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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95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6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95화

 

195화

 

 

 

 

 

 

 

 

흑의무사들이 무기를 고쳐 쥐고 다시 달려들었다.

 

남은 자들은 흑의무사들 중에서도 나름 강한 자들. 그러나 그들이라 해도 광룡단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한 공격이 삼사초 지나는 사이 십여 명이 피를 뿌리며 거꾸러졌다.

 

나름 절정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조장들도 예외가 없었다.

 

무기가 부러지고, 뼈가 으스러지고, 피가 튀고, 힘없이 꼬꾸라진다.

 

초인적인 의지조차 짓누르는 절대의 무위!

 

흑의무사들은 절망에 찬 표정으로 죽어갔다.

 

흑우령 제일대 이조장인 황은수는 두어 바퀴 구른 후에 몸을 일으켰다.

 

오른팔이 꺾어져 뼈가 드러났지만 고통을 느낄 틈도 없었다.

 

그는 비명 대신 악을 써서 외쳤다.

 

“대주! 이곳을 피하십시오!”

 

 

 

명위진은 핏발 선 눈을 부릅떴다.

 

그는 일양신마와의 격전을 벌이면서도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퍽!

 

일양신마의 일지가 어깨를 뚫고 지나가는데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수하들이 죽어간다. 너무도 어이없이.

 

‘이건 꿈이야!’

 

그렇게 믿고 싶을 정도다. 자신의 어깨에 뚫린 구멍도 꿈에서 깨어나면 멀쩡할 것 같았다.

 

<형님! 물러나십시오!>

 

그때 명위종의 전음이 귀청을 울렸다.

 

명위진은 몸을 뒤집어서 일양신마의 지풍을 피하고는, 풍차처럼 휘돌며 삼 장을 물러났다.

 

일양신마는 물러선 명위진을 바로 공격하지 않고, 공격 대신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네놈이 바로 명 형의 아들인 명위진이더냐?!”

 

일양신마의 목소리에 멍한 정신이 깨어났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으하하하! 그렇소, 내가 바로 명위진이오, 일양신마 노선배!”

 

“네놈은 명 형이 왜 그리되었는지 정녕 몰라서 사우천에 몸을 담은 것이더냐?”

 

“명가를 두려워하는 소인배를 모시는 사람이 무슨 말이 그리 많소? 그나마 당신을 노선배라 칭하는 것도 과거의 지푸라기 같은 인연 때문임을 알아야 할 것이오!”

 

“어리석은 놈! 네놈 때문에 명 형이 지하에서 울겠구나!”

 

“흥! 헛소리할 시간에 내 검이나 받아보시오!”

 

명위진은 검을 그러쥐고 다시 몸을 날렸다.

 

잠깐의 방심으로 어깨가 뚫렸다지만, 밀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일양신마는 그보다 상수가 아니었다. 하수도 아니었지만.

 

만일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정신이 흐트러지지만 않았다면, 이토록 허무하게 어깨가 뚫리는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형님!>

 

명위종의 전음이 다시 울렸다.

 

그러나 명위진은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전력을 다한 일검을 내뻗었다.

 

“우하하하! 나의 검으로 명가의 마륜검을 평가하지는 말아야 할 거요, 단리 노선배!”

 

죽을 것이다.

 

이곳에서 수하들과 함께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위종! 부디 명가의 한을 잊지 말아라!’

 

 

 

한편, 이무환은 남궁산산이 펼쳐 놓은 진세 안에서 상황 전체를 살피며 느긋이 싸움을 구경했다.

 

‘흠, 자고로 구경은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 최고라 했지.’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자신이 나설 것도 없었다.

 

그렇게 싸움 구경을 할 때였다.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숨어 있는 놈들은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이지?’

 

열 명 정도가 구릉 저편에 남아 있었다.

 

특히 구릉 위에 서 있는 버드나무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적들 중 누구보다도 강했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나서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절망적인 상황이 되도록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나서지 않는 걸까? 나오면 죽을 것 같아 겁에 질린 것일까?

 

조금 이상한 점은 일양신마와 싸우는 자가 이들의 수장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장보다 강한 수하라는 말.

 

‘잡아서 물어볼까?’

 

이무환은 진세 밖으로 나가기 위해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꼬맹아, 여기에 저 장다리랑 함께 있어.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예, 오빠.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진세 안에는 두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무공이 떨어지는 신기영도 있었다.

 

입에서 침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구경하는 모습이 조금 덜 떨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이무환은 그래서 더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헛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장다리, 상황이 끝날 때까지 여기에 있어.”

 

“예? 예, 단주!”

 

“꼬맹이 말 잘 듣고.”

 

“옙! 단주! 걱정 마십시오. 저는 아가씨의 말씀이 곧 하늘의 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기영은 이무환 덕분에 지난 십여 년간 수련한 것보다 더 많은 내공을 얻었다. 게다가 겨우 기초뿐이지만, 수류보라는 신비한 보법까지 익히는 중이었다.

 

신기영에게 이무환은 하늘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무환을 꼼짝 못하게 하는 남궁산산은 천상천일 수밖에.

 

‘장다리가 나보다 꼬맹이를 더 따르는 것 같단 말이야.’

 

이무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세를 빠져나왔다.

 

바로 그때, 명위진이 신검합일한 채 일양신마를 향해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위종! 가라! 어서!”

 

순간, 버드나무 뒤쪽에 있던 기운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구릉 위에서 멀어진다.

 

“이런!”

 

이무환은 땅을 박차고 구릉 위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명위종은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온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형을 놔두고 온 죄책감에 미칠 것 같았다.

 

당장 돌아가서 죽을 때까지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형의 바람과 어긋날 뿐만 아니라, 가문의 염원을 저버린 결과만 나올 뿐이다.

 

‘크크크. 명위종아, 명위종아! 하늘을 비웃던 네 실력이 얼마나 보잘것없었는지 이제야 알겠느냐?’

 

열혈마종 역부산이나 일양신마 단리 노인이야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들 정도는 자신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니까.

 

문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 속에서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흑우령 제오대의 무사들이 대항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죽어갔다.

 

굳이 전력을 다한 모습을 볼 필요도 없었다. 가벼운 움직임만 봐도 알 것 같았다.

 

강가의 마른 갈대를 꺾듯이 일류 수준의 수하들을 처리하는 자들. 그들의 무위는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그들 중 몇 명은 자신조차 그 정확한 실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절대의 능력! 

 

강호를 통틀어도 이삼십 명에 불과하다는 절대의 고수들만이 지녔다는 능력을 지닌 자들.

 

문제는 그런 자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네다섯 명이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에 비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자들도 몇 명이나 되었다.

 

솔직히… 두려웠다. 두려워서 뛰어들 수가 없었다.

 

뛰어들어서 형이라도 구해 와야 하는데, 나가면 자신마저 당할 것 같았다.

 

그것이 그를 더욱더 비참함에 빠지게 만들었다.

 

“형님!”

 

명위종을 하늘을 향해 외치며 이를 악물었다.

 

그때였다. 낭랑한 목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당신은 누구지? 왜 그냥 가는 거야?>

 

날듯이 달려가던 명위종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는 휘청거리는 몸을 세우고 홱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자신이 몸을 숨기고 있었던 버드나무 옆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족히 백여 장의 거리. 눈을 부릅뜬 명위종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반쯤 벌어졌다.

 

“조장님, 왜 그러십니까?”

 

흑우령 제오대의 일조원들이 걸음을 멈추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명위종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좀 전의 전음이 다시 그의 고막을 울린 것이다.

 

<대주라는 자의 동생인가? 원한다면 형의 목숨을 살려줄 수 있는데. 어때?>

 

명위종은 이를 악다물었다.

 

자신이 원해도 형이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차마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때 이무환의 전음이 이어졌다.

 

<조건은 간단해. 나중에 나하고 차나 한잔하자고. 승낙하면 고개를 끄덕여.>

 

명위종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동시에 이무환의 모습이 사라졌다.

 

명위종의 부릅뜬 눈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까지 보고 들은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조장님, 빨리 이곳을 벗어나시는 게…….”

 

조원들이 그를 재촉했다.

 

명위종은 허탈한 마음에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누군가? 그는 누군가? 누구기에 백 장이 넘는 거리에서 전음을 자유자재로 보낸단 말인가?’

 

절대경지의 초입에 들어선 자신이라 해도 삼십 장의 거리가 한계다. 그런데 좀 전의 전음은 무려 백 장이 넘는 거리였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정말 형을 살려줄까? 차나 한잔 마시자는 진짜 의도가 뭐지?

 

그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번졌다.

 

‘크크크, 웃기는군. 정말 웃겨. 적의 한마디에 이토록 초라해질 수 있다니. 그런 놈이 무슨 사우천을 욕심내고 천하를…….’

 

그때 문득, 뇌리 한구석에서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저자와 천주가 붙으면 어떻게 될까?’

 

서서히 명위종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천마교가 풍전등화라지만, 저들이 천마교를 돕는다면 사우천도 천마교를 쉽게 얻지 못할 것이다. 그래, 아직 절망할 때는 아니다. 혼란한 틈을 노린다면…….’

 

명위종은 표정을 추스르고 자신을 따라온 흑우령 일조의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일조의 대원들은 흑우령 오대의 기존 대원들이 아니다. 명가의 주축을 이루던 사람들의 후예들이다. 자신과 힘을 합쳐 명가에 희망의 불꽃을 일으킬 사람들인 것이다.

 

‘저자들을 잘만 이용하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지도…….’

 

명위종의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 그는 구릉 쪽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몸을 돌렸다.

 

“가자!”

 

 

 

그 시각.

 

흑의무사들 중 서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하긴 광룡단의 숫자는 사십여 명. 한 사람이 두 명을 상대할 필요도 없는 싸움이었다. 더구나 흑의무사들은 혈사단이나 잠풍련의 고수들보다 약했다. 오래 끌고 싶어도 그럴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싸움이 끝나자 천마교의 무사들은 부상자들을 손보고, 표사들은 주위를 정리했다.

 

그사이 광룡단은 표차 옆에 모여서 한곳을 바라보았다.

 

이무환이 역부산과 말다툼을 벌이며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도대체 저 악귀가, 광룡이 왜 또 저러는 걸까?

 

모두들 그것이 궁금했다.

 

 

 

“죽일 필요까지는 없잖수?”

 

“우리 수하들이 열 명이나 죽었다! 놈도 죽어야 돼!”

 

“글쎄, 그건 역 형 사정이고, 약속한 것이 있어서 죽이면 안 된다니까요?”

 

“또 역 형! 이 빌어먹을 놈이!”

 

역부산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일양신마가 아니라 교주가 말린다고 해도, 눈앞에 있는 얄미운 놈을 박살 내고 싶었다.

 

한참 싸울 때는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명위진을 채갔다. 그러고는 죽이지 말잔다. 

 

명위진이야 정신 잃고 다 죽어가는 놈이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얄미운 놈이 죽이지 말자고 하니 더 죽이고 싶었다. 거기다 대고 또 역 형이라고?

 

“에라이!”

 

역부산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날렸다.

 

이무환의 얼굴이 코앞에 보인 순간, 그는 씩 웃으며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빡!

 

경쾌한 타격음이 고막을 울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왜 내 머리가 멍한 거지?’

 

거기다 갑자기 파란 하늘이 보이는가 싶더니, 점점 노랗게 변했다.

 

‘어어어…….’

 

털썩.

 

“쩝. 그러게 좀 참지, 왜 주먹을 휘둘러요?”

 

이무환은 큰대 자로 널브러진 역부산을 향해 혀를 차고는, 석상처럼 굳어 있는 일양신마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저 사람, 살려줘도 괜찮겠지요?”

 

일양신마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열혈마종 역부산이 단 일수에, 그것도 손바닥에 얻어맞고 쓰러졌다. 도무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조금 전에 본 광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넨… 대체 누군가? 그리고 저들은 또 누군가?”

 

“그거 알려주면, 저 사람 살려줄 겁니까?”

 

일양신마는 이무환을 직시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이무환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무환이라고 합니다. 제가 광룡단의 단주죠. 하, 하, 하.”

 

“이무환? 광룡단?”

 

“뭐, 잘 모르시겠지만, 더 자세한 것은 나중에 알려주지요.”

 

일양신마는 이무환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활을 들고 있는 헌원숭을 바라보았다.

 

“그럼 딱 한 사람만 묻겠네. 저 사람, 혹시 헌원이라는 성을 쓰는 사람이 아닌가?”

 

“어? 어떻게 알았죠?”

 

일양신마의 주름진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여, 역시 생각대로 명부신사 헌원숭이었어!’

 

이곳에 오기까지는 활이 가죽 주머니에 넣어져 있어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탄궁을 하는 걸 보고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살이 없는데도 흑의무사들이 픽픽 쓰러지지 않던가.

 

자신이 아는 한, 그런 수법은 한 가지뿐이다.

 

기어시(氣御矢). 기화살 말이다.

 

천하에 기어시를 자연스럽게 시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래서 물어봤는데 정말 명부신사란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만? 헌원숭이 단주도 아니고, 조장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조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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