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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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21화
221화
“뭐라?!”
장한이 발작하듯이 눈을 치켜뜨자 중년 도인이 손을 들어 막았다.
그는 이무환의 나이가 어려 보인다고 해서 결코 얕보지 않았다. 팽진산과 동남평과 평일도는 결코 하수들이 아니다. 더구나 멀리서 봤을 때 합공을 했다.
자신이라면 어땠을까?
아마 셋의 합공을 무너뜨리려면 이삼십 초는 걸린다고 봐야 했다.
하거늘,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대항조차 못하고 두들겨 맞았다. 눈앞의 어린 청년에게.
“빈도는 무당의 송정이라 하네.”
“풍운대 십삼조 조장이오.”
송정의 이마에 두 줄기 주름이 파였다.
세 사람의 합공을 간단하게 무너뜨린 청년이 기껏 검운장의 일개 조장이라니.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저 양반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팽진산은 별일 아니라고만 했다. 설마 그 말을 그대로 믿으라는 건가?
송정의 이마에 주름이 두 개 더 늘었다.
“좀 자세히 말해주었으면 좋겠군.”
자세히 말해달라면 못해줄 것도 없었다. 그러잖아도 짜증이 난 것을 털어내고 싶었으니까.
“검운장에서 검운장의 사람이 임무 차 밖으로 나가려는데, 검운장의 사람도 아닌 정천무림맹의 사람이 막습디다. 그래서 내가 말했죠. 힘으로 밀고 나가도 되겠냐고. 그랬더니 마음대로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판 붙었죠, 뭐. 됐습니까?”
툭툭 쏘아붙이는 이무환의 말투에 몇 사람이 욱해서 한마디씩 했다.
“정말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자로군.”
“허어, 나이도 어린 자가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이무환은 결코 그들의 말을 고깝게 듣지 않았다. 그렇게 말했으니 그렇게 평가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은 상대가 그런 말을 듣게끔 행동했으니 그렇게 말한 것뿐이고.
“좌우간, 저는 그만 나가봐야겠습니다. 더 할 말 있습니까?”
송정은 이무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무환의 말에 팽진산이 부정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신도 더 이상 붙잡을 명분이 없었다.
그런데…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절정경지에 이른 자신이 상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판단할 수가 없었다. 한밤에 허깨비를 보는 기분이 이러할까?
그가 대답을 못하는 사이 이무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렸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어. 가지.”
광룡사위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조장.”
송정의 눈이 그제야 광룡사위를 향했다. 가벼운 놀람이 그의 눈에 떠올랐다.
‘고수다. 내가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절정고수.’
문제는 그러한 자들이 깍듯이 대하는 이무환이라는 자였다.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저자는 누굴까? 정말 풍운대의 십삼조 조장일까?
‘맞아, 나 령주에게 물어보면 알지도 모르겠군.’
제9장. 종잇장도 맞들면 낫다
1
천당객잔의 구석진 방에 네 사람이 모여 있었다. 칼눈과 세 명의 중년인이었는데, 하나같이 인상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
좋게 말하면 온갖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얼굴이었고, 솔직히 말하면 인상으로 반쯤 먹고 들어가는 흑도계의 보편적인 낯짝이었다.
이무환이 광룡사위와 함께 들어가자 그들의 눈이 일제히 입구를 향했다.
칼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악귀대형이십니다.”
세 중년인은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들은 아직 풍운대의 악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아는 게 없었다. 기껏해야 돌고 도는 소문만 들었을 뿐.
굳이 떠올린다면, 칠도회의 국자상이 만복루의 난리 이후 악귀에게 고개를 숙였다는 것 정도?
솔직히 요즘 같은 상황만 아니라면, 칼눈의 전갈이 있었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앉으쇼.”
이무환이 손을 저어 그들을 앉혔다.
그들이 앉고 싶어서 앉은 게 아니었다. 이무환이 강제로 앉혔다. 무형지기로.
비록 흑도의 밥을 먹고 있지만, 명색이 항주 흑도 방파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아닌가. 셋 모두 무위가 일류 수준은 되었다. 더구나 눈치는 더 비상했다.
그들은 이무환이 어떻게 자신들을 앉혔는지 바로 눈치채고,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절정고수가 아니면 흉내도 못 낸다는 무형지기다. 악귀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은 손짓 한 번에 죽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성질로 따지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악귀가 괜히 악귀겠는가?
항주의 흑도 방파 중 서열 일이위를 다투던 칠도회가 악귀에게 무릎을 꿇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셋 중 제일 눈치 빠른 흑호방(黑虎幇)의 방주 영초산이 벌떡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흑호방의 영초산이외다.”
그는 얼굴이 검고 키가 작았는데, 대신 몸이 탄탄해 보여서 정말 한 마리 검은 호랑이처럼 보이는 자였다.
“만나서 반갑소. 나, 이무환이오.”
뒤따라 두 사람도 재빨리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웅파문(熊破門)의 가조라 하외다.”
“적수방(赤手幇)의 적호인이라 하오.”
가조는 덩치가 곰처럼 큰 자였다. 거기에 얼굴이 박박 그어져 있으니,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얼굴로만 고수를 뽑는다면 단연 그가 제일고수였다.
그리고 적호인이란 자는 사십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술이라도 마신 듯 안색이 불콰하게 달아오른 듯 붉었다. 게다가 눈까지 붉어서 반쯤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흠, 인상들 하나는 멋지군.’
이무환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내가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신 것은 이유가 있어서요.”
칼눈과 세 방파의 주인들이 이무환을 주시했다. 처음에 보던 눈빛과는 완전히 다르게 아주 공손하게 변한 상태였다.
이무환이 흐뭇한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부터 흑도에 내려진 활동 금지 명령이 해제될 거요.”
“오!”
“정말입니까?”
“물론이오. 조금 전 정천무림맹의 동안총령주를 만나 단단히 다그쳤소. 만일 계속 억제하면 재미없을 거라고 말이오. 하, 하, 하.”
네 사람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이무환이 강하다는 것은 방금 전의 한 수로 알았다. 그러나 정천무림맹의 동안총령주를 말 한마디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멋쟁이 영호승이 사람들의 반응을 눈치채고 한마디 했다.
“그냥 믿으쇼. 조장님은 결코 허언을 않는 분이니까 말이오.”
이무환이 영호승의 말을 수정해 주었다.
“이제 밖에 나왔으니 단주야.”
“죄송합니다, 단주님. 다시 말하지만, 단주님은 결코 허언을 않는 분이오. 여러분도 곧 알게 될 거요.”
그랬다. 광룡은 결코 허언을 하지 않았다.
구룡성을 뒤집는다고 했는데, 정말로 뒤집혔다.
사우천을 때려잡는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 때려잡았다. 천마교를 뒤집어놓고.
천하의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광룡사위에게 광룡의 말은 곧 진리였다.
이무환은 그 사이 엽차 잔을 후르륵 비우고 입을 열었다.
“단, 영업하는 거야 봐주는데, 이전처럼 양민들이나 등치면 나도 할 말이 없어지지.”
그러고는 스윽 고개를 돌리며 네 사람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칼눈과 세 명의 흑도 방파 주인들은 움찔하며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이무환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먹혀들었으면 좋고, 아니면 알아듣게 해주면 될 테니까. 광룡의 법대로.
“험. 좌우간 그렇게 알고, 지금부터 내 말대로 움직여 주시오.”
흑도 방파 주인들이 돌아간 지 한 시진이 지날 무렵이었다. 순우경이 한 사람과 함께 이무환을 찾아왔다.
나이는 사십대 초반 정도였는데, 턱이 생쥐처럼 뾰족하게 빠진 자였다. 그를 보고 이무환은 풍운대의 소지공을 떠올렸다.
‘친형제라 해도 믿겠군.’
그때 순우경이 그를 소개했다.
“본 교의 항주 책임자예요.”
소지공을 닮은 자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는 천마교 정보 조직인 마월당의 향주다. 항주에 와 있어서 구룡성의 일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천마교에서 광룡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정도는 알았다.
“소면생이라 합니다.”
‘캬아, 성까지 같군!’
이무환은 무릎을 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순우경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재빨리 입을 열어 자신의 마음을 감추었다.
“현재 항주 일대에 들어와 있는 교도들은 모두 몇이나 되죠?”
“스물두 명입니다, 공자.”
“그들이 모두 검운장과 적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흠…….”
천마교의 정보 조직과 항주의 흑도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숫자는 스물두 명이지만, 이백이십 명보다 더 확실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었다.
“내일부터 항주의 흑도 방파가 움직일 거요. 당신들이 그들을 이끌고 정보를 취합하도록 하쇼. 한 사람이 스무 명 정도를 움직이면 될 것 같은데…….”
“그들이 저희 말을 듣겠습니까?”
무력으로 누르면 못할 것도 없다. 천마교의 이름을 내세우면 더 쉬웠다. 그럴 수 없다는 게 문제일 뿐.
이무환은 그 일에 대해서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악귀가 시켰다고 하쇼. 그럼 말을 들을 거요.”
소면생이 힐끔 이무환을 올려다봤다.
악귀.
그도 정보를 모으던 중 그 이름을 들어보았다.
제법 독하다고 했다. 얼마나 독한지, 악귀에게 항주 흑도의 거물 칠도회가 무릎을 꿇었다는 말도 들렸다.
솔직히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제까짓 게 독해봐야 얼마나 독할까?
천마교의 교도들 귀에는 선창가에 꼬여드는 똥파리 이름 정도로 들릴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지금은 아니지만.
설마하니 항주의 악귀가 광룡일 줄이야!
“알겠습니다, 공자.”
일단 볼일이 끝나자, 이무환은 목소리를 낮추고 지나가듯이 물었다.
“혹시… 잃어버린 동생 없소?”
“예?”
소면생이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이무환은 손을 저으며 싱거운 말투로 말했다.
“아, 아니오, 그냥 물어본 것이니 신경 쓸 것 없소.”
그런데 소면생의 얼굴은 상당히 심각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무환이 멍한 눈으로 소면생을 바라보았다.
“그럼, 정말로 동생을 잃어버렸단 말이오?”
“바로… 이곳에서 잃어버렸지요. 벌써 이십 년이 넘었습니다만…….”
잠시 말을 멈춘 소면생의 눈빛이 자잘하게 흔들렸다. 전혀 천마교도답지 않은 눈빛이었다.
입꼬리를 몇 번 비튼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은… 그래서 항주에 갈 사람을 뽑을 때 자원해서 나왔습니다, 공자.”
이무환은 눈을 실처럼 가느다랗게 뜨고 소면생을 바라보았다.
‘맙소사! 그럼 진짜로… 친형제?’
2
봄비가 내리던 날.
항주에서 서남쪽으로 백 리가량 떨어진 부양(富陽)에 오십여 명에 이르는 흑의인들이 들어섰다.
그들은 부양을 지나쳐서 빠르게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더니 전당강을 따라 길게 뻗은 두 줄기 산맥의 가운데로 들어갔다.
평행으로 내달리는 산맥 사이에는 뜻밖에도 제법 넓은 농토가 기다랗게 펼쳐져서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러한 농토 때문인지 그곳에는 제법 큰 촌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초로인 셋과 흑의인 사실칠 명은 안내하는 무사를 따라서 촌락으로 들어갔다.
촌락은 제법 컸는데, 그중에는 십여 채의 건물이 지어진 장원도 있었다. 아마 일대 촌락을 다스리는 촌장의 집인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장원뿐 아니라, 촌락 전체 집의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묵운방과 절강의 마도연합세력이 촌락 자체를 접수한 것이다.
“오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어르신.”
위지호천은 문밖까지 나가서 손님을 맞이했다.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묵운방의 중심 고수들이 왔다.
방주의 최측근인 좌우 태상 중 우태상 경충문, 여덟 명의 장로 중 둘, 그리고 묵운방의 최강 정예인 묵운백령 중 사십칠 명이.
이들이 합세한 이상 검운장의 절대고수들도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위지호천의 가슴이 뜨거워질 무렵, 맨 앞에 있던 청색 비단 장삼의 초로인, 경충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수고가 많네, 삼공자. 방주께서도 삼공자의 노고를 치하한다는 말씀이셨네.”
“별말씀을. 아직 검운장을 무너뜨리지 못했으니 방주님께 죄송할 뿐입니다.”
“설마 그런 고수들이 갑자기 나타날 줄은 우리도 미처 예측을 못했다네. 해서 삼공자의 죄를 묻지 않는 것이지.”
“감사합니다, 어르신. 일단 들어가시지요.”
넓은 방 안에 경충문과 두 명의 장로, 위지호천을 비롯한 묵운방의 수장들 넷, 흑마련의 조창산과 혈해방의 염전, 그리고 감색 장삼을 입은 청년과 광유가 마주 앉았다.
위지호천이 조창산과 염전과 감색 장삼의 청년과 광유를 소개시켰다.
소개가 끝나자 경충문은 감색 장삼을 입은 청년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미 인사를 나눈 터라 그는 감색 장삼을 입은 청년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잠풍련의 상황에 대해선 방주께서도 애석하게 생각하시네. 야율 련주께서 그렇게 돌아가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신경 써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자네가 이곳으로 올 줄은 미처 몰랐군. 사우천으로 갈 줄 알았는데 말이야.”
감색 장삼을 입은 청년, 환비가 그 말을 듣고 짐짓 쓴웃음을 지었다.