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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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25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91화
191화
“크, 크, 무이… 죽여…….”
이무환의 눈이 반짝였다. 말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무이산? 놈을 죽여 달라고?”
초문광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무환이 씨익 웃으며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좋아, 들어주지. 하지만 내가 복수를 해주는 대신 당신도 뭔가 대가를 내놓아야 하지 않겠어?”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부상당한 부위를 손보고 있던 광룡대원 몇 명이 일제히 이무환을 흘겨보았다.
철룡삼의는 아예 입을 반쯤 벌리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이런 상황에서 대가를 바라다니!
그러나 무설강과 제갈신걸과 유철상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검에 묻은 피만 닦았다. 공손척도 쓴웃음만 짓고 할 일을 계속했다.
그때 초문광이 눈을 부릅뜨고 안간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이… 미, 미… 친…….”
“흠, 역시 나를 알고 있었군.”
이무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초문광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초문광은 죽고 싶어도 도저히 궁금해서 죽을 수가 없었다.
광기 때문이든 어쨌든, 평소보다 배는 강해졌다.
그런 자신의 팔을 자르고, 온몸을 벌집으로 만든 저놈은 누굴까? 자신이 도대체 뭘 알고 있다는 말일까?
다행히 이무환의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었다.
“내가 광룡이라는 걸 환비가 알려주었나?”
광룡? 설마… 구룡성의 천외광룡?
초문광이 눈을 부릅떴다.
“크르르, 네가… 과아앙…….”
“맞다니까? 자, 시간이 없으니까, 본론을 말하지. 대가라고 해서 돈을 달라는 건 아냐. 내가 미쳤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돈을 달라고 하게. 안 그래?”
이제는 초문광도 광룡의 말에 화를 내지 않았다. 상대는 광룡이 아닌가.
“혹시 말이야, 천마교에 있는 사우천 사람들 중에서 죽이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놈 없어? 있지? 있으면 말해, 기왕이면 정체가 숨겨진 놈으로. 그럼 내가 그놈을 당신이 갈 지옥으로 보내주지. 어때?”
옆에서 듣던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그런다고 말해줄까?
그러나 초문광에게는 아니었다.
귓전을 파고드는 목소리. 그것은 악마의 유혹이었다. 그에게는 진짜 죽이고 싶은 놈이 하나 있었으니까.
“크르륵, 크르……. 고… 고…….”
힘이 없는지 점점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초문광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악착같이 입을 벌렸다.
이무환은 그의 몸에 공력을 주입하면서 귀를 바짝 가져다 댔다.
“그래, 그래. 알았어. 몇 놈 더 말해도 괜찮아, 말해 봐.”
싸움이 끝난 공터는 핏물로 지옥도를 그려놓은 듯했다.
여기저기 사방에 사지가 잘리고 내장을 쏟아낸 시신이 널려 있었다. 그들의 잘려 나간 팔다리와 시신에서 흘러나온 시뻘건 핏물에 구궁산이 붉게 물들었다.
휘이이이잉!
산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전장을 쓸고 지나간다.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찌른다.
구역질이 절로 올라올 것만 같다.
처참지경. 살아남은 사람들은 입을 꾹 닫고 사상자들만 챙겼다.
사망자가 일곱, 부상자는 그 배도 넘었다. 대부분이 광기에 찬 여섯 명의 광인과 잠풍련의 고수들에 의한 피해였다.
밀천회에선 절명마수 소천득조차 초문광을 상대하다 한쪽 팔이 피로 물들었고, 그러잖아도 어깨가 안 좋았던 정화풍과 화산의 속가제자인 칠절검 안상건이 사망했다.
황산검문은 당대 황산십검 중 칠위와 구위에 올라 있는 남조위와 해청산이 죽고,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사람이 아홉 명이나 되었다.
만겁궁 역시 상황이 비슷했다. 그들 역시 혈추와 마응조, 장로인 요공득이 사망하고 반수 이상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나마도 이무환이 초문광을 비롯한 적의 고수들을 다수 죽인 덕에 피해가 그 정도로 그쳤다.
그들은 사상자를 추스른 후 구궁산을 내려왔다.
제7장. 광룡단을 사조(四組)로 나누다
1
구궁산을 떠나온 지 이틀.
황금빛 노을이 붉게 물들어갈 무렵, 이무환 일행은 무녕(武寧)에 도착했다. 마침내 강서성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것이다.
무녕에 도착할 때까지, 수룡단의 대원들이 앞서 가며 수소문했는데도 환비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잠풍련의 고수 중 혈전에서 죽은 자는 이십여 명. 남은 칠팔십 명이 움직였다면 누군가가 본 사람이 있을 텐데, 어디에서도 그들에 대한 말을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무환은 하는 수 없이 환비에 대한 직접적인 추적을 포기했다. 어차피 그가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결국 무녕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소득이 없자, 담사황이 먼저 장사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더 이상 만겁궁을 비워둘 수는 없네. 자네가 이해하게.”
“제가 어찌 궁주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몇 명은 남겨둘 것이네.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는 해야 하니까.”
“당연히 복수를 하고 싶으시겠죠. 알겠습니다. 경비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사에 올 건가?”
“시간이 되면 가고 싶은데 제가 워낙 바빠서…….”
“혼인식 때가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길이 있으면 들르게.”
“꼭 그렇게 하죠.”
담사황은 말을 내뱉고 나서야 괜히 그 말을 했다고 후회했지만, 이미 주워 담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담사황이 떠나고, 귀월사 도지양과 수라존자 염환, 망혼검 묵청, 만마도 악사광 등 넷이 남았다.
황산검문도 모두가 동행하는 것을 포기하고, 비교적 젊은 사람 중 담환, 백리성혼, 공은효, 하진악, 범요까지 다섯 명만 남겨두기로 했다.
사실 정파로서 천마교를 돕는 일이 께름칙했지만, 복수와 이무환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명분을 내세워서 남겨둔 것이다.
거기에 밀천회마저 부상이 심한 두 사람을 통산으로 돌려보내자, 아홉 명만이 남았다.
모두 합해서 마흔여섯 명.
이무환은 그들을 모두 광룡단에 편입시켰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려면 이름이 하나여야 한다는 이유로. 천마교를 흔든 사우천을 상대하는 데 편이 갈라져서는 안 된다면서!
호연청은 불만이 많았으나, 틀린 말이 아니니 반대하지도 못했다. 반대해봐야 소용도 없을 것 같았고.
비록 한시적이지만, 그렇게 밀천회의 고수들도 광룡단의 대원이 되어버렸다. 십마십존에 속한 고수들까지.
당연히 이무환의 입은 귀밑까지 찢어졌다.
‘우흐흐, 단주는 한 명이면 족한 거 아니겠어?’
그날 밤, 유난히 밝은 보름달이 떴다.
이무환은 뒷짐 진 채 창문 밖의 보름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잘 지내고 계시겠지?’
정신없이 오 개월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외가인 검운장의 여동생이 남궁세가와 인연을 맺고, 천하제일성이라는 구룡성이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문득 사마하연을 떠올리자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맞아, 하연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설마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남궁세가에 데려다 준 지 넉 달이 넘었다. 지금쯤은 어떤 소식이 전해질 때였다.
‘절강으로 보낸 사람이 구룡성에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하지만 강서로 들어온 이상 당분간은 연락을 받을 수 없을 듯했다.
‘에이, 일찍 일을 끝내고 가보지 뭐.’
그때 남궁산산이 슬며시 뒤로 다가오며 물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요, 오빠?”
“어? 어, 하연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서.”
“하연이요?”
남궁산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무환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무환과 연관 지을 수 있는 ‘하연’이라는 이름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왜 그녀의 이름을 저리 정답게 부른단 말인가?
남궁산산의 두 눈에서 싸늘한 눈빛이 반짝였다.
“혹시… 검운장의 하연 언니 말이에요?”
“응.”
“무슨 관계예요?”
왠지 등골이 싸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다.
이무환은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남궁산산을 쳐다보았다.
밝은 달빛 때문인지 눈빛이 더 싸늘하게 느껴졌다.
이무환은 남궁산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닫고 어벙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가… 말 안 했던가?”
“옥이 언니만 말했잖아요. 솔직히 말해봐요. 오빠하고 어떤 사이죠? 정말 노장주님이 그냥 보살펴 달라고 한 것뿐이에요? 아니죠?”
“어, 그러니까…….”
이무환은 말을 끌며 슬쩍 남궁산산의 눈치를 살폈다.
백여우 찜 쪄 먹을 빙심소혜도 경쟁 상대가 또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혜지가 흔들린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이무환은 최대한 웃는 표정을 감추고, 오히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달을 바라보았다.
애가 달았는지 남궁산산이 재촉했다. 싸늘한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빨리 말해봐요. 절대 뭐라고 안 할게요. 어차피 하연 언니는 우리 오빠하고 맺어질 거잖아요.”
이무환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남궁산산의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남궁산산의 눈 깊은 곳에 서려 있던 사이한 한광이 물결처럼 흔들리도 있었다. 더 놀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모습.
이무환은 더 놀리지 못하고 넌지시 말했다.
“그게 말이지. 하연이는… 내 동생이야.”
잠시 시간이 멎은 듯했다.
남궁산산의 몸이 숨을 쉬지 않는 인형처럼 굳어버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한 반응.
이무환은 다급히 한마디 덧붙였다.
“검운장이 어머니 집이거든. 그러니까 하연이는 내 외사촌 동생…….”
순간.
“꺄아아아! 오빠아아아!”
남궁산산이 비명처럼 소리를 내지르더니 폴짝 뛰어올라 이무환을 덮쳤다.
엉겁결에 남궁산산을 끌어안은 이무환이 볼멘소리를 내질렀다.
“어어, 놔, 놔…….”
남궁산산은 다리로 이무환의 허리를 감싸고, 두 손으로는 양볼을 움켜쥔 채 흔들었다.
“저를 놀리는 게 그렇게 재밌어요? 이 광룡오빠야!”
“그, 그게 아니고…….”
“산산이는 속이 시커멓게 타는데, 뭐가 재미있다고 놀려요!”
금방이라도 코를 물어뜯을 것만 같은 기세!
이무환은 얼굴을 뒤로 빼면서 계속 변명했다.
사실 그녀의 손을 떼어내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얼굴에 내공을 주입해 꼬맹이의 손가락을 튕겨내거나, 아니면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손으로 꼬맹이의 손목을 잡아 떼어내면 되었다.
하지만 얼굴에 내공을 주입하면 꼬맹이의 손가락이 상할지도 몰랐다. 아니면 볼을 놓는 대신 귀를 잡고 흔들던지.
그리고 엉덩이에서 손을 떼기는… 더 싫었다.
이무환은 볼이 잡힌 채, 입안에 주먹만 한 구슬이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어눌한 목소리로 변명만 했다.
“놀링 게 앙니랑니까.”
“놀린 게 아니면 뭐예요?”
남궁산산이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톡톡 쏘아댔다.
이무환은 눈만 깜박이며 꼬맹이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코앞에 다가와 있는 꼬맹이의 입술이 유난히 붉다. 씨근덕거리는 숨소리가 묘하게 들린다.
남궁산산의 엉덩이를 잡은 이무환의 손에 알게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음, 음……. 확실히 여자 엉덩이가…….’
바로 그때였다.
덜컹!
문이 열리더니, 영호승 등 광룡사위가 소리치며 뛰어들어 왔다.
“소저! 무슨 일입니까!”
“단주께 무슨 일이라도……!”
갑자기 방 안이 조용해졌다. 뛰어들어온 네 사람은 찰나간에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두 사람이 달빛이 비치는 창가에서 다정하게 끌어안고 있다.
다리를 허리에 걸치고, 엉덩이를 두 손으로 받친 채.
우당탕탕!
네 사람은 들어올 때보다 두 배는 빠르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전 아무것도 안 봤습니다!”
“저는 본 것이 없습니다!”
“거봐, 별일 아닐 거라고 했잖아?”
“빨리 문 닫아!”
쾅!
네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번개처럼 사라지는 동안에도 이무환은 엉덩이를 받친 손을 풀지 않았다.
남궁산산도 허리를 감은 다리를 풀지 않은 채, 화가 좀 풀렸는지 조금 수그러든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그런 일로 절 놀리지 말아요, 오빠.”
“어.”
남궁산산이 볼을 놓고는 은어처럼 늘씬한 팔로 이무환의 목을 감쌌다.
‘옥이 언니 외에는 누구에게도 허락할 수 없어요. 제발 제가 나쁜 여자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오빠.’
2
다음 날 아침.
아침을 먹는데 남궁산산이 말했다.
“사우천의 눈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이상, 많은 수가 함께 움직여서 좋을 게 없어요. 인원을 나누어요, 오빠.”
잘하면 이무환의 얼굴을 당분간이나마 안 볼 수도 있는 일.
호연청은 적극적으로 남궁산산의 의견에 찬성했다.
“나도 남궁 소저의 말대로 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그러자 다른 몇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고, 철우평도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
“사십 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눈먼 봉사가 아니고서야 어찌 모를까?”
“그 정도는 병법의 기본 아니겠소?”
이무환은 남궁산산의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계획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면, 천하 최강의 고수들을 졸병처럼 졸졸 끌고 다닐 수가 없잖은가 말이다!
스윽, 둘러본 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난 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