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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87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87화

 

187화

 

 

 

 

 

 

 

 

옆에서 바라보던 나후령 등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이무환과 남궁산산과 오이삼을 번갈아 보았다.

 

수많은 소문 중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사실이 분명한 듯했다.

 

광룡의 정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

 

정상이라면 어찌 사람의 손뼈를 부수고 저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단 말인가.

 

오이삼을 바라보는 네 사람의 눈에서 왠지 측은하다는 눈빛이 흘러나왔다.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하필 미친놈을 건드리나 그래?’

 

그때까지도 오이삼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분명 자신은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았거늘.

 

이를 악문 그는 고통을 참으며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너, 너는 누군데… 나를 이렇게 핍박하는 것이냐?”

 

“응? 그럼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초혼화의 가룬가 뭔가를 먹이려고 한 거요?”

 

오이삼은 마지막 구명줄을 잡는 심정으로 악착같이 부정했다.

 

“나는… 너를… 모른다. 그러니…….”

 

“흠… 그거 참, 조금 서운하군요. 나처럼 잘생긴 사람을 모르고 있었다니.”

 

“이, 이런 미친…….”

 

“어? 모른다더니 알고 있었네?”

 

“뭐, 뭐?”

 

이무환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광룡이란 걸 알고 한 말 아니었소?”

 

순간 오이삼의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뒤집어졌다.

 

‘서, 설마… 이놈이… 미친… 룡, 광… 룡?’

 

이런 빌어먹을!

 

왜 몰라봤을까? 

 

비록 멀리 떨어진 곳에서 봤고, 한 번은 뒤통수만 보았지만 그는 광룡을 두 번이나 보았다.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정도로 들었고.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알아봤을지도 몰랐다. 

 

자신이 봤을 때와 달리 말끔하게 차려입은 복장, 설마 광룡이 직접 추격대를 이끌랴 하는 선입견, 보따리를 맨 시비와 장난이나 하는 어설픈 모습만 아니었어도 한 번쯤은 그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랬으면 절대 이런 미친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이 멍청한 놈!’

 

그는 자신의 머리를 도끼로 쪼개버리고 싶었다. 

 

그때 이무환의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거든? 대답해 줬으면 좋겠는데. 괜찮지?”

 

 

 

이무환은 오이삼을 객잔 뒤쪽의 허름한 창고로 데려갔다.

 

이런저런 잡동사니와 공구들이 걸려 있는 걸 보니, 객잔을 수리할 때 쓸 물건을 보관해 놓은 곳인 듯했다.

 

“저기다 내려놓으쇼.”

 

금철광이 질질 끌고 온 오이삼을 바닥에 내던졌다.

 

이무환은 오이삼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직이 물었다.

 

“첫째, 어디서 온 사람이지?”

 

“나는… 그냥 이곳에 사는… 끄아아아아!”

 

“이런, 뼈가 튀어나왔네. 잘라내야겠군. 어이, 나 형, 저기 있는 칼 좀 줘봐. 잘 안 들어도 괜찮아.”

 

나후령이 녹이 잔뜩 슨 칼을 집어 들었다.

 

오이삼이 더듬는 목소리로 재빨리 말을 바꿨다.

 

“그, 그게 아니라, 나, 나는… 호, 혹시 훔칠 것이 없나 해서…….”

 

“그럼 도둑놈이군. 도둑놈은 발을 잘라 버려야 하는데. 그래야 도망을 못 가서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거든. 어이, 한 형, 톱 좀…….”

 

한무귀가 벽에 걸린 톱을 고리에서 빼내 들고 다가왔다.

 

무심한 표정,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는 눈빛.

 

오이삼은 몸이 떨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그게…….”

 

“나는 말이야, 거짓말하는 놈을 무지 싫어하거든? 사실대로만 말하면 곱게 보내준다니까?”

 

오이삼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상대는 구룡성을 뒤집어놓은 광룡이다. 이놈이 왜 이곳에 있는지는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눈앞에 있는 놈이 진짜 광룡이라는 것이 중요할 뿐.

 

그때 남궁산산이 환하게 웃으며 들고 온 술병을 오이삼 앞으로 밀었다.

 

“일단 이거부터 한 모금 마시세요. 향이 아주 좋아요.”

 

오이삼의 눈에는 이무환이나, 남궁산산이나 똑같이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였다.

 

‘걸려도 하필 이런 연놈에게 걸리다니.’

 

오이삼은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남궁산산이 내민 술병을 잡았다.

 

어차피 이판사판, 차라리 초혼화의 가루가 타진 술을 먹고 입을 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고통도 덜어질 테니까.

 

 

 

오이삼의 입이 열린 것은 술병을 반쯤 비운 후였다.

 

눈이 몽롱하게 흐려진 오이삼이 이무환의 질문에 대답했다.

 

“내 이름은… 오…이삼이야……. 낄낄낄.”

 

“신분은?”

 

“사우천 혈…사단 이조장이 바로 나다, 어린놈아. 키키키키…….”

 

“왜 우리에게 초혼화의 가루를 먹이려고 한 것이지?”

 

“킬킬킬, 멍청한 새끼. 그거야 너희 두 미친 연놈을 몰래 잡아가려고 한 거지.”

 

퍽!

 

끝내 이무환이 주먹으로 오이삼의 머리를 갈겼다.

 

“욕은 하지 마, 이 미친놈아.”

 

“크크크. 알았다, 미친…새끼야. 대신 너도 때리지… 마라.”

 

이무환에게 미친놈이나 미친 새끼는 욕이 아니었다. 하기에 그 말은 그냥 넘어갔다.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야 ‘똑같이 미쳤군’ 그런 눈으로 바라봤지만.

 

“좋아, 안 때릴 테니까 확실히 대답해. 근처에 네 동료들이 있어?”

 

“물론 있지. 곧 네놈들을 죽이러 올 것이다. 킬킬킬…….”

 

“어디에 있지?”

 

“구궁산에.”

 

 

 

3

 

 

 

동틀 무렵, 사람들이 이무환의 방으로 모였다.

 

작은 방이 아닌데도 십여 명이 들어서자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무환이 정말 재미있는 일이라도 생긴 양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그 모습이 못마땅한지, 호연청이 눈살을 찌푸리며 쏘듯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이른 새벽에 부른 건가?”

 

“어제저녁에 수룡단의 대원이 놈들에 대한 소식을 가져왔다는 말은 들으셨을 겁니다.”

 

왔다는 말만 들었을 뿐,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듣지 못했다.

 

정보의 차단. 그렇게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호연청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함께 놈들을 상대하기로 했으면 뭔가 정보를 줘야 할 것 아닌가?”

 

“주무시는 분들을 깨우기 미안해서 말하지 않았는데, 그냥 깨울 걸 그랬나요? 그럼 앞으로는 그렇게 하죠 뭐.”

 

그럼 그것대로 또 짜증이 날 터다. 보나마나 광룡의 성격상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댈 게 분명하니까.

 

“험, 말이 그렇다는 것이네. 그래,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보게.”

 

이무환이 씩 웃고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본론을 꺼냈다.

 

“잠풍련의 잔당들이 어젯밤 구궁산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백 리가 조금 넘는 거리죠. 해서 일찍 출발할까 합니다.”

 

황보광이 눈을 들고 물었다.

 

“우리가 갈 때까지 그곳에 있겠는가?”

 

소천득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쓸데없이 산속만 헤매다 시간을 보내는 것 아닌지 모르겠군.”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중에는 노골적으로 비웃듯이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철우평처럼.

 

“이 단주는 구궁산이 손바닥처럼 작은 줄 아는가? 우리 인원으로도 그곳을 제대로 살피려면 적어도 하루 이상이 걸릴 것이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십중팔구 그들은 그곳에 있을 테니까요.”

 

호연청이 코웃음 치며 이무환을 합공했다.

 

“훗, 앉아서 천 리군. 과연 광룡다운 자신감이야. 하지만 그런 자신감만으로는 적을 칠 수 없는 법이라네.”

 

“아직 강호의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걸 거요. 이해하시구려.”

 

소천득이 또다시 혀를 찰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때 말없이 앉아 있던 헌원숭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뭔가 다른 정보가 있는 것 같은데, 말해보게.”

 

이무환이 빙그레 웃었다.

 

“제가 그리 자신하는 것은, 그들이 그곳에 들어간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굳어지자, 이무환이 호연청의 뒤통수를 망치로 때리듯 말했다.

 

“사우천의 무력 단체 중 첫째, 둘째를 따진다는 혈사단(血邪團)이 구궁산에 있다고 합니다. 모두 삼백 정도라고 하는데, 철룡부를 돕던 자들도 그곳에서 나왔다고 하더군요.”

 

호연청은 슬그머니 눈을 돌리고 딴청만 피웠다.

 

‘여우같은 자식, 그런 사실을 알았으면 일찍 말해줄 것이지…….’

 

이무환이 입꼬리를 슬쩍 말아올리며 조소를 짓고는, 시선을 돌려서 말꼬리를 달았다.

 

“철룡부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는가 봅니다만.”

 

철우평도 만 근 바위가 머리 위에 떨어진 듯 목을 쑥 집어넣고 아무 말도 못했다.

 

이무환이 무심하게 표정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었다.

 

“환비는 그들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해서 사우천으로 가기 전, 그들과 손을 잡고 추격대를 역습하려는 계획인 것 같니다. 우리들의 머리를 선물로 가져가기 위해서 말이죠.”

 

앉고 선 모두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잠풍련의 잔당과 사우천의 정예라면, 자신들이 아무리 최강의 전력이라 해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더구나 놈들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곳이라면 더욱더 위험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겁날 것은 없었다. 오히려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던 투기가 끓어올라서 가슴에 열기가 번질 지경이다.

 

호연청도 그들을 상대로 광룡에게 당한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그래,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무심하던 이무환의 얼굴에 하얀 웃음이 번졌다.

 

“우리 꼬맹이가 그러더군요. 그 선물, 우리가 천마교로 가져가면 어떻겠냐고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멋진 생각 아닙니까?”

 

 

 

4

 

 

 

“괜찮은 생각이군.”

 

“문제는 저들의 강함이오. 우리가 파악한 대로라면, 저들 중 십마십존에 속한 고수가 끼어 있소. 게다가 대부분이 절정 이상의 고수들이오. 숫자가 적다 해서 절대 과소평가해선 안 될 것이오.”

 

“대호도 사냥꾼의 함정에 제대로 걸리면 빠져나가기 힘든 법이지. 후후후후, 피가 끓는군. 십마십존이라…….”

 

중년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리한 곳은 구궁산 중턱의 바위산 사이에 지어진 통나무집이었다.

 

저 멀리, 비가 멈춘 후 밀려든 안개로 바다가 되어버린 계곡이 보였다.

 

‘벌써 삼 년이 되었군.’

 

구룡성을 잠식하기 위해 본진과 따로 떨어진 지 삼 년. 한때는 소외감마저 느꼈다.

 

사우천 최강을 다투는 흑우령(黑雨靈)과 사유전(邪儒殿)에 의해 밀려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사우천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최고의 공을 세운 자신들을 본진에서 내치다니!

 

그러나 천주의 약속을 믿고, 구궁산에 웅크린 채 힘을 키우며 분노를 삭였다.

 

덕분에 사우천 최강을 다툴 정도의 무력을 보유했다. 무사들의 사기도 극한까지 오른 상태고. 

 

이제 순수한 힘을 따져도 흑우령이나 사유전에게 밀리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 구룡성의 일이 엉뚱하게 틀어져버렸다. 빌어먹을 철군평이 갑자기 자신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린 바람에 모든 일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이다.

 

작전의 실패.

 

이를 갈며 분노를 짓씹었다.

 

‘천’으로 돌아가야 하나? 그런 생각도 해봤다. 

 

열흘 안에 천주의 명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렇게 할 작정이었다.

 

그런 와중에 오이삼에게서 연락이 왔다. 

 

추적대가 구룡성을 나섰다고 한다. 어제 오후에 느닷없이 찾아온 잠풍련 애송이의 추측이 옳다면, 오늘이 지나기 전에 구룡성의 추적대가 산을 오를 듯했다.

 

‘아주 잘되었어. 놈들만 제거하면 단번에 모든 실수를 만회할 수 있을 거다.’

 

오랜만에 혈사단주 초문광의 피가 투기로 달아올랐다.

 

 

 

한편, 환비는 초문광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예상했던 대로 초문광이 자신의 의견을 받아주었다.

 

하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겠지. 구룡성의 일이 실패한 이상 뭔가 성과를 올려야 할 테니까.

 

‘너희들이야 다 죽어도 상관없어. 놈들을 최대한 많이 죽여주기만 하면 돼. 그래야 내가 가져갈 선물 보따리가 무거워질 테니 말이야.’

 

 

 

5

 

 

 

함녕으로 가려던 담사황은 바로 떠나지 못했다. 아니, 떠날 수가 없었다.

 

작별의 인사를 하려는데 이무환이 한발 먼저 말했다.

 

 

 

“멀지 않은 곳이니까 함께 가시죠. 괜찮죠?”

 

자신도 돕고 싶지만 바빠서 안 되겠다고 말하려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진짜 남자는 마무리까지 확실히 하고 대가를 받는 법이죠. 그래야 양심에 찔리는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궁주님?”

 

입을 열기도 전에 그리 말하는데 뭐라 할 건가.

 

“자네 말이 맞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제기랄!’

 

담사황이 속으로 ‘제기랄’을 외치든, ‘빌어먹을 광룡 길 가다 넘어져라’ 고사를 지내든, 이무환은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통산을 지난 지 이각. 저 멀리 안개에 휘감긴 구궁산이 보이자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환비란 놈이 단단히 준비해 놓고 기다리겠지?”

 

“그럴 거예요, 오빠.”

 

“혈사단 삼백에 놈들까지 합하면 사백 정도 되겠군.”

 

“더 될 수도 있어요.”

 

일단은 그럴 가능성을 산정하고 계획을 짜야 했다.

 

“킁, 그럴지도 모르지. 좌우간 놈들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공격할 거라고 생각해?”

 

“지금 안개가 많이 끼어 있어요. 아마 우리가 구궁산의 지리를 잘 모를 거라 생각하고,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해서 함정을 파놨을 거예요.”

 

이무환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안개가 너희들에게만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지.’

 

축축해진 공기를 타고, 왠지 모르게 비릿한 느낌이 드는 짙은 흙냄새가 흘렀다.

 

그때 남궁산산이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느낌이 드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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