그런데 선두는 응담으로 들어가지 않고, 남쪽의 산 쪽으로 일행을 인도했다.
광룡단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그들 대부분은 반나절의 시간을 번 것을 반겼다. 아마 밤을 새서 천마교까지 간다고 해도 전혀 불평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산 쪽으로 방향을 튼 지 이각.
선두가 얕은 산자락에 자리 잡은 한 채의 장원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목조릉이 앞으로 나가더니 장원의 문을 두드렸다.
탕! 탕! 탕!
잠시 후, 하인으로 보이는 자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이 밤중에 뉘슈?”
그러다 밖에 서 있는 사람들과 마차를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목조릉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그를 향해 물었다.
“안에 장주께서 계시는가?”
“계시긴 합니다만…….”
“남창의 목이(木二)가 뵙잖다고 전해주시게.”
점잖은 인상의 목조릉이다. 게다가 뒤에는 날선 기운이 흘러나오는 수십 명의 무사가 늘어서 있었다.
하인은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무환은 뒷짐을 진 채 장원의 현판을 바라보았다.
‘청풍산장(靑風山莊)이라…….’
평범하면서도 고아한 멋이 풍기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흠, 나도 장원을 산에다 지을까? 신룡산장? 아니면 비룡산장? 광룡산장은 좀 그렇지?’
이무환의 미래에 살 집의 이름을 생각하고 있을 때 몇 사람이 장원에서 나왔다.
앞장서 나온 자는 오십 초반의 중년인이었다. 날카롭게 뻗은 두 눈과 눈썹만 아니라면 그럭저럭 후덕해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그는 목조릉을 보더니 반색을 했다.
“어이구! 이게 누구신가? 남창의 목이제가 어인 일이신가?”
“안녕하셨습니까, 곡 형님?”
“나야 잘 지내고 있지. 한데…….”
중년인은 뒤를 보더니 조금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표행을 가는 길인가?”
“예, 천마교로 가던 중에 약간의 불상사가 있어서 성내로 못 들어가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저희 일행이 쉴 만한 곳이 있겠습니까?”
“허어! 대체 어떤 간 큰 놈이 천마교로 가는 천응의 물건을 건드렸단 말인가? 어서 들어오게. 아무리 비좁은 집이라지만, 자네 일행이 쉴 자리 정도는 있다네.”
“고맙습니다.”
장원의 정문이 활짝 열렸다. 마차와 표사, 광룡단이 안으로 들어가자 목조릉이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곳은 저희 형님과 친분이 있으신 곡 형님의 장원입니다. 이곳에서 쉬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일양신마가 물었다.
“혹시 곡 형님이라는 사람이 청양비검 곡사원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어르신.”
“우리가 천마교의 사람이라는 것을 밝힐 생각인가?”
“아닙니다. 지금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니만큼, 형님이 알아보기 전에는 말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일양신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청응비검(靑鷹秘劍) 곡사원.
그는 천마교 응담 분타주인 마응 진수동과 함께 응담쌍응(鷹潭雙鷹)이라 불리는 사람으로, 천마교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자였다.
평상시라면 정체를 밝히고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확실한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곡사원이 먼저 알아본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의원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사람을 보내 응담에서 데려올 생각입니다.”
“조심하도록 하게. 놈들이 분명 응담에 염탐을 나와 있을 것이야.”
“알겠습니다, 어르신. 일단 들어가시지요.”
일양신마는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뒤를 바라보았다.
남궁산산과 재잘대고 있는 이무환이 보였다.
‘후우… 복인지, 화인지…….’
그는 고개를 미약하게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세상에… 저놈이 진짜 광룡이라니!’
미친 호랑이를 끌고 집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골머리를 싸매봐야 나오지도 않을 결론이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좋은 쪽으로. 들었던 것보다는 덜 미친 것 같은데…….’
2
응담 남쪽 오십여 리 되는 곳에는 백여 개의 거대한 암봉이 달빛을 받아 괴괴하게 서 있었다.
그곳이 바로 장도릉이 도교 일맥인 정일교를 처음 일으켰다는 도교 성지 용호산(龍虎山)이었다.
용호산에는 도교 성지답게 수많은 도궁과 사원들이 봉우리 사이사이마다 지어져 있었다.
태진궁도 그중 하나였는데, 용호산의 사원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규모가 컸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만도 이백 명이 넘는다 하니, 성내의 어지간히 큰 장원과 비교될 만한 규모였다.
그런데 삼월의 어느 날 밤, 도를 닦기 위한 도인들의 거처 태진궁에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항상 마음을 가라앉혀야 할 도인이 내지른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분노와 살기가 섞인 목소리였다.
하지만 태진궁에 사는 사람들 누구도 그 목소리에 짜증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숨을 죽이고 혹시 있을지 모를 어떤 명령을 기다렸다.
“명위진이 죽었단 말이냐?!”
흑의 도포를 걸친 도인이 벌떡 일어날 것 같은 자세로 대뜸 소리쳤다.
그 기세에 어둠을 밝히는 대황초의 불빛이 출렁였다.
무릎을 꿇고 있던 흑의중년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위종과 그의 조원들만 돌아온 걸로 봐서 그럴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령주.”
“위종만 돌아왔다? 대주인 명위진은 놔두고 말이냐?”
“그렇습니다, 령주.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도망쳤다 합니다.”
“으음…….”
흑의도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등을 의자에 기댔다.
눈엣가시 같던 명위진이 죽었다면 그야말로 대환영할 일이었다. 아마 소식이 알려지면, ‘천’의 수뇌들 중 몇은 몰래 축배라도 들 것이었다.
그런데 뭔가가 찜찜했다.
명위진은 결코 자신의 하수가 아니다. 하수는커녕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강했다. 하기에 그를 한직에 처박아놓고 위로 오르지 못하게 막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자가 죽었을지 모른다고 한다.
‘상대가 일양신마와 열혈마종 역부산이라 했던가?’
두 사람의 협공이라면 명위진이라 해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몸조차 빼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을 터. 그는 그 점이 찜찜했다.
“명위진의 임무가 뭐였지?”
“남창 일대의 순찰이었습니다.”
“일양신마와 역부산이 남창에 왜 간 것인지 아느냐?”
“총교의 행사를 위한 중요 물품을 수송하는 책임자로 갔다고 합니다.”
흑의도인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구마신 중 한 사람과 십팔마종 중 한 사람이 기껏해야 수송책임자로 갔다고?”
“총교에서는 역부산만 보내려 했는데, 마침 일양신마가 남창에 볼일이 있다고 해서 함께 보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게 다일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상한 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상한 점? 뭔가?”
“일양신마는 지난 십여 년 동안 강호에 거의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창에 볼일이 있다는 게 좀…….”
“흠,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그 말인가?”
“속하는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령주.”
흑의도인의 눈에서 새파란 눈빛이 번뜩였다.
“적궁, 네가 직접 가서 철저히 조사해 봐라. 놈들이 정말 뭔가 다른 속셈이 있다면, 진현에 머물지 않고 응담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응담에서 거꾸로 거슬러 가라. 혹시 모르니 일대와 이대를 모두 데려가도록.”
적궁이라 불린 흑의중년인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알겠습니다, 령주.”
3
흑우령의 일대와 이대는 곧장 응담으로 향했다.
명위종은 일대주 적궁에게 함께 가겠다고 사정했다.
“대주, 복수를 할 수 있도록 저희도 데려가 주십시오. 거치적거리지 않도록 떨어져서 움직이겠습니다.”
적궁으로서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던 명위진이 생사불명이고, 오대가 함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일조 열 명은 곧 다른 대에 귀속될 터. 잘하면 자신의 대원이 열 명 늘어날지도 몰랐다.
“좋다. 하나 독자적인 행동을 하다 전체에 피해를 주게 되면, 네 목을 걸어야 할 것이다.”
“예, 대주!”
명위종은 순순히 대답하고 적궁 일행에 합류했다. 그리고 적궁이 이끄는 일이 대와 이백여 장의 거리를 두고 움직였다.
그런데 응담에서 오 리 정도 떨어진 곳에 다다랐을 때였다. 명위종은 조원들의 걸음을 늦추고 일이 대와 거리를 벌였다.
“왜 그러십니까, 조장?”
의아했는지 조원 중 하나가 나직이 물었다.
명위종은 그를 보지 않고 땅바닥만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이게 뭘로 보이는가?”
“마차 바퀴 같습니다.”
“적어도 서너 대 이상은 되겠지?”
“예, 조장.”
“이 길로 평소 마차가 많이 다닐 거라 보이는가?”
“관도는 저쪽인데, 이곳으로 다닐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 대답에 명위종이 싸늘한 웃음을 베어 물었다.
딱딱한 땅이 아니어서 마차 바퀴가 선명하다. 거기다 이지러지지도 않았다. 지나간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말.
적궁이 이끄는 흑우령의 일이 대는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적에 대해, 마차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대량의 물건을 한밤에 수송한다는 말인데……. 이 근처에서 밤에 움직일 만한 자들이 있을까?’
한 대도 아니고 서너 대 이상의 마차가 한꺼번에 지나갔다. 같은 일행이라는 말.
응담에 설령 그런 자들이 있다 해도, 그들이 이 길로 갈 이유가 없다. 이 길은 산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그렇다면 외부의 마차라는 말이겠지.’
명위종의 뇌리에 천응표국의 마차 다섯 대가 떠올랐다.
“종원, 너는 마차의 바퀴를 따라 거꾸로 십 리 정도 간 다음 돌아와라. 나는 마차가 향한 곳을 찾아보겠다.”
“예, 조장.”
마차 바퀴 자국을 따라간 명위종은 한 채의 장원이 보이자 송림 속에 몸을 숨겼다.
교교한 달빛이 고색창연한 장원의 지붕에 내려앉아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장원이다.
명위종은 현판을 보고 장원의 주인이 누군지 생각해 냈다.
‘청풍산장. 청양비검 곡사원이 장주로 있다는 곳이군.’
마차 바퀴 자국이 장원으로 이어져 있다. 마차는 모두 장원으로 들어간 듯했다.
그는 그곳에서 오종원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축시가 다 될 무렵, 거꾸로 거슬러 갔던 오종원이 돌아왔다.
“바퀴 자국은 응담으로 들어오는 곳에서 꺾어져 이곳으로 향했습니다, 조장. 속하가 자세히 세어본 바로는, 모두 다섯 대인 것 같습니다.”
응담에 들어가는 것을 피했다는 뜻. 게다가 다섯 대다.
십중팔구는 천응표국의 마차임이 분명했다.
명위종은 싸늘한 눈빛으로 청풍산장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서서히 가슴이 뛰었다.
그는 형을 살려주겠다고 했다.
정말 형이 살아 있을까?
‘안으로 들어가 확인해 보면 알겠지.’
4
“으헛!”
이무환은 벌떡 일어나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오빠, 왜 그래요?”
남궁산산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어? 어, 아무것도 아니야.”
이무환은 다급히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손을 저었다.
하지만 속은 싱숭생숭해서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옥이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면서 나타났어. 왜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